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39
239화. 나는 물들이는 상상을 해봤다.
천악이 내게 말했다.
“내게 협박하는 사람은 무척 오랜만이야. 신선하군.”
나는 천악의 표정을 보다가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천악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너를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렷다?”
나는 고개를 짤막하게 흔든 다음에 천악을 바라봤다.
‘미친놈인가? 해석을 이상하게 하네.’
백의서생이 침을 삼키면서 경고했다.
“천악, 하지 마라.”
하지 말라는 말에 천악이 웃었다. 앉은 자세에서 공중에 뜬 채로 다가온 천악이 내게 좌장을 내질렀다.
단순한 경로의 기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즉시 우장으로 받아쳤다.
퍼억……소리가 터진 다음에 천악이 웃었다.
“교주도 내게 하지 못한 협박을 해?”
나는 전신의 공력을 우장에 쏟아내는 와중에 피가 거꾸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평범한 일장이었는데, 천악이 점점 공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나보다 내공이 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장력을 겨루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오냐, 해보자.’
개방 방주 말했다.
“후배가 어찌 자네의 공력을 감당하겠나?”
천악이 곁눈질로 개방 방주를 바라봤다.
“감당을 못하겠으면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지.”
개방 방주가 콧방귀를 뀌었다.
“책임이라.”
순간, 또다시 퍽―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는 개방 방주와 천악이 손바닥을 부딪쳤다. 이것은 날 구해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날 터트려서 함께 죽자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천악이 좌우로 쌍장을 펼치면서 웃었다.
“흐흐흐. 좋아, 이 정도면 하오문주도 버티겠지. 너는 남는 힘으로 상대해주마.”
천악은 신개의 장력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나는 천악의 공력을 감당하다가, 신개가 합류하자마자 호흡을 크게 한번 들이마셨다. 하지만 이내 천악의 공력이 쉴 새 없이 강해지고 있어서 숨이 턱 막혔다.
‘이거 남는 힘 맞아?’
백의서생이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허, 내가 눈으로 직접 봤다니까. 이놈의 절기 때문에 사천왕을 보호하려는 자들이 소멸되고 사천왕도 동시에 퇴각했다. 허풍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런 것도 천악 자네의 것으로 만들어야지 않겠나? 물론 내 것으로 만들어도 좋고. 그나저나 이자하가 정말 내부에서 일월광천을 터트리면 도대체 어떻게 막을 셈이냐? 아까운 무공이 사라지게 된다고.”
나는 눈빛으로 욕을 했다.
‘이 새끼가.’
천악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시끄럽다. 백가 놈아, 이자하는 내가 붙잡았으니 방주나 어떻게 해봐라.”
백의서생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 넷이 장력을 겨루다가 갑자기 대단한 고수가 등장하면 누가 감당하려고 그러나? 네 사람이 동시에 양패구상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어. 누군가 어부지리를 노리면 큰일이야. 나는 냉정하게 심판만 보겠다.”
주변을 둘러보던 백의서생이 갑자기 좌장을 내지르더니 신개를 공격했다.
퍽!
나는 눈이 저절로 크게 떠졌다.
‘말의 앞뒤가 왜 이렇게 달라?’
순간, 어떤 판단을 냉정하게 하기 전에 나도 좌장을 백의서생에게 내질렀다. 나 살자고, 눈앞에서 개방 방주가 죽는 꼴은 내가 못 보기 때문이다.
퍽!
백의서생이 놀란 표정으로 내 장력을 받아냈다.
“미쳤느냐?”
나는 장력을 내지르고 나서야 내 실수를 깨달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위험한 상황이라서 위험을 더 추가한들 의미도 없었다. 대신에 이제부터 나는 천옥이라도 협박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내 목숨을 건 눈치 싸움이다.
개방 방주는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내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으냐?”
나는 숨을 내뱉으면 힘이 빠질 것 같아서 고개만 끄덕였다. 어쨌든 간에 총 여덟 개의 손이 맞붙어서 동시에 장력을 쏟아냈다.
“…….”
신개가 입을 열었다.
“천악, 그만하는 게 어떤가. 이것은 의미 없는 대결이야.”
