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4
14
Chapter4 – 정체가 뭡니까? (4)
2차 현장예선이 시작된지 꼬박 이분 가량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필상이 조리복 소매를 천천히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필상은 오늘 관자를 활용한 구이요리와 함께, 영국의 고전 요리 격인 ‘*비프 웰링턴’(*반죽으로 소고기를 감싸 구워낸 요리)을 선보일 요량이었다.
‘일단은 비프 웰링턴부터 조리해야겠지.’
비프 웰링턴은 소고기 안심살에 소스를 발라,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감싼 채 오븐으로 구워 요리하는 영국의 전통 요리다.
고기를 감싸 줄 반죽도 직접 빚어야하며, 소스도 조리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뿐아니라 두툼하기 그지없는 원형 그대로의 안심살을 이용하는 요리인만큼, ‘*레스팅’(*Resting:고기의 육즙이 골고루 퍼져나갈 수 있도록 식혀주는 작업) 등의 과정까지 거쳐야 하고 말이다.
그 덕분에 조개 관자 요리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조리에 소요되는 시간 역시 훨씬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 반죽부터 만들자.’
큼직한 스테인레스 보울에 밀가루와, 버터를 넣은 뒤 물을 넣고 주물러가며 반죽의 농도를 맞췄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반죽이 어느정도 형태를 갖춘 뒤에는 잘 포개어 접어준 뒤 밀대로 꾹꾹 눌러가며 밀어주기를 반복했고 말이다.
그 과정을 대여섯 번 가량 반복해주자, 금세 사각형 판 모양의 반죽이 완성되었다.
그리고는 완성된반죽을 랩으로 잘 감싸준 뒤, 조리대 한쪽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불과 몇 분 남짓한 짧은 시간만에, 고기를 감싸 줄 ‘페이스트리 반죽’을 완성시켜 낸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곧장 올리브유를 살짝 두른 팬 위에, 소고기 안심살을 올려주었다.
치이이익-.
한차례 듣기 좋은 소리가 울리기를 잠시. 이내 필상이 안심살의 모든 면을 조금씩 골고루 익혀주기 시작했다. 오븐으로 제대로 익혀주기에 앞서, 겉면만 살짝 익혀 육즙을 안에 가두는 ‘*시어링’(*Searing) 하는 과정을 거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겉면을 모두 익혀준 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안심살 위에 곧장 머스타드 소스를 골고루 발라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식기 전에 소스를 발라줘야, 고기가 식는 과정에서 머스타드 소스가 안심살 안쪽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때문이었다.
이제 안심살 위에 발라줄 소스를 만들어야 한다.
본래 정석적인 비프 웰링턴은 거위 간. 즉, 푸아그라와 버섯을 함께 갈아 만든 ‘듁셀’(Duexlle)이란 소스를 발라주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필상은 과감히 푸아그라를 빼버리고, 청양고추를 조금 넣어주기로 결심했다. 푸아그라 자체가 워낙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식재료였을 뿐더러, 이번 2차 현장예선의 주제가 창작요리였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의 조리법은 기존의 비프 웰링턴과 사뭇 달랐다. 우선 믹서기에 양송이 버섯을 잔뜩 넣어 한 번 갈아준 뒤, ‘밤’을 넣고 다시 한 번 더 곱게 갈아주기 시작했다.
그때, 필상의 조리대를 지나쳐가고 있던 박한솔 교수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물었다.
“정필상 참가자, 혹시 ‘비프 웰링턴’을 요리하고 계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흠, 레시피의 스펙트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군요.”
짤막하게 말해 보인 박한솔 교수가, 조리대 위에 놓여있는 믹서기를 손끝으로 가리켜보이며 재차 되물었다.
“그런데 혹시 소스에 밤을 넣으신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한차례 “밤이라···.”하고 중얼거려 보인 박한솔 교수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되물었다.
“굳이 밤을 넣으신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심사 결과에 반영될 여지가 충분한 질문이었다. 이내 필상이 믹서기 버튼을 꾹꾹 눌러 안에 든 재료들을 곱게 갈아가며, 차분한 투로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밤의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버섯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견과류에 비해 기름기가 훨씬 적고, 점성을 지니고 있어 필링 재료로 훌륭하기도 하고요.”
잠시간 멍하니 필상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박한솔 교수가,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긋한 투로 답했다.
“오늘도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박한솔 교수가 필상의 조리대를 지나쳐갔고, 필상은 다시금 조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믹서기 안에 추가로 소금과 후추. 또 청양고추를 살짝 넣어 간을 맞춰준 뒤, 기름기가 없는 팬에 한 번 구워주었다. 이는 버섯이 머금고 있는 수분을 한 번 날려주기 위한 과정이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타임 잎을 넣어 소스의 향을 살려내는 것으로 마무리.
