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283
283화.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다.
큼지막한 백년하수오를 요리해서 먹었다.
무침으로 먹고, 양념장에 찍어 먹고, 국물로 우려내서 보양식으로 섭취했다.
어린 요란이에게 감당하지 못할 영약을 통째로 주는 것은 내 성미에 맞지 않아서 사대악인, 차성태, 홍 사매, 득수 형의 뱃속에도 백년하수오가 들어간 셈이다. 양이 많아서 사흘에 걸친 끼니마다 만장애 밑에서 건진 백년하수오를 반찬으로 소비했다.
나흘째 되던 날.
검마, 귀마, 색마는 아침부터 방에 틀어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운기조식을 하고 있을 터였다.
결국에 심심해하던 요란이는 오후 내내 나랑 놀다가 홍 사매에게 붙잡혀서 끌려갔다.
아이와 놀아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요란이가 계속 강호에서 쓰이는 용어와 무공과 관련된 질문을 해대서 나는 딱히 쉴 틈이 없었다.
흑도를 줘패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겨우 자하객잔 앞에 홀로 앉아서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전방에서 낯선 사내가 걸어오면서 말했다.
“하오문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나요.”
“문주님, 저는 남양표국의 염이건 표사입니다.”
염이건이라는 이름은 처음 듣지만 남양표국의 명성은 들어봤다.
“염 표사, 오느라 고생하셨소.”
염이건이 품에서 서찰 한 통을 꺼낸 다음에 말했다.
“서찰을 하오문주께 전달하라는 표행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전달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전달해도 되겠습니까?”
“그대가 직접 개봉해서 읽어주면 좋겠소.”
염이건이 서찰을 든 채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문주님, 문제없이 서찰을 전달받은 것으로 해주시면 개봉해서 제가 읽겠습니다.”
“문제없이 당사자인 내가 받았소.”
염이건이 서찰을 조심스럽게 개봉하면서 내게 말했다.
“참고로 서찰의 내용과 남양표국의 입장은 무관합니다.”
“알고 있소.”
염이건이 서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짤막하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읽었다.
“하오문주, 손해배상 청구서. 귀하는 흑향에서 거래하는 물품을 아무런 관련도 없이 훼손, 강탈 등의 죄를 저질렀다. 피해 상황은 다음과 같다. 구씨약문의 일백음양단, 검객 위지산의 검, 천살삼호의 목숨, 혼혈 소녀, 기타 잡다한 경매 물품, 경매 참여자들의 목숨, 경매장소의 물질적인 피해까지. 귀하가 강호에서 활동했던 그간의 행적을 고려하여 흑향의 피해 상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통용 은자 일천 개로 갈음한다. 청구 금액에 비객의 목숨값은 더하지 않았다. 내게 무공을 배웠음에도 패배한 비객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향의 피해액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변상해야 한다. 청구를 거절할 경우 일천 은자는 하오문주의 현상금으로 배정할 생각이고, 이는 살수 단체들이 거절하기 힘든 의뢰 비용이 될 것이다. 동호에서, 사도제일인(邪道第一人).”
염이건이 서찰을 다시 넣은 다음에 나를 바라봤다.
“다 읽었습니다. 서찰에 독은 없었습니다. 이제 전달해드려도 되겠습니까?”
“혼혈 소녀라……. 이리 주시오.”
염이건이 그제야 가까이 다가오더니 공손히 서찰을 내밀었다. 목계를 주입한 손으로 서찰을 붙잡은 다음에 탁자에 올려놓았다.
“바쁘지 않다면 잠시 앉으시오. 물?”
“예.”
나는 마시고 있던 주전자의 물을 한 잔 따라줬다. 맞은편에 앉은 염이건이 물을 단박에 들이켜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사도제일인이면 동호제일검인가?”
“예.”
“다른 전달 사항은 없소?”
“의뢰했던 자가 몇 가지 떠들기는 했습니다.”
“들어봅시다.”
“행적으로 봤을 때 문주님이 거절할 확률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그렇군.”
“……거절할 경우 사도제일인이 무림공적 명단에 공공연하게 있으면서도 임소백 맹주가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감을 멍청하게 표출하는군. 숨어 있으니 임 맹주께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인데. 그나저나 왜 수하를 보내지 않고 남양표국을 이용한 거요?”
염이건이 이렇게 대꾸했다.
“아마 문주님에게 전령이 죽지 않을까……이렇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제 예상입니다.”
“은자 일천 냥이면 살수단체가 얼마나 움직이겠소?”
“동호 측에서 고용한 단체는 모두 움직일 겁니다. 어차피 성공한 사람에게만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즉 사도제일인의 수하들도 올 가능성이 큽니다.”
