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583)
러스트 [RUST]-583
설원에 커다란 동심원이 생기며 눈발이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광경. 물리법칙을 거스른 장면에 거점요새가 분주해졌다.
“저거 소리 들었지? 최대한 빨리. 부탁한다.”
까아악!
까마귀 목에 영상자료 메모리칩을 매단 거점요새 지휘관이 창문을 열자, 힘차게 날아오른 까마귀가 남쪽을 향했다.
■■■■■■■■■■■■■■■■!!!
다시 터진 울부짖음에 거점요새는 1급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저. 저게 뭡니까?”
“······.”
“······.”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현재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모든 인원은 완전무장 후···.]“전원 전투 위치로!“
“훈련한 대로 자리 잡는다. 실시!”
“긴장하지 마라.”
“조준 후 대기.”
요새 지휘관의 명령에 아래에 있는 장교와 병장들이 병사들을 조이기 시작했다.
“방아쇠에서 손가락 떼!”
“전방 주시.”
“그냥 방향만 잡고 있으라고!
“위치 잡고 조준. 고개 돌리지 마!”
“앞을 보라고 앞을.”
“다시 반복한다.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 사격하지 말 것.”
“방아쇠에서 손가락 떼고 대기.”
“대기가 뭔 소리인지 몰라?”
“그냥 손가락 떼고 있으라고 새끼야.”
변이 곰이 두 발로 섰을 때의 높이가 5~6m 내외였는데, 저건 7~8m는 됨직했다. 안개와 눈발 때문에 저게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상식을 초월한 무엇이라는 것.
콰드드드득-
화면 속 영상은 까마귀 정찰대가 500m 앞까지 접근해 찍은 영상이었다. 1m 넘게 쌓인 눈을 뚫고 거침없이 내달리는 모습은 어쩐지 만화 같았다.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해봐.”
“까마귀가 접근을 거부했습니다.”
치솟아 오른 눈발과 수증기 같은 안개로 뿌옇게 흐린 영상이었기에 그것의 자세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정찰 까마귀 복귀합니다.”
“미확인 생물체 급속 이동.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거리 2마일(3.2km). 이동 방향! 본 요새 쪽입니다.”
“거리 다시.”
미터법 쓰라고 한 지가 얼마인데 아직도 야드 파운드법?
“2마···. 3.2km 본 요새를 향해 급속 접근 중.”
40km 이상 확인할 수 있는 첨단 레이더 시스템을 달았지만, 전파장애 문제로 고작 4~5km 정도만 쓸 수 있었다. 그래도 감지덕지한 상황. 그마저 없었으면 정찰 초소를 세워 항시 대기해야 했을 테니.
“늑대들은?”
“근처에 신호 없습니다.”
소속 늑대들이 장거리 정찰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겨 버렸다. 까마귀들이 가끔 중계기를 들고 이동해 통신을 연결하곤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송수신이 어렵기도 했고.
그나저나 장거리 정찰을 하던 늑대들이 저런 걸 봤다면 경고를 했었을 텐데. 경고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저런 게 갑자기 튀어나와 거점요새를 향해 오고 있었으니, 요새 사령관은 그저 속이 탈 뿐이었다.
‘까마귀가 더 필요해.’
정찰도 잘해, 중계기 설치도 해, 설치한 중계기 다시 회수도 할 수 있고, 여차하면 폭격까지 할 수 있는 애들이었다.
까마귀를 한 100~200마리 정도만 굴릴 수 있으면 거점요새 방어력도 확 올라갈 텐데. 늑대처럼 장거리 정찰은 어렵더라도 반경 6~8km 정도는 꼼꼼하게 살필 수 있고 말이지.
단지 까마귀들도 인간들처럼 오지 근무를 싫어한다는 게 문제였다. 추가 봉급으로 유인해보기도 했지만, 까마귀들 대부분 돈보다는 워라벨(WORK & LIFE BALANCE)을 맞추려는 성향이 강했기에 오지 근무를 자처하는 까마귀들 숫자는 매우 적었다.
“전 까마귀 폭격 준비. 네이팜탄과 백린탄을 교차로 뿌린다.”
변이를 일으켜 아무리 가죽이 두꺼워졌다고 한들 네이팜탄과 백린탄이라면 피하겠지. 저게 무엇이든 생명체라면 1,500도에 육박하는 고온과 달라붙어 꺼지지 않는 불꽃에 타들어 가면서 오진 않을 것이다.
‘120mm 전차포나 하다못해 120mm 박격포라도 있었어야 해.’
거점요새는 Mk. 44 부시마스터 II(Mark 44 Bushmaster II) 30mm 기관포와 81mm M252 계열 박격포와 대전차 미사일이 주요 방어체계였다.
MK. 44 기관포는 GAU-8/A 어벤저 전용의 30×173 mm 탄과 호환 가능했기에 철갑소이탄(API), 고폭소이탄(HEI), 날개안정 분리철갑 예광탄(APFSDS-T) 같은 탄을 쓸 수 있어 충분한 화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탄의 보급, 저장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대지, 대공 저지력도 출중했다. 120mm 대전차포로 헬기나 비행선을 쏠 수는 없지 않은가?
