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그 나이를 처먹고도 몰라?
나는 개방 방주가 지켜보는 와중에 일월광천을 바라봤다.
뇌기가 더해져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이미 세상에 등장한 상태라서 내 단전으로 흡수되거나, 소멸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내 팔목을 잡고 있는 개방 방주가 당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하야, 이러다 다 죽겠다.”
“선배님, 손을 뗀 다음에 물러나세요. 해결하겠습니다.”
개방 방주가 물러나자마자, 나는 슬쩍 웃은 다음에 일월광천에 역천의 묘리를 더해서 광막(光幕)으로 전환했다.
“…….”
일월광천의 빛이 광막으로 전환되면서 모든 공격을 일순간에 온전하게 튕겨내는 빛의 장막이 내 양손에서 길게 펼쳐졌다. 공력이 많이 담겨 있었던 모양인지 면발을 뽑아내듯이 길쭉하게 펼쳤다가 공중에 살짝 띄웠다.
빛이 흩날렸다.
어찌 보면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내가 해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무공이자 절기가 바로 이 광막이었다.
비장의 한 수를 들킨 것이라서 아쉽긴 했으나.
개방 방주를 다치게 할 수 없었기에 일월광천을 광막으로 전환한 나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 방주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신기하구나. 나도 이런 절기는 구경하지 못했는데.”
“그렇습니까?”
“앞서 펼친 무공은?”
“일월의 기를 조합한 일월광천입니다.”
“그것을 온전하게 전환해서 만들어낸 저 빛은 무엇이고?”
“단순하게 광막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황당하구나. 방어 절기인가?”
“예.”
삼재가 황당하다고 했으니, 황당한 게 맞다. 그제야 개방 방주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사색이 되었다가 얼굴빛이 점차 되돌아오는 중이었다.
“다들 궁둥이 붙이고 앉아라. 너도.”
개방 방주가 제천맹주에게 말하자, 제천맹 전체가 엉덩이를 땅에 붙였다. 수많은 강호 고수들이 학당의 소년들처럼 얌전했다.
신개가 내게 말했다.
“앉자.”
“예.”
나도 앉고, 개방 방주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개가 제천맹주에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행이로군.”
“네 수하들이 날 아느냐?”
제천맹주가 간부들을 둘러본 다음에 대답했다.
“모르지만 눈치는 챘을 겁니다.”
개방 방주가 제천맹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주극이 성공했구나. 맹주도 되고, 제천맹도 훌륭하고 수하들도 뛰어난 인재가 많은 것 같고. 성공했어.”
“…….”
“너처럼 돈을 잘 벌고 있는 후배는 드물 것이다. 임소백은 아직도 맹에서 지급하는 월봉을 받는다던데 너는 아니지?”
“예.”
“그렇다면 세가의 가주(家主)도 네 앞에서 부를 자랑하진 못할 거다. 은거하고 있을 때 강호의 소식을 들었는데 특히 용맹한 성격을 가진 후배들이 종종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에 너는 없어서 내가 종종 물어봤었다. 주극, 이놈은 뭘 하면서 지내느냐고? 잘 지내고 있었구나.”
“예.”
“돈을 좀 적당히 벌어야지.”
나는 개방 방주와 제천맹주를 번갈아 가면서 봤다. 개방 방주가 제천맹주에게 다시 물었다.
“여기서 더 벌어야 해?”
“적당히 벌겠습니다.”
“강호에서 가장 용맹한 후배를 꼽으라면 너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성격이 난폭해서 혹시나 나중에 내가 삼재들과 다시 승부를 낼 때, 네가 성장해서 한자리를 차지하진 않을까 기대한 적도 잠깐 있었다. 내가 네게 기대한 것은 무인의 모습인데. 오랜만에 보니까, 웬 욕심 가득한 상인들의 우두머리가 앉아 있구나. 대상(大商)이 되겠다고 강호에 투신했느냐? 언제까지 이렇게 상인들 뒤치다꺼리만 하면서 지낼 것이냐.”
제천맹주가 입을 다물었다.
개방 방주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봐, 제천의 후배들.”
제천맹의 무인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예, 선배님.”
“나는 지난날 다른 삼재와 승부를 내지 못했던 개방 방주다. 너희에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이제 삼재와 한 번 정도만 더 싸울 수 있는 상태야. 그 무서운 자들과 늙은 내가 다시 싸우게 되면. 이기든 지든 간에 내 수명이 얼마나 많이 남아있겠느냐?”
“…….”
