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우리의 정체를 묻는다면
나는 주방에서 전날 먹다 남은 안주를 가져온 다음에 천리객잔 바깥에서 늦은 점심으로 먹었다.
차갑게 식은 안주였지만 맛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서 상관없었다. 매번 맛없는 음식을 먹다 보면 가끔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 진수성찬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그날을 위해서 맛없는 음식을 뱃속에 적립했다. 식은 탕초리척 하나를 입에 넣은 채로 우물거리는데 한 사내가 좌측에서 달려오더니 우측으로 이동했다.
후다다닥!
나는 탕초리척을 씹으면서 멀어지는 사내를 바라봤다.
“…….”
대낮부터 왜 저렇게 뛰어가고 있을까. 물론 아는 놈은 아니다. 일단 복장도 백응지에서 유행하는 의복이 아니었다. 동네 똥개처럼 쫓아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잠시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천리객잔에 밤을 지새운 귀마와 색마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이 슬슬 막히는 기분이 들어서 검마 선배가 가져온 독한 술을 조금 마셨다.
“꺼억.”
탕초리척 세 개와 술 두 모금으로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했다. 나는 설거지가 귀찮아서 잠시 의자에서 흘러내릴 것 같은 자세로 멀쩡한 하늘을 구경했다.
이러다가 낮잠을 자면 이보다 더 완벽하게 한심한 점소이는 세상에 둘 이상을 찾기 어려울 터였다.
순간 나는 방금 달려가던 놈이 향하던 방향에서 누군가의 짤막한 비명을 들었다. 달려가던 놈의 비명인지 달려가던 놈이 다른 사람을 때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낯익은 복장의 사내가 누군가를 업은 채로 달려오다가 나랑 눈을 마주쳤다.
“문주님, 안녕하십니까?”
기절한 사내를 등에 업은 삼복이 내게 인사를 건네더니 좌측으로 계속 도망쳤다.
나는 도망치는 삼복을 향해 대답했다.
“수고가 많다.”
그나저나 삼복은 왜 저리로 도망치는 곳일까. 차라리 사람이 많은 백응지에 잠시 있으려면 북상하는 게 나을 텐데 말이다.
잠시 후 삼복이가 길에서 회군(回軍)을 선택한 모양인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진 이상을 달렸던 것일까. 자세히 보니까 머리카락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표정도 볼만했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억지로 웃고 있었다.
“하하……좀 지나가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가 많다.”
삼복이 등에 업고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독에 당한 모양인지 눈 밑이 시커먼 삼 공자 놈이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있었다. 아직 정신을 잃지는 않은 모양인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내려라. 죽이고 이동하는 게 낫겠다.”
삼 공자의 말에 삼복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좀 닥쳐요!”
나는 열심히 도망치는 삼복이를 향해서 박수를 보냈다.
“이야, 마교의 삼 공자한테 닥치라고 할 수 있다니 삼복이 많이 컸네. 이 새끼 출세했네. 출세했어.”
출세했다는 말이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 눈에는 출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 출세한 것이다.
이어서 좌측에서 다양한 복장을 한 군상들이 등장해서 삼복이 도망친 쪽으로 달려나갔다.
복장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삼복에게 좋은 소식이다.
어쨌든 마교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마교에 달라붙은 놈들일 확률이 높다는 것은 사마외도라는 뜻이어서 이것은 삼복에게 나쁜 소식이었다.
덕분에 나는 마교에 소속된 자들이 사마외도에게 쫓기는 진풍경을 구경하게 되었다.
세상사, 마교라도 다를 것 없는 모양이다. 약하면 저렇게 되는 법이다. 그래도 삼복이 저렇게 목숨을 내건 채로 삼 공자를 구하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검마 선배의 말대로 호위까지 잘못 뽑는 자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간간이 근처에서 뼈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이어졌다. 나는 이제 하늘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광경에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로 등장하는 삼복이 웃는 얼굴로 달려오면서도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저기 문주님?”
“왜? 왜 불러.”
“물 좀 마실 수 있겠습니까? 목이 말라서. 하하…….”
삼복은 삼 공자를 업은 채로 천리객잔 앞에 멈춰서 웃고 있었는데, 저것이야말로 마른 웃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객잔 안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안에 물이 있다. 조용히 들어가라. 잠자는 사람들 있으니.”
삼복이 삼 공자를 업은 상태에서 내게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삼복이 삼 공자를 업은 채로 천리객잔으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하……엮였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이 이렇게 심각한 일이다.
한숨을 두어 차례 내뱉자 사마외도인지 흑도인지 모를 다양한 군상들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일부는 다리를 쩔뚝이거나 얼굴 이곳저곳이 터진 상태였다. 쫓아가는 와중에 삼복에게 맞은 모양인데 인원수로 몰아붙이고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이제 이놈들도 눈에 익을 것 같았다.
