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24
바이에른 선제후는 갈수록 안색이 안 좋아졌다.
원래 그의 얼굴은 붉은 기운이 돌아 건강해 보였다. 또한 수염은 덥수룩했고 곰 같이 으르렁대는 사내였다. 식성도 곰 같아서 앉은 자리에서 맥주 1갤런을 들이마시며, 그 와중에 고기도 계속 입에 집어넣는 걸 멈추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어느 순간 늙은이가 돼버렸다.
“하아….”
바이에른 선제후는 거울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보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주름이 어찌나 깊은지 힘센 황소가 밭고랑을 만들고 지나간 듯했다.
“이게 다 그놈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동생인 빌헬름을 향해 이를 갈았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과인이 잘못하긴 했지만 왜 이제 와서 난리란 말인가? 과거의 죗값은 과인이 지옥에 가서 치를 준비가 됐거늘! 네놈이 설쳐대는 게 우리 조카딸을 힘들게 하는 일이란 걸 진정 모른단 말인가!”
바이에른 선제후는 세상에 그 보다 미운 게 없다는 듯 거울을 쏘아봤다. 그러다 소리 죽인 비명을 터뜨리며 뒹굴었다.
“크으윽! 으윽!”
쓰러진 그의 드럼통 같은 배가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찡그린 이마에는 식은땀이 잔뜩 흘렀다.
“대체! 대체… 이 빌어먹을….”
바닥에 쓰러진 그는 간신히 옷의 앞섬을 터서 가슴팍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그의 흉부가 드러났는데 온통 보기 싫은 흉터가 가득했다. 발푸르기스의 얼굴의 1/3을 덮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흉터였다.
“젠장…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렇게 된 이상 달리 도리가 없어. 과인도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숨을 헉헉거리는데 뒤쪽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앗!”
그리고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캉! 쨍그랑!
바이에른 선제후가 돌아보니 자신의 시녀가 놀라서 쟁반을 떨어뜨린 모습이었다.
“전하. 언제 다치신 거예요!”
시녀는 이 흉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저 자기 주인이 불에 대인 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다.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 전하!”
“아니, 그것보다 일단 과인을 부축해서 의자에 앉혀다오.”
충직한 시녀는 얼른 바이에른 선제후를 부축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단검이 그녀의 목줄기를 베고 지나갔다.
피슈슉!
대동맥이 잘려서 피가 솟구쳤다. 시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저, 전하? 그, 으윽!”
오랜 세월 자신을 돌봐준 시녀의 목을 그어버린 바이에른 선제후는 씁쓸한 얼굴이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아직 이 비밀은 알려져서는 안 된다.”
“아아악!”
시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그 순간, 바이에른 선제후의 두툼한 손이 막아버렸다.
“으읍! 윽! 윽!”
가냘프기 짝이 없는 신음과 함께 시녀의 몸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바이에른 선제후는 육중한 몸으로 깔아뭉개고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으으… 으윽….”
결국 시녀의 눈은 흐릿해졌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카펫이 온통 피로 질척거렸다. 벌어진 그의 앞섬도 피투성이였다. 바이에른 선제후는 탄식했다.
“피비린내! 그래, 이것 말고는 다른 모든 걸 포기해야만 하겠지!”
***
제국에 봄이 왔다. 올봄은 특별히 촉촉한 봄비 대신 피가 쏟아지겠지.
“멋진 계절이야. 이런 계절에는 점심에 운이 좋아 목숨을 구했다고 안심할 수 없네. 저녁 식사는 먼저 하늘에 간 친구와 같이 먹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만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소리지.”
“개소리는 여전하시군요.”
반가운 인물이 찾아왔는데 바로 달타냥이었다. 마왕 페자무트의 옛 땅에 대한 공략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 달타냥은 먼저 복귀했다.
브장송을 공략중인 칼리오네는 자신이 강자인 데다가 지아꼬모 알비노가 보필하고 있었다. 달타냥까지 가 있는 건 인력낭비였다.
“그대가 부관으로 복귀해주니 이 가슴이 마구 뛰는군.”
슬그머니 달타냥의 엉덩이를 만지려 하다 손등을 맞았다.
짝!
“…제 둔부를 탐하시는 건 여전하시군요.”
“미안하네, 자네의 엉덩이에는 자석 같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네. 괜찮다면 그 사과 같은 엉덩이를 한 번 주무르게 해주지 않겠나?”
“주군의 코뼈랑 교환하는 조건이면 가능합니다.”
엉덩이를 만지면 코뼈를 부러뜨리겠다니…. 여전히 무서운 여자였다.
“그러지 말게. 콧대 높은 게 내 자랑이야.”
“그 정도 되야 제 엉덩이 값으로 적당하죠.”
나는 슬쩍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본 뒤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부끄러운지 입술을 살짝 깨문다.