이윽고.
필상이 랩 위에 기다란 베이컨 몇 장을 올려준 뒤, 완성된 듁셀 소스를 잘 펴서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 위로 시어링을 마친 소고기 안심살을 올려주었고, 랩을 이용해 돌돌 말아주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모양새가 ‘김밥’과 엇비슷해졌다. 비록 김 대신 베이컨을 이용해 감싸주었고, 온갖 속재료 대신 듁셀 소스가 덕지덕지 묻은 소고기 안심살만 덩그러니 감싸져 있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베이컨으로 감싼 소고기 안심살과, 본래 고기와 찰떡궁합이랄 수 있는 버섯을 이용해 만든 소스. 절대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궁극의 조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차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베이컨으로 감싸 둔 안심살을 다시 한 번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완벽히 감싸듯 돌돌 말아주었다.
그리고는 데코레이션을 위해 반죽의 표면에 계란물을 잘 묻혀낸 뒤, 칼등으로 빗살무늬를 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반죽이 바삭하게 구워지게끔 표면에 소금을 솔솔 뿌려준 뒤, 200도로 예열해 둔 오븐 안에 잘 넣었다.
이제 남은 과정은 딱 한 가지 뿐이었다. 오븐 속에서 약 30분간 노릇하게 구워준 뒤, 중앙에 몰려있는 육즙이 고기 전체에 골고루 퍼져나갈 수 있도록 약 10분간 레스팅을 시켜주는 것.
그 말인 즉···.
비프 웰링턴이 완성되는데 필요한 40분이란 시간에 맞춰, 관자 구이 요리를 끝마쳐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내 필상이 느긋하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려가며, 곧장 두 번째 요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두 번째 요리는, ‘완두콩 퓨레를 곁들인 관자 구이 요리’였다.
필상이 가장 먼저 집어든 것은 주재료 격인 가리비였다. 칼로 껍질을 벗겨냈고, 숟가락으로 조갯살을 뜯어낸 뒤, 손으로 조심스레 관자만 쏙쏙 빼내기 시작한 것이다. 몇몇 참가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유려하기 그지없는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관자 손질을 마친 뒤에는, 곧장 관자 구이에 곁들일 콩 퓨레를 조리하기 시작했다.
본래 완두콩 퓨레는 영아들의 이유식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한다. 또한 조리법 역시 간단하기 그지없다. 소금을 살짝 넣은 물에 완두콩을 삶은 뒤, 정성스레 으깨주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이윽고.
필상이 달군 팬 위에 버터 한 덩어리를 올려주었고, 그 위로 메추리알을 깨트려서 프라이하기 시작했다.
지름이 고작 2cm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인 것일까? 그 모양새가 꽤나 귀엽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렇게 메추리알 프라이까지 완성시킨 뒤에는, 기름을 두른 팬 위에 손질해 둔 관자를 올려 익혀주기 시작했다.
핵심은 약불로 은근히 구워주는 것.
고온에서 지나치게 익혀버릴 경우 관자가 쪼그라들며, 맛이 퍽퍽해지기 때문이었다. 관자가 어느 정도 익은 뒤에는 파마산 치즈와 바질을 비롯한 허브를 뿌려주었고, 소금과 후추를 이용해 간을 살짝 맞춰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때였다.
어느새 조리대 앞에 다가온 강훈 셰프가 의아하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왔다.
“정필상 참가자, 벌써 플레이팅 하고 계신 거예요?”
“네, 이제 거의 다 끝나가서요.”
“두 가지 요리 전부 말씀이십니까?”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아직 2차 현장예선이 시작된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한차례 “네.”하고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길게 숨을 내쉬어 보였다.
플레이팅.
정교함과 세심함을 요하는 작업이다. 필상의 손끝이 죽어가는 화가의 붓처럼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접시 위에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플레이팅을 시작했다.
우선 따뜻하게 데워둔 원형 접시 위에, 부드러운 완두콩 퓨레를 관자의 지름 크기에 맞춰 동그랗게 뿌려주었다. 그 다음에는 그 위에 잘 구워낸 관자를 올려주었고, 그 위로 메추리알 프라이까지 얹어주었다.
녹색, 흰색, 노랑색.
세가지 색의 조화가 썩 훌륭했으나, 아직까지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 따름이었다.
메추리알 프라이의 노른자 부분에 파슬리를 뿌려 색감을 살렸고, 접시 곳곳에 색이 푸른 완두콩 몇 알을 흩뿌려주는 것으로 접시 위에 감돌고 있던 허전함을 모조리 걷어냈다. 이윽고, 송로버섯을 얇게 슬라이스해서 얹어주는 것으로 데코레이션을 마쳤다.
