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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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3)
호연세가의 대청 가운데 호연탁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를 따라 산동으로 갔던 제자들은 뒤쪽에 일렬로 서 있었다. 몇 몇이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고, 다행히 그날 죽은 사람은 없었다.
호연남이 죽고, 염화가 중상을 입는 바람에 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죽이고 말고 할 정신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건이었기에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느 한쪽이 몰살당했을 일이었다.
호연탁은 제자이면서도 호연세가의 핏줄을 이어받은 인물이었다. 직계가 아니라 방계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반 제자들과는 달랐다.
높은 단상에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은 호연세가의 가주 호연세였다. 이번에 죽은 호연남은 그의 셋째 동생이다.
호랑이가 그려진 장포를 입은 호연세는 백발에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렸는데, 단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 가문을 이끄는 수장의 면모를 제대로 보였다.
호연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척 하고 있었다.
혈육이긴 하지만 호연남과는 그리 깊은 정이 없었기에 그의 죽음이 가슴을 찢을 만큼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슬퍼야 한다. 이 슬픔이 세상에 나가서 어떤 역할을 할 테니까.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둘째인 호연춘(呼延瑃)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벌을 내릴 것 같은 차가운 눈빛으로 제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고를 겪은 제자들 이외에 이곳에는 두 사람이 전부였다.
이윽고 호연세가 천천히 눈을 뜨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제자도 알 수 없습니다. 사부님이 갑자기 검을 빼들고 염화를 공격하셨습니다.”
“이 놈!”
호연세가 일갈을 내질렀다. 그의 몸에서 나온 기파가 공간을 뒤덮었다.
그 기세에 호연탁이 공포에 질렸다. 뒤에 선 제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냐?”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남이가 먼저 공격을 했단 말이더냐?”
“그러하옵니다.”
뒤에 서 있던 제자들도 일제히 그렇다고 입을 모았다.
호연세가 옆에 서 있던 호연춘을 쳐다보았다.
호연춘이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호연남의 성격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뜻이었다.
호연춘은 호연남을 싫어했다. 호연춘은 호연남과의 이인자 싸움에서 이겼지만, 그로 인한 앙금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호연세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소식이 날아들 때만 해도 그 내용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호연남이 먼저 기습을 가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했다. 더 큰 문제는 그때 공식 회합이 열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존심 강하고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천도문의 도살자 염화가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개에게 물리고, 보상은커녕 개 이빨 깨진 값까지 물어내야 하는 셈이다.
“물러가서 근신들 하라.”
“네.”
뒤에 서 있던 이들이 모두 물러갔다. 하지만 호연탁이 남았다.
“가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호연탁이 조심스럽게 야천이 찾아온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혁낭에 가져온 돈을 호연남이 가지고 나갔던 것까지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호연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호연남이 야상의 돈을 받고 염화를 기습한 것이 되었다. 호연세가의 명성에 크게 누가 될 일이었다.
“이 일을 다른 제자들도 알고 있느냐?”
“아닙니다. 오직 저만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은 앞으로 절대 입에 담아선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호연탁이 물러났다.
대청에는 이제 호연세와 호연춘만 남았다.
호연세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심한 놈, 제 놈이 처리하겠다고 설쳐댔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키지는 않았지만 천도문 일에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호연남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십만 냥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니까.
“이번 일을 수습을 하려면 결국 그들을 만나야겠군.”
호연세의 말에 호연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들과 접촉하겠소.”
“그래주시게.”
“한데…….”
호연춘이 말꼬리를 흐리며 호연탁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어떻게 하실 거요? 남이가 돈을 받고 일을 벌였다는 소문이 퍼지는 날에는…….”
호연세가 가만히 호연춘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무슨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 호연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공총관이 방에 틀어박히자, 광두는 다시 수련에 몰두했다.
관휘의 실력이 늘었다는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무인에게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좋은 정도가 아니라 축복이라 할 수 있었다.
광두는 열심히 수련했다.
나는 그를 따로 가르치지 않았다.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도 그냥 두었다. 하나하나 다 건드리면 오히려 더 망칠 수 있었다.
그냥 스스로 깨닫게 두고, 질문해 오면 그때 가르쳐 주면 될 것이다.
