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481)
러스트 [RUST]-481
그동안 마을을 지배한 식인귀들은 반쯤은 신이나 다름없는 지위에 있었다. 혹한의 겨울을 버티는 동안 식인귀들은 절대불가침적인 존재가 됐다.
사람을 먹을수록 강해지는 식인귀들은 실제로 인간을 초월한 힘을 보여줬다. 변이 괴수를 잡는 건 그들이었고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고 예민한 감각은 위험을 미리 감지하기까지 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도 진작 신인류가 될 걸 그랬다면서, 지금이라도 신인류가 되고 싶다며 식인귀의 종을 자처하는 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마루가 마을에 강림한 순간, 신인류가 되고 싶다는 건 헛된 꿈이 됐다. 그 강했던 신인류들이 실시간으로 도축되고 현장이 펼쳐졌다.
신인류라며 태연하게 사람들을 잡아먹었던 그들이 이제는 쓸모없는 고깃덩이로 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본 마을 사람들은 얌전히 왕국의 품에 귀의했다.
“잘 따르네요.”
후드가 순순히 따르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의아하다는 것처럼 말했다.
“에? 당연한 거 아닌가요?‘
간호사는 후드의 의아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따지고 보면 무력으로 찍어 누른 거니까. 튀어 오를 줄 알았죠.”
“에에- 여기 사람들 어차피 식인귀에게 복종했던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그거. 진짜 무섭고요.”
간호사가 말한 무서운 그거라는 소리에 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죠. 그거.”
정신계 능력인가 싶을 정도로 괴이한 능력. 마을 사람들도 그 무서움을 직접 겪었기 때문에 얌전하다는 간호사의 말에 후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막말로 마루가 작심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총질이나 칼질 없이도 대량 학살할 수 있었다. 그런 존재를 경험한 마을 사람들이 무슨 반항할 생각을 하고 저항할 계획을 세우겠는가?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대단하네요.”
“그렇죠.”
마루는 마을 5곳을 단 일주일 만에 접수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홀리 교도들은 언제 도착한다고 하지?]“에? 엣. 오후 비행선 편으로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던 간호사가 마루의 갑작스러운 통신에 아앗- 대답했다.
[식인귀는 전부 정리했지만, 추종자들이 있다는 제보가 있으니까 색출해야 해. 에리카는?]“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잡은 식인귀들 사이코메트리로 정보 확인하느라 고생한 에리카였지만 조금 더 힘내줘야 했다. 식인귀 추종자들을 그냥 둔다면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
식인귀와는 달리 추종자들은 오래된 이웃이었고, 혈연, 지연, 학연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색출하기 곤란했다.
마을 사람들은 식인귀들이 전부 토벌됐고 신성한 죽음의 공포를 맛봤으니, 추종자들도 정신을 차릴 것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텐데, 굳이 고발할 것까지는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에 사이코메트리 에리카가 일해야 했다.
[힘들어도 추종자 색출까지만 해달라고 해. 중간중간 쉬어가도 좋으니까.]“하이-옛.”
간호사의 ‘하잇!’하는 목소리에 피식 웃은 마루가 후드를 불렀다.
[아 그리고 제니아.]“네?”
[늑대들이 뭔가를 발견했다고 하는 데, 내가 이동 중이라 바로 그쪽으로 보냈어. 확인하고 연락해줘.]“예. 알겠습니다.”
마을을 순찰하던 신성 까마귀 한 마리가 간호사의 어깨에 앉아 소리높였다.
까아아악! 까악! (믿음이 없는 것들! 죽여야 합니다!)
신성 까마귀가 분개했다.
“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요?”
까아아악- 깍- 까아악! (추종자들이 누구냐고- 묻는데-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까마귀 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간호사의 말에 흥분한 까마귀가 목소리를 높였다.
“추르르-종자가가악- 누구냐아아악! 까악?” (추종자가 누구냐! 이렇게 말했는데?)
어- 이건 좀 무서워서 대답 못 했을 듯.
간호사가 눈을 데굴데굴 굴려 흥분한 까마귀 좀 달래보라고 후드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후드는 늑대가 물고 온 작은 기계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
배터리와 메모리까지는 그렇다고 치지만, 다양한 센서에 작은 태양광 충전장치까지 붙어있었다. 게다가 작은 궤도까지 달려 이동이 가능했고.
“일종의 CCTV 같은 거네요. 단순한 감시 목적이라면 이렇게 고사양으로 만들 이유가 없는데. 이거 어디서 났죠?”