천악이 대답했다.
“천하의 신개도 두려움을 느끼나?”
“그럴 리가.”
천악이 이번에는 백의서생을 비웃었다.
“너는?”
백의서생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문주가 터지는 순간에 도망갈 생각이야. 일월광천이 빠른지 내가 빠른지 확인하겠다.”
요약하면, 두렵지 않다는 뜻이었다.
내가 이 세 명을 너무 쉽게 봤다.
“…….”
천악이 나를 놀렸다.
“후배, 터져보라고. 누가 죽는지 보자꾸나.”
나는 조롱의 말을 듣고 나서야 웃음이 나왔다. 협박하고 나서 표정 관리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내뱉은 말은 현실이 되었다.
생각해보니까 쌍장을 좌우로 펼친 상태라서 일월광천을 만들 수가 없었다.
다행히 개방 방주가 엄청난 장력을 쏟아내고 있는지, 내게 밀려드는 서생들의 힘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를 살리겠다고 이렇게 노력해주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개방 방주의 늙은 얼굴을 보다가 눈앞이 살짝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오랜만에 분노라는 감정이 고맙다는 감정에 밀리는 것을 확인했다.
‘이야, 나는 참 신기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뭐라고…….’
이대로 신개가 죽는 건 원하지 않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우장으로 금구소요공을 내보내고, 좌장으로는 월영무정공을 내보냈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못 버티면 다 죽는다.
‘어처구니가 없네.’
반각을 제법 잘 버텼다.
이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천악의 장력이 금구소요공을 밀어내더니 진입을 시도했다. 나는 손바닥을 최후의 성벽으로 지정한 다음에 수성전을 펼치듯이 버텼다. 좌장에서는 백의서생에게 쏟아내는 월영무정공의 냉기가 이상한 느낌으로 흩어지고 있었지만, 이쪽도 포기하지 않았다.
동시에 두 가지의 무공을 사용하고, 눈치를 살피고, 잔머리를 굴리고, 호흡을 유지하느라 정수리가 뜨거웠다.
이런 와중에도 개방 방주는 백의서생과 천악을 공격해서 내게 오는 부담을 줄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순간, 개방 방주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터져 나와서 우리 셋은 동시에 개방 방주를 바라봤다.
‘와, 진짜 거지로구나.’
개방 방주가 침을 꿀꺽 삼켰다.
“배고프네. 이게 무슨 짓인가? 먹고 살자고 익힌 무공인데. 한심한 자들이로고.”
천악도 거지의 말이 황당한 모양인지, 고개를 내저었다.
“하…….”
백의서생도 코웃음을 쳤다.
“참나.”
이렇게 보니까 나만 심각했다.
공력이 부족하면 농담도 못 하게 되는 것이 강호인의 내공 싸움이다.
여덟 개의 손바닥이 달라붙은 와중에 공력을 얼추 가늠해보니 나, 백의서생, 천악, 개방 방주 순서대로 깊은 것 같았다. 시간이 더 흐르자 오히려 개방 방주가 두 사람을 압박하고, 나는 보조하듯이 백의서생과 천악에게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내가 천악에게 공격을 하게 될 줄이야?
물론 개방 방주가 몽둥이로 연신 두 사람의 머리통을 후려패고.
나는 개방 방주를 응원하면서 젓가락으로 두 사람의 머리통을 두들겨 패는 정도의 구도였다. 어쨌든 나도 공세로 전환한 상태.
거지들의 총대장 때문에 내가 이렇게 쓸모 있는 사내로 변했다.
‘좋았어.’
슬슬 백의서생의 낯짝에서 땀이 흘러내리다가 칙― 소리와 함께 증발하고, 천악도 정수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표정으로 두 사람을 놀렸다.
가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공을 쏟아냈다.
이런 내 표정을 요약하면 “히히히히.” 정도가 되겠다.
순간, 천악과 백의서생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들어오는 공력이 더 거세졌다. 무언가 전략을 바꿨는지 우리 넷은 손바닥을 이어붙인 채로 제자리에서 단체로 회전했다.
