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fe Player RAW novel - Chapter 399
강시형의 어그로가 성가셨다.
더군다나 푸른 탑을 지키고 있는 학생들이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아 전선을 돌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했다.
하여, 은하는 공략대를 공백기에게 일임하고는 단일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꼭 1층부터 들어가라는 법은 없지.
호시미야 카에데의 화살을 이용해 탑 최정상에 도달하기로 했으니.
도중 배수빈의 방해가 들어왔으나, 은하는 무사히 차은우를 만날 수가 있었다.
“은하야!!”
외벽을 부수고 내부로 들어온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제일 먼저 은우가 눈에 들어오고, 그녀의 곁에 있던 최가인이 자신을 반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은하는 그녀를 무시하고는, 갑작스럽게 난입한 자신을 향하여 무기를 겨누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우, 움직이지 마…!”
“노, 노은하! 너는 지금 포위됐다! 살고 싶으면! 손에서 무기 버리고 두 손 머리 위로 들어!”
그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으나, 평소 최가인과 어울려 다니곤 하던 이들이었다.
유망주는 없었다.
목민호가 없는 것으로 보아하니, 유망주들은 그를 따라간 것 같았다.
그들의 실력을 확인하지 못하게 된 은하는 이내 흥미를 잃은 시선으로 부채꼴로 그를 겨누고 있는 무기를 훑어보았다.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 오지 마!”
학생들은 무기를 들이밀지 않고, 오히려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몇 걸음을 더 내딛었더니 그들은 다급한 얼굴을 하며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결국 은하는 자신에게 닿지 못하는 무기를 무시하면서 차은우를 향해 걸어갔다.
“은하야! 우리 이렇게 보는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지 않니!?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톡을 보내도 제대로 답도 안 해주고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최가인이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은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파직
그러던 은하는 보이지 않는 방벽을 눈치 채고는 걸음을 멈췄다.
차은우가 전개해놓은 보호마법.
이제 보니 최가인의 머리가 꽃밭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 달려들면서도, 보호마법 밖으로는 걸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 보호마법의 경계선상에서 걸음을 멈춘 채로.
그녀는 이제야 시선을 마주하게 된 은하를 보고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런데 은하야, 이거 어떡하지?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 이상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겠는데….”
“…….”
“물론, 은하 네가 무기를 버리고 우리한테 투항하면 들어올 수 있어. 이참에 하양이 같은 애는 버리고, 나한테 오렴. 내가 잘해줄게.”
최가인이 상글거리며 말한다.
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차은우의 보호마법이 대단하더라도 현재 시점에서는 그의 파훼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은하가 투명한 방벽에 손을 뻗자, 방벽이 저항하려고 하면서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은우! 너희는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만 있을 거니!?”
최가인의 눈동자에 동요가 일었다.
그녀가 황급히 은우에게 명령하여 보호마법 위로 몇 겹의 보호마법을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앙칼진 목소리로 그동안 은하를 위협하는 행세만 하고 있던 학생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중 용기가 있는 학생이 목검으로 은하의 손을 쳐냈다.
“거, 겁먹지 마! 쪽수는 우리들이 훨씬 많아! 수로 밀어붙이면 은하도 아무것도 아니야!”
한 명을 시작으로 달려들기 시작한 학생들.
은하는 그들의 공격을 피해내고는 그들을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학생들이 바닥에 쓰러진 충격으로 고통에 찬 소리를 앓는 가운데.
원령
은하는 몇 겹으로 둘러싸인 방벽을 난폭하게 잡아 뜯었다.
방벽이 몇 겹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내구력은 상승했을지 모르더라도, 그만큼 컨트롤이 엉성했다.
차은우의 보호마법은 그런 식으로 무력화되었다.
“…은하야.”
경계심을 드러내는 차은우.
왕인 그녀는 공격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보호마법을 전개하더라도, 은하가 조금 전처럼 뜯어낼 뿐이다.
등에 벽이 닿을 데까지 뒷걸음친 그녀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진 거구나.”
결국 그녀는 체념해야 했다.
슬픈 분위기가 묻어나오는 얼굴로 쓴웃음을 지은 차은우는 제 손으로 왕관을 벗으려고 했다.
바로 그때.
