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335
◈ 335화
왕의 각인.
도깨비 장비에 피를 흩뿌려 본연의 모습을 끌어내는 도깨비 왕만의 권능.
이는 제아무리 4,000년 먹은 영물이라 해도 피해 갈 수 없는 특징이었다.
‘본질은 도깨비 장비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피를 머금고 더더욱 찬란한 빛을 토해 내는 하나의 모래알이 보였다.
녀석은 썩 억울한 목소리였다.
-반칙이야. 이건 반칙이라고……!
“예외라고 해야겠지.”
원래 사는 게 그렇다.
군대에서 사단장님과 축구 시합이 벌어지면 응당 저절로 골문이 열려야 하는 법.
숨바꼭질도 술래가 그보다 윗사람이면 알아서 잡혀 주는 게 별수 없는 현실이다.
“꼬우면 너도 왕 했어야지.”
-크윽…….
결국 강서준의 피에 젖은 도깨비 방망이는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고.
아이템을 점거하던 영기는 저절로 바깥으로 튕겨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보스 몬스터 ‘영기’가 포효합니다!]그렇게 4,000년 묵은 영혼 덩어리가 강서준을 향해 날카로운 괴성을 토해 냈다.
-이건 무효야! 이런 비겁한 수작을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
하지만 녀석이 도깨비 방망이로부터 완전히 튕겨 나온 탓일까.
“시끄러.”
-꾸에에엑!
놈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못했고, 단 한 방의 손짓으로도 쉽게 뭉개질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영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강서준을 올려다봤지만 그의 검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자, 잠깐…… 타임.
[장비 ‘도깨비 왕의 감투’의 전용 스킬, ‘도깨비불’을 발동합니다.]억울해도 소용없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난자했다. 영기는 속수무책으로 괴로운 비명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녀석은 눈물 콧물을 질질 흘려 대며 애원하듯 말했다.
-살려 줘! 제발 날 죽이지 마!
“……?”
-살려 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할게!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길 테니까!
“진짜?”
-그러어어엄! 너에게 해가 되는 건 하나도 없.
말없이 영기를 바라보던 강서준은 다시 검을 높이 들어 아래로 내리찍었다.
-끄아아악! 왜, 대체 왜……!
“거짓말이잖아.”
이루리와 함께하는 한 강서준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 수였다.
물론 저 정도로 빤히 보이는 수작질에 넘어갈 정도로 그가 어리숙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악령이니 뭐…….’
무슨 목적으로 태어난 건지는 몰라도 녀석은 이미 너무 많은 생명을 잡아먹은 ‘악귀’였다.
구태여 봐줄 이유는 없겠지.
-끄으으으아아아악!
그렇게 도깨비검무까지 난무하자 영기는 억지로 성불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4,000년을 살아온 몬스터가 죽는 덴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정말 운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다.
[보스 몬스터 ‘영기’를 처치했습니다.]그리고 강서준은 덩그러니 놓인 뾰족한 뿔이 여러 개 달린 도깨비 방망이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장비 ‘도깨비 왕의 방망이’를 습득했습니다.]뒤이어 펼쳐지는 메시지.
[‘도깨비 왕의 감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깨비 왕의 반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성물 : 이루리’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도깨비 왕의 수선 도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도깨비 왕의 방망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세트 효과가 발생합니다!]츠츠츠츳!
[아이템 ‘관리자의 키 카드’를 습득했습니다.]지구를 탈출할 마지막 열쇠가 손에 들어왔다.
***
서울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막아! 막아야 돼!”
“어차피 더 물러날 곳은 없어! 반드시 이 자리를 사수해야만 한다!”
“마, 마력이 떨어졌어요!”
“돌이라도 주워서 던져! 뭐 하고 있어?”
첫 번째 방벽이 무너지고 벌써 죽은 사람만 수십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시산혈해(屍山血海).
온갖 몬스터가 달려들어도 용맹하게 대치하던 어느 플레이어도 죽었고.
간절히 살려 달라 애원하던 이도 무너지는 벽에 깔려 숨이 끊어졌다.
방금 전만 하더라도 옆에 있던 친구는 살점을 흘리며 날아갔고, 뜨거운 불덩이에 불타 주검이 된 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주변인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이를 생각할 여유를 갖질 못했다.
멸망은, 눈앞에 있었으니까.
“링링 님…… 시간이 없습니다!”
빗발치는 마력의 붕괴 속에서 애써 기운을 북돋우던 링링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희생은 예상했다.’