“아무래도 괜히 왔나 봅니다. 비텐바이어로 돌아가겠습니다.”
“무슨 섭섭한 말을. 다시 만나서 반갑네. 오늘 밤 술 한 잔 하겠나?”
“순수하게 술만 마시겠다면 응하겠습니다.”
“좋지, 자네처럼 매력적인 여인이 앞에 있어주기만 해도 멋진 자리가 될 거야.”
“윽…….”
달타냥은 싫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청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무엇을 위해 건배할까요? 주군.”
“이 시대를 위해 건배하지.”
“시대요? 황당하고 이상한 일만 일어나는 이 시대 말인가요?”
달타냥은 아리송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만 일어나는 시대니 본인 같은 협잡꾼이 먹고 사는 것 아니겠나. 빌어먹을 정도로 좋은 세상인 거지. 하하하.”
“…난세에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아쉬워서 어쩔 뻔하셨나요.”
일주일 뒤, 황금연합은 암흑창공의 마왕 파르자의 영지인 뷔르츠부르크로 출진했다. 작센은 내분에 빠졌기에 우리는 거칠 게 없었다. 병력도 생각보다 더 모여서 3만이나 됐다.
“명령서가 쓸모없어진 게 아쉽군요. 틸리 장군.”
“각하께서 그라이펜베르크에서 구한 것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작센 선제후의 이탈로 적의 작전이 모두 수정됐으니 말입니다.”
“그게 없어도 신이 각하께 승리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틸리의 말이 실로 믿음직했다. 진군한지 사흘만에 우리는 넓은 평야에서 마왕 파르자의 대군과 만났다. 그쪽은 2만이었다. 하지만 병종의 질은 우리보다 위였다.
“결국 이렇게 만나는군. 변경백.”
“이런이런. 마왕 전하가 아니십니까?”
양군이 마주하게 되자 드디어 암흑창공의 마왕 파르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뿔이 돋았고 커다란 박쥐 날개를 가진 덩치 큰 사내였다. 두 눈은 홍옥처럼 붉었으며 피부는 야밤에만 나다니는 사람처럼 창백했다.
“과인의 군세를 이길 수 있겠는가? 고르고 고른 병사들일세.”
마왕 파르자는 자신만만해 했다. 그렇지만 그는 아직 전혀 모르는 게 있었다. 바로 내게 인간 중 전장의 지휘자라 불리는 틸리 장군이 있단 사실이었다.
“인간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고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왕 전하.”
“기대하지! 발버둥 쳐봐라! 인간!”
그 뒤 길고 짧은 걸 대보는 시간이 왔는데 자신만만해 하던 마왕 파르자의 군대는 3시간만에 대패해서 도주했다.
“이, 이 무슨!”
마왕 파르자는 얼이 빠진 것 같았다. 틸리 장군은 역시 사기였다. 회전이라면 일단 이기고 본다는 속성이 붙어있는 장군이었으니까. 마왕 파르자는 본인 자신이 상당한 군략가였기에 충격이 더 큰 모양이었다.
“이런 개망신이!”
세 시간 동안 우리는 500명밖에 안 죽었지만 마왕군은 5,500명이나 죽었다. 마왕 파르자는 빠르게 전의를 잃어버렸다. 아는 사람만 보인다고, 그는 틸리가 얼마나 격외의 존재인지 알아차렸다.
“믿을 수 없다! 인간 중에 어찌 저런 장군이!”
마왕 파르자는 분루를 삼키고 몸을 돌렸다. 잘난 대리장군 덕에 차나 마시고 구경하던 나는 기가 살았다.
“살펴 가십시오! 전하!”
희희낙락해 하며 전군을 지휘하느라 녹초가 된 틸리를 치하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한 게 없어서 무안하군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각하. 각하께서 계시니까 마왕 파르자를 견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각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마왕이 아군 수천을 학살했을 것이고, 그러면 전술이고 뭐고 아무 소용 없게 됩니다.”
나 역시 괜히 차나 마셨던 게 아니다. 멀리 있는 마왕 파르자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마왕 파르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명을 내리면서 내가 언제 움직이나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군사적 재능에 의해 회전이 결정됐다.
틸리의 대승이었다.
“각하, 도주한 마왕이 자기 성에 틀어박혀 버렸습니다.”
문제는 그 뒤였다. 마왕이 성벽에 숨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틸리의 실력을 맛 본 그는 단연코 회전을 거부하고 있었다.
“포격이라도 하지 그렇습니까?”
“성에 마법이 걸려서 포탄이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마치 고무처럼 포탄을 튕겨냅니다.”
“이런 황당한….”
포탄으로 무너뜨릴 수 없다면 직접 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희생이 엄청날 터. 결국 방침을 바꿔야했다.