“─무슨 소리야? 나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는데.”
“응?”
그는 허공으로 올라간 그녀의 손을 냉큼 낚아챘다.
뒤에서부터 차은우의 어깨를 감싼 그가 최가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양이랑 대화를 해봤는데 이렇게 끝내면 너무 싱거울 것 같더라고. 그리고 따져보면 중등아카데미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추억이잖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널 납치하겠다는 소리.”
“응?”
품에 안긴 차은우의 얼굴에는 이제 당황함이 드러나고.
은하는 차은우를 탈환하기 위해서 거리를 좁혀오는 학생들을 상대로 마나를 흩뿌렸다.
“얼른 은우를 데려와! 차은우! 너 계속 그렇게 가만히만 있을 거야!? 너도 좀 반항을 해보란 말이야!”
“…어? 어어…, 은하야, 이 손 좀 풀어주지 않을래?”
“응, 싫어.”
“그러겠지…. 왠지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조금 전에 한 대 맞고 나가떨어진 학생들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서는 은하에게 보내려 하는 최가인.
차은우는 그저 상황에 휩쓸린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노은하! 차은우!”
그러는 틈에 아래층에서 목민호가 지원 병력을 이끌고 올라왔다.
민호는 은하에게 인질처럼 붙잡힌 은우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냉정함을 유지하며 학생들이 은하를 포위하도록 했다.
“어머, 은하야. 어떡하니? 은우를 붙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래서는 왕관은 가지고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하는 건 어때? 포기하는 게 빨라.”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꼬며 비웃는 최가인.
목민호가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 시점에서 그녀는 푸른 탑의 승리를 확신한 것이다.
다른 학생들의 얼굴에도 승리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목민호는 방심하지 않았다.
“노은하.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너 혼자서 여기 있는 애들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전부 감당 못할 것도 없지.”
“졸업식 대련하고는 달라. 네 힘을 제대로 보여줄 수도 없을 텐데…. 그것보다 얼른 손 풀어라.”
목민호가 짜증이 섞인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자 은하는 그를 놀리는 것처럼 차은우를 더 가까이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노…은…하….”
목민호의 미간에 금이 갔다.
그에 반해 은하는 키득거렸다.
“목민호! 뭐하고 있어!? 얼른 은우 안 뺏어오고! 은하 너도 이제 그만 얌전히 포기하라니까!? 나한테 오면 무기만 빼앗고 아무 짓도 안 할게.”
“…….” “그래, 이왕 이렇게 됐으니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은하 너도 나하고 같이 있는 거야.”
최가인의 눈에 욕망이 번들거린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낄낄거리는 그녀가 제 어깨를 끌어안는다.
은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녀나 목민호의 말대로 이대로는 푸른 탑 수성대 전원과 싸워야 하는 판이었다.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과연 그때까지 붉은 탑이 버티고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은하는 긴장하지 않았다.
가소롭다는 얼굴로 주변을 포위한 학생들을 바라볼 뿐이었으니.
“내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설마, 너….”
은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그는 외벽이 부서져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목민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지만.
“─그럼 내 꺼는 도로 가져간다.”
들어올 때 최상층으로 들어왔으니, 나갈 때도 최상층으로 나갈 뿐.
은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외벽이 무너진 너머로 몸을 던졌다.
“꺄아아아악─!!”
시야가 순식간에 밀려 올라가고, 무작정 지면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은우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목민호는─.
“─차은우!!”
꼭 연인을 잃은 사람처럼.
탑 위에서 목청껏 소리쳤다 한다.
☆
“…대체 내가 언제부터 네 꺼였니. 내가 물건이야?”
처음에는 탑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차은우는 곧 은하의 품에 안긴 채로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의 품에서 벗어나 수성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나, 그녀는 오히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의 옷자락을 세게 쥐었다.
“뭐래. 물건이 말을 하네.”
“너어….” “그리고 내 꺼 아니면 그럼 너는 누구 껀데?” “…….”
함성 소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반면에 은하의 숨소리는 가까이서 들리고 있었고.
은우는 입을 벌린 채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띄엄띄엄 입을 움직인다.
“…나는, 내 꺼지.”
“얼씨구. 그걸 알면서 최가인한테 맨날 그렇게 당하고 있었어?”
