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24
◈ 124화
“적합자아…….”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도시였다.
폭삭 내려앉은 건물, 곳곳에 묻은 건 핏자국. 불어오는 바람 속에선 어딘가 썩은 내가 풍겨났다.
이루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언제 오는 거야. 적합자아!”
갈 길을 잃은 미아처럼 불안한 듯 몸을 떨던 그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약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쌍심지를 켜고 그쪽을 노려봤다.
“귀신이면 나오지 말고 사람이어도 나오지 마. 제발, 그냥 나오지 마라…….”
다행히 그냥 바람 소리였나 보다.
이루리는 한참을 지나도 반응이 없는 도시의 정경을 노려보다 겨우 한숨을 덜어 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 그녀를 이곳에 방치하고 떠난 적합자에 대한 원망이 급격하게 솟구쳤다.
“나 같은 미소녀를 이런 곳에 혼자 남겨 두고 가는 적합자가 세상에 어딨어?”
이건 무서운 게 아니다. 그냥 걱정이 많은 것이다. 험난한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것만큼 곤란한 것도 없으니까.
하물며 여긴 버젓이 B급 수준의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 세계가 아닌가.
S급 파괴 스킬이 아니더라도 필요 이상의 데미지가 누적되면, 제아무리 그녀라도 충분히 위험했다.
아무렴.
무서운 게 아니라고.
타닷!
하지만 오만 가지 변명을 떠올린 게 무색할 정도로, 갑자기 들려온 인기척에 이루리는 화들짝 놀라 숨을 죽였다.
자라처럼 길게 뺀 목.
그녀의 시선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적합자야?”
대답은 없었다. 대신 묵직한 발걸음이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단히 빨랐다.
“으아앗 하나님, 부처님, 옥황상제시여!”
그리고.
키잇?
속사포로 쏟아 낸 느닷없는 신앙고백 앞으로 쿵, 소리를 내며 등장한 건 다름 아닌 한 마리의 도마뱀이었다.
자이언트 혼 리자드, 로켓.
등짝에 피를 줄줄 흘리는 NPC를 업은 채로 다가온 로켓은, 벌벌 떨고 있는 이루리를 향해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하는 거지? 의문도 잠시.
로켓은 주인의 명령을 상기하며 이루리를 향해 자신의 등에 있는 NPC를 인계했다.
“아, 아…… 로켓이구나.”
이루리는 괜히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일은 적합자에게 말하지 마.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알겠지?”
백귀는 주인과 영혼이 연결되어 생각을 항시 공유할 수 있다는 걸 까먹은 걸까.
로켓은 괜스레 투레질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이루리는 일단 안도했다.
그리고 NPC를 살펴봤다.
“아이 같은데…… 흐음.”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펜만 쥐어 봤을 손엔 굳은살이 박였고, 전신엔 숱한 상처가 아문 흔적이 여실했다.
평범한 학교생활이었다면 결코 가질 수 없는 흉터들.
문득 이루리는 깨달았다.
“……잠깐 이거 교복이잖아.”
강서준 이외의 플레이어가 드림 사이드 1에도 있을 줄이야.
신기한 눈으로 아이를 살펴보던 이루리는 아이의 주머니에 번쩍이는 기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 같았다.
“뭐지?”
그곳에서 솟구친 빛이 점점 더 강렬해져 갔다.
***
놈은 여태껏 만나 본 적이 없는 형태의 몬스터였다.
‘아니, 몬스터가 맞나?’
놈이 하는 말은 마치 시스템이 말하는 것 같았고, 움직임은 기계처럼 딱딱한 주제에 대단히 날렵했다.
놈을 굳이 무언가에 비유하자면.
‘백스페이스나 잘라내기 가위가 자아를 갖춘 것 같아.’
그리고 목전에 나타난 놈이 무언가 결정을 내린 순간.
그의 눈앞으로 일말의 메시지가 먼저 그에게 위기를 알려 왔다.
[스킬, ‘위기 감지(A)’를 발동합니다.]강서준은 생각을 이을 틈도 없이 몸을 내던졌다.
그가 선 자리를 기점으로 일직선.
건물이나 구조물 따위가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싹 사라진 것이다.
‘역시 저 광선은 닿는 걸 모조리 소멸시키는 힘이 있구나.’
모르긴 몰라도 저 광선을 튕겨 내겠다고 재앙의 유성검을 들이밀어선 안 될 것이다.
검과 함께 지워질 테니까.
-사용자의 수준을 점검합니다.