“남양표국도 사도제일인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소?”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공적의 표행은 금지되어 있는데 이번에는 저희도 협박을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은 표행을 완수한 다음에 무림맹에 보고할 생각입니다.”
“잘 대처하셨소.”
“헤아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염 표사는 무림맹이 동호제일검이라는 공적을 그간 잡지 못했던 이유를 아시오?”
염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일단 사도제일인의 거처를 모릅니다. 육지와 달리 강과 섬을 샅샅이 수색해야 하는데 웬만한 병력으로는 어렵습니다. 또한, 그간 고수들이 현상금을 타겠다고 사도제일인의 암살을 시도했었지만 이후 소식이 없습니다. 무림맹이 나설 경우에도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는 터라 쉽지 않은 일이고. 사도제일인이 동호 전체에 군림하고 있어서 배를 조달하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사도제일인 본인의 무력도 임 맹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알려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
“십대검호(十大劍豪)?”
“그렇습니다. 검으로 순위를 따져도 그 안에는 꼭 들어가는 사내입니다. 엄청난 부자이기도 하죠.”
“경매장 하나 털었다가 내가 곤란해졌군. 염 표사.”
“예.”
“그 흑향에서 아이까지 거래하고 있었소. 거기 있던 자들은 일단 다 죽일 수밖에 없었지.”
“그러셨군요.”
“동호제일검이 동호 바깥에서도 사업을 하는지는 몰랐네.”
“예상으로는 아마 제자나 간부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염 표사는 내 대답을 가지고 가야만 표행이 완수되는 거요?”
“그렇습니다.”
“물론 그 의뢰자와 만나는 것이겠지?”
“어차피 저는 남양표국으로 돌아가고. 그쪽에서 사람을 또 보낼 겁니다.”
나는 염이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염 표사는 내가 일천 냥을 건네는 게 좋겠소?”
“제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십니까? 문주님의 답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뭐겠소?”
“당연히 줄 마음이 없으시겠지요.”
“맞소. 하지만 이유가 명확해.”
“뭡니까?”
“어차피 내가 일천 냥을 주면 그 돈으로 다시 살수단체에 의뢰비로 줄 거요. 이미 찍혔으니 줄 필요가 없소. 아마 본보기로 삼으려는 거 같군. 무림맹이든 무림세가든 문파든 간에 앞으로 동호에는 일절 발길을 끊으라고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시피 거절이오. 염 표사는 식사라도 하고 가시오.”
“그것참. 직접 문주님의 대답을 듣고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밥 생각도 나지 않는군요.”
염이건이 일어나더니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문주님, 저는 이만 복귀하겠습니다. 혹시 돈이 부족하신 것이라면 저희 표국과 상의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면 무림맹과 논의를 해보셔도 되고요.”
“말했지 않소? 그 돈을 주면 어차피 살수단체로 흘러간다고. 그 수적 놈은 내 돈으로 내가 죽게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겠지.”
염이건이 나를 바라봤다.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매우 불쾌하군요. 어쨌든 저도 표국에 돌아가서 이번 일을 상의하겠습니다.”
“염 표사,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소? 조금 어려운 일인데.”
“예. 도울 수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래도 말씀하십시오.”
시종일관 진지한 염이건이 결의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가 염이건에게 어려운 일을 하나 맡겼다.
“……동호의 전령이 찾아오면 내 말을 꼭 전해주시오.”
“예, 뭐라고 할까요?”
“병신 같은 놈.”
“예?”
“하오문주가 사도제일인에게 전하는 말로 해주시오. 간략하게, 병신 같은 놈이라고 했다고만 꼭 전해주시오. 어려운 부탁이라서 내가 좀 미안하군.”
염이건이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나를 바라봤다가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만 전하면 될까요?”
“그래 주면 나는 고맙지.”
“예, 전달하겠습니다. 병신 같은 놈이라 적절한 표현입니다.”
염이건이 내게 포권을 취했다.
“그럼, 문주님. 무운을 빕니다.”
“염 표사도 무사히 복귀하시오.”
염이건이 돌아서더니 몇 걸음을 걷다가 경공을 펼치면서 이내 사라졌다. 염이건이 떠나자 자하객잔의 객방 창문이 차례대로 열렸다. 돌아보자, 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귀마와 색마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색마에게 말했다.
“뭘 봐? 병신 같은 놈.”
색마가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귀마가 물었다.
“그래서 언제 출발할 거야?”
“뭘 언제 출발해. 운기조식이나 해. 어떻게 할지 고민 좀 해보고.”
“의도는 어디까지 파악했어?”
