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88
◈ 188화
스거어억!
강서준은 블랙 슬라임의 몸을 베어 내면서 겨우 호흡을 정돈했다. 마찬가지로 옆에서 한창 칼춤을 추던 에일이 말했다.
“젠장…… 끝도 없네.”
“어떻게든 여길 벗어나야 해요.”
“그걸 누가 몰라?”
쿠우우웅!
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몬스터를 보고 마땅한 묘책이 떠오르진 않았다.
사실 묘책이란 건 또 없을 것이다.
‘이래서 싸우면 안 되는 거였는데.’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던전이었다. 1층에서 어그로가 끌리면 던전은 결코 출구로 그들을 안내하진 않는 법이다.
그게 이 던전의 특징이니까.
그렇게 힘겨운 전투를 이으며 달리기를 반복한 지는 얼마나 됐을까. 강서준은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확인했다.
“……저기예요!”
“뭐?”
“잔말 말고 따라오세요!”
강서준은 블랙 슬라임을 빠르게 쳐 내며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에일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쫓았고, 머지않아 그들은 원형으로 이루어진 수직갱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하 수로의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 막다른 길이잖아?”
“뛰어요!”
뒤쪽으로 그들을 쫓아 추격해 오는 몬스터 무리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 상태였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외길.
그러니 당황하는 에일을 뒤로하고 거침없이 수직갱도로 몸을 내던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미친…… 야!”
결국 그 뒤를 쫓아 위쪽에서 에일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알페온의 수직갱도’를 발견했습니다.] [‘8층’ 아래로 떨어집니다.]그렇게 던전의 중심으로 더 나아갔다.
***
알페온의 지하 수로.
A급 던전으로 유명한 이곳은 훗날 플레이어에겐 ‘알페온의 저주’란 이름으로 퀘스트가 발주되는 원인이었다.
이곳의 특징은 오직 하나.
‘던전 자체가 몬스터라는 것.’
해서 이 근방에 들어서면 ‘블랙아웃’이라는 기술에 먼저 현혹당하기 십상이다.
B급 던전이던 ‘알페온의 지하 수로’가 A급 던전으로 성장하면서, 주변으로 흩뿌린 게 바로 ‘블랙아웃’이었으니까.
일종의 덫이었다.
‘블랙아웃에 당한 사람은 하나같이 던전 내부 중 랜덤의 공간으로 떨어지니까.’
어쨌든 집단으로 몰려든 몬스터를 피해 수직갱도로 뛰어든 강서준이었다.
그는 겨우 갱도 아래에 고여 있던 호수에서 빠져나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 냄새 한번 고약하네.”
함께 뛰어든 에일의 불평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강서준과 에일은 갑옷의 곳곳이 오물에 젖어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살아남은 게 다행이죠.”
“다행? 지금 이 꼴이 다행이라고 했느냐?”
성난 에일의 목소리였지만 차분히 무시하며 그저 주변을 둘러봤다. 대꾸가 없으니 에일도 길게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눈치 없는 그라고 해도 이 분위기까지 읽지 못하는 건 아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8층이나 아래로 떨어졌다니…….’
알페온의 지하 수로는 도합 30층으로 이뤄진 던전이다. 공략할수록 아래로 내려가 지하 30층에 도달해야만 보스방에 이르는 흔한 미궁 던전.
‘문제는 내려갈수록 더 강한 몬스터가 등장한다는 건데…….’
아마 그들이 있었을 1층에서의 몬스터가 300대 초반이라면, 8층 아래인 이곳은 어쩌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몬스터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1층의 경험도 경험이란 걸까.
에일은 쉽게 경거망동하여 크게 소리를 내거나 주변 몬스터들이 들릴 만한 소음을 내진 않았다.
대신 눈살을 찌푸리며 묻는다.
“이제 어쩔 셈이더냐?”
“네?”
“네놈 때문에 더 깊숙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걸 어찌 책임질 거냐고 묻는 것이다.”
목숨을 구해 줬더니 하는 말이라고는…….
강서준은 어둠을 응시하며 답했다.
“던전을 빠져나가야죠.”
“그니까 어떻게 빠져나간단 말이냐.”
반복되는 질문에 미간을 찌푸린 강서준은 저도 모르게 에일을 돌아봤다. 그래도 선임기사란 작자면서 왜 자꾸 신임기사한테 꼬치꼬치 질문을 캐묻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겁을 먹었군.’
레벨과 안 어울리게 덜덜 떨고 있는 그의 손이 증명했다.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궁색하게 강서준을 비난하면서 수시로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다.
‘하기야 던전 경험이 많진 않았겠지.’