나는 광두가 수련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따로 수련했다. 내 수련이 광두에게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직 광두는 외부의 자극보단 제 수련에만 집중할 때였으니까.
나는 산 정상에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천무호심결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발휘되고 있어서, 내공은 꾸준히 쌓이고 있었다. 이갑자의 내공까지는 일 년여의 시간이 남았다.
이번에 얻은 돈으로 영약을 구하면 그 일 년을 단축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돈을 써야할 곳이 있어서기도 했지만, 어차피 사초식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굳이 영약을 사면서까지 오초식 욕심을 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수련은 명상을 통한 수련이었다.
근래 깨달음이 일상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해서, 모든 발전을 일상에서만 찾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수련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깨달음이란 말도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마음속으로 선학비술을 떠올렸다. 동작 하나하나를 떠올리면서 가상대결을 펼쳤다.
상대는 혈천신교의 교주였다. 그는 내가 상대한 이들 중 가장 강한 인물이었으니까.
그와는 한나절이나 생사혈전을 펼쳤기에 어떤 마공을 지니고 있는지, 그 마공이 어떤 위력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와의 대결을 심상(心象)으로 떠올렸다.
선학비술로 마교주를 파고들면서 접근전을 펼치며 공격했다.
첫 번째 대결에서 내 머리통이 박살났다.
두 번째 대결에서 몸통 절반이 날아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의 선학비술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선학비술의 대성을 이루면 그를 죽일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추혼수라검술과 선학비술을 동시에 떠올렸다. 두 개의 무공을 합쳐서 마교주를 상대했다.
검술과 비술이 얽히면서 더 힘든 싸움을 펼치는 심상이 떠올랐다.
절대고수를 상대하면서 두 개의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 두 개의 무공을 적절하게 융합해서 적을 상대하는 방법을 찾아낼 생각이다.
수련을 마치고 광두와 저잣거리로 나갔다.
원래 기거하던 객잔이 아니라 무림맹 본단 근처의 다른 큰 객잔에 들러서 밥을 먹었다. 바람도 쐴 겸, 최근의 소문도 들어보려는 것이다.
“힘들게 수련을 마치고 먹으니 정말이지 꿀맛입니다!”
“많이 먹어라. 더 시켜주마!”
“도련님, 간만에 술도 한 잔 해요.”
“좋지.”
점소이를 불러 술과 안주도 시켰다.
시원하게 술잔을 비운 광두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캬, 정말 더 바랄 것이 없네요. 수련 후에 마시는 이 한 잔의 술이란!”
인정한다. 더구나 그것이 마음에 맞는 사람과의 자리라면 기쁨은 배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다들 그 이야기네요.”
객잔에서 화제는 호연세가와 천도문 이야기뿐이었다. 워낙 강한 두 가문의 충돌이었기에, 화제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의견은 분분했다.
먼저 기습을 가한 호연남의 책임이 크다는 이들도 있었고, 그렇다고 호연남을 죽여 버린 염화가 잘못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호연세가가 멸문당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멀리서 떠들어대는 그 말에 광두가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호연세가가 망하기야 하겠습니까? 강호사대세가 중 하나인데요.”
“그야 모를 일이지.”
“네?”
“한 문파가 서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니까.”
그리고 문파가 크면 클수록 그 여파 역시 클 것이다. 큰 덩치를 지탱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주위 물건들을 모두 부수면서 쓰러질 테니까.
그때 사내 하나가 객잔으로 달려 들어오며 숨 가쁜 소식을 전했다.
“자네들 소식 들었나? 호연세가의 제자가 자결을 했다고 하네.”
“뭐? 호연세가의 제자라면 이번에 죽은 호연남의 제자 말인가?”
“맞네. 이름이 호연탁이라고 들었네. 아무튼 그가 사부의 죽음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자결을 했다고 하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지난 일을 겪으면서 호연탁은 내가 봤던 사람이다. 사람을 보면 느낌이란 것이 있다. 그는 약해 보이지 않았다. 사부의 죽음에 괴로워할 수야 있겠지만 자결까진 할 것 같
지는 않았었는데? 서늘한 바람이 마음속을 스쳤다.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저런.”
“꽃다운 청춘이 아깝게 갔군.”
