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t Life of Regression Police RAW novel - Chapter (1037)
꽝! 꽝꽝!
“크악!”
5층으로 진입하는 계단에서 총성과 비명이 울린다.
올라가려는 사원들과 막으려는 최성현의 동료들.
“총! 총하고 방패는 왜 이렇게 안 오는데-!”
“밀고 가! 밀고 올라가라고, 이 새끼들아! 사장님 안 구할 거야?!”
사장의 부름에 달려 올라왔다가 시체가 된 동료 사원의 시체를 일으켜 세우며 달려드는 사원들과 그런 그들의 모습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는 최성현의 동료들.
끼릭! 통! 통통!
“피, 피해-!”
“씨바알!”
꽈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귀가 먹먹한 침묵이 찾아들자 계단을 막고 있던 사람들 중 김소연이 몸을 돌려 회의실로 향한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참상.
바닥에 널브러진 두 명의 임원과 사장,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임원의 머리채를 잡고 그 아가리에 칼을 집어넣은 최성현.
“읍! 읍읍!”
“쉬이이. 착하지?”
촤악!
“크아아아악!”
최성현은 찢긴 볼을 잡으며 바닥을 구르는 임원을 향해 총을 겨눴다.
꽈아앙!
“후우우…….”
피에 가득 젖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 최성현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끝났네.”
끝났다. 감히 아버지에게 은퇴 지령을 내린 회사를, 회사의 대가리들을 드디어 모두 처단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저 아래서 올라오려고 애를 쓰는 직원들뿐.
저들만 정리하면 이 복수도 다 끝나게 되는 것이다.
“대장, 저놈들이 곧 총을 들고 올라올 거야.”
“쉿.”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최성현이 세워진 테이블 뒤로 향한다.
“후…… 이제 끝났냐?”
칼 세 자루가 몸에 박힌 채 테이블에 등을 기대고 있던 조현상 전무를 발견한 최성현이 이를 악문다.
자신의 조력자이자 아버지의 지인. 아버지의 은인. 아버지의 상사.
“왜…… 왜 죽으려고 하신 겁니까.”
조현상이라면 다른 임원들의 공격을 한 번쯤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을 거다. 그 한 번이었으면 이렇게 몸에 칼이 박혀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말에 조현상 전무가 숨을 몰아쉬며 천장을 바라본다.
“열렬히 사랑했으니까…….”
정말 열렬히 사랑했다.
버려진, 외면받은 사람들로 가득했던 회사.
그랬기에 더 사랑했고, 청춘을 바쳤는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며 용암처럼 들끓던 열정은 차디찬 돌덩이처럼 굳어 버렸다지만, 일생을 바친 회사를 배신했다.
이 목숨 하나 정도는 내놓는 게 옳았다.
“참 길기도 했고.”
참 질기게도 이어 온 목숨이다.
이젠 관두고 싶었다.
“쿨럭!”
“사모님과 자제분들은요?”
움찔!
“……이만 가라. 곧 최종혁, 그놈이…….”
텅!
갑자기 꺼져 버린 전등에 조현상이 헛웃음을 터트린다.
“참 양반은 아닌 놈이야.”
“경주 최씨라던데요.”
“그럼 호랑이로 하자.”
큭큭 웃은 최성현이 창밖, 건물 아래 파도처럼 일렁이며 몰려오는 인의 파도를 확인하곤 조현상을 부축한다.
“성현아.”
“가시죠. 아직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지 못했습니다.”
이대로 두고 갈 순 없다. 자신들과 달리 아직 가족이 남아 있는 조현상 전무. 조현상은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니, 설령 멀리서 지켜만 보게 되더라도 여기서 죽는 것보다는…….”
꽈과광!
깜짝 놀란 최성현이 회의실 밖을 바라본다.
“크악!”
“최, 최종혁이다!”
“마, 막아! 컴퓨터부터 날려-!”
아래서 들려오는 소란.
드디어 종혁이 건물 안으로 진입한 거다.
최성현은 입술을 깨물고, 조현상이 푸근히 웃는다.
“옥상에 가면 탈출용 작살총들이 있을 거다.”
그러니 제발 가렴. 제발 나 대신 오래토록 살아 주렴.
조현상의 눈을 본 최성현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인다.
“보중하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눈을 감는 걸로 화답하는 조현상.
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본 최성현이 몸을 돌린다.
“가자.”
“……대장.”
덜컥!