“틸리 장군. 뷔르츠부르크를 순회하면서 약탈하겠습니다.”
“영지를 파괴해서 마왕을 끌어내시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자기도 영지가 박살나면 참지 못하고 나오겠죠. 그 사이 우리는 느긋하게 재산을 쓸어 담읍시다.”
황금연합은 마족의 도시와 마을을 맘대로 유린했다. 약탈이야말로 돈을 버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수단이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모두를 통제했다.
“건장한 오크는 노예로 팔 테니 잡아들여라. 오거는 어린 녀석만 남기고 죽이도록. 크면 길을 들일 수 없다!”
“알겠습니다! 변경백 각하!”
명을 받은 연대장들이 군례를 올리고 흩어졌다. 잡힌 오크들이 굴비처럼 묶여서 마을에서 잡혀 나왔다.
“오거는 비싸니까 신경 쓰도록!”
어린 오거는 잘 세뇌시키면 살아있는 중장비가 된다. 건축에 많은 도움이 되기에 비싼 값에 팔리곤 했다.
찰싹!
주변에서 병사들이 채찍으로 오거의 등짝을 마구 갈겨댔다.
“쿠에에엑!”
오거가 고통에 몸서리를 쳤다. 어린놈이지만 벌써 키가 2미터가 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아군의 총알 세례에 벌집이 된 어른 오거들이 널브러져 굴러다녔다.
“오거라고 해봐야 총알 앞에서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지. 크하하핫!”
한 무리의 총병들이 죽은 오거의 몸뚱이에 올라 온갖 폼을 잡고 있었다. 마치 코끼리 사냥에 성공하고 의기양양해 하는 사냥꾼 같았다.
이후의 싸움은 계속 그런 식이었다. 순식간에 마을 열 개와 도시 두 개를 초토화시켰다. 어찌나 알차게 털었던지 노예를 뺀 재산만 150만 플로린어치나 됐다. 사방에 마족의 시체가 가득해서 들끓는 파리들이 검은 연기처럼 몰려다녔다.
“집과 시체 타는 냄새만 가득하군. 쯧쯧.”
산더미처럼 쌓인 마족의 시체를 보며 혀를 찼다.
철푸덕!
구덩이에 죽은 마족 하나가 던져지자 피로 미끈해진 시체더미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이래도 안 나올 건가. 파르자.”
어서 마왕 파르자가 튀어나왔으면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머무는 도시만 지킬 수 있다면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관 안 하는 것 같았다.
“장군, 우리는 인내심 강한 적을 상대하게 됐습니다. 그 하나의 덕목만으로 그는 우리를 이렇게 난처하게 하는군요.”
내 불평에 틸리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때로는 군략이 밝은 장군보다 인내심이 강한 장군이 더 상대하기 어려운 법이지요.”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가끔 비행 마족이 공격해 오면 총을 쏴서 쫓아버렸다. 황금연합의 모두는 영주와 병사를 가리지 않고 크게 한몫 챙기고 있었다.
한데 그런 와중에 뮌헨에서 뜻밖의 소식이 도착했다.
“각하! 각하!”
약탈한 도시 한 가운데 있는 마족의 건물에서 쉬고 있는데 뮌헨에 있던 부하 하나가 초주검이 되어 찾아왔다. 그는 과거 파펜하임 밑에서 일하던 데이워커 중 하나였다. 뮌헨으로 데려온 이래 계속 첩보전을 맡기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왜 직접 왔어?”
첩보원들과는 마법의 수정구로 연결되어 있다. 번거롭게 전장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이제 보니 그 데이워커는 팔도 하나 없는 상태였다.
“각하! 수정구 마법이 막혀서 직접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데드인 뱀파이어치고 드물게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차분히 말해 보거라.”
“현재 바이에른의 수도인 뮌헨이 지옥이 됐습니다!”
“무슨 소리야?”
데이워커의 표정을 보니 그가 언데드만 아니었다면 눈물을 왈칵 쏟아냈을 것 같았다.
“말 그대로입니다. 뮌헨은 그야말로 인외마경이 됐습니다. 현재 뮌헨에 어둠의 대군인 형언할 수 없는 암흑의 화신이 강신했습니다!”
“뭐라!”
하지만 충격적인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바이에른 선제후 막시밀리언은 수도의 시민을 직접 인신공양해, 형언할 수 없는 암흑의 화신에게 마왕의 위를 받았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발푸르기스는!”
“송구합니다! 저희가 전력으로 그분을 구출하려 했으나 이미 실종되어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이 소식만이라도 전하려 형제들과 탈출을 감행했으나 저 하나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주군께 왔나이다! 크흐흑!”
데이워커는 감정이 격해진 듯 땅바닥에 이미를 쿵쿵 찍어댔다.
“죽여주십시오! 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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