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3
◈ 33화
“처, 천만 골드?”
“……믿을 수가 없군.”
“어떻게 저만한 돈을 벌써!”
무대 위에 선 지상수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어도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였다.
탐욕스러운 상인들.
지상수는 어깨에 힘을 빡 주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되나?”
지상수가 입을 열자, 사람들은 씻은 듯이 조용해졌다.
가시화한 인벤토리였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으리라.
또한 상인들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1천만 골드를 들고 나타난 의문의 남자. 더는 그를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상인에겐 돈이 곧 권력.
게다가 드림 사이드 2가 오픈한 지 세 달 만에 1천만 골드를 모았다는 건 그만큼 높은 수준의 플레이어라는 걸 증명했다.
“참고로 난 오늘 경매에 나온 모든 물건을 살 생각이야.”
지상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유지하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감당할 수 있으면 베팅해 봐.”
그리고 그 말에 대한 파급력은 대단했다.
하나둘 조금씩 떠든다는 게 모이고 모여, 순식간에 경매장은 도떼기시장처럼 떠들썩해지고 있었다.
뒤늦게 이깨비가 지상수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았지만, 이미 할 말을 다한 지상수는 느긋하게 무대에서 물러날 뿐이었다.
이깨비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 착오가 생겨 잠시 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1시간 후 경매가 재개되오니,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그간 모쪼록 저희들이 준비한 만찬을 즐기시며 기다려 주십시오.‘
진땀을 뻘뻘 흘리는 이깨비를 응시하는 사이, 오대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다가와 지상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이것도 다 계획된 일이야?”
“흐음.”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이렇게 흐름을 끊어서 뭘 어떡하겠다고…….”
“조금만 기다려 봐요.”
지상수는 오대수를 가만히 바라봤다. 마치 불량 청소년을 계도하지 못한 경찰 같은 표정. 지상수는 여전히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걱정 마요. 잘된다니까.”
“무슨…….”
그때였다.
상황을 정리한 이깨비가 으르렁대는 눈빛으로 다가오더니, 지상수의 앞에 섰다. 키가 두 배는 차이가 나서 체급도 더더욱 크게 느껴졌다.
“……왕께서 너를 찾으신다.”
이 말을 남기고 홀연히 어딘가로 걸어가는 이깨비. 지상수는 오대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봐요, 됐죠?”
“……되긴 뭐가!”
오대수의 미간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
도깨비를 따라가는 지상수는 생각했다.
‘서준이 형의 계획은 간단해.’
첫째, 경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사람들을 구매할 것.
무력으로 경매장의 물건을 되찾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이면 계약서를 되찾질 않으면 몸을 되찾아도 그저 빈 몸을 마주할 뿐.
즉 경매장에서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면 계약서’를 찾는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천외천의 상인, 잭이 있으니까.
금전 관련 문제는 걱정할 게 없었다.
‘둘째는 도깨비의 왕을 만날 것.’
사실 이면 계약서를 차지한다고 모든 일이 완벽하게 끝나는 건 또 아니었다. 아이들의 몸을 되찾아도, 여태껏 빼앗긴 기억은 어떡하겠는가?
그조차 모두 되찾아야 이번 작전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중심엔 단 하나의 아이템이 반드시 필요했다.
‘도깨비감투.’
도깨비감투가 있어야만 조각난 영혼을 합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영혼을 다루는 건 ‘도깨비’만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해서 지상수와 오대수는 이면 계약서를 따내기 위해 경매장으로 향했고, 강서준은 도깨비감투를 되찾기 위한 일환으로 다른 일을 수행하러 떠났다.
지상수는 가볍게 혀를 차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강서준의 계획은 간단하고 쉬웠지만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정말 ‘이면 계약서’를 되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걸까. 적어도 지상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쪽에서 묘하게 돈 냄새가 난단 말이지.’
지상수는 감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 무엇이 이득이고 해가 되는지에 대한 감은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할 정도로 특별했다.
상인의 감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는 이 감을 십분 활용하여 ‘던전 상인 잭’이라는 캐릭터를 육성했고, 그 감으로 여태껏 살아남아 왔다.
이걸 안 믿는다면 무얼 믿는단 말인가.
