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professional farmer RAW novel - Chapter (12)
둘 다 최상급 중에 하급 정도의 힘.
‘듣기로는 한국에 최상급 몬스터가 없다더니만, 널리고 널렸네.’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령초를 단번에 뽑아냈다.
지금까지 꽤 깊이 고민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한 손길이었다.
그는 마법으로 순식간에 흙을 털어 버리고는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까끌까끌한 흙이 살짝 남아서 입안을 거슬리게 했지만 상혁은 그대로 정령초를 꼭꼭 씹어서 즙을 전부 빨아냈다.
“으엑. 쓰다.”
몸에 좋은 건 입에 쓰다고 했던가?
정령초는 몸에 좋은 만큼 무진장 썼다.
“좋아. 다 먹었다. 가자.”
상혁은 입을 한 번 쓱 닦고 즙이 빠져나가고 남은 찌꺼기를 씹으면서 부지런히 몸을 날렸다.
좋은 구경도 부지런한 자가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 * *
‘그런데 내가 생각한 그림은 아니네.’
현장에 도착한 상혁은 기운을 숨기고 좀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최상급 몬스터 둘의 괴수대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웬 인간과 몬스터의 싸움이었다.
그 외에도 대규모의 인간들과 여우의 싸움이기도 했다.
‘원정대구나.’
상혁은 단번에 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단서는 2개.
대략 2천 정도의 숫자와 춘천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솔직히 이 시기에 두 가지를 만족할 만한 것은 춘천 수복 원정대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정대에 대한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의 관심은 엄청난 기세를 뿜어 대며 싸우는 두 존재에게 가 있었다.
그들의 싸움으로 인한 여파로 주변이 요동칠 정도였다.
일정 거리 이상은 그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춘천을 돌 때는 못 본 놈 같은데…….’
상혁이 둘 중에 먼저 눈길을 준 것은 존재감이 확실한 구미호였다.
거대한 얼음으로 완벽하게 감싸여 있는 녀석은 미관상으로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녀석의 공격은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녀석이 사납게 꼬리와 앞발을 휘두르면서 상대를 공격했다.
그때마다 서리가 흩날렸는데, 그냥 보기에는 환상적이었지만 그것들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거기에 주변을 장악한 만큼 변수가 될 법한 의외의 공격들도 방향을 가리지 않고 날아들었다.
조금만 방심하는 순간 심장을 꿰뚫릴 수 있는 날카로운 공격들이었다.
‘상대는 꽤 젊어 보이는데.’
이번에는 불꽃으로 온몸을 두른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단순했지만 화려했다.
화끈하게 구미호의 공격들을 기화시켜 버리는 모습은 화끈하기까지 했다.
확실히 기운을 밀집시킨 만큼 한 방, 한 방의 위력은 그가 훨씬 매서웠다.
덕분에 구미호를 감싼 얼음이 허무하게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가 수복하기를 반복했다.
‘애슐리나 연희 정도가 인간들 사이에서는 최고수라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
상혁은 인간 중에서 경지를 넘어선 이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
5대 기운이라는 것을 이용하게 된 지 겨우 30년밖에 안 됐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엎은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조금 아쉽네.’
상혁은 사내의 전투 방식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상혁은 공간 장악을 하지 않고 기운의 밀집을 택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훌륭한 선택이 될 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경지를 넘은 존재들의 싸움에서는 공간 장악을 누가 하느냐가 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일이었다.
바로 기운 동조 때문이었다.
상혁의 경우에도 마법을 사용할 때, 100% 자신의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마나와 동조하여 마법의 효율성을 극대화시켰다.
이는 릿츠에서 너무나 당연시되는 부분이었고 여러 검증을 통해서도 공간 장악의 우수함은 여러 번 밝혀진 바가 있었다.
‘기운을 밀집시키는 건 하수가 고수를 상대할 때나 쓰는 방법이지.’
현재 사내가 쓰는 방법은 한 방을 노려 상황을 역전시키는 데 사용하는 방법으로서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는 릿츠의 전설에서 나오는 용사들이 마왕한테나 쓸 법한 전술이었다.