크르르릉- 크릉-
간호사가 바로 통역했다.
“마을에 뿌려져 있었다고 하는데요?”
후드가 작은 공구함에서 장비를 꺼내, 즉석에서 분해를 시작했다.
내부에 들어있는 고출력 전파송수신 장치가 드러났다. 지금 같은 전파장애라고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8~10km 정도쯤은 송수신 가능한 고성능 장치가 분명했다. 후드는 즉시 마루에게 보고했다.
“늑대가 가져온 기계는 일종의 CCTV로 보입니다.”
[그래? 전파장애라서 의미가 없을 텐데.]“고성능 송수신 장비가 붙어있더군요.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건데. 그게 붙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을 토벌 영상이 유출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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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동그랗게 서 있던 마을 사람들이 애벌레처럼 엎어져 꿈틀거리는 모습.
[큽! 가슴이.] [헉! 숨. 숨을 쉴 수가···.] [······!!!]버둥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움직이는 자들.
살기를 떨쳐낸 세 사람이 허공에 창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공간을 잡아!] [빌어먹을 이런 놈이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닥치고 찔러. 거기 뒤 막아!]낭창낭창 휘어지는 창이 공간을 점유하듯 찌르고 베기를 반복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벌컨포 여기 쏴!] [상관없어! 그냥 갈겨!] [우리 앞쪽 쏘라고!]벌컨포를 향해 사격하라고 명령하는 세 사람.
위이이이잉-
쿠과과과곽-
명령대로 30mm 벌컨포가 한쪽을 싹 밀어버렸다.
아직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버르적거리는 마을 사람들까지 모조리 갈아버리는 공격이 시작됐다. 30mm 탄에 맞아 산산이 조각나는 끔찍한 영상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 곳.
30mm 탄이 뚫지 못하는 공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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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에 맞을수록 투명한 무언가의 면적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검은 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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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반경 수십 피트의 공간이 일격에 잘려 버렸다.
CG도 환영도 아닌, 실제로 일어난 일.
삑-
생동감 넘치는 화면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했다.
블랙록 마을에서 있었던 사건을 녹화한 영상이었던 것.
커서가 화면 한쪽을 동그랗게 표시했다.
동그라미 안에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칼이 선명했다.
“이게 문제의 무기입니다.”
“고작 날붙이가 저런 위력이라니.”
“날붙이요? 저게 단순한 날붙이로 보입니까?
“저게 뭐든 30mm 탄을 막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정지화면에 흐릿하게 보이는 막 같은 것.
먼지가 피어올라 보이는 건 마치 영화나 게임에서 묘사된 방어막 같았다.
“설마 방어막인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면 방어막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클립스가 30mm 탄의 충격을 진동으로 변환시켰다는 것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기에, 다양한 해석이 난무했다.
땡- 땡-
버지니아 컴퍼니 대표가 작은 종을 울려 주의를 환기했다. 웅성웅성 시끄러웠던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지자, 현재 상황을 정리하는 대표.
“블라디마루 칼린의 전투력은 보시다시피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연구실을 공격한 것도 그가 한 일이겠군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개는 그가 했다고 보입니다.”
“이번 작전은 실패로군요.”
“실패라니요? 아직 함정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린힐과 블랙록 중간 지역에 준비해 놓은 함정으로 놈을 유인할 수 있다면···.”
희망 회로를 돌리는 군 장교에게 버지니아 컴퍼니 쪽 임원이 피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함정도 끝났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 유인당하는 척하더니, 155mm 포격으로 함정지대를 통째로 날려버리더군요.”
“···155mm?”
“예. 155mm 말입니다. 우리가 반대했던 그 155mm.”
“빌어먹을.”
세인트로렌스 강을 장악하기 위해, 남부연맹 군부와 버지니아 컴퍼니가 함께 작업했던 작전. 대서양에서 거슬러 올라오는 이지스함을 무력화시키고, 해상 운송로와 상수원을 장악해 신생 왕국과 제국의 목줄을 틀어쥐겠다는 작전.
120mm 박격포와 드론 그리고 신인류 특수부대로 승부를 보자는 버지니아 쪽과 155mm 자주포를 지원하고 캐나다군이 운용하는 155mm 곡사포까지 이용해 이지스함을 공격한 뒤, 포대를 중심으로 거점 기지를 세우자는 군부의 의견이 대립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버지니아 임원이었다.
“당신들도 찬성하지 않았소?”
