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71
71화. 부러지는 신념
나는 불길에 휩싸인 이룡노군을 보면서 웃었다. 이제 이곳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웃었다.
이룡노군의 죽음을 비웃으면서 웃고, 그의 생애를 모욕하는 심정으로도 웃었다. 흥에 겨워서 흑묘아를 다시 뽑은 다음에 사방팔방에 염화향을 흩날리면서 웃었다.
“타올라라…….”
이 불꽃은 강호인들에게 보내는 점소이의 선물이다.
그 옛날, 자하객잔에 불에 탄 이후로 나도 모르게 강호에 뒤섞이게 되었다. 평범한 점소이를 강호로 끌어들인 벌을 공평하게 이룡노군에게도 내렸을 뿐이다.
이제는 희미해지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추억까지 산장에서 모조리 불태웠다. 내가 내키는 대로 칼질을 하고, 불을 지르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이에 바깥에서 수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내게 사제가 있었던가?
“방주님!”
내가 방주였었나?
문득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대사형이라는 말과 방주님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너무 흥에 겨웠던 것일까.
나는 천천히 내가 걸어왔던 길을 읊조렸다.
“일양현의 점소이, 무덤지기, 낫질의 달인, 비무도박의 패배자, 삼류 강호인, 주화입마, 절강의 물고기…….”
어디선가 기관장치가 녹아내리기도 한 것일까.
우지끈―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도 구덩이에 파묻히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이번에는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방주님! 군평입니다!”
“삼백갑자 소군평?”
이어서 요란한 굉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던 넝쿨이 산산조각 나더니 소군평을 비롯한 사제들이 불에 잔뜩 그을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제야 소군평에게 말했다.
“대기하라니까 왜 들어왔어?”
소군평이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불이 났으니 들어왔지요! 뭐 하세요! 건너오세요!”
그제야 아래를 내려보니, 수하들과 나 사이에 시커먼 구덩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별거 아닌 작은 구덩이였는데 어쩐지 내 눈에는 이것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다는 삼도천(三途川)처럼 보였다.
소군평도 함께 구덩이를 바라보다가 내게 말했다.
“방주님, 구덩이에 아무것도 없어요. 건너오세요.”
“아, 알았다.”
나는 가볍게 구덩이를 뛰어넘어서 수하들이 있는 곳에 내려섰다. 수하들은 전부 숯검정을 묻힌 것처럼 지저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인이 내게 물었다.
“대사형이 불을 지르셨습니까?”
“응.”
“나가시죠.”
백인의 말에 내가 낄낄대면서 먼저 앞으로 뛰어갔다.
“가자.”
소군평은 여전히 내게 화가 나 있었다.
“왜 웃어요!”
내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남의 집에 불을 질렀는데 그럼 울겠냐.”
소군평이 “으허허허허.”하는 괴상한 억지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러다가 주화입마가 오는 거구나. 내가 이 느낌이 뭔지 알았다.”
“조심해라. 군평아. 주화입마만큼 무서운 게 없다.”
우리는 한데 뭉쳐서 가끔씩 칼을 휘두르면서 불길을 돌파했다. 가끔 사제들의 장풍이 길을 시원하게 열어서 우리는 무사히 이룡노군의 거처를 탈출했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산장을 바라봤다.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터지더니 불길이 더욱 높게 치솟았다.
소군평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어딘가에 화약이 있었나 본데요. 그냥 불에 타는 소리가 아니네.”
나도 맹렬하게 타들어 가는 산장을 보면서 동의했다.
“그러게 말이다.”
백인이 그래도 꼼꼼하게 확인하겠다는 것처럼 내게 물었다.
“대사형, 이룡노군은요?”
“산장보다 먼저 불에 타 죽었다.”
백인이 보기 드물게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좋습니다. 좋아요.”
“좋구나.”
나는 수하들의 시커먼 얼굴을 구경하고, 수하들은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모여 있는 운우회 병력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먼저 들어갔던 연기자들은?”
뒤편에서 놈들이 손을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소군평이 설명했다.
“뒷문으로 산장의 노복과 먼저 빠져나왔습니다. 노복이 안에서 이제 큰 싸움이 벌어질 테니 나가 있자고 했다네요.”
“다행이군. 훌륭한 연기자들이 죽을 뻔했어.”
“예.”
굳이 노복의 행방은 묻지 않았다. 무공을 익혔다면 이미 수하들의 손에 죽었을 테니까.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산장 전체가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푹 가라앉고 있었다. 애초에 구멍을 여기저기에 너무 많이 파놓았던 모양이다. 주변으로 크게 번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이곳은 산맥이 이어지는 장소가 아닌 독립적인 산이어서 그렇다. 차라리 한 번 화마에 휩싸여서 모조리 불태웠다가 다시 천천히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가자.”