이들도 물을 달라고 하면 물을 줄 생각이었는데, 무리에서 한 놈이 내게 호통을 내질렀다.
“어디로 갔나!”
“못 봤느냐? 업고 있는 놈 말이다!”
나는 백응지가 있는 북쪽을 가리켰다. 좌측으로 이동하려던 떨거지들이 저희끼리 옷깃을 당기고 소리를 지르더니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백응지로 몰려가는 놈들 때문에 소리 없이 웃었다.
‘웃긴 놈들이네.’
이때, 한 놈이 우연히 고개를 돌렸다가 내 표정을 보자마자 멈춰 섰다. 이놈이 갑자기 분위기를 무겁게 잡으면서 말했다.
“웃어? 다들 멈춰봐라.”
백응지로 몰려가던 놈들이 호흡을 고르면서 저희끼리 대화를 나눴다.
“저놈이 백응지를 가리키고 난 후에 웃고 있었다.”
“사실 백응지로 갈 이유가 없지 않나?”
“애매하군. 또 반으로 나눌까?”
“아니지. 객잔부터 살펴라. 저놈 표정이 확실히 이상하다.”
내 표정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이상한 것이다.
백응지로 가던 놈들이 천리객잔 앞으로 천천히 되돌아왔다. 나는 다가오는 놈들을 하나씩 바라보다가 말했다.
“……다들 이 자리에서 죽겠다고 오는 거냐? 거기 딱 멈춰라.”
나는 웃음기를 지운 다음에 떨거지들을 노려봤다.
* * *
다가오던 놈들이 동시에 멈췄다.
“…….”
점소이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들 얼굴에 황당한 기색이 퍼지고 있었다.
이놈들이 수를 믿고 내게 막말을 해댔다.
“이봐, 점소이. 지금 무슨 일을 방해하는 것인지 알고 있느냐? 신교(神敎)가 엮인 일이다. 잘 생각하고 말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경고하는데 목소리를 더 낮춰라. 안에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정신 나간 미친 점소이가 마교의 일을 방해하겠느냐?”
“…….”
“하지만 그것이 나다.”
나는 낄낄대면서 웃다가 젓가락 하나를 집었다.
“얘들아, 신교고 나발이고 객잔에서 소란 피우지 말도록. 그리고 너희는 신교 소속이 아니다. 의뢰받은 병신 끄나풀이자, 돈 보고 달려드는 낭인 혹은 사마외도의 수하들이겠지.”
한 사내가 점잖은 어조로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숨겨주고 있는 사람이 신교의 삼 공자라네. 내어주기만 하면 자네에겐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약조하겠네. 대공들의 싸움에 끼어들 셈인가?”
“안에 들어간 두 놈은 내가 목숨을 살려놓은 자들이다. 살려줬다가 금세 죽으라고 할 수는 없지. 그리고 백응지 근방에서 죽으면 안 되는 놈이다. 너희는 끄나풀이라서 알지 못하겠으나 저놈 때문에 백도와 마도의 이간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래저래 허락할 수 없으니 물러나도록. 너희들이야말로 겨우 돈 때문에 대공들의 싸움에 끼어들 셈이냐? 교주가 아무리 방관자라 해도 이런 싸움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때, 천리객잔의 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내 우려대로 색마가 심각하게 열이 받은 표정으로 등장했다.
“아……잠을 못 자겠네. 돌겠네.”
사람은 본래 잠을 방해받게 되면 평소보다 십팔(十八) 배는 더 분노하게 되는 법이다. 색마가 연신 숨을 크게 내쉬다가 고개를 흔들더니 탁자에 있는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사부님이 살려두라 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내 손에 죽었어.”
술을 마신 색마가 다짜고짜 놈들에게 갑자기 달려가더니 공중으로 솟구쳐서 날아 차기로 한 놈을 날렸다.
퍽― 소리와 함께 날아간 놈이 공중에서 맹렬하게 회전하더니 머리부터 땅에 떨어진 다음에 바닥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시 탁자로 돌아온 색마가 젓가락으로 탕초리척을 먹으면서 말했다.
“안 꺼지면 이번엔 다 죽이련다.”
나는 색마를 바라봤다.
세상에 이런 악당이 다 있을까. 설명도 없고 예고도 없이 날아 차기를 하는 놈은 오랜만이었다.
포위했던 놈들이 물러나는 와중에 이렇게 말했다.
“또 보게 될 거다.”
“뭐?”
순간, 나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자마자 젓가락을 던졌다.
쐐앵!
날아간 젓가락이 푹― 소리와 함께 또 보자는 말을 내뱉은 놈의 어깨를 뚫고 지나갔다. 비명과 함께 우르르 소리가 들리더니 떨거지들이 이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문득 색마와 눈을 마주쳤으나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바깥 풍경에 시선을 돌렸다.