귀족 출신이었으니 어려서부터 검술 정도야 꾸준히 훈련해 왔을 것이다. 또한 몬스터 사냥 경험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블랙 슬라임을 쓰러트리는 기술이나 갖가지 몬스터를 상대하는 능력은 꽤 출중한 편이니까.
하지만 던전 공략은 별개의 이야기였다.
사실 드림 사이드에선 ‘던전’을 대개 ‘금지’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플레이어가 아니고서야 섣불리 진입조차 해선 안 될 그런 위험한 장소.
‘이들에게 목숨은 하나니까.’
강서준은 그 사실을 상기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에일을 둘러봤다.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몰랐던 그의 절박함이, 이젠 너무나도 확연하게 와닿았던 것이다.
“일단…… 일단 이동하죠.”
그러면서 강서준은 벽면에 살짝 자라난 꽃봉오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검부터 뽑아 줄기를 잘라 내자, 꽃에서 ‘진물’이 아닌 ‘핏물’이 쏟아졌다.
끼익…….
바닥에 널브러진 꽃봉오리.
일명 ‘만드라고라’는 애써 입을 벌렸지만, 그곳에서 들려온 건 바람 빠진 소리였다.
이처럼 함정형 몬스터인 만드라고라는 사전에 발견하여 그 줄기만 잘라 낼 수만 있다면, 주변의 몬스터의 어그로를 만드는 비명을 차단할 수 있었다.
“히익!”
한층 겁을 먹은 에일을 이끌고 강서준은 어둠 속으로 더욱 나아갔다.
던전에서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행위는 안전지대를 제외하고는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
‘여기서 1층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야.’
수직갱도를 이용하여 대략 8층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현재 그들이 선 위치는 아마도 9층.
그리고 여기서 다시 상층으로 올라가려면 각 층마다 존재하는 층간 보스를 처치해야만 했다.
과연 두 사람이 해낼 수 있을까?
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긴 A급 던전이야.’
층간 보스를 단둘이서 공략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마 강서준의 본 계정의 스킬을 가져와도 무리일 것이다.
강서준은 지그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니 내가 향할 곳은 위가 아니라 아래야.’
상층으로 올라가기 버겁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지하 수로의 15층엔 플레이어를 위한 ‘안전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니까.
‘6층만 더 내려가면 된다.’
그리고 내려가는 방법은 종전에 그가 그러했듯, 층간보스를 만나질 않아도 얼마든지 방법은 많았다.
수직갱도를 이용하는 방법.
혹은 싱크홀을 찾아 뛰어내리는 방법.
알페온의 지하 수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건 쉬워도, 다시 올라가긴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른바 ‘개미지옥’이다.
“……결국 여긴 몬스터의 내장 같은 거니까.”
“뭐?”
“아닙니다. 그보다 에일 님. 그 목걸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사특한 기운을 막아 주는 것 같은데요.”
분위기를 상기시킬 겸, 강서준은 에일의 목걸이를 바라봤다.
이름이 ‘청명 목걸이’였나.
훗날 알페온의 저주를 파훼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이 필수로 조달했던 아이템 중 하나였다.
그걸 용케 갖고 있었다.
“우리 가문에서 자랑하는 ‘청명 목걸이’란 것이다. 아무렴 이깟 던전의 저주 따위는 이겨 낼 수 있지.”
저걸 구하려고 꽤 성질 더러운 귀족 NPC의 퀘스트를 수행했던 게 아련하게 떠올랐다.
‘결국 저 목걸이가 이번 퀘스트에서 주요 인물로 자리 잡은 요인이었군.’
쓰게 웃으며 걸음을 딛던 강서준은 돌연 바닥에 새겨진 작은 흠집을 보고 손을 위로 들었다. 잔뜩 긴장한 에일이 화들짝 놀라며 멈춰 섰다.
“왜, 왜……?”
“쉿.”
강서준은 에일을 데리고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에일도 입을 꾹 다물어 준 덕에 한쪽 터널에서 나타난 몬스터에게 바로 걸리진 않을 수 있었다.
‘듀라한…… 벌써 340대 몬스터가 나오는구나.’
놈은 자신의 장검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가 없어 오직 한 가지 감각에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절대 움직이지 마요.
강서준은 입모양으로 에일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듀라한의 앞에선 작은 소리조차 조심해야 한다.
‘진동을 읽으니까.’
귀도 없는 주제에 감각은 예민한 놈이라, 듀라한은 진동을 통해서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럼 이동합시다.”
듀라한이 지나가길 한참을 기다린 그들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소음도 용납하기 어려운 9층의 특성상 가능한 빨리 이 아래로 내려가는 게 이득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은 늘 갑자기 벌어지는 법이다.
