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57
◈ 157화
강서준은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하나로 요약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종종 어떤 공략도 통하지 않을 때는 지극히 단순하게 ‘레벨’이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RPG 게임이라면 더더욱.
제아무리 플레이어의 기량이 뛰어나도 레벨이나 장비가 부족하면 난이도는 더 올라가는 법이다.
강서준이 S급 던전 ‘용의 무덤’의 공략을 실패했던 그날처럼.
‘용의 무기가 없다는 이유로 죽이지 못했어.’
당시의 그에게 부족한 건 ‘용의 장비’라는 정보였다. 전투력은 충분히 용을 쓰러트릴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지금 내게 부족한 건 레벨이겠지.’
5개월의 시간 차이는 적지 않다. 아이크가 조정해 줬다고는 해도 손해는 있을 수밖에 없다.
해서 성장한 최하나를 쉽게 무력화시키질 못했고, 다른 플레이어는 물론 사이보그를 쉽게 감당해 낼 역량도 없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레벨 격차를 줄여야 해.’
강서준은 재앙의 유성검을 빠르게 허리벨트에 수납하면서 김영훈을 바라봤다.
[장비, ‘재앙의 허리벨트’에 보관된 에너지를 사용하시겠습니까?]‘모두 사용한다.’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수준이 조정됩니다.]그의 허리벨트에서 재앙의 유성검이 트림이라도 하듯 꽤 큰 떨림이 생겨났다. 강서준을 바라보는 김영훈의 시선엔 의문이 가득했다.
“바, 방금 뭐라고 했소?”
“헌혈 좀 하자고요.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당신의 피를 저에게 조금만 주시죠.”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강서준은 김영훈을 향해 말했다.
“절 돕겠다고 했죠? 절 믿는다고 했고요. 당신에게 손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부디 제 말을 따라 주세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는 겁니까?”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김영훈도 긍정의 의사를 밝혀 왔다.
“……알겠소. 당신을 믿겠소.”
여차하면 강제로 그의 팔뚝을 슬쩍 베어 피를 훔칠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 말을 따라 주는 김영훈 덕분에 그럴 필요는 없었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 어쩌면 되오?”
“그대로 있어요. 정신 잘 붙들고.”
허리벨트에서 빼낸 재앙의 유성검은 핏빛으로 가득 물었다. 그걸로 김영훈의 팔뚝을 살짝 찌르자 붉은 핏빛 위로 새로운 피가 흡입되고 있었다.
“크으윽!”
“미안하지만 나중에 다 갚을 테니, 좀 참아요.”
“아, 알겠소!”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 ‘블러드 석션’을 발동합니다.]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등급을 확인했습니다.] [전용 스킬, ‘블러드 석션’의 특수 효과를 발동합니다.]강서준은 빠르게 나타난 목록을 읽었다. 예상했던 대로 한시적으로 등급은 신화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신화급의 ‘재앙의 유성검’은 강서준이 원하는 기능을 한 가지 발휘할 수 있었다.
[당신은 한시적으로 상대의 스킬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조선제일검(A)] [조선의 명사수(D)] [작두 타기(C)]……(중략)……
[빙의(S)]+
가히 한 길드의 장이라 불릴 법한 다양한 스킬 중, 강서준이 바로 꺼내 든 스킬은 하나였다.
[스킬, ‘빙의(S)’를 강탈했습니다.] [한시적으로 ‘빙의(S)’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강서준은 약간의 빈혈기를 보이는 김영훈에게 상급의 포션을 던져 줬다. 그리고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재앙의 유성검을 꽉 쥐었다.
이것으로 재료는 완성됐다.
‘이제 남은 건 내 계획대로 스킬이 발동하냐는 건데…….’
이후 ‘영안’으로 확인한 강서준은 두 눈에 훤히 보이는 영혼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계획은 성공할 것이다.
***
재앙의 유성검.
강서준이 드림 사이드 1에서 500레벨까지 꽤 잘 쓴 아이템.
또한 용의 무덤에서 결코 죽일 수 없는 용을 상대로 꽤나 선전할 수 있도록 그를 도운, 그만의 전용 장비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도 재앙의 유성검이 허리벨트를 만나, 신화급으로 한시적으로 성장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스킬은 너무 파괴적이니까.
‘피를 머금어 상대의 스킬을 일시적으로 강탈하는 능력.’