“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강훈 셰프가, 저도 모르게 흘려 보인 침음이었다. 필상의 관자 요리가, 당장 자신의 레스토랑 메뉴로 서비스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때 오븐 한 편에 거치되어 있던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려대며, 비프 웰링턴의 조리가 끝났음을 알리기 시작했다. 필상이 오븐을 열어 노릇하게 익은 비프 웰링턴을 꺼내, 나무 재질의 도마 위에 내려놓던 찰나.
강훈 셰프가 저도 모르게 제 눈썹을 한 번 꿈틀댔다. 두 가지 요리가 말 그대로, ‘동시에’ 완성되었다.
운일까? 아니면, 실력일까?
비록 정답은 알 수 없다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 또한 엄청난 가산점 요인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때.
띠이이이잉-.
필상이 돌연 벨을 울려 자신의 조리가 끝났음을 알렸고, 이내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필상의 조리대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데, 왜일까?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마냥 어두울 따름이었다. 다름 아니라, 비프 웰링턴이 플레이팅은 커녕 아직 썰어내지도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표로 의문을 제기한 것은 강훈 셰프였다.
“정필상 참가자, 마음이 너무 급했던 거 아닙니까? 설마 비프 웰링턴을 썰어내지도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접시에 내놓으려는 건 아니실 텐데요?”
“예, 아닙니다.”
“그럼 플레이팅까지 모두 마친 뒤, 벨을 울리셨어야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대답여하에 따라, 치명적인 감점요인이 될 수도 있는 대목이었으나, 필상의 반응은 마냥 덤덤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비프 웰링턴은 관자 요리 시식을 마치실 무렵, 제가 직접 썰어서 접시에 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레스토랑의 메뉴들 중에는, 셰프가 직접 홀에 나와 서비스해주는 음식들이 더러 존재하잖아요? 제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음식을 서비스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필상의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멍한 표정을 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필상의 말대로, 이처럼 음식을 서비스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규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내 필상이 관자요리가 담겨있는 접시를 앞쪽으로 슬쩍 내밀어 보이며, 다시금 나긋한 투로 덧붙였다.
“완두콩 퓨레를 곁들인 관자요리입니다. 가니쉬로 메추리알 프라이와, 송로버섯 슬라이스를 얹었습니다.”
이내 이혜원 셰프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접시에 담겨있는 관자요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지름이 2.5cm정도 크기에 달하는 관자 위로, 동일한 크기로 썰어낸 메추리알 프라이와, 송로버섯 슬라이스가 겹쳐져 있는 상태였다. 요리 자체의 색감도 훌륭했고, 음식의 크게 역시 한 입에 넣기 딱 적절해 보일 따름이었다.
일단 외형에 대한 총평을 간략히 말해보자면···.
‘정말 아름다워.’
분명 식욕을 자극하는 외형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찌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입에 넣기가 꺼려질 지경이었던 것이다.
이내 이혜원 셰프가 필상을 바라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이 물었다.
“이거 너무 아까워서 먹을 수가 없겠는데요?”
“감사합니다.”
“일단 플레이팅은 정말 완벽한데···..”
말끝을 흐린 이혜원 셰프가 날카로운 투로 재차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디 플레이팅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으면 좋겠군요.”
이윽고,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한 개씩. 관자 요리를 입 안에 넣고 그 맛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마냥 무거운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관자요리가 담겨있던 접시만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던 박한솔 교수가 엷게 떨리는 투로 장내에 내리앉아있던 정적을 깨보였다.
“아쉽군요, 정말 아쉬워요.”
그 말에 필상의 얼굴 위로, 한차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조리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딱히 감점요인이 될 만한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직접 시식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 딱히 흠 잡을 데 없는 훌륭한 맛이라는 진단을 내린 바 있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아쉽다는 것일까?
필상이 의구심을 한 가득 품은 채, 박한솔 교수를 들여다보고 있던 그때. 박한솔 교수가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덧붙였다.
“그리고, ‘아쉬움’ 역시 맛의 일부죠. 모든 레스토랑이 접시 위에 아주 적은 양에 음식을 담아내는 이유가 바로, 그 아쉬움을 배가시키기 위함일 테고요.”
말을 마친 박한솔 교수가, 냅킨으로 제 입가를 닦아가며 덧붙였다.
“만약 코스 구성에 이 요리가 포함된 레스토랑이 있다면, 그 아쉬움이 걷어질 때까지 매일 드나들게 될 것 같습니다.”
그가 말한 아쉬움은 극찬의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