-3, 2, 1…… 확인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수준에 맞추어 2단계로 조정합니다.
돌연 구슬에서 날개가 자라나고 그 크기가 전보다 더 커졌다.
수박만 한 녀석이 금세 두 배가 되었다.
-데이터를 삭제합니다.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놈이 쏘아 내는 광선을 피해 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건 광선은 놈이 바라보는 방향으로만 쏘아진다는 것.
‘시선만 미리 파악한다면 못 피할 것도 없다.’
지이이이잉!
강서준은 초상비를 발동하며 건물들을 뛰어넘었다. 이젠 NPC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조차 저 괴물을 피해서 어딘가로 멀리 도망가고 있었으니까.
‘본인들이 불러 놓고……!’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외벽을 밟아 빠르게 잔해를 넘었다.
‘진짜 문제는 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건데…… 흐음.’
무작정 도망칠까 고민해 봤지만, 그는 일단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이참에 녀석에 대해서 파악해 두는 게 좋겠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랬다.
강서준은 두 눈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목전에 이른 광선을 재차 피해 냈다. 그의 착각이 아니라면 저놈의 광선은 점점 더 빨라지는 듯했다.
“……아직 전력도 아니라는 건가.”
-사용자의 수준을 분석합니다. 3단계 모드 활성화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2단계를 유지합니다.
강서준은 골목에 접어들며 일부러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그를 쫓아서 비행을 지속하던 놈을 바로 맞혔다.
스응.
“……닿는 것도 지우는구나.”
백스페이스에 자아가 생겼다는 추측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빌어먹을. 근접 공격마저 안 통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강서준은 한 손에 불꽃을 소환해 냈다.
‘마법은…….’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불덩어리는 예상을 깨부수지 못하고 소멸했다. 강서준은 미간을 구기며 더욱 발을 빠르게 놀렸다.
‘……씨알도 안 박히네.’
시간이 흐를수록 놈의 기세는 점점 올라갔다. 여태까지는 예열 과정이었을까? 점점 쏘아지는 광선의 주기도 짧아졌다.
게다가 3단계도 있는 듯했다.
‘지금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그 이상은…….’
이윽고 용아병의 날개까지 기동한 강서준은 카누비스의 상공을 쏜살같이 주파했다.
날개가 돋아난 탓인지 놈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강서준의 뒤를 쫓아왔다.
‘공략법은 없을까? 아무리 봐도 단순한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사실상 시스템의 기능에 가까웠다. 어쩌면 서비스가 종료된 세계를 지우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레벨과 무관하겠지.
그렇다면 일개 플레이어, 일개 몬스터 따위가 저놈을 처치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 불가능에 가까울 뿐이야.’
공략법은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시스템이 초기화시키려고 작정한 ‘로스트 던전’에서 ‘백도어’를 찾아내어, 드림 사이드 1로의 진입까지 해내지 않았던가.
시스템은 만능이 아니었다.
어디든 분명 ‘구멍’은 존재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완벽한 건 그 어디에도 없는 걸지도 모르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강서준은 미간을 좁히며 카누비스의 상공을 휘저었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선 다양한 방법들이 교차했다.
공략법.
다름 아닌 시스템의 기능을 무력화시킬 특별한 공략법.
그는 더욱 속도를 올리며 카누비스에서도 높이 솟은 마탑으로 방향을 꺾었다.
반쯤은 무너진 마탑.
그곳에서 강서준은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구슬이 뒤따라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
‘……지금!’
강서준은 미리 생각을 공유해 뒀던 오가닉과 라이칸에게 신호를 줬다.
사실 그들은 마탑의 곳곳을 미리 부숴 놓은 상태. 주춧돌만 몇 개 남겨 놓았다.
그중 남아 있던 한 기둥.
강서준은 그곳을 향해 ‘파이어 익스플로전’을 발동시켜, 폭발시켰다.
동시에 남아 있던 주춧돌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그의 머리 위의 천장이 폭삭 내려앉을 조짐을 보였다.
[스킬, ‘류안(S)’을 발동합니다.]낙석을 피해 곡예비행을 이은 강서준은 빠르게 마탑을 벗어났다.
과연 건물을 붕괴시켜 깔아뭉갠다는 계획은.
‘……통했으려나.’
미간을 좁혀 마탑 내부에서 당당한 흐름을 유지하는 구슬에 주목했다. 여전히 무너지는 마탑 속에서도 멀쩡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강서준은 쾌재를 불렀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지우는 데에 한계가 있구나.’