그 때문에 강서준은 용의 스킬을 강탈해서 그것으로 싸웠다. 비록 ‘용의 무기’가 아니기 때문에 패배해 버렸지만, 용을 상대로 꽤 비등비등한 싸움을 해내질 않았던가.
‘한마디로 어떤 스킬을 강탈하느냐에 따라 이 무기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진다는 거지.’
‘도서관 사서’라는 직업을 가졌고, 어떤 스킬이든 배울 수 있으며, 때로는 만들기까지 하는 자.
케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더더욱 꽃피우게 만든 장비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빙의라면 충분해.’
강서준은 거두절미하고 재앙의 유성검이 머금은 ‘빙의’를 발동시켰다.
어떤 영혼을 검에 빙의시킬지는 이미 ‘영안’으로 봐 뒀다.
대답에 응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응할 거야. 놈이 응하지 않고 배겨?’
예상대로 빙의 스킬에 이끌려, 재앙의 유성검에 깃든 한 영혼을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터무니없지만 그놈은 강서준도 잘 알고 있는 영혼이었다.
[스킬 ‘빙의(S)’에 의해, ‘재앙의 유성검’에 ‘정령왕 아쿠아(B)’가 깃들었습니다.]핏빛 검신 위로 살짝 푸른 물결이 일었다. 정령왕 아쿠아가 제대로 깃들었다는 증거였다.
아쿠아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날 알아차렸죠?
“증거는 처음부터 넘쳤으니까요.”
-증거?
아쿠아는 영문도 모른 채 강서준을 올려다봤다. 이에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김영훈에게 알 수 없는 영혼이 하나 더 깃들었다는 건 이미 봐 뒀으니까.’
일전에 김영훈에게 깃든 영혼이 무언지 확인하려고 영안을 사용했을 때, 기이한 영혼 하나를 발견했다.
당시엔 김영훈이 비장의 수로 숨겨 둔 영혼인가 했는데…….
이후 시나리오 영상을 봐 버렸다.
그곳에서 깨달았다.
‘시나리오 영상이 너무 세세하더라니.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런 퀘스트를 어떻게 만들어.’
시나리오 퀘스트에도 시나리오 영상의 발동 조건은 반드시 ‘화자’가 필요한 법이다.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말해 줘야 한다.
한데 기계 쪽 스토리는 오직 ‘보수 공사’라는 명목으로 등장했고, 정령 쪽은 과거 스토리까지 영상으로 봤다.
그게 무얼 뜻하겠는가.
‘화자가 근처에 있다는 거지.’
그게 올라클일까? 강서준은 영상 속에 등장한 아쿠아를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화자는 ‘정령왕’이다.
김영훈에게 달라붙은 영혼이 바로 그곳에 있었으니까.
‘게다가 퀘스트 보상이 정령왕의 호감이었지. 너무 티가 나잖아.’
일면식도 없는 정령왕이 정령을 구했다는 이유로 호감을 가진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쿠아는 겨우 상황을 이해하더니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요?
“당신의 힘을 빌려야죠. 그러려고 빙의를 쓴 거 아닙니까.
-……제 힘을 빌린다고요?
아쿠아는 던전의 보스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일 것이다.
비록 빙의를 사용한다 해도 강서준의 수준에 걸맞은 힘만을 발휘할 수 있겠지.
결국 한계가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힘의 차이가 있다.
‘개미의 200레벨과 코끼리의 200레벨이 같겠냐고.’
무엇보다 강서준은 물의 정령이 가진 특수성을 상기해 냈다.
‘원래 기계는 물 먹으면 고장 나는 법.’
어째서 물의 정령이나 얼음의 정령의 목엔 최하나의 목에 걸린 ‘폭발 목걸이’가 없었을까.
이유는 하나다.
통하지 않으니까!
정령들이 기계의 명을 따라야 했던 이유는 아마 다른 쪽이다.
오직 그들의 정령왕이 붙잡혔기 때문이고, 정령왕이 대항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던 탓이다.
한편 정령왕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웃기는군요. 당신 따위가 내 힘을 빌린다고요?
“그게 왜 웃기죠?”
-전 정령왕입니다. 감히 인간 따위가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 말이죠.
“……검에 빙의된 주제에 말이 많네.”
강서준은 아쿠아의 말을 싹 무시하며 재앙의 유성검을 휘두르려 했다. 그 속에 담긴 아쿠아의 영혼이 그의 의지를 부정하더라도 아마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빙의된 이상, 그녀는 이 검에 묶여 있었으니까.