무슨 놀이 기구에 올라탄 기분이어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염병할, 뭐 하는 거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천악이 온전하게 개방 방주와 장력을 겨루고, 백의서생이 내게 집중하는 구도로 뒤바뀌었다.
내가 넷 중에서는 가장 약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천악은 갑자기 방벽을 세운 것처럼 나한테는 최소한의 수비를 펼치고, 개방 방주을 공격했다. 나도 장력 싸움을 꽤 많이 해봤으나 지금 벌어지는 싸움은 수준이 너무 높았다.
기분이 매우 언짢아서 눈깔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환장하겠네.’
순간,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지만 나는 방주를 보자마자 다시 이성의 끈을 바느질하듯이 이어 붙였다.
사실 나는 일월광천을 터트려서 함께 죽을 마음이 없다. 거지들의 총대장이 나를 살리겠다고 저러고 있으니 동귀어진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모르겠다. 그냥 버티자.’
문득 살벌한 눈빛으로 백의서생을 노려보자, 백의서생이 표정 관리에 실패했는지 살짝 놀라고 있었다.
‘음, 어차피 이놈은 최선을 다할 수 없겠구나.’
내 일월광천을 가장 경계하는 놈이라서 그렇다.
문득 나는 내공이 드나드는 통로가 점점 비좁게 느껴져서 천옥을 갈궜다.
‘확장 공사가 필요하다. 확장 공사 말이야. 천옥, 이 개새끼야.’
색마와 함께 천옥도 개새끼로 만드는 순간, 입안에서 빠드득― 소리가 울리고 눈에서는 핏줄이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천옥이 말귀를 알아들은 것일까?
문득 체내에서 둑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나더니, 세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
나는 전신이 답답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데 색마 개새끼를 펼칠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음과 양의 기운을 동시에 기파처럼 배출했다. 순간, 내 눈에도 자색(紫色)의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더니 전신이 기류에 휩싸였다.
나는 자하기(紫霞氣)를 전신에서 쏟아냈다.
물론 이 자하기의 출처는 천옥이다. 호흡은 다소 편해졌으나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고통이다. 추측하건대, 자하기가 분출되면서 내공의 통로가 강제로 확장되더니 저절로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으…….”
눈에 보이는 것 전부가 점점 자줏빛으로 물들었다.
이 와중에 왜 산딸기가 떠오르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너무 고통스럽다 보니까 이상한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일월광천이 문제가 아니라 바지에 무언가를 지릴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내 몸에 가해지는 고통 때문에 주둥아리를 열었다.
“터진다.”
백의서생과 천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개방 방주에게 말했다.
“선배, 지금이라도 피하시오.”
개방 방주가 덤덤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지. 죽음과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야. 어떻게든 막을 테니 버텨보아라. 이렇게 우리가 사라지면 교주를 막을 사람이 없어진다. 포기하지 말도록.”
이런 와중에도 나는 개방 방주가 왜 이렇게 강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저 정신의 격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마치 불가의 고승을 보는 느낌이랄까.
문득, 천악이 내가 색마에게 했던 것처럼 중얼거렸다.
“교주, 이 개새끼.”
백의서생이 천악에게 말했다.
“……네가 먼저 힘을 거둬라. 이 이상은 나도 수습이 안 돼.”
천악이 이번에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순간 나는 오른쪽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사라지자마자 천악을 바라봤다.
이렇게 황당한 순간이 올 줄이야.
교주가 개새끼라서 위기를 탈출한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전생에는 교주와 색마, 개새끼들끼리 붙어먹었다는 뜻이겠지?
다들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서로 눈치를 보고 표정을 살피던 자들이 개과천선을 한 것처럼 공력을 줄이더니 잠시 후에 우리는 차분하게 손을 거뒀다.
“…….”
이렇게 조마조마한 정적은 오랜만이었다.
“후우.”
나는 그냥 잠시 입을 닥친 채로 가만히 있었다. 아수라발발타고 나발이고, 지금은 닥치는 게 답이어서 호흡에만 집중했다.
천악이 하늘을 주시했다가 덤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황당하군. 언행이 일치하는 협박이었음을 내가 인정하마.”
나는 갑자기 인정을 받았다. 하도 미친놈들이라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백의서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악, 잘 멈췄다.”