“사도제일검은 동호 바깥으로 나올 놈이 아닌 거 같아. 떨거지 보내봤자 날 귀찮게 할 뿐이고. 계속 귀찮게 해서 날 끌어낼 생각인 것 같군. 살수로 나를 죽인다는 것도 어림없지. 결국에는 날 동호에 빠뜨릴 생각 같은데…….”
색마가 말했다.
“무림맹과 연합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다.”
동호제일검은 전생이든 현생이든 간에 잡힌 적이 없었던 공적이다.
마교가 날뛰는 와중에도 마치 동오 지역에 틀어박혀서 수성하던 오나라처럼 멀쩡하게 잘 살았던 놈이다. 벌집을 건드리는 것과 같아서 아무도 쉽게 공격하지 못했던 사내인 셈이다.
“한 명을 죽였더니 끝이 없네.”
하지만 이것이 강호다.
귀마가 말했다.
“고민 끝나면 알려줘.”
“알았어.”
나는 자하객잔 앞에서 해가 질 때까지 하늘을 노려봤다.
서찰 내용의 대부분은 이해하는 편이다. 강호에서는 이렇게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혈 소녀의 값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머리에서 맴돌았고, 그 짧은 문구를 생각할 때마다 분노를 억누르는 게 쉽지 않았다.
서서히 자줏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차성태가 천천히 걸어오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문주님, 왜 그렇게 화난 얼굴입니까? 뭔 일 있어요?”
“성태야.”
“예.”
“매화루에 자금 얼마나 남았어?”
“엄청나게 많이 남았죠. 자하객잔 공사 대금 이외에는 딱히 지출한 게 없습니다.”
“돈을 좀 써서.”
“예.”
“날짜를 명시할 필요는 없고 다음 내용을 강호 곳곳에 방을 붙이도록 해.”
“말씀하세요.”
“동호제일검, 사도제일인이 어린 소녀까지 경매장에서 거래하는 사람이고 흑향의 후원자임을 알게 되었다고.”
“예.”
“이에 하오문주가 동호로 가서 동호제일검과 일대일 대결을 벌일 것이라고.”
“일시는요?”
“그건 나도 몰라. 일부러 적을 필요는 없다. 그저 조만간…… 하오문주가 직접 동호에 방문해서 사도제일인과 일대일 승부를 내겠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게 전부야. 이해했어?”
“예.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음, 이렇게 하면 문주님과 동호제일검이 일대일로 맞붙게 될까요? 이것이 대체 어떤 의도이신지 궁금해서. 그 사람은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는 신비인 행세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차성태를 바라봤다.
“의도는 딱히 없어. 일대일로 맞붙지 않아도 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왜 싸우는지는 알려야지. 병신 같은 놈이 병신 짓을 하다가 내게 혼나는 것으로 사건을 격하시키는 게 전체적인 계획이다. 강호 전체에 서찰을 보낸다고 생각하고 진행해. 먼저 나를 아는 자들에게 알리고, 나를 아는 자들이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퍼트려. 읽어봐라.”
내가 턱짓으로 서찰을 가리키자, 차성태가 서찰을 금세 읽었다. 이제 차성태의 표정도 험악해졌다.
“이 병신 같은 놈이 요란이를 언급했다 이 말이로군요.”
“…….”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알겠습니다. 일단 흑묘방, 흑선보, 남명회 같은 거점에 전부 알리고 그곳의 수장들에게도 널리 알리라고 전달하겠습니다. 문주님 명령이니 제가 혼자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빠를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가면 누가 죽게 되는지 보자고. 그 와중에 날 죽이려는 놈들도 죄다 몰려왔으면 좋겠다. 전부 동호에 빠뜨려서 수장시키게.”
차성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화 좀 가라앉히세요. 화병 도집니다. 낯빛이 노을빛이네.”
“내 얼굴 지금 노을빛이야?”
“예.”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노을이 퍼지고 있어서 그렇겠지. 사람 얼굴이 어째서 노을빛이냐.”
차성태도 고개를 돌리더니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런가?”
이때, 창문 하나가 다시 열리더니 검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문주, 언제 출발인가?”
나는 검마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맏형은 운기조식이 언제 끝나나?”
검마가 대답했다.
“기왕 준비할 거면 사흘 정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때 갑시다.”
“알았다.”
검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창문을 다시 닫았다. 안쪽에서 장득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저녁 드시지요. 차 총관도 들어오고.”
차성태가 나 대신에 대답했다.
“……들어갑니다.”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운 노을이 무사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어차피 우리도 쉬운 남자들이 아니라서 상관없었다.
서찰을 챙긴 차성태가 내게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고 화를 냅시다. 표정 좀 푸시고. 요란이가 밥 먹다가 체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