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3
-만약 작센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이어진다면 그때는 자네와 짐의 관계도 끝인 줄 알게! 또한 작센 선제후의 비보는 모두 돌려주도록!
황제가 엄포를 놓고 연락을 끊었다.
역시 한동안 작센을 직접 침공하는 건 무리일 듯했다. 황제의 요구도 요구지만, 황금연합 역시 작센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작센을 편히 내버려두겠다는 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꼼수가 있는 법이기에.
며칠 뒤, 발푸르기스가 새로운 소식을 갖고 찾아왔다.
“작센에서 난리가 났다. 발러. 이번 평화협정이 굴욕적 외교라고 말이다.”
듣자니 당장 무효화하라고 귀족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예상하던 바입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며 설명했다.
“지금 들고 일어난 자들은 작센 선제후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선제후의 죽음은 작센에서도 최고위층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귀족 대부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탓에 그들은 지금 작센이 얼마나 불리한지 모릅니다. 하니 굴욕적이다, 무효화하라 목소리를 높이는 거지요. 여기서 제가 현실을 알려준다면 어떻겠습니까?”
“난리가 나겠구나.”
“맞습니다. 그리고 그건 남의 집에 불이 나는 것처럼 재밌는 일이지요.
나는 작센 쪽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작센 선제후가 죽었다는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그리고 내가 계승자를 위한 보검과 인장반지를 보관중이라고 주장했다.
-작센 선제후 전하께서 내게 후계자의 자질을 가진 이에게 이 비보를 넘기라 하셨다. 하여 본인은 전하의 뜻을 받들어 가장 적합한 후계자에게 작센의 보물을 넘길 것이다.
이 발표에 당연히 작센은 요동쳤고 복귀했던 특사가 게거품을 물고 수정구로 연락해왔다.
-그걸 공표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아니, 뭐. 자네들이 곤란해 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사정 모르는 귀족들이 들고 일어나기에 도와주려고 그랬지. 그리고 내가 언제 작센 선제후가 죽은 걸 비밀로 한다고 했나?
특사는 수염을 파르르 떨며 삿대질을 한다.
-이게 사람인가! 귀신인가!
-이보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자제해주게. 그대는 제국의 귀족답게 늘 품위를 지켜주게나.
-허허!
특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영민한 자다.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니더작센 공작님을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분께 비보를 돌려주십시오.
그 요구에 나는 뜬금없는 걸 물었다.
-그보다 돈 좀 있나?
-네?
-아니, 그게…. 황금연합에 병사들이 많아서 전비가 부족하네. 자네들이 우정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10만 플로린을 받으셨잖습니까!
그 말에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선제후 전하께서 받으신 거지, 내가 받았나. 이거 왜 이래? 나는 아직 자네들 우정은 구경도 못했어.
-참으로 뻔뻔하시군요! 변경백!
어찌나 특사가 화를 내는지 수정구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소리를 질러댔다.
-너무 수정구에 붙지 말게. 자네 콧구멍 밖에 안 보이니까. 그리고 이만 통신을 끊어야겠네.
-아니, 왜 그러십니까!
-방금 라이프치히 백작 쪽에서 연락이 왔어. 인장반지에 관심이 지대하더군.
라이프치히 백작은 작센 선제후의 둘째 아들이다.
-뭐라고요? 아, 아니! 각하! 각하께서는 니더작센 공작님의 편이 되어 주셔야지요! 평화협정을 타결하게 힘쓴 게 니더작센 공작님이 아니십니까!
-아니, 꼭 라이프치히 백작이랑 손을 잡겠다는 건 아니네. 그래도 연락 온 성의가 있는데 말이나 좀 들어봐야지 않겠나.
나는 걱정 말라고 하며 웃어보였다.
-우리 사이에 우정(금화)이 견실하다면 굳이 걱정할 일이 있겠는가. 그럼 이만 끊지.
-돈 밖에 모르는 수전노 같….
뚝!
수정구를 꺼버렸다. 이제부터 후계자들에게 하나씩 돈을 뜯어낼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조만간 드래곤처럼 금을 바닥에 깔고 헤엄칠 수 있겠는걸.”
***
겨울동안 후계자들이 내게 많은 성의를 표시해 왔다.
“니더작센 공작께서 보내신 성의입니다.”
“라이프치히 백작께서 보내신 성의입니다.”
“마이센 백작께서 보내신 성의입니다.”
“…기타 등등께서 보내신 성의입니다.”
부관인 막스가 질렸다는 듯 몰려온 금화더미를 바라본다. 성의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뇌물이었다. 우리는 겨우내 뜯어낸 금화를 결산해 보는 중이다.
“각하, 저는 불학무식한 용병 출신이라 셈에 약하다고요.”
막스가 죽는 소리를 해댔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작센에서 받은 성의는 자그마치 35만 플로린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이에른 궁정이 공식적으로 지원받은 전비보다도 많았다.