“…….”
이때, 삼복이 바깥으로 나오더니 포권을 취하면서 말했다.
“문주님, 몽 공자님. 감사합니다. 잠시 삼 공자께서 독만 마저 몰아낸 다음에 저희는 떠나겠습니다. 아무래도 제천맹의 고수가 근처에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색마와 함께 동시에 되물었다.
“제천맹?”
“제천맹이 왜 여기서 나오나?”
삼복이 설명했다.
“안가를 습격한 무리에 제천맹의 독목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다른 자들도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다른 대공들이 유명한 흑도 무리를 고용한 모양입니다. 저희도 그랬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
삼복과 색마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품에서 전낭을 꺼낸 다음에 삼복에게 말했다.
“삼복아.”
“예, 문주님.”
“알겠으니까 온 김에 고기 좀 넉넉하게 사 와라. 우리가 다들 밥을 제대로 안 먹었다.”
내가 돈을 건네자, 두 손으로 돈을 받은 삼복이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갑자기 고기를 왜…….”
나는 손가락으로 객잔 앞을 대충 가리킨 다음에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바깥에서 구워 먹자고. 술도 사 오고. 고기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불판에 놓고 밑에 장작불 때워서 화르륵, 자글자글, 지글지글 뭔 말인지 알지? 채소도 사 오고. 싸우든, 도망을 치든 간에 배는 든든해야 할 거 아니냐.”
삼복이 중얼거렸다.
“사 오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삼 공자께서 운기조식을…….”
“알겠으니까 닥치고 빨리 다녀와라. 맛있는 고기로, 신선한 거로. 오늘은 신선하게 가보자. 알았어?”
“예.”
돈을 받은 삼복이 객잔 안쪽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운기조식하세요. 심부름 다녀옵니다.”
“…….”
삼복이 경공을 펼치면서 달려가자, 색마가 내게 물었다.
“왜 갑자기 고기를 구워 먹겠다고 지랄이냐. 지금 이러는 게 맞아?”
나는 색마의 표정을 구경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곤궁한 자를 내쫓지 않고. 목마른 자에겐 물을 내줘야지.”
“왜?”
“두 번은 외면했는데 세 번은 어렵더군.”
“무슨 말이야?”
“삼복이 저놈을 업고 이 앞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도망치더라고.”
색마가 그제야 웃었다.
“아……. 황당하군.”
“나도 세 번은 힘들다. 곤궁한 자를 내쫓고 목마른 자를 외면하면 마교 교주와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저놈이 교주의 아들이긴 하지만 물을 주고 밥 한 끼 먹여서 내보내는 것은 나도 할 수 있고 너도 할 수 있다. 교주는 제 아들이 이렇게 궁핍하게 도망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 뭐 알아도 신경도 안 쓸 것 같긴 하다만.”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색마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갑자기 고기가 좀 먹고 싶긴 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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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자 세 개를 이어붙이고 그 옆에 큼직한 돌을 둘러서 위석식(圍石式) 화덕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삼복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기를 구웠다. 철판을 놓고 굽고, 주방에 있는 집기를 가져와서 볶음고기도 만들었다. 지켜보니 삼복은 훌륭한 숙수가 될 자질이 있어 보였는데 무슨 연유로 호위무사나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탁자에 채소도 깔고, 술도 놓고, 그때그때 구운 고기를 들고와서 나눠 먹었다. 결국에 고기 냄새에 못 견디고 일어난 귀마까지 못난 얼굴로 합류해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마교의 대공 세력이 몰려올 수도 있고.
대공들이 고용한 흑도와 사마외도 무리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일단 우리는 입에 기름을 잔뜩 묻혀 가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잠시 후에 삼복과 교대한 귀마 놈이 주방에서 가져온 얇은 꼬챙이에 고기를 끼우더니 불 위에서 굽기 시작했다.
갑자기 귀마가 손가락을 튕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무언가 실험을 마친 모양인지 얇은 꼬챙이에 삼복이 사 온 여러 가지 고기를 끼우기 시작했다.
나는 삼복, 색마와 나란히 서서 여러 가지 잡다한 고기를 한방에 굽는 귀마에게 말했다.
“와, 그거 맛있겠는데.”
색마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가 고기 천재였네.”
눈치를 보던 삼복이 색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둘째요? 뭔가 서열이 있으신가 봅니다.”
색마가 대답하지 않자, 삼복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삼복에게 우리의 정체를 간략하게 알려줬다.
“우리의 정체를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 우리가 바로 강호에서 유서 깊은 별호를 차지한 사대악인(四大惡人)들이다.”
내 말을 들은 색마와 귀마가 동시에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