컴퓨터 프로그램에 비유한다면 단순한 문제였다. 지워야 할 용량이 많아질수록 삭제 프로그램은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법.
떨어지는 낙석을 모조리 지우면서 다가오려면 놈에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공략할 수 있겠어.’
아쉽지만 무너지는 건물 따위로는 저놈을 막을 수 없었다. 더욱 많은 양의 데이터를 놈에게 집중시켜야만 했다.
그의 눈에 호수가 보인 건 그때였다.
‘좋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강서준은 날개를 접고 호수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서 마탑을 벗어난 구슬이 맹렬하게 쫓아왔다.
몇 차례 광선이 호수를 직격해 구멍이 났다.
‘용아병의 날개를 쓸 수 있는 건 앞으로 3분.’
강서준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호수로 첨벙 뛰어들었다. 다행히 그의 의도대로 구슬도 호수 속으로 쫓아 들어왔다.
‘머리도 똑똑한 편이 아니야.’
강서준은 숨을 길게 참으며 더욱 속력을 높였다. 마력을 구동해서 발길질을 하니 물속에선 더욱 빠른 고속 이동이 가능했다.
[‘용아병의 날개’를 발동 중입니다.]하물며 용아병의 날개는 조건 없이 10분간 비행을 시켜 준다는 특징을 가진 아이템.
설령 물속이라도 마치 하늘을 날 듯 날 수 있었다. 마력까지 사용했으니, 그 속도가 줄어들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수면 아래를 주파했을까.
강서준은 금안을 빛내며 더더욱 느려진 구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놈은 호수에 있는 모든 물을 소멸시키면서 다가오려 했기에 조금씩 그 움직임에 ‘렉’이 생겨나고 있었다.
‘한 번에 몰아친다.’
강서준은 렉이 걸려 움직임이 한없이 느려진 구슬을 중심으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소용돌이가 생겨나고 물속에서도 흐름이 만들어져, 한 번에 구슬에게 쏟아지는 물의 양이 늘어났다.
머지않아 구슬은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장비, ‘용아병의 날개’가 해제되었습니다.]강서준은 그사이 무릎까지 내려앉은 수면을 내려다보며 겨우 숨을 돌렸다. 물 먹은 구슬은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하구나.”
구슬은 잠시 멈췄을 뿐이다.
조금씩 움직일 기미가 보이는 걸로 보아서 고작 이 정도로 죽을 놈은 아니었다.
‘이쯤이면 됐다. 도망가야겠…….’
하지만 그때.
-상황을 분석합니다.
-3, 2, 1…… 완료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3단계로 조정합니다.
구슬의 몸이 위아래로 길게 늘어나고 있었다. 구슬이었던 부분은 얼굴이 되고, 그 아래로는 몸이 생겨났다.
거무튀튀한 인간형 구슬.
놈은 여전히 하나뿐인 눈을 뜨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3단계로 진입한 덕일까.
물 먹어 느려졌던 속도가 점차 쾌적하게 변해 갔다.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파이어볼을 만들어 던졌다.
스으응.
“……넌 숨 고르기도 없냐.”
변신하는 중엔 누구나 약해지는 게 드림 사이드만의 고유 특징인데.
이놈은 그조차 없다.
대체 약점이 뭐야?
그리고 이번엔 더더욱 놀랄 만한 일이 생겨났다.
-제법이구나. 플레이어.
3단계 형태.
인간의 모습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놈은 ‘지능’이 생겨난 듯했다.
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케이. 널 과소평가했군.
맹목적으로 광선만을 쏘아 내던 이전과는 다르게 꽤나 여유가 넘쳐 보였다.
강서준도 아예 도망친다는 생각 자체를 접어야 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적어도 저놈에게서 등을 내보인 순간 죽는다는 것만큼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소멸될 거야.’
강서준은 입술을 짓씹었다.
“……넌 대체 누구지?”
놈은 여전히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조정하는 자. 악성 프로그램을 단죄하고 꼬여 버린 찌꺼기를 정리하도록 만들어진 존재.
놈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곳에서부터 생성된 기묘한 흐름은 익히 알던 것이었다.
피할 수 있을까?
수만 가지 회피법을 떠올렸지만 망망대해에 갇힌 것처럼 길은 보이지 않았다.
놈도 그걸 알았는지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백.
그때였다.
타아앙!
창졸간에 나타난 무언가가, 닿기만 해도 소멸되던 놈의 목덜미에 콱 꽂혀 들어간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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