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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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지 마라(1)
“단주님, 저희 왔습니다.”
풍주점으로 두 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그들은 맹호단의 무인들로, 선한 인상의 덩치가 양청(洋淸), 어려 보이는 호남형이 명도(明刀)였다. 그들은 유난히 백표를 잘 따랐던 충성스러운 무인들이었다. 그야말로 백
표의 수족이라 할 만한 이들이었다.
백표가 떠날 때 가장 많이 말렸던 이들이었고, 함께 그만두겠다고 방방 뛰는 것을 겨우 달래고 나왔다.
백표가 그들을 보며 야단치듯 말했다.
“단주님이라니? 임단주가 들으면 어쩌려고?”
임단주는 새로운 맹호단주로 과거 부단주였던 임중태(林衆泰)를 의미했다.
그러자 양청이 웃으며 말했다.
“임단주님도 만날 단주님 이야기만 합니다. 단주님 보고 싶다며, 괜히 단주직 맡았다고 그만 두겠다는 말이 입에 붙었습니다.”
명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양청의 말이 사실이라고 거들었다.
백표가 피식 웃었다.
“그 사람도 참.”
맹호단주 시절 백표는 맹호단 무인들에게 존경받는 단주였다. 당연히 부단주였던 임중태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백표 개인뿐만 아니라 맹호단의 무인들은 유달리 유대감이 깊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맹주호위란 임무는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다.
그냥 봐선 잡담이나 하면서 설렁설렁 문이나 지키는 일 같겠지만, 호위무인의 일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웠다. 특히 맹주의 목숨이 자신들에게 달렸다는 생각에 그 심력소모가 일반 무인들보다 몇 배는 더 심했다.
백표가 웃으며 말했다.
“거긴 고생이지만 나오면 지옥이라고 전해드려라. 그냥 고생도 복이거니, 열심히 하시라고 해.”
“하하, 조만간에 들르시겠답니다. 직접 전하시지요.”
“천천히 와도 된다고 해라.”
개업한 직후에 한 번 온 이후, 임중태는 통 시간을 못 내고 있었다.
하지만 백표는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맹호단주가 얼마나 바쁘고 힘든 자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처음에 한 번 와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두 사람이 직접 술을 가져와서 마셨다.
잠시 후 백표가 안주를 요리해 가져다주자, 두 사람이 평소와는 다른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주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백표가 내심 긴장하며 그들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이냐?”
“저희 둘, 그만두려고 합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냥 일도 힘들고.”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닐 것이다. 일이야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쭉 힘들었으니까.
“보람도 없고.”
이게 진짜 이유였다.
호위무인은 오직 사명감으로 일하는 이들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지켜준다는 자부심. 그것이 있었기에 박봉에도 밤잠을 자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마봉기에게서 그럴만한 가치를 찾지 못한 것이다.
보았어도 잊고, 들었어도 잊으라고 배우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어찌 이들이라고 눈과 귀가 없겠는가? 마봉기는 마봉기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천도문 일파가 중원 곳곳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까지 듣
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우리가 왜 이런 사람을 지켜줘야 하는가?
이런 회의감에 시달리다가 결국 마음을 굳힌 것이다.
두 사람은 특히 백표와 가까웠기에 가장 먼저 찾아와서 결심을 전하는 것이다.
“나와서 대책은 있고?”
백표가 묻자 양청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점소이라도 하면 안 됩니까?”
물론 장난이었다.
명도가 덩달아 장난에 합세했다.
“전 주방에서 그릇 씻겠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보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백표는 웃지 않았다.
백표가 진지하게 자신들을 쳐다보자 두 사람도 웃음을 거두었다.
백표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직이 말했다.
“정말 할래?”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백표가 하자는 것이 주점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 좁은 곳에서 셋이나 일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니, 크기를 떠나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나 하자고 할 사람이 아니
었으니까.
그들은 백표가 하자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양청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하겠습니다.”
명도가 뒤이어 말했다.
“시켜만 주십시오.”
여전히 그들의 두눈에는 충성심이 가득했다.
백표가 웃으며 말했다.
“손님으로선 마지막일 테니…… 오늘은 실컷 마시고 놀아라.”
