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나는 전설이다.
나는 삼재가 싸우는 곳에 도착해서 상황을 주시했다.
신개와 천악이 일대일 대결을 벌이고 있었는데, 적당한 거리에서 백의서생이 가부좌를 튼 채로 싸움을 관망하고 있었다.
이탈한 것인지, 다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신개와 천악은 장소를 꽤 넓게 사용하면서 싸우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까 여전히 황룡(黃龍)과 적호(赤虎)가 맞붙은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보고 있으려니 백의서생이 이탈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미 황룡과 적호가 순백의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백의서생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저놈도 지금은 넋을 놓은 채로 움직이는 그림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끼어들면 그림의 예술성을 해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로 신개와 천악의 싸움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백의서생의 감상을 굳이 방해하지 않은 채로 걸어가서 적당한 곳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제야 백의서생이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나는 백의서생의 시선을 무시한 채로 황룡과 적호를 감상했다. 무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싸움을 반드시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아야만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천옥을 보유하고 있다. 세상과 잠시 단절한 채로 천옥의 힘을 끌어다가 내공으로 쌓으면 가장 빠르게 성장할 터였다. 문제는 그 단절의 시간 동안에 내가 알던 자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실은 그래서 이렇게 고생하는 중이고…….
백의서생이 내 감상을 방해했다.
“……이자하, 실명서생은 어찌하고 혼자 왔나?”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구경하다가 백의서생의 말에 대답했다.
“실명서생은 안타깝게도 수하들에게 죽었다.”
백의서생이 꾸짖는 어조로 대꾸했다.
“너는 그 거짓말 좀 그만하면 안 되겠나? 어째서 입만 열면 거짓말이냐.”
“거짓말이 아니라 그게 진실이야.”
나는 백의서생의 시선을 외면한 다음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는 적호, 아니 천악서생의 표정을 확인했다.
천악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웃는 것은 천악서생만이 아니었다. 때때로 신개도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싸웠다. 천악의 반격이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어찌 보면 저 두 사람이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삼재들과 겨루고 있을 때가 아닐까. 나는 방주가 웃는 것을 보자마자, 나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즐거워하시는군.’
갑자기 옆에서 백의서생이 내게 외쳤다.
“이자하!”
“왜?”
“실명서생 어디 갔느냐고? 그자가 왜 수하들에게 죽나?”
나는 고개를 돌려서 감상을 방해하는 백의서생을 노려봤다.
“이 미친 새끼야. 죽었다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 있겠어? 내가 실명서생보다 강하다는 말이냐?”
백의서생이 대답했다.
“그건 아니지. 그럴 수가 없지.”
“내 말이…….”
“따라오던 수하들은?”
“다 죽었지.”
백의서생이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싸움을 다시 주시했다.
나도 다시 구경했다.
불구경하고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줄 알았는데, 감히 황룡과 적호의 싸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단하네.”
한 차례 장력을 교환한 두 사람이 빛살처럼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동시에 허공에 멈추자마자 땅에 내려섰다.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장력 충돌의 여파가 바람에 실려서 내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순간 내 머리카락이 한 차례 휘날렸다.
신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악, 잠시 쉬다가 할까?”
천악의 목소리는 더 잘 들렸다.
“늙은이, 지쳤구나. 잠시 쉬어라.”
“지칠 리가 있나. 생각 좀 하세. 서로 무의미한 공격이 많았어.”
이내 두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채로 땅에 앉더니 각자 생각에 잠겼다.
천악이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마음이 흡족해졌다.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무인들이 서로를 인정한 채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좋구나.’
그제야 나를 발견한 천악이 백의서생에게 물었다.
“실명은 어디 있나?”
백의서생이 대답했다.
“이자하한테 죽은 모양이야.”
제법 떨어진 곳에서 천악이 나를 주시했다. 순간, 천악의 두 눈이 붉게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호랑이의 얼굴이 갑자기 거대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에는 공포심이랄 게 별로 없었다.
천악은 바로 근처에 있는 것처럼 또렷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네 실력으로 무리였을 텐데. 어찌 된 일이냐?”
나는 천악과 눈을 마주친 채로 대답했다.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소.”
“알고 있다.”
“수하들에게 죽었소.”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
나는 천악이 당장 일어나서 뛰어오면 호흡 한 번에 이곳에 도착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 성격상 좋게 말할 수가 없었다.
“실명서생이 가마꾼을 죽였다. 내게 다리를 잘려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는데, 싸울 때 방해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래서 실명서생의 다리도 방향을 잃었다. 그다음에는 본인의 무력이 훨씬 뛰어남에도 다른 수하들을 또 희생시키더군. 수하들에게 조언을 받아서 직접 싸웠다면 내가 졌을 텐데 말이야.”