키에에에에엑!
돌연 에일의 호주머니 속에서 맹렬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찢어질 듯한 고음에 괴로워하는 에일.
강서준은 입술을 짓씹으며 에일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뿌리 하나를 꺼낼 수 있었다.
푸슈우욱!
빠르게 찔러 넣은 검!
줄기 끝이 잘려 나가자 소음은 점차 바람 소리가 되어 갔다. 강서준은 눈을 흘겨 뜨며 물었다.
“이건 대체 언제 챙긴 겁니까?”
“……이미 죽은 거였잖아. 만드라고라는 명약이 되니까.”
“하…….”
만드라고라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정도로 희귀한 약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써먹기 위해서는 특수한 마법처리를 통하여 이놈의 재생을 봉인했어야 한다.
만드라고라가 왜 만병통치약이겠는가.
줄기를 잘라도, 뿌리를 잘라도, 잎을 자르더라도 그 형체가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재생하는 특징 덕이다.
쿵! 쿵! 쿵!
그리고 점차 가까워지는 울림이 있었다. 그게 무얼 뜻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만드라고라는 듀라한의 레이더니까.’
혀를 찬 강서준은 만드라고라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에일을 데리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듀라한에게 위치가 발각된 이상 놈들의 표적이 됐을 것이다. 놈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내려가는 구멍을 찾는 게 최선이었다.
“이게 다 세세하게 설명해 주질 않은 네놈 탓이다!”
“시끄러워요!”
불행 중 다행인 건 이번엔 아래로 내려가는 싱크홀을 늦지 않게 발견했다는 것이다.
새카만 어둠이 가득한 구멍.
적어도 10층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었다.
“달려요!”
그리고 찾아온 불행은 아무래도 듀라한이 턱끝까지 쫓아왔다는 것이었다.
쿠우우웅!
“내가 시간을 끌겠다!”
“됐어요! 그 시간에 달리라고!”
용감하게 듀라한을 향해 나서려는 에일이었지만, 강서준은 대번에 그 말을 잘라 먹으며 핀잔을 날렸다.
실제로 의미 없는 짓이었다.
듀라한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정도의 역량이 있는 자라면, 1층에서 그 고생도 안 했을 것이다.
“역시 그렇지?”
그나마 빠른 태세 전환이 에일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그는 특유의 스텟을 한층 발휘하여 강서준보다 빨리 싱크홀 앞에 도달했다.
-기이익…… 거기냐!
머리도 없는 주제에 주변 공기가 떨리더니 듀라한의 ‘음성’이 창졸간에 접근했다.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러 ‘형태’가 된 ‘음성’을 맞댔지만, 강서준은 그 진동을 이기질 못하여 옆으로 튕겨 나가야만 했다.
“커헉!”
단 일격에 온몸이 망가진 듯 피가 역류했다. 겨우 고개를 들자 듀라한은 싱크홀에 거의 다다른 에일의 뒤를 쫓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한끗 차이로 에일이 따라잡힐 것이다.
“……크윽.”
그때 보인 건 벽면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자라난 만드라고라.
강서준은 이를 악물고 그것을 손으로 우악스럽게 뿌리까지 뜯어냈다. 만드라고라는 괴롭다는 듯 바로 비명을 질렀다.
키에에에에엑!
다시 울린 만드라고라의 울음!
에일을 쫓던 듀라한이 대번에 방향을 돌려 강서준에게 달려왔다. 진동이 더 큰 방향이 녀석의 어그로를 끄는 것이다.
-……거기냐!
두 눈을 부릅뜨고 ‘간파’를 발동한 강서준은 듀라한이 쏘아 낸 음파를 확인했다.
강서준은 몸을 굴려 겨우 피해 냈다.
‘결국 놈은 진동으로 주변을 인식해.’
강서준은 바닥을 구르며 움켜쥔 돌 부스러기를 듀라한의 근처로 흩뿌렸다.
사방에 생겨난 진동.
듀라한은 약간 렉이 걸린 듯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기이익……!
너무 가까워진 게 화근이었을까.
강서준은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을 느꼈고, 듀라한의 검이 그 심장을 향해 짓쳐들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채애애애앵!
근데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두 동강 난 것은 듀라한의 몸이었다.
‘무슨……?’
의식이 상황을 따라가기도 전에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누군가의 듬직한 등이 있었다.
듀라한을 일격에 베어 낸 ‘그’가 뒤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괜찮나?”
그리고 나타난 건 시스템 메시지.
[전직 퀘스트의 핵심 인물을 마주했습니다.]그는 ‘호크 알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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