첫 번째 방벽이 무너지면 서울에 남은 인류 중 반절은 사망한다는 건 라그나로크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알았다.
멸망 시나리오…….
드림 사이드의 엔드 콘텐츠는 쉽게 행복 회로를 돌릴 가벼운 난이도가 아닐 테니까.
링링은 최악의 최악까지 고려해서 작전을 계획했고, 현재 서울에 남은 방벽은 두 개였다.
‘문제는 너무 빠르다는 거야.’
링링의 시선엔 반쯤은 무너진 두 번째 방벽이 걸렸다.
이 방벽 또한 결국 무너지리라 예상했지만…… 그 속도가 예정보다 10배는 더 빨랐다.
링링의 시선은 방벽 위를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몬스터를 향해 브레스를 쏘아 대는 용에게 향했다.
“그나마 용이 있어서 더 버틴 건가…….”
만약 용이 그들의 편이 되질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까지 버틸 수나 있었을까?
“……아직 케이 소식은 없어?”
링링은 무전으로 빠르게 곳곳의 지휘관을 찾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쉽기 그지없었다.
3일 전에 자리를 비운 케이는 여태 감감무소식이고, 서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지경이다.
슬슬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작전을 개시하자.”
“……아직 케이 님이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더 기다렸다간 아예 시작조차 못 할 거야.”
“알겠습니다. 바로 명을 하달하겠습니다.”
나한석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링링은 방벽에 보내던 마력을 완전히 회수했다.
작전을 개시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두 번째 방벽을 지키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링링은 헤이스트로 몸을 가볍게 하여 빠르게 서울의 마지막 방벽 안으로 들어섰다.
그나마 아직 라그나로크의 여파가 적은 이곳엔, 오늘을 위해 특별히 만든 물건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링링! 잘 왔어요!”
“상황은 어때?”
“선별 인원은 모두 탑승했고 일반 인원은 이제 막 탑승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탑승이 완료될 시간은?”
“약 30분 걸릴…….”
“10분으로 끊어.”
그렇게 박명석을 일별한 링링은 그녀의 앞에서 거대한 등치를 자랑하는 배 한 척을 바라봤다.
항공모함 같기도 했으며, SF 영화에서 볼 법한 우주 함대를 연상케 하는 단 하나의 비공정.
‘아크.’
이는 실제로 리카온 제국에서 직접 공구해 온 ‘우주 함대’였다.
링링은 마지막까지 함대를 조율 중인 리오 리카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와 줘서 고마워. 세계를 등지겠단 결정은 그쪽도 쉽진 않았을 텐데…….”
리오 리카온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뭘요. 우리도 그저 살기 위해서 왔는걸요.”
“하기야 안 오면 죽으니까.”
“……그렇죠.”
라그나로크의 여파는 오직 0115 채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었다.
퀘스트를 부여받은 건 0116 채널도 마찬가지.
물론 이번 건은 이례적인 경우라고 했다.
링링의 시선은 비공정의 한쪽에서 심술궂은 얼굴을 한 남자에게 향했다.
관리자 리루르크.
불현듯 나타난 그는 온갖 짜증을 부리면서도 비공정 개발에 한껏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라고…… 왜 라그나로크가 0116 채널까지 번져?”
“싫은 소리 좀 그만해라. 그럴 시간에 일이나 해.”
“하! 넌 자존심도 없냐? 관리자나 돼서 이딴 배나 만들고 있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럼 어쩌냐? 시스템으로부터 연락이 끊겨 우리도 꼼짝없이 갇힌 꼴인데.”
“하…….”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리루르크의 옆엔 샛별이 있었다.
그들은 졸지에 플레이어의 편에 서서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을 모조리 끄집어내는 중이었다.
느닷없이 시스템과의 통신이 끊겨 이 세계에 잔류한 관리자의 처절한 신세였다.
리루르크는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그러게 왜 케이를 그대로 놔뒀어? 결국 시스템이 망가진 게 원인이잖아.”
“말은 바로 해. 시스템은 오래전부터 망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건…….”
“됐으니까 일이나 해.”
링링은 티격태격하는 두 관리자를 보며 쓰게 웃었다.
어쨌든 저들이 있기에 이번 계획의 성공 확률이 1할이라도 올라가고 있었다.
최소한 저들이 가져온 정보는 ‘라그나로크’를 대비하기에 아주 유용했으니.
저들의 도움이 있어 이런 비공정을 이용할 방법도 생겨나는 것이다.