“어서 계속 셈하지 뭐하고 있느냐?”
“각하, 이렇게 받다가 결국 탈나는 거 아닙니까?”
“어허! 본인의 기량을 뭐로 보고 그딴 망발이나? 내 지금껏 뭐든 양껏 먹어왔지만 한 번도 체한 적이 없느니라. 이 세상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있으니 그건 바로 금화다.”
차르르륵.
한 움큼 쥔 금화가 내 손가락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금화가 떨어지며 부딪치는 이 소리를 들어 보거라. 세상에서 가장 곱고 아름다운 음색이 아니겠느냐?”
“각하. 너무 돈에 집착하시는군요. 행복은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어떤 위대한 시인이 그랬잖습니까?
그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행복하고 싶다고 했냐? 금화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지.”
“허….”
날 보는 막스의 시선은, 이 양반이 갈 데까지 갔구나란 느낌이었다. 그래도 욕은 안 하는 게 내가 돈을 늘 군대와 영지를 위해서만 쓰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 개인을 위해서 쓰는 돈은 정말 보잘 것 없었다. 오죽하면 깃털모자도 용병 시절에 쓰고 다니던 것 그대로였다.
“그 시인은 분명 위선자였던 게 틀림없다. 남들이 땡볕에서 개고생 할 때 본인은 포도주나 홀짝이며 인생이 어떻고, 철학이 어떻고 했겠지. 괜히 혼자 비탄에 빠진 얼굴로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어, 라고 대충 펜으로 끄적였을 거다. 아마 그 옆에선 노예들이 포도를 수확하느라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을 걸?”
“…….”
막스가 할 말을 잃어버리자 나는 그에게 포도주를 권하며 쇄기를 박았다.
“옛말에 돈에 침 뱉는 놈 없다고 했다. 돈 싫어하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나는 막스를 재촉했다.
“어서 공손한 자세로 부지런히 금화를 셈하지 못하겠느냐! 본인은 필요하다면 금화를 향해 폐하라고 부를 수도 있느니라.”
“…제가 말을 말아야지요.”
어쨌든 돈을 받았으니 답례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안 그래도 황제가 작센의 보물인 인장반지와 보검을 반환하라고 성화였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냥 그대로 돌려주면 안 될 일이지. 기왕 돌려주는 거 작센과 황제에게 엿을 먹여주면 더 좋은 일이니까.
***
작센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비텐바이어 변경백이 작센 선제후의 죽음을 공식 발표하고 나서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때까지 굴욕적인 평화협정을 외치던 귀족들은, 그게 작센을 위한 신의 한 수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외침은 막아두자 내부에서 다툼이 심화되었다. 사분오열하는 세력은 내부의 진통을 겪으며 줄서기에 들어갔는데, 결국 가장 유력한 첫째 니더작센 공작 파벌과 둘째 라이프치히 백작 파벌로 쪼개졌다.
둘이 형제인 탓에 아직까지는 서로의 면상에 칼을 들이밀지는 않고 있었지만, 곧 칼 이상의 것이라도 들이밀 게 될 것임을 모두 알았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의 작센은 겨울이 끝나갈 무렵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됐다. 비텐바이어 변경백이 죽은 작센 선제후의 유품을 반환한 것이다. 오늘 유품이 도착하게 되어 있어 대전에 모두 몰려온 상태였다.
“슬슬 도착할 시간입니다. 합하.”
“틀림없이 내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합하. 신이 다 얘기를 해놨습니다.”
“좋아.”
대전의 한쪽에서 유력한 선제후 계승후보인 니더작센 공작과 그의 총신(寵臣)인 뒤벤 성백이 소군거리고 있었다. 이 뒤벤 성백은 얼마 전 바이에른에 파견됐던 그 건방진 특사이다.
“비텐바이어 변경백은 틀림없이 유품을 합하께 넘길 것을 맹세했습니다.”
“맹세까지 했다면 틀림없겠군.”
니더작센 공작은 대전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아우, 라이프치히 백작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놈. 오늘 대전에서 울며 쫓겨나가게 될 것이다.”
라이프치히 백작 역시 자신의 형님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이지만 둘은 서로의 배에 칼을 못 박아서 안달이 난 사이였다.
그들은 궁정의 난간을 걸을 때도 조심조심했다. 언제 자신의 형제가 튀어나와 건물 밖으로 밀어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비텐바이어 변경백의 특사가 도착했습니다!”
그 외침에 대전이 들썩였다. 여기 모인 후계자들은 이 중요한 유품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곧 특사 일행이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여기 비텐바이어 변경백 각하의 전언을 전합니다! 상자 안에 온당한 계승자가 누구인지 적어뒀습니다. 후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모두 함께 보고,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달라 하셨습니다!”
“지당한 말이다!”