대인, 대기갑, 대괴수 적이 무엇이든 평균 이상을 할 수 있는 무기로는 30mm MK. 44 기관포가 최적이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사령관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봤다.
[까마귀 출격. 폭격 시작합니다.]20여 마리의 까마귀들이 60mm 박격포탄 크기의 네이팜탄과 백린탄을 떨궜다. 작은 폭탄이지만 불꽃은 그렇지 않았다.
강렬한 불꽃과 하얀 백린이 퍼트린 연막이 피어오르는 눈발과 수증기 속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쿠쿵-
도망쳐줬으면 하는 바람과는 달리 괴수는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괴수 속도를 높입니다.”
“미확인 생물체 1.2km 이내로 접근.”
순식간에 2km를 주파해 달려드는 괴수. 요새를 피해서 가기를 바랐던 것이 실수였나?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쏴!”
30mm 기관포와 대전차 미사일이 1km 밖에서 내달리는 무엇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철갑소이탄과 고폭소이탄이 눈보라 속을 밝혔고, 재블린 미사일이 쉼 없이 폭음을 일으켰다.
치솟던 눈발이 사라지고 피어오른 안개가 걷히며 보인 것은 거대한 뿔.
뿔?
눈발과 서리 안개 사이로 보인 건 뿔이 확실했다.
그걸 확인한 거점요새 인근 출신인 병사가 소리 질렀다.
“무스(Moose)입니다. 무스!”
“무스라고?”
그러니까 말코손바닥사슴이라고?
근데 뿔?
넓적하게 펼쳐진 뿔은 무스 특유의 뿔이 맞기는 했지만.
계절이 겨울이었다.
봄에 뿔이 자랐다가 짝짓기 계절이 끝나면 뿔이 떨어지는 거 아니었나?
심지어 아파트 2~3층 높이의 크기가 무스라니···.
30mm 기관포 탄이면 괴물 곰도 달려들지 못했는데, 미친 무스는 달랐다. 80km가 넘는 속도로 맹렬하게 달려드는 괴수를 향해 재블린 미사일이 2발이나 꽂혔지만 대부분 뿔에 걸려 버렸다.
“막혔습니다.”
“세상에···.”
“오- 주여.”
“충돌합니다!!!”
둔중한 충격이 거점요새 외벽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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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들 전수조사는 확실히 시기적절했다. 배신할 연구원들은 없었지만, 타락의 조짐이 보이는 연구원들이 나왔던 것.
가상현실에 대한 모든 사항을 기밀로 했었기 때문에 찾아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연구원들이 왜 타락하고 있었느냐는 것.
심지어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배신도 아니고 타락도 아니며 자신은 그저 진리를 알고 싶었을 뿐이라는 자도 있었다.
‘진리를 알아서 뭘 하려고 했는데?’
‘진리를 알아서 자유를 찾으려고?’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찾으려고?’
‘자유를 찾아서 어떻게 하겠다고?’
말은 가상현실에서 자유롭게 연구하길 원했을 뿐이라면서, 사실 진정으로 그들이 원한 것은 가상현실에의 권한이었다. 가상현실의 지배력을 원한 것. 그러니 그것이 타락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잭 니스 박사 자료를 읽어봤어.”
기순이 피곤한 얼굴로 자료를 내밀었다.
“신세계의 신이 되려고 했던 이유가 그냥 자기가 신이 돼서 갑질하겠다 그런 의도만은 아니었더라고.”
가상세계를 만들어 그곳으로 인류를 대피시킨 뒤, 자신이 신세계의 신이 되어 인류를 다스리겠다고 했던 미친 과학자 잭 니스.
뇌둥둥 정보추출기가 됐음에도 기어코 뇌파 발산 능력까지 깨우쳐 막판에 뒤집기를 노렸던 노력가. 그가 단순한 정신병자가 아니라는 기순의 판단이었다.
“가상현실에서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으면 가상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로 신이나 마찬가지겠지. 그게 타락의 씨앗이었다.”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에서 연구하던 연구원들 가운데 몇 명이 생각했다.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다양한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주 공간을 대입해 무중력 실험실을 만들 수 있었고, 태양 근처를 상정해 높은 중력 고에너지 상황을 만들어 실험할 수도 있었다. 블랙홀도 마찬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거대하게 확대해 눈으로 볼 수 있고, 전자 현미경으로 확인되는 구조도 3차원 입체 영상으로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유전자 가위를 쓰지 않더라도 유전자를 블록 쌓듯이 끼웠다 뺐다 할 수 있고, 그렇게 변형된 유전자 형질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거의 즉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주의 모든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 거기에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생명이 피고 진다. 생명의 진화를 조절하는 느낌.
그 전능감.