아련한 목소리에 몸을 멈춘 최성현이 김소연을 멍하니 바라본다.
조현상처럼 푸근히 바라보는 그녀.
최성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꽈과광! 꽈아앙!
완전히 어둠으로, 공포와 흥분으로 물든 건물.
불빛이라곤 총구에서 뿜어지는 불꽃과 수류탄이, 유탄이 터지며 내뿜는 불꽃뿐.
아래에서 피어나며 올라오는 불꽃과 위에서 피어나며 내려오는 불꽃에 계단에 몰려 있는 회사의 사원들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피해-!”
피해야 한다. 엄폐물을 찾아 숨어, 이 건물을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살아날 수 있는 길이기에.
그것이 사장과 임원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빠르게 결론을 그들은 사무실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이 크나큰 패착이란 것도 모른 채…….
콰장창!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창문 밖에서 불꽃이 터지더니 창문이 부서지며 무언가 안으로 던져진다.
통! 통통!
작은 금속 통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차린 그들은 하얗게 질렸다.
뻐어엉! 삐이이이!
“끄아아아악!”
“아아아악!”
터져 버린 새하얀 빛이 망막을 태우고, 귀를 찢어발기는 소음이 몸을 무너트린다.
그런 그들에게 남은 건 뒤이어 진입한 FBI 대테러 특수부대 SWAT 요원들의, 이런 진압 작전에 있어선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요원들의 총구에서 뿜어지는 총알뿐.
꽈과광! 꽈과광!
종혁은 2층과 3층, 4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빠르게 계단을 오르고, 형사수사국 경찰들이 2층의 복도로, 3층의 복도로 빠르게 흩어진다.
그 순간이었다.
꽈앙!
“최!”
앞으로 가는 걸 막는 손길에 걸음을 멈춘 종혁이 위를 바라본다.
5층 계단 입구에 숨어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몇 명.
“이번은 경고야! 더 올라오면 정말 죽는 거야-!”
최성현들이다. 아니라면 이렇게 친절하게 경고를 하진 않을 터.
‘그래, 너희도 끝장을 봐야지.’
그렇지 않아도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거세게 뛰는 심장이 더욱 세차게 뛴다.
품에서 수류탄을 꺼낸 종혁은 총을 들어 천장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꽈아앙!
탄환이 발사되자마자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은 종혁.
‘하나, 둘.’
부웅! 빠악!
둘을 세고 날아간 수류탄이 벽을 맞고 튕겨 계단 입구로 날아간다.
“피, 피해!”
“씨발-!”
꽈아앙!
건물을 뒤흔드는 폭발과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발음.
종혁이 특수부대용 방탄 방패를, 한없이 두껍고 무거운 방패를 앞세운 채 뛰어 올라가는 SWAT 대원들의 뒤를 따른다.
“그레네이드!”
한없이 느려지기 시작한 시간 속, 야간투시경 너머 허공에서 떨어지듯 날아오는 수류탄 하나.
종혁이 그 궤적 아래 있는 대원의 허리를 잡아 높이 들어 올린다.
빠아악!
당황했다가 눈치 좋게 방패를 내밀어 수류탄을 튕겨 낸 대원과 날아온 방향으로 튕겨져 되돌아가는 수류탄.
“버텨-!”
무사히 착지한 대원까지 모두 몸을 웅크린다.
꽈아앙!
방패를 두드리는 파편들과 아찔한 충격.
이젠 극한으로 느려진 시간 속, 마지막 파편이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종혁이 몸을 일으켜 계단 입구 안쪽을 향해 폭발력을 줄인 유탄이 들어간 유탄발사기를 겨눈다.
철컥! 퐁! 꽈아아앙! 꽈아앙!
종혁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일어나 계단 입구 안쪽, 종혁이 겨누는 방향의 다른 방향을 향해 쏴 버린 SWAT 대원.
“고! 고고고!”
고작해야 몇 초다.
최성현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간 그들이 계단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복도 양 끝을 바라보며 방패를 쳐들고, 일부는 옥상으로 올라간다.
숨을 옥죄는 침묵이 찾아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박살 난 복도.
마른침을 삼킨 그들이 복도 양 끝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콰장창!
“뛰어! 뛰어!”
계단 입구 양쪽 사무실에서 들리는 아찔한 외침.
다급히 뛰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종혁이 발견한 건 와이어를 매달고 레펠 하강을 하듯 뛰어내리며 아래를 향해 총을 갈기는 사람들과 건물 아래에서 도주로를 차단하고 있다가 대응 사격을 하는 CIA, SVR 요원들이었다.