‘아무튼 어떻게 할까? 끼어들어야 하나?’
상혁은 그리 생각하면서 둘만의 세상에 빠져 싸우는 둘은 제쳐 두고 다시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다.
2천의 인간들과 300 정도 되는 여우들의 싸움.
인간들이 상당히 우세하긴 했지만 피해가 나오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전투가 진행되면 인간의 경우 전력의 5분의 1 정도의 피해를 입고 여우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지켜볼까?’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적당히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았다.
그러면서 아직도 남은 정령초의 찌꺼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전투는 점점 치열해져서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 * *
정훈은 구미호와의 싸움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상혁의 예상대로 애초에 전투 방식부터 한 수 접어주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구미호는 마나 동조를 통해서 기운을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지만, 정훈은 자신의 마력이 달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서지 말았어야 했나?’
솔직히 말해서 그의 임무는 이런 전투가 아니었다.
횡성으로 침투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그뿐인 임무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춘천에서 최상급 몬스터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심지어 녀석이 원정대를 몰살시킬 생각으로 엄청난 마법을 사용해 기습해 올 것이라는 것도 몰랐고 말이다.
‘임무를 위해서라면 나는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원정대의 몰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그는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2천 명의 생명을 구할 것인가 하는 선택지에서 그는 생명을 구하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죽으면 임무는 실패한다. 그리고 다 죽겠지.’
상황을 슬쩍 보니, 원정대가 여우들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정훈은 그들의 승리가 자신이 쓰러지는 순간 전혀 의미 없는 승리로 끝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구미호는 충분히 그렇게 만들 힘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다른 방법을 구해야 한다.’
정훈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특수부대가 움직였다.
그들은 초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하나하나가 한연희급의 인물들이었다.
상급 몬스터를 혼자서도 처리할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그들은 각자 군용 대검을 들고 구미호를 감쌌다.
-귀찮다.
그에 구미호가 털어 내듯이 얼음 결정을 흩뿌렸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공격이었지만 특수부대 대원들은 목숨을 내던지는 각오로 공격을 피해 내거나 막아 내야만 했다.
정훈은 그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구미호를 향해 달려들면서 외쳤다.
“부탁합니다!”
특수부대는 애초에 이런 돌발 상황에서 정훈을 도울 목적으로 투입된 이들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그는 이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다.
조금이나마 구미호의 시선을 분산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정훈의 공격이 이제까지 중 가장 깊숙하게 구미호를 파고들었다.
크하앙!
순간 녀석이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둘러싸고 있던 얼음을 뚫고 본체까지 공격이 닿은 것이다.
하얀 얼음 사이로 녀석의 붉은 피가 스며들어 가서 마치 꽃이 핀 것처럼 보였다.
얼음이 다시 복구되었지만 붉은 꽃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순간 녀석이 이를 드러냈다.
날카로운 이 사이로 하얀 냉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정훈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크하아아아앙!
순간 입이 멀어지면서 냉기 속성의 브레스가 뿜어졌다.
그것은 정훈만을 노리지 않고 다른 특수부대 대원들까지 노렸다.
순식간에 다섯이 얼어붙었다.
손쓸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이노옴!”
정훈이 소도 하나를 냉큼 던졌다.
순간적으로 구미호가 브레스로 날아오는 소도를 적중시켰지만 놀랍게도 소도는 브레스를 가르면서 구미호를 노렸다.
녀석이 재빨리 목을 비틀면서 그 공격을 피해야만 했다.
카가각!
소도가 녀석의 볼 쪽의 얼음을 거칠게 갉아먹고는 지나쳐 날아갔다.
그에 구미호가 씨익 웃었다.
정훈이 두 자루의 소도 중에 하나를 잃었으니,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녀석이 재빠르게 몸을 날려서 앞발을 휘둘렀다.
쾅!
한 자루의 소도로 녀석을 쳐 내려 했지만 아까와는 너무 다른 위력에 반대로 정훈이 날아갔다.
그는 모르고 있었지만 브레스를 쓰는 순간부터 녀석도 그처럼 기운을 한곳에 밀집시켜 위력을 극대화한 상태였던 것이다.