적어도 ‘빙의’가 김영훈에게 돌아가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잠깐.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군요.
“왜 자꾸 방해해요? 처음부터 절 도와주려고 빙의한 것 아니었습니까?
아무래도 정령은 강서준의 편일 것이다. 일전에 그를 싫어했던 칭호 효과도 진즉에 파기했다.
적어도 그에게 나쁜 감정은 없어야 정상인데.
-방해하는 게 아니라, 우려를 하는 거죠. 당신을 비하할 목적은 아닙니다. 한데 정말…… 정말 당신이라는 존재가 망가질 수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아쿠아의 진지한 태도에 강서준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쿠아의 말을 재촉했다. 슬슬 최하나를 감당해 내던 분신들이 죽어 나갈 태세라 오래 시간을 끌 수는 없겠지만.
-아마 당신의 영혼이 버티질 못할 거예요.
“제 마력의 한계에 해당하는 힘만을 사용할 텐데요.”
-마력이 문제가 아닙니다. 영혼의 격이 다르다는 겁니다.
아쿠아는 한숨을 삼켰다.
-제 입으로 몇 번이나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저 ‘정령왕’입니다. 일개 인간이 다루기엔 과할 정도로 상급의 존재라는 거죠.
정리하자면 ‘인간의 그릇’으로는 ‘정령왕’을 사용하기엔 무리라는 것이다.
그대로 정령왕의 힘을 이용한다면, 재앙의 유성검이고 뭐고 그의 영혼부터 박살 난다는 얘기였다.
아쿠아는 단념하듯 말했다.
-제가 괜히 저자의 근처에만 머물었겠습니까. 빙의를 하지도 못하고 숨어 있기만 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김영훈의 몸에 빙의를 한 순간, 그대로 김영훈의 그릇은 깨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김영훈은 아쿠아를 담기엔 모자랐고, 레벨, 역량……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당신은 당장 사념이라 그런지 시력도 나빠진 듯하군요.”
-……네?
“나중에 아르곤에서 직접 만나게 돼야 이해하시려나. ……영혼의 수준? 똑바로 보세요. 아쿠아.”
여전히 영문을 몰라 하는 아쿠아였지만 더 설명해 줄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강서준은 아쿠아의 힘을 본격적으로 끄집어냈다.
-자, 잠깐! 이러면 당신의 몸이……!
츠츠츠츳!
아무런 무리 없이 재앙의 유성검 밖으로 흘러나온 푸른 물결은 점차 그 힘을 강대하게 키워 나갔다.
강서준의 마력이 허락하는 그때까지.
점차 물결은 파도가 되고, 넘실거리는 파도는 쓰나미가 되었다. 기계성의 퀘스트를 진행하던 플레이어를 덮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대한 물결에 휩쓸린 플레이어들이 이리저리 나부끼다 바닥에 널브러진 것이다.
“으으으…….”
큰 대미지는 없었다.
다만 예상대로 아쿠아의 힘은 기계를 무력화시키기엔 충분했다.
-어, 어떻게 인간 따위가 내 힘을.
황당하다는 음성이 귓가를 때렸지만 예상하던 상황이었다.
정령왕을 담을 수 없을 거라고?
영혼의 수준이 안 맞는다고?
웃음이 나온다. 드림 사이드 1에 다녀오면서 유일하게 너프당하지 않은 게 있다면 바로 ‘영혼의 격’이다.
‘케이’라는 절대자의 경험 말이다.
그게 강서준의 영혼의 격을 대단히 높여 놨고, 어쩌면 당장 이 세계의 그 누구보다 그 격은 높을 것이다.
정령왕의 진체가 강서준의 몸에 강림해도, 그의 영혼엔 티끌도 대미지를 입힐 수 없다.
케이는 그런 존재였다.
“됐고…… 제대로 돕기나 해요. 무작정 물보라를 일으킨다고 적들을 무찌를 수 있진 않잖아요.”
먹먹해진 폭탄 목걸이를 툭툭 건드리다 이내 부숴 버린 최하나는 씨익 웃으며 그의 곁에 섰다.
상대편에 붙었던 플레이어들도 이내 안심하며 강서준 쪽으로 들러붙었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된 건 아니었다.
고작 기계에 물 좀 먹인다고, 상위 레벨의 사이보그들이 쓰러지진 않으니까.
무엇보다.
[엘리트 몬스터 ‘사이보그 #21’을 마주했습니다.]적들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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