“…….”
너무나 태연한 반박.
고민 끝에 답한 차은우는 다시금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제 삶의 주인은 자신의 것이다.
그녀는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을 이제야 처음 안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기만 했으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 꺼해.”
“…그리고 나도 다른 애들처럼 막 굴리려고?”
“대신 밥은 챙겨줄게.”
“그거는 노예 아니니?”
“어…, 그거랑은 좀 다르지 않나?”
“그게 뭐야. 설득을 하려면 조금은 그럴 듯하게 해야지, 킥.”
은우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은하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달려드는 강시형의 방패를 밟고는 하늘 위로 뛰어올랐다.
배수빈의 마법이 떨어져 내렸다.
이내 어디선가 화살비가 솟구치며 마법을 상쇄시켰다.
뒤에서 시형이 방패를 부메랑처럼 날렸다.
그러자 전장을 이리저리 활보하던 진파랑이 튀어나와서는 방패를 휙 받아냈다.
그런 식으로, 은하의 공략대원들이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졸업하면 파티를 만들 생각이야.”
“알아. 나도 들었어.” “그 파티에 네가 서포터로 들어와 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 꺼
하라는 거니?”
“어, 너 아니면 안 되거든.”
은우는 얌전히 은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목소리는, 정말이지 기분이 좋은 것이었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그래…, 좋아.”
사람들이 그동안 자신에게 바란 건 ‘착한 아이’ 차은우였을지 모르지만.
은하가 바라는 건 ‘있는 그대로의’ 차은우였다.
자신은 그동안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차은우는 은하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들어온다고 했다? 이제 무르는 건 못하는 거 알지?”
“그런 게 어디 있어. 내 선택인데, 무르는 것도 내 마음이지.” “안 돼. 그건 못해.”
“정말…, 악독해.”
은우는 키득거리며 팔 하나만으로 은하에게 안겼다.
그리고 그녀는 비어 있는 손으로 목에 차고 있던 쵸커를 풀었다.
오랫동안 차고 있던 쵸커를 푸니, 허전하면서도 어딘가 시원했다.
“그건 왜 풀어?” “이제는 나랑 안 어울려서. 어때? 푼 게 더 낫지 않아?”
“하긴…, 그게 더 낫기는 하네.”
은우는 붉은색 쵸커를 은하의 뒤로 에잇 하며 힘껏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쵸커는, 모래먼지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래서. 왕관만 가져갈 게 아니라 나까지 가져가는 이유가 뭔데?”
“네가 자꾸 최가인 옆에 있는 게 눈에 밟혀서.”
“뭐? 진짜로?” “아니. 이건 하양이 생각인데….”
은하는 차은우를 탈환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학생들을 뜀틀을 하듯이 뛰어넘었다.
그러는 한편, 그녀에게 정하양의 계획을 알렸다.
“그거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렇지?”
차은우가 동의했다.
두 사람은 키득거리면서 달려드는 학생들을 피해냈다.
이제는 은우가 손수 보호마법으로 은하를 지켜주기까지 했다.
“노은하─!!”
한편, 저 멀리서.
눈이 돌아간 목민호가 푸른 탑에서 수성대를 이끌고 나왔다.
아무래도 은우를 빼앗긴 것 때문에 그답지 않게 이성을 잃은 모양이었다.
은우는 그것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었다.
“나는 민호가 저렇게 화가 난 건 처음 봐.”
“그러게. 애가 얼굴이 벌게졌네.”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떡하기는…. 계속 도망쳐야지.” “내가 말하기는 뭐한데, 민호라면 끝까지 쫓아올걸?”
은우가 짓궂게 말했다.
은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끝까지 쫓아오라지, 뭐.”
“민호 안 무서워?” “걔가 무서울 이유가 어디 있어. 어차피─.”
은하는 등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과연, 목민호가 뿔이 났다.
그럼에도 은하는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발을 놀렸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가 목민호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은우를 끌어안은 모습을 그에게 과시하듯 보여주었다.
“─쟤도 내 껀데, 뭘.”
차은우도, 목민호도.
이제는 벗어나지 못한다.
은하는 이성을 잃고 날뛰기 시작한 목민호를 연신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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