“다음번 결전 때는 이대이로 싸우고 싶었다. 그 한자리를차지할 후배가 한 명만 등장한다면 삼재와 승부를 가릴 수 있지 않을까. 오래 고민했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오랜 은거를 택한 이유야. 제자에게 신경을 집중해서 내가 뒤처지게 되면 지독하게 수련하는 다른 삼재가 나를 훌쩍 넘어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 내가 나중에 교주와 천악에게 쓰러지면 너희는 그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젊은 후배들아, 나는 이제 늙어서 싸움이 한 번 남았어. 그것을 내가 어떤 식으로든 감당하면 다음 차례는 너희야.”
“…….”
개방 방주가 제천맹주에게 말했다.
“네 차례도 곧 온다는 말이다.”
“예.”
“돈이나 벌다가 교주에게 죽으면 이 많은 재물을 어디다 쓰려고? 돈이 그렇게 중요하단 말이냐? 아니면 너도 교주에게 무릎을 꿇은 다음에 입교할 생각이냐? 그러면 재산의 절반 정도는 건사할 수 있을 테니 미리 축하한다.”
제천맹주가 대답했다.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맹주님, 맹주님 하면서 너를 두려워하고, 너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전부 맞아 죽을 생각이구나. 이것 참 잘난 맹주로다.”
그제야 제천맹주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나는 호랑이 놈이 뭘 잘못 먹고 체한 것처럼 보였다.
개방 방주가 나를 바라봤다.
“어느 날, 마교의 일부 병력이 등장했다가 몰살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심 임소백이나 제천맹주 아니면 다른 제왕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하오문주라더구나. 아니, 그게 대체 누구냐? 하오문은 또 무엇이고? 내 제자인 노신만 어느 정도 아는 상태였는데 제대로 아는 자들이 없었다.”
개방 방주가 제천맹주에게 물었다.
“왜 네가 아니었지? 거상 후배는 변명을 해보도록.”
“변명할 게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순간 눈을 크게 뜬 개방 방주가 제천맹주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제천맹주의 고개가 돌아가자 그야말로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개방 방주가 말했다.
“네가 쌓아 올린 부와 명예는 네가 대단해서가 아니야. 수하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항상 기억해야지. 이들을 데리고 함께 죽는 것이 맹주의 역할이냐? 너는 수하들이 없으면 맹주도 아니야. 이놈아, 그 나이를 처먹고도 몰라? 거지들이 없으면 나도 방주가 아니고. 하오문도가 전부 죽으면 자하도 하오문주가 아니다. 우두머리라는 놈이…….”
“…….”
“교주에게 전부 패배하면 강호도 사라진다. 그게 어찌 여러 군상과 호걸들과 협객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강호란 말이냐. 통째로 이상한 종교 단체의 교도가 되는 것이지. 아첨이나 떨다가 효수되어서 죽는 폭군의 신하들이 될 것이다. 흑도에서 살든 백도에서 활약하든 대의는 잊지 말아야지. 이 못난 새끼, 내 손에 죽고 싶은 게야? 세상 사람들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해. 거지한테 맞아 죽는 최초의 맹주가 돼볼 테냐.”
제천맹주가 겨우 대답했다.
“아닙니다. 선배님에게 맞아 죽느니 교주에게 죽겠습니다.”
제천맹에서 제천맹주의 머리통을 후려갈길 수 있는 사내, 그것이 개방 방주였다.
나는 웃음을 참은 채로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제천맹의 팔 할을 몰살한 다음에 도망쳐서 임소백에게 힘을 실어줄 생각이었는데 나도 계획을 그르치게 되었다.
사실 계획을 그르치게 된 것인지 이들과 내가 동시에 또 다른 삶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인지 당장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도 개방 방주의 말은 존중하기 때문이다.
개방 방주가 다소 성난 어조로 말했다.
“후배들!”
“예, 선배님.”
“당장 내가 오늘내일 다른 삼재와 맞붙게 되면 비어 있는 한자리는 누가 나설 생각인가. 임소백이 나설까? 누가 나서든 간에 너희 맹주는 글렀어. 돈이 안 되니까 나서지 않을 거다. 한때는 임소백과 더불어서 맹장(猛將)이라는, 강호에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별호를 가진 사내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수하랍시고 아첨의 말이나 했더냐? 너희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번에는 개방 방주가 제천맹의 무인들을 단체로 꾸짖었다. 제천맹 무인들의 얼굴이 단체로 벌겋게 익어가는 와중에 나는 그제야 개방 방주의 말에 끼어들었다.
“선배님, 그 한자리는 제가 끼겠습니다.”
개방 방주가 내게 호통을 쳤다.