만약 그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강서준과 약속한 일을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 엄청난 보상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상수는 계산해 봤다.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잭’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잘 해낸다면 돈방석에 앉을 거야.’
그건 지상수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일에 가담한 강서준도 엄청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계획만 성공한다면 말이다.
어느덧 그들은 D-10구역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앞서 연결통로에 선 이깨비는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곳이다. 안에서 왕께서 기다리신다.”
이깨비는 정중하게 노크를 하더니,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푸쉬이익,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문.
외관부터 화려한 가구가 들어 있는 보스방 내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어디 사칭범의 면상이나 제대로 확인해 볼까.’
지상수는 오대수와 시선을 맞춘 뒤, 천천히 안으로 입장했다. 보스방 안엔 우선 골격이 대단한 삼깨비 한 마리가 정승처럼 선 채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벌한 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삼깨비.’
안쪽에서 게걸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크하하하…… 귀인께서 등장하셨군!”
사칭범 잭.
지상수는 놈의 얼굴을 들여다본 순간,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기왕 사칭할 거라면 좀 잘생기기라도 할 것이지. 누가 악당이 아니랄까 봐 뱀처럼 눈이 옆으로 째져 비열한 느낌이 강한 남자였다.
나이는 얼추 20대 후반?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나이였다.
지상수는 어차피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을 테니 더욱 당당하게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네놈이 이 경매장의 주인이로군.”
놈은 오만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상수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네놈이 던전 상인 잭이겠고.”
“영광이군. 날 알고 있나?”
“그럼, 상인으로서 잭을 모르면 쓰나.”
“크하하하! 그것까지 알면서도 이리 당당하게 쳐들어왔다는 건가.”
지상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쳐들어오다니? 초대한 건 그쪽이지.”
지상수의 말에 사칭범은 벽에 걸린 와인을 가져왔다. 투명한 유리잔에 영롱한 붉은 와인이 점차 차올랐다.
“당돌한 친구로군. 재미있어.”
“그쪽이야말로 생각보다 호걸이군.”
확실히 도깨비의 왕은 뱀처럼 생긴 것에 비해선 전체적인 분위기가 호탕한 편이었다. 겉과 속이 그다지 다르진 않을 것 같은 느낌.
어쩌면 굳이 속일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한 잔 들겠는가?”
“사양하진 않겠어.”
아직 미성년자인 지상수는 술이 생소했지만 술을 받아 드는 데엔 전혀 초짜라는 느낌이 없었다.
완벽한 연기.
두 사람은 와인 잔을 소리 나게 부딪쳤다. 피처럼 붉은 색의 와인이 파도처럼 이리저리 찰랑였다.
지상수는 일단 마시진 않았다.
이게 만약 그냥 ‘물’이었어도 바로 마시진 않았을 것이다.
놈이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말했다.
“독은 없어. 먹어도 괜찮아.”
“…….”
“의심이 많은 친구로군.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 그래도 술잔을 받았다는 데에선 나와 생각이 일치한다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물론이지.”
사칭범은 와인을 마치 소주를 마시듯 단번에 들이켜더니 말했다.
“탐욕스러운 상인들 앞에서 돈 지랄을 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단순히 돈 자랑을 하다 객사당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말이지.”
“…….”
“말해라. 날 찾은 목적이 뭐지?”
가만히 사칭범을 바라보던 지상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웃었다. 가면으로 가려져 있어서 표정이 안 보이는 게 천만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월척을 낚은 기분…… 들키진 않았겠지.
지상수는 짐짓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흥미롭더군. 이동 던전을 하나의 암시장으로 운용하는 계획이라. 누가 고안해 냈는지 무척 참신해.”
“좋게 봐줘서 고맙군.”
“해서 의뢰인이 너를 적임자로 뽑았다.”
지상수의 말에 사칭범은 고개를 갸웃했다. 빈 와인 잔에 와인을 다시 가득 따르더니 말했다.
“……의뢰인?”
“그래. 사실 우리는 그깟 경매에 관심이 없어. 진짜 흥미로운 건 ‘잭’이란 인물 자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우린 너와 거래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거다.”