나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나도 이런 협박은 다시 하지 않겠소. 통하지도 않을 것 같군. 그래도 덕분에 죽음의 직전까지 가보고, 무공의 성취도 있었소.”
어쩐지 이 사람들에겐 그냥 솔직하게 다 털어놓는 것이 답이었다.
개방 방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말했다.
“자하야, 나도 앉은 자리에서 쌀 뻔했다.”
“뭘요.”
“똥을.”
“예.”
천악이 개방 방주에게 말했다.
“거지야, 너는 정체가 대체 무엇이냐? 그간 내공이 전보다 더 깊어졌구나. 거지 놈.”
천악의 물음에 개방 방주가 대답했다.
“알다시피 나는 그냥 거지다. 정체랄 게 뭐 있겠나. 오늘도 다리 위에서 하오문주와 동냥이나 하고 있었는데. 자네들 때문에 밥 먹고 사는 것도 힘들구나. 자주 만나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그리고 천악, 젊은 후배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않은 것도 감사하네. 자네가 적당히 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어.”
개방 방주의 말에 희미해지던 천악의 살기마저 산산이 부서지더니 어디론가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천악이 처음으로 힘 빠진 표정으로 백의서생에게 물었다.
“이 거지 놈이랑 싸울 때마다 힘이 빠지는구나. 이대로 퇴각이냐?”
백의서생이 품에서 말라붙은 붓 하나를 꺼내더니 가볍게 집어던졌다. 붓이 하늘로 솟구치다가 산산조각이 되어서 사라졌다.
“책을 너무 오래 본 모양이야. 이딴 식으로 실패할 줄이야. 나도 당분간은 수련에 집중하겠다. 방주에겐 사실 아까 패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구나.”
백의서생이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실명서생이 살아 있고 네가 없었더라면 오늘 개방 방주는 죽었을 것이다. 내 패배와 무관하게 말이다.”
나는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실명이 있었어도 힘들지 않았을까?”
백의서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무공 때문이 아니다. 거지는 제자 때문에 제대로 못 싸웠을 테니까. 심리전까지 설계한 싸움인데 계획이 하나둘씩 어긋나니까 흥미가 떨어지는구나. 천악, 자네도 얻은 게 없지는 않을 테지. 오늘은 여기까지.”
천악이 백의서생과 함께 일어나면서 말했다.
“거지, 근래 교주를 본 적 있나?”
“없네.”
“어떨 거 같은가?”
“모르겠군. 속을 도통 모르겠으니. 그나저나 자네도 실력이 올라간 것을 확인하니 나도 기분이 마냥 나쁘진 않았네. 자극을 받았네.”
“염병할, 거지새끼. 제발 적과 아군은 좀 구분하고 살도록 해라.”
천악이 나를 바라봤다.
“미친놈아, 그 나이에 제법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봅시다. 선배도 아주 잘 미쳤소.”
나는 천하의 삼재와 잠시 눈싸움을 벌였다. 여전히 적이었지만 옛 장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싸우기 전에 농담 몇 마디는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된 느낌이었다.
문득 천악이 나를 향해서 뜬금없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나는 노예가 아니다.”
나는 이 새끼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충 대답했다.
“축하합니다.”
천악이 묘한 표정으로 웃더니 내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오래전에는 노예였지.”
백의서생이 천악의 팔을 붙잡더니 돌려세웠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자.”
“다음에 술이나 한잔합시다.”
나는 천악에게 말했는데, 백의서생이 끊었다.
“닥쳐라.”
백의서생은 천악이 내게 물드는 것이 걱정스러운 모양인지 금세 빼돌렸다. 이렇게 되니까 오히려 내가 아쉬웠다. 어쩐지 천악과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천악이 예전에 노예였다는 말에서 오만가지 상상이 휘몰아쳤다.
‘대단하네. 노예였단 말이야?’
어쩌면 천악이 자신의 사부를 죽인 것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다. 어쩐지 나는 백도든 마도든 간에 자줏빛으로 물들일 자신감이 있었는데 백의서생이 경계하는 터라 천악을 마저 공략하진 못했다.
그것이 살짝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