* * *
나도 천상 무인은 무인이구나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로 여인을 평가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여인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하자면 바로 지금이다.
쉬이이익.
송화린의 검이 내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물론 여인이 내 목숨을 노릴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변태는 절대 아니다.
내 말은, 여인이 무공을 펼칠 때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하물며 그것이 송화린이라면 어떻겠는가?
쭉 뻗은 다리와 잘록한 허리, 봉긋한 젖가슴까지. 그 환상적인 몸매에 아름다운 얼굴까지.
환락여제가 아무리 관능적인 나신으로 유혹하더라도, 지금 이를 악물고 땀에 젖은 채 검을 찔러오는 그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날아든 검을 피한 후에 소리쳤다.
“한 번 더, 다시!”
송화린이 다시 검술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가 펼치는 초식은 내가 찾아낸 바로 그 파훼법이었다.
그의 사부를 이 파훼법으로 상대할 것이다.
“다시!”
“또 다시!”
“다시!”
같은 초식을 수십 번 반복했다.
“실전에 들어가면 많이 떨릴 거다. 긴장은 실수로 이어진다. 막을 방법은 오직 연습뿐이다.”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하는 길 밖에 없다. 사람의 정신이란 아주 예민해서, 그 순간 어떤 것에 반응할지 모를 일이다.
상대방이 던진 뜻하지 않은 도발에 걸려들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심마에 정신이 팔릴 수도 있다.
하지만 몸이 기억하면 된다.
정신을 무시하고 몸이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생각은 죽을 짓을 해도, 몸이 반응해서 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호되게 그녀를 가르쳤다.
사부와 겨루는 자리에 나도 있겠지만, 이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다.
초식이 몸에 익자 이번에는 한 가지를 더 가르쳤다.
“아마도 네 사부는 초식을 파훼하면서 공격하더라도, 아마 피해버릴 거다.”
“피한다고?”
그녀의 놀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연속 공격으로 마무리를 지어야지.”
호연남이 자신이 가르친 초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 되는 실력이라면 반드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반응만 대비해서 연습하면 돼!”
그가 알았을 경우와 몰랐을 경우. 나는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
밤늦도록 그녀와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자정 무렵이 되자 그녀는 완전히 나가 떨어졌다. 이렇게 힘들게 수련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그녀 옆에 앉았다.
“고생했다.”
내 말에 그녀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뭔가 지금까지 했던 수련과는 기분이 달라.”
“지금까지의 네 수련은 틀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틀? 무슨 틀?”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피곤함이 가득했지만 눈빛만은 더 없이 맑았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그런 상태였다.
“네 사부가 만들어 준 틀이지. 딱 여기까지 수련하면 몸과 마음이 만족하게 되는 틀. 그 이상이 넘어가면 힘들어지는 틀. 그걸 다른 말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뭐지?”
“한계.”
“아!”
“오늘 그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받은 거다. 우리는 흔히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한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막연히 노력해야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지.”
그녀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한계는 외부에 있지 않아. 어딘가를 넘어서야 하는 선이나 줄이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지.”
“그럼 어디에 있는데?”
“네 자신에게 있지. 네 평소 행동, 습관, 생각. 그 자체가 한계라는 거지. 한계를 깨려면 단지 노력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야. 행동과 생각,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는 거지.”
“아!”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강호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이 순간이 때론 한 무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심득을 얻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윽고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확실히는 몰라도 조금은 알 것 같아.”
“그걸로 충분해. 오늘 고생했다. 아주 훌륭했어.”
그녀가 땀에 젖은 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배운 초식은 시간 날 때마다 계속 수련해. 며칠 내로 사부를 만나게 될 거야.”
“고마워.”
“고맙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절대 잊지 마. 그날 네가 믿을 것은 나도, 네 정신도 아니야. 오직 네가 한 수련을 기억하는 네 몸이야.”
* * *
나는 그길로 곧장 산동야상에 잠입해 들어갔다.
내공이 거의 이 갑자에 육박한 지금, 야상을 지키는 이들 중에 내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야상과의 인연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감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얽히게 되는 것이다.
야상의 수장인 야천의 집무실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야천과 그의 오른팔인 구철이었다. 일전에 천도문의 시곤을 죽인 바로 그 구철이었다.