꽈과광! 꽈과광!
“크악!”
“아악!”
한 명, 한 명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 최성현의 동료들에 종혁이 미간을 좁힌다.
‘왜?’
도망을 치려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저래서야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것을 모를 놈들이 아니었기에 종혁으로서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동시에 천장을 바라본 나탈리아와 헨리, 그리고 종혁이 사무실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이내 옥상에 올라선 종혁이 발견한 건 야간투시경으로도 식별하기 힘들 만큼 저 멀리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팽팽하게 당겨진 와이어와 발사 장치들이었다.
그 순간 종혁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음을 깨달았다.
최성현의 동료들은 모두 도망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몇 명이 희생양이 되어 다른 이들이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끈 것이었다.
“……푸핫!”
돌연 종혁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온다.
“이야. 또 도망쳐 줬네.”
자신의 예상처럼 이번에도 열심히 도망쳐 줬다.
쥐새끼처럼.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뭐 빠지게.
“최.”
종혁은 몸을 돌려 혹여 그가 와이어를 타고 놈들을 뒤쫓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탈리아와 헨리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아, 괜찮습니다. 어차피…….”
말을 잇던 종혁이 입술을 비튼다.
“저희 손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종혁은 이번에도 또 당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똑같이 입술을 비트는 나탈리아와 헨리를 일견한 종혁이 다시 어둠에 묻힌 와이어의 끝을 바라본다.
“넌 내가 이날을 얼마나 준비했는지 모르겠지. 그러니 아주 잠시만…….”
아주 잠시만 그 질긴 목숨을 이어 가는 걸 허락하마.
주먹을 쥔 종혁이 미련을 접으며 돌아섰다.
“우린 기획실과 사장실 컴퓨터부터 확보하죠.”
그 어르신이란 놈의 멱살을 잡기 위해선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하는 자료들.
“훌륭한 생각입니다. 어서…….”
후다닥!
갑자기 아래서 누군가 뛰어 올라오는 소리에 그들이 의아해할 때, 모습을 드러낸 SWAT 대원들이 그들의 앞에 선다.
그들이 할 보고를 알아차린 종혁의 두 눈이 파르르 떨린다.
“지하 올 클리어! 생존자 전무!”
“3층 올 클리어! 생존자 둘!”
“5층 올 클리어! 생존자 하나!”
쿵!
종혁의 온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끝, 끝났다?’
본사 어딘가에는 분명 회사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와 회사에 속한 전 사원의 데이터를 정리하여 관리하고 있을 터.
그것이 확보되는 순간,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드디어, 정말 드디어 회사를 무너트린 것이다.
지난 십수 년 매일 꾸던 악몽에서 드디어 깰 수 있는 것이다.
갑자기 탈력감이 종혁의 전신에 몰려든다.
“최!”
종혁이 다급히 부축하는 나탈리아와 헨리를 밀어낸다.
‘아니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잡아야 할 놈들이 아직 남아 있다.
회사의 배후.
이 모든 악연의 시작.
후다닥!
“국장님-! 국장님! 생존자를 발견했심더! 그, 근데 그놈 같아예!”
“……그래.”
그놈. 연수원에서 이곳 본사까지 안내해 준 놈.
종혁이 5층의 임원 회의실로 향한다.
“허허. 왔나?”
4명의 요원이 총을 겨누고 있음에도 이쪽을 향해 푸근히 웃으며 손을 흔드는 조현상.
울컥!
순간 속이 뒤집어진 종혁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그대로 그의 턱을 까 버린다.
빠아악! 쿠당탕!
“커헉?!”
“어딜 범죄자 새끼가…….”
아직 처벌도 받지 않았는데도 다 끝났다는 듯 처웃고 자빠져 있을까.
종혁은 바닥을 기는 조현상의 멱살을 잡아 올려 코앞으로 가져왔다.
“어르신, 아니 전도광 그 개새끼와 연락하던 사장이란 새끼가 누구야?”
쿵!
그랬다.
군사정부 시절 쿠데타로 이 나라를 찬탈해 어둠의 구렁텅이에 처박았던 전 대통령, 전도광 대통령이 회사의 배후에 있던 어르신이었다.
오직 그였기에 말이 됐던, 회사가 무사히 커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경악하는 조현상을 바라보는 종혁의 전신에서 끔찍한 살의가 터져 나왔다.