사칭범은 지상수의 말에 흥미가 돋웠는지 씨익 웃고 말았다. 이 얼마나 솔직한 얼굴 표정인가.
지상수는 그 표정을 응시하며 말했다.
“정확히는 독점 거래 계약이야.”
“자세히 알려 주겠나?”
“우린 경매장을 거치질 않고 양질의 상품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길 원한다. 그 과정에서 번거로운 절차는 가능한 없애는 게 좋겠지.”
원하는 물품은 크게 분류할 수 있었다. 사치품부터 인간, 몬스터…… 가리는 것 없이 전부 통용될 것이다.
“그만한 물건을 구매하려면 어마어마한 재화가 필요할 텐데?”
“천만 골드로 증명이 안 되나?”
“부족하지. 우린 좀 더 믿을 법한 의뢰인을 만나고 싶어.”
생각보다 신중한 녀석이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한테 먹히지 않고 이곳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겠지.
지상수는 툭 털어놓고 말했다.
“솔직히 의뢰인의 신분은 밝히기 곤란하다. 다만 의뢰인은 아크에서 유명한 분이라는 것만 말해 두지.”
“아크라…….”
놈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한다.
“공개를 못 할 만도 하군. 하나 누군지는 얼추 예상이 가. ‘그’라면 믿을 만하지.”
……그?
지상수는 사칭범에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아니기에 일단 상대의 행동을 더 눈여겨봤다.
사칭범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짐짓 고민하는 자세를 취했다. 문득 놈의 머리에 어설프게 얹어진 아이템이 보인다.
도깨비를 다루는 아이템.
─도깨비감투.
생긴 걸로 봐선 무척 평범해 보였다.
‘저거 저렇게 쓰는 거 아닌데…….’
어찌 됐든 사칭범이 손가락을 튕기면서 말했다.
“좋다. 응하도록 하지.”
“결정이 빨라서 좋군.”
곧 이깨비가 종종걸음으로 이면 계약서 뭉치를 들고 왔다. 지상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를 빠르게 살펴볼 수 있었다.
대충 살펴도 수십 장은 되는 계약서 뭉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서류에 침을 꼴깍 삼켰다.
“서류를 미리 준비해 뒀다고?”
“이제 와서 말하지만 솔직히 우린 네놈들이 접촉할 걸 알고 있었으니까.”
“뭐?”
“그렇게 냄새를 풍겨 댔는데 모르겠는가? 우린 그저 네놈들이 접촉하길 기다렸을 뿐이야.”
단단히도 지상수 일행을 아크 쪽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지상수는 약간 편안한 안색으로 계약서를 빠르게 훑어보고, 바로 펜을 들었다.
“……좋아. 서명하지.”
서명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지상수와 사칭범은 서로를 마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계약서의 효력은 금세 발휘됐다.
파츠츠츠츠츳!
“거래가 성사됐군.”
“모쪼록 좋은 거래였어야 했을 텐데.”
그때였다.
지상수의 손목에 검은색의 쇠사슬이 생겨난 건.
지상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진 말게. 우리도 보험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지상수는 눈을 어지럽히는 메시지의 행렬에 일단 혀를 내둘렀다. 숨겨져 있던 ‘이면 계약서’의 내용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면 계약서’의 효력이 발동합니다.] [당신의 신체는 플레이어 ‘젝’에게 귀속됩니다.] [당신의 인벤토리는 플레이어 ‘젝’에게 귀속됩니다.] [당신의…….]이놈…… 이름이 진짜 젝이었나?
모음 하나 차이였으니, 마냥 사칭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기분도 들었다.
재밌네.
지상수는 크게 동요하지 않은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당신. 크게 착각하는 것 같은데.”
스스스스스…….
어디선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언제 차가워졌는지 급격히 떨어진 내부의 온도는 겨울밤 같았다. 새벽의 공기처럼 한기를 두르고 언뜻 사위는 어두워졌다.
무릎까지 차오른 안개.
드라이아이스를 깔아 놓은 듯한 무대효과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건 대체 뭐─”
끼이이이익!
끔찍한 비명과 함께 천장의 한 구멍이 부서지면서, 무수한 유령이 보스 방으로 쏟아지기 시작한 순간.
지상수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보험은 너만 들어 둔 게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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