“설마 길을 몰라서 오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망할 놈이 제 딴에는 중원사대세가라고 우릴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야상에서 호연세가에 도움을 청해서 호연남이 내려왔다. 하지만 호연남은 산동에 도착해서도 자신들을 찾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관없다. 명문정파 늙은 것들의 잘난 척을 어디 한두 번 겪었더냐?”
“그래도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상대가 천도문의 도살자 염화입니다.”
“으음.”
야천의 신음성에서 걱정이 담겼다.
“놈들이 딴마음을 품고 있을까 걱정됩니다.”
“딴 마음이라니?”
“대충 뭉그적거리다가 돈만 가로채려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이번 일을 처리해주는 대가로 자그마치 이십만 냥이나 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호연세가에서 요구한 액수였다. 그들은 이 액수가 아니라면 절대 이번 일에 개입하려 들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호연세가와 줄을 이어준 강서야상에 오만 냥을 따로 주어야 했다. 호연세가는 강서 쪽에 기반을 둔 곳이었고 강서야상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강서야상이 일종의 매파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들어갈 돈이 자그마치 이십오만 냥.
그 돈을 벌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런 상황인데 호연세가에서 왔다는 호연남은 산동에 도착해서도 코배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걸 그랬습니다.”
구철의 말에 야천이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염화같은 고수에게는 너희들의 암기가 통하지 않는다!”
“한꺼번에 달려들면…….”
“한꺼번에 다 뒈지겠지. 지금 도살자는 어디에 있나?”
“천도오우란 자들과 함께 명수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감시 잘 하고 있지?”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한데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뭐냐?”
“그 도살자 놈은 왜 명수장에 처박혀 있는 겁니까? 우릴 노리는 것이라면 왜 당장 이리로 오지 않는 겁니까?”
야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놈은 나를 암살하러 온 것이 아니니까.”
“네?”
“내게 복수를 하러 온 거다. 산동은 물론이고 중원 전역에 이 사실을 알리려는 거다. 도살자 염화가 산동야상을 박살내러 왔으니, 잘 보라고. 구경꾼을 모으고 무대를 깔고 있는 중이지. 결국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
개처형하겠다는 것이지.”
야천의 말에 구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정수란 놈을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가서 해명하겠습니다.”
“놈들이 믿어주겠느냐? 이미 늦었다.”
천도문의 시곤을 죽였을 때, 이미 일은 꼬일 대로 꼬여버린 것이다.
“제가 책임지고 놈을 없애버리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외출준비나 해라.”
“어딜 가시게요?”
“호연남을 만나러 간다. 오지 않겠다면 우리가 만나러 가야지.”
지금 믿을 것은 호연세가 뿐이었다. 자신은 빠져 나가고 이 싸움을 어떻게든 호연세가와 천도문의 싸움으로 만들어야 한다.
“뭉그적거리는 이유가 뭣이겠느냐? 따로 좀 챙겨달라는 것이겠지.”
야천이 뒤쪽 책장에서 몇 가지 책을 순서대로 조작했다. 그러자 책장이 열리며 비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철을 밖에 기다리게 하고 야천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야천이 다시 그곳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 두툼한 혁낭이 들려 있었다. 그가 혁낭을 두드리며 말했다.
“개새끼! 우린 무시하고 싫어할지 몰라도, 이건 싫어하지 않을 걸?”
두 사람이 방을 나섰다.
일각 후, 한 대의 마차가 은밀히 야상을 떠났다.
나는 건물 벽에 붙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 옆에 난 창문은 바로 야천이 대화를 나눴던 그 방의 창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모두 엿들었고, 야천이 비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서 돈을 꺼내오는 것을 보았다.
저 안에 금고나 비밀창고가 있는 것이다. 구철이 있는 앞에서 저곳에 들어갔다는 것은, 야천이 아니면 절대 열지 못하는 장치가 되어 있다는 것이리라.
잠시 빈 방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이들의 움직임이다.
돈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언제나 그랬듯 돈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뤘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전리품이 되어야 한다.
내가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경계를 서던 무인이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연무장의 하늘을 새처럼 가로질렀던 나는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