천악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것처럼 물었다.
“그런데?”
“수하들이 단체로 덤비기에 동시에 전부 얼렸다.”
“네가 빙공까지 익혔구나. 그다음은?”
나는 이빨을 드러낸 채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실명서생의 눈과 입이 되어주던 수하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지. 다리도 잃고, 눈도 다시 잃었다. 나는 얼어붙은 놈들과 춤을 추면서 돌아다니고, 그 와중에도 나를 죽이겠다고 쫓아오던 실명서생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수하의 칼에 찔렸다. 왜? 눈이 멀었거든.”
“…….”
“그다음은 내가 마무리했지. 그렇다면 내 실력이 뛰어나서 죽은 것일까? 아니면 실명서생이 수하를 버려서 죽은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죽었나? 나도 모르겠네. 병신 같은 놈이 왜 죽었지. 확실한 건, 내가 사실은 실명서생보다 약했다는 말씀이지.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다시 팔짱을 끼면서 천악을 노려봤다.
“선배, 이해하셨나?”
먼 곳에서 천악의 허연 이가 드러났다. 아마도 활짝 웃은 모양이다. 천악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내게 말했다.
“음, 그래. 네가 이자하로구나. 운이 좋구나.”
“운도 실력이야.”
문득 천악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백의서생이 내게 말했다.
“처음부터 그리 설명하면 될 것을…….”
나는 백의서생을 바라봤다.
“이봐, 서생 동지.”
“왜?”
“어차피 너는 진실을 말해줘도 잘 듣지 않아.”
“진실이 무엇인데?”
나는 곁눈질로 백의서생을 노려봤다.
“너희가.”
“그래. 우리가 뭐? 말해봐라.”
“개방 방주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인데? 백도라서? 명령이 떨어져서? 아니면 네가 진심으로 죽이고 싶어서? 개방 방주는 누구에게 원한을 살만한 사람이 아니다. 방주는 시황제 같은 사람이 아니다. 지나가는 평범한 행인에게 적선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부당한 일을 목격하면 도와주려는 사내고. 무슨 명분으로 너희가 거지들의 총대장을 죽인단 말이냐? 명예, 권력, 돈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것이 개방 방주야. 너희에겐 무슨 명분이 있나? 무슨 대의가 있어? 너희는 아무것도 없어. 개방 방주 같은 사내는 드물다. 그 누구도 죽여선 안 돼. 그것이 진실이다. 말을 해줘도 처 듣질 않는 새끼.”
“…….”
“물론 네 놈 위에 무서운 놈이 있어서 명령을 내린 것이라면 수행해야지. 암, 그래야지. 노예 새끼가 어떻게 명령을 거부한다는 말이냐? 장래희망이 노예여서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었나? 대단한 새끼네.”
“말이 과하구나.”
나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툭 치면서 백의서생을 노려봤다.
“생각을 좀 해라. 네 생각이 네 것인지. 네 악의가 네 것인지. 너야말로 노예가 아닌지. 글을 좀 읽었다는 서생 놈이 뭐가 옳은지도 몰라. 비밀결사 놀이에 취했어? 그냥 나가 죽어 이 새끼야. 내가 말했지. 천년에 걸쳐서 협객을 키우자고. 또 다른 시황제를 막자고……. 그런 협객이 성장해서 온갖 기연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정점을 찍은 사람이 바로 개방 방주다. 협객을 키우는 일과 협객을 지키는 일은 결국 같은 일이야.”
백의서생이 낄낄대면서 웃었다.
“미친놈, 또 시작이구나.”
나는 슬슬 언성을 높이다가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시황제에게 핍박을 받았던 너희가 무슨 명분으로 협객을 죽이나? 눈앞에 형가와 같은 사내가 있는데도 구분을 못 하겠어? 이 병신 같은 서생 새끼들……너희는 어디 가서 글 좀 읽었다고 자랑 좀 하지 마라. 글 한 줄 안 읽은 사람들이 너희들보다 나아. 나가 뒤져라.”
문득 나를 노려보고 있는 천악과 다시 눈을 마주쳤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천악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선배도 그냥 나가 뒤지는 게 낫겠소.”
“…….”
천악이 귀를 후비더니 개방 방주에게 말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내가 똑바로 들은 거 맞아? 나더러 나가 뒤지라고 했어, 방금?”
천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개방 방주도 일어나면서 말했다.
“원래 저런 녀석이니 이해하게.”
“그래? 내게 이해를 바라면 안 되지.”