가상현실은 가상이 아닌 또 다른 현실. 그 현실에서 느껴지는 그 전지전능함은 곧 타락의 씨앗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을 현실로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가상현실이 현실에 영향을 준다고?
그렇다면 현실도 가상현실처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가?
“잭 니스 박사의 또 다른 버전인 거지.”
현실을 가상현실로 만들어 신이 되고자 했던 잭 니스 박사.
가상현실에서 뛰쳐나와 현실의 신이 되고픈 타락한 연구원.
“그걸 보니까 뭐냐. 나도 종교 쪽은 별로 엮이고 싶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더라.”
“HOLLY?”
“그래. HOLLY를 신실하게 믿는 연구원들에게는 그런 조짐이 없었어.”
“······.”
신이 되고 싶다. 가상현실을 현실로 만들어 지배하고 싶다는 타락의 기미가 조금도 없었다.
신성 왕국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을 현신으로 믿든, 신의 사자로 믿든, 아니면 구원자로 믿든 간에 HOLLY를 믿는 자들은 가상현실 속 전능감에 빠지지 않았다.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라는 지혜의 열매를 손에 넣어, 신적 존재가 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신앙심을 강화해서 연구원들의 타락을 막자?”
“그게 제일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를 이용한 것만으로도 기술 특이점에 도달했는데, 거기에 시간 비율 조정 가상현실을 사용한 연구로 기술발달에 가속도가 붙었다.
마루가 사용한 바 있는 초소형 제트팩.
김 양의 커스텀 엑소슈트에 사용된 복합장갑.
괴수 부산물로 만든 특수탄은 시작이었다.
신형 엔진과 모터를 이용해 만든 비행체가 실증실험을 앞두고 있었고, 그 시제기를 만들어 실험하기도 전에, 지구자기장을 이용한 비행체의 시제기 부품이 제조에 들어갔다.
“지구자기장을 이용한 비행체?”
“그래. 이론상으로는 급유도 충전도 필요 없이 지구 위를 날아다니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 테슬라의 이론을 이용해 어쩌고 그러는데. 어쨌든 지금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
“비행체가 가능하면 엑소슈트도 충전 없이 이용 가능하다는 소리잖아?”
“그렇겠지. 그쪽이 실패해도 초소형 노심 같은 게 나올 판이다. 핵융합 발전도 실증 실험하겠다고 허가 요청서 올라왔다. 가상현실에서는 98% 성공했다는데, 성공확률 99.8% 넘을 때까지 실증실험은 안 된다고 반려했다.”
순간 마루의 심장이 불안감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일신의 무력을 넘어서는 거대한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과학의 물결이.
격변의 파도가.
막아야 할까?
막으려고 한다면 막을 수 있었다. 양자컴퓨터와 포도송이를 동결하면 되니까. 저번에도 그럴까 말까 고민했었다.
동결하면 그걸로 끝날까?
“너도 그랬잖냐. 너랑 김 양, 유 이사 클론들만으로는 어렵겠다고 하지 않았어? 남부연맹 놈들이 침투해 분탕 치면 곤란하다며.”
“······.”
“내 생각도 그래. 신성 왕국이 살아남으려면 일반 병력을 강화해야 해. 그러니까 엑소슈트와 기갑병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국가 전체가 기술적, 과학적으로 제국과 남부연맹보다 높아야 버틸 수 있다고 본다.”
알지. 그런데 심장이 불안하게 뛰는 이유가 뭘까? 마루의 표정이 심각했다.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통제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발달하는 과학기술 때문에 불안한 건지, 괴수의 공격 때문에 불안한 건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
“일단 지금까지 연구한 것까지만 통과하고 그 뒤는 좀 생각해 보도록 하자. 느낌이 좀 그래서.”
“왜 기술발달이 위험할 것 같아?”
기술발달 때문인가? 어쩐지 애매한 느낌.
“그건 아니고. 확실하지 않아서.”
“감이 이상하면 바로 말해주고. 진짜 네가 감이 그렇다고 그러면 살 떨린다고. 아- 그리고 C 구역이면 걔 있는 곳 아니냐?”
“팔 날아가서 기계 팔 붙여준 애?”
미인계로 비비려는 걸 그냥 팔 날려버린 칼잡이 여자. 그 여자를 박아둔 곳이 캐나다 C 구역 방면이었다.
거점요새를 지원하는 후방 지원 부대도 있으니 금방 정리되겠지. 마루와 기순은 특이점을 돌파하고서도 계속 승천하는 기술력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신성 왕국 전도가 그려진 모니터에 점멸하는 붉은 빛이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캐나다 방면 C 구역 11번 거점요새에서 긴급 지원 신호.] [C 구역 18번 거점요새 함락. 구조 신호가 끊겼습니다.] [B 구역 72번 거점요새 거대 괴수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C 구역 24번 거점요새 괴수 무리와 교전 중···.] [7 늑대 대대. 전멸···.] [12 늑대 대대. 퇴각 중.]모니터 속 캐나다 북동부 방면.
한두 곳 점멸하던 빛들이 붉게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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