“사부를 위하는 마음이 극진했나보네.”
“과연 명문정파의 제자답구나.”
모두들 죽은 제자를 위해 한 마디씩 했다.
광두도 애도를 표했다.
“아,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한잔 술을 비웠다. 술잔을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과연 자결한 것일까?”
“아니면요?”
이내 내 말에 담긴 뜻을 짐작한 광두가 흠칫 놀랐다.
“헉! 무섭게 왜 이러세요?”
나는 숱하게 봐왔다. 가문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들을 버젓이 자행하는 것을.
“그래,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맞을 수도 있다.”
채 꽃도 피워보지 못한 젊은 제자의 자결에 염화에 대한 비난여론이 일기 시작할 것이다. 비난은 곧 천도문으로 퍼져나갈 것이고.
먼저 기습을 한 것은 호연남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책임은 염화가 져야할 상황일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 모르기에…… 이것이 바로 네가 무공을 배우는 이유다.”
“왜죠?”
“진실을 알려면 강해야 하니까.”
약한 이들의 진실은 영원히 묻히는 법이니까.
광두가 나를 보며 진지하게 답했다.
“네, 열심히 수련할게요.”
만약 호연세가에서 그를 죽이고 자결로 위장한 것이라면…… 그들은 선을 넘었다.
언젠가 선을 넘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 * *
강가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칠호에게 보고를 받았던 바로 그 일호였다.
파도치는 해변 그림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는 이제 낚싯대를 드리운 채 강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방갓을 눌러쓴 사내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놀랍게도 방문자는 호연세가의 호연춘이었다.
“물고기는 잘 잡히시오?”
“아침부터 나와 있는데 입질이 영 신통치 않구려.”
“낚시를 하면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아(無我)의 경지를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요?”
“그런 말이 있지요.”
“하나 나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취미가 없소.”
“흔히들 낚시가 아주 정적이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소. 낚시는 무공과 닮아 있소.”
일호의 말에 호연춘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움직임 속에 고요함(動中靜)이 있고, 고요함 속에 움직임(靜中動)이 있다는 말이지요. 가만히 지켜보다 찌가 흔들릴 때 힘차게 낚싯대를 낚아채듯, 칼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지 않소?”
“그렇기도 하구려.”
하지만 호연춘은 진심으로 납득하지 않았다.
‘그렇게 가져다 붙이면 밥을 짓는 것이나, 똥을 싸는 것이나, 세상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나?’
호연춘이 내심을 감춘 채 본론을 꺼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본가에서 천도문과 작은 마찰이 있었소.”
그러자 일호가 대뜸 말했다.
“산동야상에게 이십만 냥을 받기로 하셨지요.”
호연춘은 기분이 나빴다. 굳이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콕 찍어서 돈 욕심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 쪽은 일단락이 되었소만, 천도문쪽은 문제가 남은 듯하오. 특히 도살자 염화는 이번 일을 이대로 덮지 않을 것이오.”
염화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는 호연탁이 자결한 것 정도로 이번 일을 끝내지 않을 것이다.
“그가 마봉기를 만나러 무한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러자 일호가 고개를 끄덕여서 그 일이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자신들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알겠소. 이번 일은 우리 쪽에서 해결하지요.”
“고맙소.”
호연춘이 일어서 가려는데 일호가 말했다.
“이번 한 번 만이오. 다시는 이런 일 벌이지 마시오.”
순간 호연춘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지금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호연춘의 도발에 일호는 다시 강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한 마디.
“경고요.”
잠시 그를 쳐다보던 호연춘이 말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한참동안 강물을 응시하던 일호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이리 물을 좋아하는지 아나?”
그러자 조금 떨어진 나무 뒤에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녀는 바로 일전에 마정수를 감시했던 칠호였다.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가 물에 빠져 죽었거든.”
뭐라 위로의 말이라도 한 마디 나올 법 했지만 칠호는 감정 없는 어조로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셨군요.”
일호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녀를 이렇게 교육시킨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괴망량(怪??)을 데려가서 이번 일을 처리하도록.”
역시 칠호는 네라는 짤막한 한마디만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일호가 다시 강물을 바라보았다. 찌가 흔들렸지만 낚싯대는 낚아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