순간, 천악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내 눈앞에 등장했다. 내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동안에 거의 동시에 도착한 개방 방주가 천악에게 말했다.
“까마득한 후배에게 뭐 하는 짓인가?”
천악이 히죽 웃더니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나를 노려봤다. 나를 갈구러 온 모양새였다.
“자하야, 적당히 해라.”
개방 방주가 내게 자중하라는 눈빛을 보내더니 그 역시 자리에 앉았다.
삽시간에 나, 백의서생, 천악, 개방 방주가 둘러앉아서 서로의 표정을 구경했다.
천악이 내게 말했다.
“하오문주, 더 떠들어보도록.”
나는 허리를 바로 세운 다음에 대답했다.
“그럴까? 천악 선배.”
“그래. 우리 얼굴 허연 애송이 후배.”
나는 천악이 갑자기 앞발을 휘둘러서 나를 찢어 죽일 것만 같았으나, 하고 싶은 말은 참을 수가 없었다.
“뛰어난 힘을 지닌 사내가 분을 못 이겨서 갑자기 마당으로 뛰쳐나가더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죽이려는 것 같소.”
천악이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말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닭을 죽이는 것도 못난 행동인데 그것을 사람에게 하는 자들도 있지. 대의도 없이 저지르는 살육은 필부나 하는 짓. 약자를 가축 취급하는 놈들, 그런 놈들을 죽이겠다고 내가 강호에 나섰지.”
“네깟 놈이 뭔데?”
“나는 일하는 자들의 대장.”
손으로 개방 방주를 가리켰다.
“우리 신개 선배는 거지들의 대장. 우리는 약자들이 왜 약한지 알고 있어.”
천악이 개방 방주를 쳐다보고, 다시 나를 바라봤다.
“약자들이 약한 이유도 있더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먹여 살릴 식구가 있어서 딱히 우리처럼 무공을 수련할 시간이 없지. 이들도 노예처럼 살기 싫은데 처자식이 있고 보살펴야 할 늙은 부모가 있기에 자처해서 노예처럼 살고 있다. 일하고, 돈을 받고. 새벽에 일어나고, 늦게 잠이 든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이러한데, 이런 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닭이나 소처럼 부리는 것도 모자라서 때려죽이는 놈들이 너희 같은 마도다. 약한 사람들이 왜 약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야. 하지만 신개 선배와 나는 알고 있어. 몸이 불편한 거지들을 보호하겠다고 시작된 것이 개방이고. 일하는 자들이 강호인에게 함부로 맞아 죽지 않게끔 하려는 것이 내가 만든 하오문이야.”
나는 천악을 바라보고, 옆에 있는 백의서생도 바라봤다.
“나는 애초에 노예가 아니었거든. 나는 명령을 받지 않아. 시황제 시절에 태어났다면 내가 형가다. 가난도 나를 조롱하지 못했고.”
나는 천악을 가리켰다.
“선배와 같은 강자도 나를 가볍게 보지 못해. 그것이 나다.”
천악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때리면 바로 죽을 것 같은 놈이 대체 무슨 자신감이냐?”
나는 다소 멍한 눈빛으로 천악, 개방 방주, 백의서생을 둘러봤다.
“이미 내 안에 품은 일월이 순리를 거스르면서 교차하고 있어. 나는 절대 혼자 죽지 않아. 일월이 강제로 충돌해서 내가 터지면, 우리는 함께 소멸하는 거야.”
나는 시야가 잠시 뿌옇게 흐려졌다가, 온 세상이 자줏빛으로 물드는 것을 확인했다.
맑은 하늘과 서생들의 얼굴빛,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개방 방주의 안색도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도 자하신공이 펼쳐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마음도 평온했다.
나는 그저 대화가 하고 싶을 뿐이어서 삼재에 속하는 천악을 협박했다.
“나를 치면 우리는 이 자리에서 전설이 된다. 나도 죽겠지만 삼재도 죽고, 백의서생도 죽는 거야.”
이것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던 천악서생이 의견을 구하는 것처럼 백의서생을 바라봤다.
백의서생이 잠시 고민하더니 천악서생에게 말했다.
“……치지 마. 이 새끼야. 눈빛을 봐라. 미친놈은 건드리는 거 아니야.”
순간, 나는 목에 고여 있는 침을 꿀꺽하고 넘기면 허세가 바로 들통날 것 같아서 생각나는 대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전설이다.”
말을 마치자마자 목에 고여 있는 침을 자연스럽게 넘긴 다음에 표정을 관리했다. 천악이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지만, 나는 내려놓음의 미학을 발동해서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
이것을 예전에 알았더라면 도박장에서 돈을 잃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와중에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니.
인생은 오묘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