공격의 강약을 조절할 정도로 녀석은 영악했다.
컥!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정훈이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속이 진탕이었다.
구미호가 단번에 그의 상태를 알아보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앞발로 그의 몸을 완전히 눌러서 제압했다.
“으아아아아악!”
정훈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단순하게 앞발로 누른 것 같아 보였지만 엄청난 힘으로 눌러 놓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바로 즉사할 만큼이었지만 그는 그나마 버텨 내고 있었다.
온몸의 뼈가 대부분 으스러질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팽팽하던 승부가 순식간에 결정지어진 것이다.
하우우우우우우!
녀석이 승리의 하울링을 내질렀다.
그것은 난장판과 같은 전투를 멈추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인간도 여우들도 그곳으로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종선 준장의 얼굴이 까맣게 죽어 가는 듯했다.
구미호의 능력을 알기에 정훈이 쓰러진 순간 자신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 짐작을 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후퇴! 전군 전력으로 후퇴한다!”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먼저 도망갔다.
그리고 곧 모든 이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미호나 여우들은 쫓지 않았다.
후퇴하는 사람들을 쫓을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마지막까지 후퇴하지 않고 막아서고 있는 특수부대 대원들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하울링이 끝나는 순간부터 숨이 턱턱 막힐 것만 같은 기세 때문이었다.
“거기까지다.”
이때까지 조용히 숨어서 지켜보던 상혁이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려서 다가왔다.
구미호는 순간적으로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때까지 커졌다.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 * *
사실 상혁은 이번 싸움에 웬만하면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
인간들이나 몬스터나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은 스스로 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끼어든 것은 순전히 죽어 가는 사내 1명 때문이었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젊은 실력자 하나가 이렇게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 버렸네…….’
상혁은 스스로 끼어들고서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이는 싸움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자신이 세운 잣대 중 하나를 무시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지?’
상혁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차근차근 돌아보기 시작했다.
최근 그는 농장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근래 들어서 투입된 이들부터, 꽤 긴 시간을 같이한 사람들까지 말이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모두와 거리감이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려고 애쓴 적이 없었다.
단지 각자 처한 상황과 관계에서 생겨나는 어색함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일로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느껴 왔던 이 감정은 그런 어색함 따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고독의 한 종류였다.
릿츠에서 느꼈던 고독과는 또 다른 형태의 고독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이들과는 다른 존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래. 나는 지구에 와서도 여전히 혼자였던 거다.’
별것 아닐지 모르지만 순간적인 깨달음이 그를 덮쳐 왔다.
과거에 깨달음을 얻었던 것처럼 요란한 깨달음이 아닌 조용하고 잔잔한 깨달음이었다.
그의 내부에 한바탕 변화가 일어났다.
‘저 쓰러져 있는 남자한테 나는 이 고독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을 본 거야.’
상혁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구미호에게 다가갔다.
“그대로 비켜서라. 그 아이를 죽이면 너도 죽는다.”
작은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상혁의 의지의 무게가 한층 무거워졌다.
구미호가 경계하면서 그대로 발을 빼냈다.
“커헉. 컥.”
구미호의 압박에 깔려 있던 사내가 피를 살짝 토하면서 막혔던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가는 호흡이었다.
녀석은 그것을 슬쩍 보고서는 전투 모드였던 상태를 해제했다.
얼음이 허공으로 흩어지면서 새하얀 털의 구미호가 나타났다.
어깨 쪽의 붉은빛의 상처가 묘하게 어울렸다.
키힝…….
구미호는 스스로의 입장에서 아주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주변은 완벽하게 상혁에게 장악되어 있었고 느껴지는 기세로도 자신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녀석은 머리가 좋은 만큼 똑똑하고 눈치가 빨라서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기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포식자는 단순하게 사냥만 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지였다.
만약 그 사실을 몰랐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려들거나 도망쳤을 것이다.
녀석이 납작하게 엎드렸고 그 뒤로 여우들이 질세라 바짝 엎드렸다.
“그래. 잘했다.”
그는 그렇게 칭찬하고 쓰러져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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