니더작센 공작은 흥분에서 콧김을 내뿜으로 성큼성큼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상자를 갖고 온 자들은 꾸벅 절을 하더니 물러났다. 어째 서둘러 가는 꼴이 수상했지만 지금 상자에 모두 관심이 쏠려 잡는 이는 없었다.
“드디어 아버님의 유품이!”
“형님,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같이 개봉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니더작센 공작은 당연히 자신의 물건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인 라이프치히 백작이 나서자 기분이 팍 상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러 귀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탓에 성질을 부릴 수도 없었다.
“좋다. 너도 오거라.”
그들은 상자를 사이에 두고 살짝 떨어졌다. 상대가 칼을 뽑으면 언제든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 열어보도록 하라.”
수하를 시켜 개봉하자 기다란 상자 안에서 보검과 반지가 나왔다.
“틀림없이 진품이오!”
“오! 이게 전하의!”
몰려와 지켜보던 귀족들도 감탄을 터뜨렸다.
“거기 편지가 있구려.”
“시종장이 한 번 읽어보시오.”
귀족들의 요구에 시종장이 나서서 편지를 펼쳤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은 사색이 됐다. 그러자 주변에서 의아해한다.
“대체 뭐요?”
“왜 그러시오? 어서 읽어보라지 않소.”
결국 답답했는지 니더작센 공작이 편지를 빼앗더니 큰 소리로 익는다.
“본인은 심사숙고 끝에 작센의 평화를 위해 결정하였소. 인장반지는 니더작센 공작에게, 그리고 보검은 라이프치히 백작에게……. 형제가 합심하여 작센을 평화와 공의로 다스려주시오.”
언뜻 그것은 그럴 듯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 듯한 개소리였다.
“이런 미친!”
니더작센 공작은 들고 있던 편지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반지를 챙긴 뒤 얼른 장검까지 쥐려고 했다. 라이프치히 백작이 그 꼴에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었다.
“그것은 놓으시오! 형님!”
“시끄럽다!”
급기야 두 형제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을 따르는 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였다. 명예로운 작센의 대전이 시장바닥 무뢰배들의 싸움터로 변해버렸다.
“놔! 놓으라고! 퉤!”
“꺼져! 가문의 수치 같으니라고! 카아악~! 퉤!”
형제는 서로의 얼굴의 침을 뱉으며 다투고 있었다.
“이런 일이!”
겨울에 특사로 갔던 뒤벤 성백은 현기증을 느끼고 몸을 비틀거렸다. 가뜩이나 험악한 사이인데 유품이 둘로 나뉘어버렸다. 이제 후계자들은 진흙탕의 돼지처럼 싸우게 될 게 뻔했다.
더듬더듬.
서둘러 품에서 수정구를 꺼내서는 아무도 안 보는 곳으로 급히 향했다. 그는 비텐바이어 변경백과 연결이 되자 따졌다.
“이게 무슨 짓이냐! 변경백!”
얼마나 화가 났던지 마땅히 신분 높은 자에게 할 경어도 없었다.
“우리 작센이 네놈 놀이터인 줄 알아! 아주 거하게 해줬구나! 오늘 이 일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
뒤벤 성백은 길길이 나뛰었지만 상대는 심드렁하다.
“당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이놈! 분명 우리 니더작센 공작님께 유품을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에 비텐바이어 백작은 옆에 있는 식사용 나이프로 이빨 틈에 낀 고기를 쑤시며 대답한다.
“꺼억! 간만에 잘 먹었네. 아, 내가 니더작센 공작에게 꼭 두 개 다 준다고 한 적은 없지.”
“뭐라!”
“내가 쉽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 아닐세. 거, 약속을 지켰다니까 그래. 귀머거리에게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 어찌 자넨 그리 말귀를 못 알아 듣는가?”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아무튼 보내준 돈은 좋은데 쓰지. 하하핫!”
뚝!
그걸로 마법 통신은 끝이 나버렸다.
“이런! 미친!”
뒤벤 성백은 황급히 다시 수정구를 연결하려 했으나 아무 소용없었다. 상대방이 수정구를 파괴한 것이다. 뒤벤 성백은 머리가 어지럽고 손에 힘이 탁 풀려 수정구를 놓치고 말았다.
툭. 데구르르-.
그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아이고야! 그 고약한 악당에게 완전 당했구나!”
뒤벤 성백은 이제 다가올 작센의 운명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귀다툼을 벌일 후계자들에 의해 작센은 조각조각 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흘 뒤.
뒤벤 성백의 저택으로 한 덩이의 소고기가 배달되어 왔다. 거기에는 정중한 필체로 쪽지가 하나 꽂혀 있었다.
[잘 챙겨 드시게. 요즘 자네 안색이 갈수록 안 좋아져서 내 맘이 다 아프다네. 앞으로 작센을 위해 큰일을 하셔야지. -그대의 진정한 벗, 발러슈테드 폰 비텐바이어.]“쿨럭!”
급기야 뒤벤 성백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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