“처음에는 반대했었지요. 잊었습니까?”
“반대했던 이유가. 군부는 빠지라고 했었던가?”
“군부가 빠졌으면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을까요?”
“우리 군부가 빠진 작업은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나 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버지니아 컴퍼니의 뛰어난 능력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네요. 30mm 벌컨포와 지대공 미사일 가져놓고 칼 한 자루 달랑 들고 있는 놈에게 싹쓸이 당하는 걸 보면 말이죠.”
“······.”
“······.”
군부의 비아냥에 버지니아 쪽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기도 잠시.
“아- 그러고 보니 신생 왕국의 이지스함. 그건 어디서 났을까요?”
“왕국 선포하자마자 이지스함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말이죠.”
“참- 지난번에 윌밍턴에 있던 이지스함이 어떻게 됐다고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차 험악해졌다. 여러 세력이 뭉친 남부연맹이었지만 무력을 담당하는 두 축은 남부군 그리고 버지니아 컴퍼니였다.
땡- 땡-
격앙되는 분위기를 흐트러트리는 종소리.
사실 이쪽도 이리저리 꼬인 건 사실이었다. 빌딩 하나 달랑 가지고 있던 블라디마루 칼린이 세력을 이루고 갑자기 왕국 선포를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합중국을 되살리겠다고 발버둥 치던 국토안보국 국장, 연방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덴 브라운이 제국을 선포하고 총통의 자리에 앉으리라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1년 전부터 캐나다 쪽 외딴 마을에 미리 작업해뒀던 게 이렇게 단번에 쓸려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 이럴 겁니까? 신세계(NEW WORLD)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러면 곤란합니다.”
“······.”
“······.”
버지니아 컴퍼니 대표가 살짝 고개를 숙여, 남부군 사령관에게 유감을 표시했다. 군부 총사령관도 마주 고개를 끄덕여 분위기를 다잡았다.
“우선 신성 왕국 문제부터 정리하도록 하지요.”
신성 왕국은 미약했다.
핵만 아니라면 순식간에 쓸어 버릴 수 있을 정도.
다만 블라디마루 칼린과 핵심 인력들의 능력이 대단히 좋았기 때문에 이들을 일거에 잡지 못한다면 상당한 피해가 생길 것으로 파악됐다.
“왕국 놀이를 하도록 두는 게 낫습니다.”
“그렇죠. 핵을 가진 테러단체가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확실히.”
“생각할수록 아쉽네요. 작전이 성공했다면, 왕국과 제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었는데.”
웰랜드 운하 지역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거나, 세인트로렌스 강에 거점을 확보했거나, 하다못해 외딴 마을을 장악에 성공했다면 되는 일이었다.
더러운 전쟁으로 끌고 들어가, 경제고 뭐고 왕국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었는데, 하나도 아니고 셋 전부를 파훼한 블라디마루 칼린이었다.
“왕국의 전략적인 능력은 어떨지 모르지만, 전술적 파괴력을 보면 확실히 위험한 존재입니다.”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
“어이가 없군. 국왕이 직접 뛰는 것도 그런데 심지어 최고의 카드라니···. 중세 어딘가의 기사왕도 아니고.”
문제는 세 번의 시도가 전부 막혀버린지라, 다른 견제 방법이 딱히 없다는 것. 거기에 상황이 변했다.
우여곡절 끝에 블라디마루 칼린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옆에 있는 제국에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었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적은 제국입니다.”
모든 면에서 남부연맹의 주적은 제국이었다.
“동의합니다. 왕국이 편하게 세력을 굳히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지만, 거기에 전력을 쏟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부연맹의 두 세력, 군부와 버지니아 컴퍼니는 신성 왕국보다 제국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도. 분탕질하고 다니는 블라디마루 칼린을 그냥 두긴 그렇죠.”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자고로 남자를 죽이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는 미인이 제일 효과적이지요.”
미인계.
고전적이지만 언제나 효과적이었던 방법.
공교롭게도 블라디마루 칼린 곁에는 능력 있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이 블라디마루 칼린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만약 감정적 교류가 있다고 한다면 미인계가 통하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점차 파탄 날 것이다.
“굳이 따로 힘 뺄 필요 있겠습니까? 경국지색 하나 던져주면 알아서 반응할 텐데 말이죠.”
“그걸 잘 이용하면 이번에 합류한 나 회장을 압박할 수도 있겠군요.”
육체적 향락, 감정의 소모, 질투와 애증이 그 날카로운 칼날을 녹슬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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