리루르크는 링링을 보더니 말했다.
“대충 마무리는 했으니 어떻게든 굴러가겠지. 이거면 충분하냐?”
“응. 수고했어.”
“근데 너 왜 말이 짧…….”
대충 리루르크를 무시한 링링은 곧바로 함선에 올라, 함장실로 향했다.
그곳엔 빠르게 탑승한 나한석 등의 유니온 주력 멤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 양쪽에 선 두 사람.
“진백호랑 유리나는 바로 마력을 전개해. 지체하지 않고 출발할 테니까.”
“……네.”
“김훈도 준비해. 이번 작전의 핵심은 너라는 거 알지?”
김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 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압니다. 솔직히 잘해 낼 자신은…….”
“그래. 해내.”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링링은 자신의 자리에 있던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함선을 넘어, 서울…… 어쩌면 지구에 남은 유일한 인류에게 닿을 것이다.
-잘 버텼어. 덕분에 시간을 벌었어.
그녀의 음성을 들은 최하나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몬스터의 머리에 마탄을 박아 넣었다.
가까이로 몬스터의 시체를 짓밟던 나도석의 시선도 서서히 서울의 상공으로 날아오르는 비공정으로 향했다.
방패를 든 리트리하나 힘겹게 사람들을 치료하던 마일리.
직원들을 닦달하던 지상수까지.
-이제 여길 나갈 시간이야.
링링의 말이 끝나자마자 함장실 내부에서 한껏 준비하던 김훈이 두 눈을 번뜩였다.
가진 마력을 모두 토해 내다 못해, 진백호와 유리나에게도 도움을 받아 발동한 스킬.
[플레이어 ‘김훈’이 스킬, ‘다중 공간이동(S)’을 발동합니다!] [!] [‘알 수 없는 힘’에 의하여, ‘다중 공간이동(S)’의 등급이 ‘다중 공간이동(?)’이 되었습니다.]코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스킬은 멈추지 않았고, 이윽고 함선이 통째로 흔들리는 충돌이 일었다.
이는 착각이 아니었다.
“뭐, 뭐야?”
“……와, 진짜 됐네.”
“그럼 우리 살 수 있는 거야?”
서울에 잔류했던 수많은 시민이 일거에 함대 안 곳곳으로 공간이동한 셈이니까.
물론 전부가 아닌, 일부…….
그것도 대략 1,000명에 달하는 인원만이 성공한 일이었지만.
이에 대한 감흥을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시끄러. 이제 시작이니까.”
기절한 김훈을 의료진에게 맡긴 링링은 곧바로 마이크를 쥐고 명령을 내렸다.
-아크. 가동.
기이이이잉!
라그나로크가 시작되면서 파생된 무지막지한 마력은, 여태껏 세 번째 방벽 안에서 진백호와 유리나의 인도 아래에서 꾸준히 저장되어 왔었다.
그리고 이는, 곧 아크의 원동력.
진백호와 유리나의 협동은 이 세계를 탈출할 유일한 우주 함대인 ‘아크’를 움직인다.
-목적지는…….
사람들의 시선은 붉은 기둥으로 향했다.
라그나로크가 발발하면서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엄청나게 방대한 힘을 뿌리는 기둥.
그곳으로 기수를 돌리니 창문 너머로 더더욱 멸망해 가는 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뜨거운 불덩어리에 휩싸여 모든 게 말살되어 사라져 버린 행성.
이젠 푸른 바다조차 없는.
그저 멸망해 버린 별…….
-목적지는…… 생존.
링링의 말이 이어진다.
-우린 살아남기 위해 이 세계를 버릴 것이다. 이의 있으면 당장 배에서 뛰어내려도 좋아.
이에 사람들은 입에 무거운 침묵을 달고 굳은 얼굴로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뒤늦게 함장실의 문을 열고 다급하게 들어온 최하나가 외쳤다.
“강서준 씨가 아직……!”
하지만 그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아크의 앞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까워진 태양마저 가릴 정도로 거대한 어둠은 붉은 기둥으로부터 파생되어 세계를 조금씩 좀먹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드림 사이드의 엔드 콘텐츠의 주역이자, 그들이 통과해야 할 단 하나의 시련.
형체조차 없어 그저 어둠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소름이 끼치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카오스(?)’를 마주했습니다.]등급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적은 눈앞에서 불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입은 절로 다물어졌고, 다들 사고가 멈춰 버린 것처럼 굳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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