* * *
“끄으.”
아침에 몸을 일으킨 민영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무도 개운한 정신과 몸, 거기다 해가 뜬 창밖.
“아, 아홉 시?”
이게 무슨 일일까.
오십대를 넘긴 후 하루 4시간 자면 많이 잤다고 말할 수 있는, 최근엔 그마저도 2시간으로 줄었던 자신이 무려 8시간이나 잠을 잔 것이다.
“허허.”
‘권회수와 김단향이 죽었기 때문인가.’
둘이 죽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는 너무 많이 잔 탓인지 욱신거리는 허리를 두드리며 거실로 향한다.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은 그는 기대감으로 물든 얼굴로 TV를 켰다.
“오! 시작했군!”
때마침 뉴스가 시작됐다.
그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집중했다.
그리고…….
-행복의 쉼터 재단 권회수 이사장과 압구정의 대부업체 대표 김단향 씨가 서울중앙지검에 출두를 하고 있습니다!
-권회수 이사장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단향 씨!
쿵!
민영수가 눈을 끔뻑인다.
저건 뭘까.
왜 권회수와 김단향이 무사히 중앙지검에 들어가는 것일까.
심지어 생방송도 아닌 녹화 방송이다. 이미 들어간 지 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다.
띵동-! 쿵쿵쿵!
“민영수 씨! 민영수 씨?! 나와 보이소, 검찰이라예!”
쿵!
“말도…… 안 돼.”
심장이 내려앉은 민영수가 현실을 부정하며 핸드폰을 찾아 든다.
이미 부재 전화가 가득 찍혀 있는 핸드폰.
민영수가 떨리는 눈으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판사들 쪽은 자네 담당이잖아-!”
그래서 안심했다. 검찰이 무슨 지랄을 하든, 대통령이 뭔 지랄을 하든 카르텔을 이룬 판사들이 있기에 체포 영장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보이십니꺼! 체포 영장입니더! 불응하믄 문 따고 들어갑니데이!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는 몰랐다.
1시간 전 법원에서 큰 소란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 * *
“하하. 예.”
이른 아침 대법원의 복도를 걷는 대법관이 고개를 숙이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본인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도 계속 통화를 하는 그.
“걱정 마십시오. 아랫놈들에게 말해 놨으니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체포 영장조차 발부되지 않을 겁니다. 예, 예. 하하. 그럼요. 저야 언제든 괜찮습니다. 날만 잡으십시오. 예, 들어가십시오. 예.”
통화를 종료한 그가 담배를 물며 미간을 좁힌다.
“권회수와 김단향이 검찰에 들어갔다라…….”
‘빌어먹을.’
갑자기 심장이 옥죄어진다.
지난날 그 둘에게서 돈을 빌린 적이 있는 그.
‘설마 내 이름까지 언급되는 건…….’
눈을 가늘게 뜨던 그가 이내 피식 웃는다.
그게 무슨 상관일까.
대한민국의 최고 헌법기관 중 하나이자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 그 대법원의 13명의 대법관 중 한 명이 바로 자신이다.
대법원장을 제하면 대한민국의 가장 위에서 법을 심판하는 존재.
자신이 이 자리에서 물러선 뒤라면 모를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김 비서, 나 커피 좀.”
-앗! 잠시만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응?”
똑똑똑!
문을 두들기자마자 열고 들어오는 무뢰배들이 누굴까 바라본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백 법관? 최 법관?”
백순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조용히 지내다,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단숨에 위로 치고 올라오다 못해 차기 대법원장으로 거론되는 인물.
그 옆에 있는 최 법관 또한 백순재와 나란히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되며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자네들이 이 아침부터 내 사무실엔 웬일이야?”
“이번 권회수, 아니 민영수 등 사건의 담당 판사가 자네 아래 있던 놈이더군.”
쿵!
갑자기 철렁이며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순리대로 해결하라는 말을 하러 온 거야.”
“우연이군. 나도 같은 말을 하러 온 걸세.”
“허허…….”
헛웃음을 터트린 그가 입술을 비튼다.
‘무슨 상황인지 알겠군.’
“권회수와 김단향의 돈이 달콤하나 보군. 이봐, 백 법관, 최 법관.”
“아니, 내 말부터 들어. 난 경고를 하러 온 거니까.”
“백 법관!”
백순재는 테이블을 내려치는 그를 보며 비웃었다.