수하들과 걸어서 복귀하는 도중에 사제들과 간부들이 안에서 벌어진 싸움을 무척 궁금해해서 대충 설명해줬다.
“안에 기관장치가 잔뜩 있었다.”
“…….”
소군평이 황당하다는 어조로 대꾸했다.
“방주님, 그게 끝이에요?”
“응.”
나는 백인을 바라보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나찰보다 특별히 뛰어나진 않았다.”
백인이 나를 바라보더니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는 잠시 멈춰서 사제들을 바라봤다.
“대나찰, 수선생, 이룡노군 다 죽었군. 그중에서 대나찰이 가장 사내다웠다.”
백인이 대꾸했다.
“그렇군요. 그럼 됐습니다.”
청진과 백유도 뭔가 좀 후련해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하들에게 말했다.
“운우회는 이제 없어졌다. 떠날 놈들은 떠나라. 막지 않아. 남아있을 놈들은 이제 하오문에 속한다. 흑묘방, 흑선보, 운우회도 죄다 하오문이다.”
운우회에 속해 있던 놈이 내게 물었다.
“하오문이 대체 뭡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꾸했다.
“너 같은 병신 떨거지들 가득한 곳. 수선생 같은 놈들 죽이면서 강호 전체로 퍼져나갈 허접한 문파다.”
아직도 내 정체를 모르는 놈이 이렇게 물었다.
“문주님이 누구신가요?”
“나다.”
“흑묘방주님 아니셨어요?”
“그것도 나다.”
나는 다시 운우회로 향하면서 소군평에게 말했다.
“독고생 이놈이 사고를 치진 않았겠지?”
소군평이 고개를 저었다.
“홍신 신장이 있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나는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세력이 갑자기 헛바람 들어간 것처럼 커졌는데 별 의미는 없어. 세부적인 정리는 간부들과 사제들이 상의해서 정리해. 세밀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재주는 내게 없으니까.”
“예.”
“각자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해라. 나는 계속 강해질 생각이야. 결국에는 강해지는 것이 문주의 가장 큰 역할일 테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내정의 천재 같은 사내가 나타나도 이 엉망진창의 조직을 완벽하게 통제하진 못할 터였다.
나는 갈림길에서 소군평과 사제들을 운우회로 보냈다.
“나는 흑묘방으로 가서 포로를 봐야겠으니 너희가 정리하고 돌아와라.”
소군평이 물었다.
“운우회의 임시 관리자는 누구로 할까요? 어쨌든 흑도 세력이고 손님을 받았던 곳이라 크고 작은 분쟁이 연이어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고생이 있으면 오는 자들마다 칼부림을 할 테니…….”
백인이 대꾸했다.
“거긴 임시로 저와 사제들이 남겠습니다. 어떤 놈들이 손님으로 오는지도 대충 알고 있습니다. 죽일 놈은 죽이고, 살릴 놈은 돌려보내겠습니다.”
“좋아. 수고들 해라. 먼저 복귀한다.”
“예.”
* * *
나는 유사청을 노려보면서 상석으로 향했다.
“잘 있었나?”
“예.”
“차성태가 괴롭히진 않았고?”
“예.”
나는 상석에 앉아서 왼쪽에 있는 유사청을 보고, 오른쪽에 있는 차성태를 봤다.
차성태가 물었다.
“다녀오신 일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무슨 일?”
“수선생을 치러 가셨잖아요.”
“아, 수선생은 칼에 맞아 죽었고, 이룡노군은 불에 타서 죽었다. 대나찰에게 적수도 보내주고 친구도 보내줬으니 저승에서 심심하진 않을 거야. 그러고 보니 유사청 때문에 죽었네.”
나는 유사청을 바라봤다.
“네가 공이 크다.”
“예.”
차성태가 뭐 좀 알아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이놈 출신이 어디래?”
“호연검가(呼延劍家)라고 합니다.”
나는 유사청에게 물었다.
“너도 호연(呼延) 씨냐?”
호연은 그리 많지 않은 복성이었다. 유사청이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제 본명은 호연청이라 합니다.”
“기반 지역이 어디냐.”
“본래는 동보석에 있었는데 지금은 홍천향에 자리 잡았습니다.”
“동보석 지역이면 백도가 즐비한 곳인데 밀렸나 보지?”
“예.”
협탁에 있는 용모파기를 가리키면서 차성태에게 말했다.
“가져와라.”
차성태가 광명좌사의 용모파기를 가져와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것을 호연청에게 밀었다.
“내가 수배 중인 놈이다. 찾을 수 있겠어?”
호연청이 대꾸했다.
“어떻게든 찾아내겠습니다.”
“모르는구나.”