“넌 부족해! 백여 합도 못 버티고 일월광천이나 던졌다가 교주와 천악이 힘을 합쳐서 일월광천을 단박에 소멸할 것이다. 나는 다른 삼재와 해와 달이 번갈아 뜨는 것을 여러 차례 지켜보면서 싸웠다. 자하,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음.”
개방 방주가 일어서더니 제천맹과 나를 보면서 말했다.
“강호가 멀쩡해야 맹주가 있고 맹원이 있는 것이다. 멍청하게 세월을 보내지 말도록. 주 맹주.”
“예, 선배님.”
“또 보자.”
제천맹주가 그래도 사람 새끼인 모양인지 일어나서 말했다.
“선배님, 며칠 머물다가 가시지요.”
“어림없는 소리는 네 수하들에게 하고. 간다. 수하들 지키려면 더 혹독하게 수련해라. 일도 안 하는 네가 할 일이 뭐가 있어? 예전에 처맞을 때와 실력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수련에 매진하겠습니다.”
개방 방주가 나를 쳐다봤다.
“문주야, 가자.”
“예.”
나는 개방 방주와 나란히 서서 제천맹의 본진을 천천히 걸었다. 이때, 공중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노신이 날아와서 방주 옆에 섰다.
이 세상 눈치 없는 새끼를 내가 노려보자, 노신이 입을 다물었다.
개방 방주가 말했다.
“왜 이제 와?”
노신이 대답했다.
“사부님이 빠르시니까요. 벌써 다 끝났습니까?”
개방 방주가 한숨을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달렸더니 허리 아프다.”
“앗!”
노신이 경망스럽게 외치더니 개방 방주 앞으로 가서 업는 자세를 취했다.
“업히세요. 사부님. 고생하셨습니다.”
문득 나는 생각나는 대로 행동했다. 노신의 어깨를 친 다음에 턱짓을 하면서 말했다.
“노신 형, 비켜 봐.”
“왜?”
“방주님, 업히세요.”
개방 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오문주에게도 업혀 봐야지.”
내가 등을 내밀자, 개방 방주가 적토마에 올라타는 것처럼 짓누르듯이 업혔다. 순간, 이마에 땀이 나는 것 같아서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무거워? 방주님?”
개방 방주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닥치고 달리거라. 이놈아, 모든 게 다 수련이야. 노신, 앞장서.”
“예, 사부님. 하하하하. 멍청한 문주가 업는 게 무슨 장난인 줄 알았나 봅니다. 가자, 하오문주.”
노신이 앞으로 달려나가자, 개방 방주가 뒤에서 내 뒤통수를 툭 쳤다.
“쫓아가, 이놈아. 경공 실력 좀 보자.”
“어?”
내가 당황하자, 개방 방주의 몸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순간, 개방 방주가 왼팔로 내 목을 휘감더니 협박의 말을 내뱉었다.
“좋아. 경공 수련 좀 시켜볼까. 뒤처지면 목을 조를 테다. 가자.”
“잠시만요.”
“협상하자고? 노신을 따라잡으면 풀어주마. 빨리 가.”
순간, 나는 광승이 떠올랐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광승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전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광승에서 개방 방주로 그 역할이 교체된 기분이랄까.
‘이건 좀…….’
생각해보니 지금 내 실력으로는 삼재의 목조르기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개방 방주의 몸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이 정도면 되겠지? 빨리 따라잡아라.”
나는 한숨을 길게 내뱉은 다음에 노신을 따라서 경공을 펼쳤다. 점점 속도를 끌어올리자, 등에서 삼재의 감탄 섞인 칭찬이 이어졌다.
“오…… 제법 빠른데? 그래도 노신보다 빠르진 않아. 이래서 언제 따라잡겠어?”
나는 달리면서 방주에게 물었다.
“노신 형이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개방 방주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우리 같은 거지가 알게 뭐냐? 달려라. 달려라, 하오문주!”
순간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노신이 되돌아와서 나를 약 올렸다.
“이거 뭐 경공이 형편없네. 무산협곡에서는 제법 잘 달리는 줄 알았는데.”
이놈의 스승과 제자 놈들이 동시에 나를 겁박하고 조롱했다.
이 상거지 새끼들이…….
나는 노신에게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 거지 같은 새끼가…….”
노신이 낄낄대면서 대답했다.
“거지 같은 새끼가 아니라 이미 거지다. 멍청한 문주 놈.”
등에 업힌 거지들의 대장도 황당했던 모양인지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나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한 채로 거지 사부와 거지 제자에게 붙잡힌 채로 경공을 펼쳤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호의를 베풀었다가 거지들에게 붙잡혔다.
인생 거지 같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