“최종혁 치안감이 이 말을 전해 달라더군. 정말 자신을 적으로 돌릴 각오를 했냐고.”
쿵!
종혁의 이름이 언급된 순간 그의 입이 다물어진다. 낯빛이 희게 질린다.
최종혁.
계림그룹을 해체하고, 6선 국회의원까지 잡아 처넣은 경찰의 불도저.
삼전그룹의 김희건 회장이 비호하는 경찰.
‘그, 그놈과 얽혀서 무사한 놈이 있었나?’
당사자뿐만 아니다.
당사자의 가족, 친척, 지인 등 모든 이들마저 휩쓸어버리는 재앙, 천재지변 같은 인물이 종혁이었다.
“자, 잠깐.”
“난 내게 은인 같은 선배님의 말을 전하러 왔네. 이영창이라는 이름의 법조계 선배님이시지. 알고 보니 내가 쌈짓돈을 맡기는 권&박 홀딩스도 이분과 연관이 있지 뭔가?”
“최 법관!”
“이보시게, 김 대법관. 자네 인맥은 튼튼하신가? 노후 준비는 돼 있고? 그럼 지금 은퇴하시게. 그럼 밥줄은 끊지 않지.”
쿵!
“이, 이영창……?”
“기억하나 보군. 현재는 권회수 이사장의 고문 변호사를 맡고 계시지.”
서울지방검찰청의 지검장을 지내다가 권회수를 모시기로 마음먹으며 검사직을 내려놓은 인물.
차기 검찰총장이 유력했던 그였기에 당시 법조계에 큰 이슈가 되었기에 김 대법관도 그 이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몰랐을 것이다.
이영창이 권회수의 인맥과 재력을 통해 가진 것 없는 법조인들을 뒤에서 얼마나 지원했는지, 그의 은혜를 입은 법조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그리고 최 대법관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말이다.
후에 부족함이 없게 된 최 대법관이 감사를 표하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던 이영창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 제발 좀 도와 달라고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으로 명령으로 해도 될 그분이.
뿌득!
“그럼 이젠 내 경고를 하겠네. 이봐. 나를, 그리고 대통령과 대법원을, 대한민국 정계와 재계를, 미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고도 자네들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나?”
쿠우웅!
“잘 생각해.”
그동안 어떤 고급 먹이를 받아 처먹고, 어떤 달콤한 것을 약속받았는지 몰라도 그것들이 본인과 가족들의 목숨보다 중할까.
“나, 난…….”
찰칵! 치이익!
모두의 시선이 백순재에게로 향한다.
“후우우. 대답은 들은 걸로 하지. 이만 가세.”
“푸핫! 그래.”
그 짧은 사이 10년은 늙어 버린 김 대법관은 문을 닫고 나가는 이들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고, 최 대법관은 백순재를 보며 의아해했다.
“나야 특별한 이유가 있다지만, 자넨 최 치안감과 어떤 관계인 거야?”
청렴결백의 화신이라 불리는 백순재다.
그리고 그동안 종혁과 사건으로도 얽히지 않았던 백순재.
“내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만든 친구지.”
“응?”
몇 년 전 음주운전 단속에 불응하며 경찰을 매달고 내달렸던 아들을 강력히 제압하면서 정신을 차리게 만든 은인.
그리고 이 나라에 진화된 DNA 수사기법을 들여오면서 연쇄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범인을 찾을 길 없었던 누이를 죽인 범인을 찾아 억울하고 비통했던 한을 풀어 주었던 종혁.
‘이걸로 은혜는 갚은 겁니다, 최 치안감.’
백순재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미소를 지었다.
* * *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대저택.
그 앞에 선 종혁이 뜨거운 숨을 길게 내쉰다.
드디어 코앞까지 왔다. 드디어.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종혁이 양옆을 본다.
사납게 웃고 있는 최재수와 현석, 오택수와 김종두, 임세라 등 동기들과 구경하러 온 최기룡, 이택문 전 청장.
그리고 그 뒤를 든든히 바치고 있는 나탈리아와 헨리, 캘리 그레이스를 비롯한 CIA, SVR, FBI.
푸근히 웃어 주는 그들의 미소에 웃음을 터트린 종혁이 꽉 쥐었던 주먹을 펴며 발을 내딛는다.
“그럼 갑시다.”
이 세상을 농락한 악당 두목을 잡으러.
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러.
종혁의 두 눈이 사납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