호연청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방주님, 살려주십시오. 어떻게든 찾아보겠습니다. 독이라도 있으면 하나 주십시오. 해독제를 받으러 오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미 사람을 많이 죽였다. 내 평범한 하루가 사람 죽이는 거로 시작해서 사람 죽이는 걸로 끝이 나면 안 되겠지.”
호연청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좋아. 이런 관계도 있어야지. 사람 일이라는 게 억지로 한다고 전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이때, 대청 문이 열리더니 수하의 보고가 이어졌다.
“방주님, 손님 오셨습니다.”
“누구.”
“철용문주 금철용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모셔라.”
금철용과 곽용개가 대청에 등장했다. 금철용이 웃으면서 말했다.
“문주, 얼굴 보기 힘들군.”
나는 일어나면서 대꾸했다.
“어찌 이렇게 갑자기 오셨습니까.”
“사람들이 자꾸만 밀려오는데 문주는 보이지 않아서 겸사겸사 보러 왔네.”
“드디어 도착했습니까?”
곽용개는 끈이 달린 시커먼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은 다음에 덮개를 열었다.
상자 안에 금철용이 만든 광인(狂刃)이 놓여 있었다.
손잡이와 칼집이 모두 잿빛이었다.
손잡이 끝에는 금철용이 만들었다는 증표처럼 용이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상하던 것보다 길이가 짧은 직도였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철을 모두 구하진 못했구나 하는 생각.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받는 선물이었다.
나는 칼의 완성도가 아니라 금철용의 마음을 선물로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금철용이 손을 내밀었다.
“뽑아 보게.”
나는 내 예측보다 무거운 광인을 들고 칼집을 분리했다. 은색의 칼날이 모습을 천천히 드러냈다.
나는 칼날을 구경하면서 말했다.
“잘 쓰겠습니다.”
“마음에 드는가?”
내 덤덤한 태도가 못내 불안한 모양이었다.
“마음에 쏙 듭니다.”
칼을 만드는 사람이나 강호인이나 새로운 병기를 얻게 되면 무언가를 자르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금철용이 물었다.
“벨 거 없나?”
나는 무심코 호연청을 바라봤다. 그러자 소스라치게 놀란 호연청이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이 뜻밖의 광경에 금철용과 곽용개가 놀라서 호연청을 바라봤다.
나도 광인을 붙잡은 채로 호연청을 바라봤다.
“내가 널 왜 죽여.”
히죽 웃은 다음에 왼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흑묘아를 뽑았다. 왼손에 흑묘아, 오른손에 광인을 쥔 다음에 금철용에게 물었다.
“금 아저씨, 후회 없으시겠지요?”
내가 곧 두 자루의 칼을 부딪칠 것임을 알게 된 금철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 없네.”
나는 철을 구하고, 전반적인 제작 과정에 가장 많이 참여했을 곽용개에게도 확인했다.
“부방주께서는?”
곽용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자신 있네.”
나는 양손에 목계의 기를 균등하게 주입한 다음에 허공에서 광인과 흑묘아의 칼날을 부딪쳤다.
내공이 섞인 터라 떠엉― 하는 둔탁한 소리와 금속음이 뒤섞이면서 칼날이 날아갔다.
금철용, 곽용개, 차성태의 표정에 당황함이 깃들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구경하고 있었던 호연청도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나는 광인의 반쪽 칼날을 바라봤다.
“부러진 신념이로군요. 흑묘아가 이겼습니다.”
금철용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하, 이것 참……그건 어디서 얻은 보도(寶刀)인가?”
“흑묘방주가 사용하던 칼입니다.”
곽용개는 창백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큰형님, 저희가 부족했습니다.”
금철용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곽용개가 서둘러서 부러진 칼날을 줍고, 내게서 광인을 빼앗듯이 수거하더니 도로 상자에 담았다. 곽용개가 어깨에 상자를 둘러맨 다음에 금철용에게 말했다.
“큰형님, 가시지요.”
어쩐지 여기서 빨리 도망치자는 말처럼 들렸다.
금철용이 나를 바라봤다.
“문주, 다시 찾아오겠네.”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 아저씨, 서두르지 마십시오. 그동안에 흑묘아를 사용하고 있겠습니다.”
금철용이 침통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가자.”
갑자기 금철용이 휘청거리자, 옆에 있는 곽용개가 급히 부축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한 채로 대청을 빠져나갔다.
“…….”
나는 몇 번 헛기침을 한 다음에 자리에 다시 앉았다. 여태 함께 구경했던 차성태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웃지 마. 이 새끼야.”
“예.”
“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성태, 너는 딱히 실패해본 일도 없잖아. 뭘 해봤어야 실패하지.”
내가 알기로 강호 전체를 통틀어서 부러지지 않는 병장기는 정말 극소수다. 그중에서 내가 사용하던 것은 아직 중원에 도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때까지는 흑묘아로 잘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