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3
달려오던 오크 하나가 비명을 지르더니 뒹굴었다. 녀석이 놓친 검이 허공을 빙글빙글 돌다 떨어져 박혀서는, 파르르- 떨렸다.
타앙!
두 번째 발을 쏘았다.
“꾸엑!”
이쪽에 화승총을 겨누던 고블린이 풀썩 쓰러진다. 괴물 사냥꾼 루드에게 사격술을 제대로 배웠기에 내 솜씨는 탁월했다. 숙련 5단계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탕! 타당! 타앙!
옆에선 발푸르기스도 등을 오두막에 기대고 앉아서 부지런히 총을 쐈다. 그렇게 열 발을 모두 쏘자 남아있는 놈들이 없었다. 다 죽었거나 쓰러져서 피를 쏟아내며 꼼지락거린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아직 거물이 남았군.”
쓰러졌던 헤작스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반신이 폭발에 휘말려 엉망이었다. 허벅지 살덩이 한 뭉치가 날아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눈은 이미 분노로 돌아버린 상태였다. 헤작스는 한걸음씩 이쪽으로 다가오며 이를 간다.
“발푸르기스. 네년은 인질로 데려가려 했다만 지금 생각을 바꿨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내일 새벽이 올 때까지 숲이 네년 비명으로 가득하게 해주겠다. 감히 이런 곳에 함정을 만들어?”
원기(怨忌)가 뚝뚝 떨어지는 말에 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와 내 격차는 심대했다. 용사로 플레이할 때는 페자무트와 싸우기 전에 거치는 중간 보스 정도였던 놈이, 지금은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실력이면 순식간에 나를 반으로 접어버리고 남는다.
“그리고 네놈!”
헤작스는 허리춤에서 흉흉한 철퇴를 꺼내 들며 나를 지목한다.
“어디서 굴러온 말 뼈다귀인지 모르겠다만, 네놈은 죽음의 안식도 허락받지 못할 것이다. 네놈의 삶을 생지옥으로 만들어주마.”
저건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의 상관인 마왕 페자무트는 피와 죽음을 관장한다. 사령술의 대가란 얘기다. 당연히 그의 부하인 헤작스 역시 사령술에 일가를 이뤘다. 아마 날 죽이고 언데드로 만들어 끝나지 않는 고통을 줄 작정이겠지.
“발러. 저 자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부디 도망가라. 본녀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 테니까.”
이 와중에도 발푸르기스는 내 안위를 염려해 주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두려움에 빠졌던 나는 겨우 용기를 되찾았다. 그래, 내가 오늘 여기에 왜 왔는지를 떠올리자. 이미 준비를 끝내 놨다.
저 헤작스 놈이 쫓아올 것도 알았다. 그리고 폭발로 날려버리지 못할 경우도 대비하고 있었다. 열 자루의 머스킷은 졸개들을 처리하기 위한 안배일 뿐, 두목을 잡기 위한 건 따로 준비했다. 거물에겐 그에 맞는 물건을 써야하는 법이지.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찌 그대는 그리 태평한가! 쿨럭!”
발푸르기스의 몸 상태는 매우 안 좋았다. 나는 그녀에게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헤작스에게 외쳤다.
“헤작스!”
“무엇이냐? 이제 와서 빌어봐야 자비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뜨거운 사막에서 얼음을 찾으라.”
“마족에게 자비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럴 바에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크하하하! 한줌도 안 되는 놈이 허세로구나! 네놈에게 무슨 수가 남아서 그리 당당한 것인가!”
헤작스는 크게 비웃으면서 철퇴로 땅을 내리찍는다.
쿠웅!
실로 묵직한 소리다. 저래서는 일격도 막아낼 수 없겠군.
“어디 총알이 남았으면 쏴보라! 결코 이 두터운 갑옷을 뚫지 못할 테니!”
헤작스는 캉! 캉! 소리가 나도록 자신의 흉갑을 두들겼다. 아닌 게 아니라, 덩치가 큰 헤작스는 딱봐도 엄청나게 두꺼운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입지도 못할 것 같았다. 아마 저런 규격 외의 물건은 해비 머스킷도 어림없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크크크! 일단 네놈 주둥이부터 뭉개버린 뒤 시작해 보실까!”
헤작스는 더 기다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발푸르기스 경! 시간을 좀 끌어주시오!”
“알겠다!”
이미 준비하고 있던 발푸르기스가 앞으로 튀어나가 헤작스를 막아섰다.
카앙!
그녀가 쌍검을 교차해 철퇴를 받아내는 사이, 나는 오두막의 낡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 감춰놨던 것을 힘껏 밀어서 밖으로 꺼냈다. 무게가 장난 아니었기에 이를 악 물어야 했다.
“끄으윽!”
내가 오두막 안에 감춰놓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가죽대포였다. 현재 제국에서 운용하는 대포 중 가장 가벼운 것으로, 군마 한 마리면 끌고 다닐 정도였다.
가죽포라고 해서 가죽으로만 만든 건 아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얇은 구리로 포신을 만든 뒤, 내구력을 위해 가죽으로 감싼 모습 때문에 가죽포라고 불린다. 경량화를 위한 시도였는데 당연히 포의 내구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요긴하지.”
가죽포가 아니었으면 필리를 써서 여기까지 가져오지도 못했다. 아무리 경포輕砲라고 해도 무게가 장난 아니다. 슐랑겔 같은 경포도 움직이려면 말이 여섯 필이나 필요했다. 그걸 생각해 보면 이 가죽포가 얼마나 가벼운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구도가 떨어질 뿐 그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이미 안에는 화약과 1.4㎏가량의 묵직한 경포탄을 넣어둔 상태다. 나는 조심스레 포신을 움직여 헤작스를 겨냥했다. 근거리에다 포신이 얇은 대포다.
게다가 목표는 덩치가 워낙 큰 놈이라 잘만하면 맞출 수 있을 터. 만약 빗나간다면 그야말로 죽은 목숨이다.
“크하하핫! 겨우 이 정도인가! 수녀기사!”
헤작스는 이쪽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을 잔챙이라 그거겠지. 그는 궁지에 몰린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포식자처럼 발푸르기스는 괴롭히는데 흠뻑 빠져있었다.
“발푸르기스 경!”
이를 주시하던 나는 완벽한 기회가 온 걸 깨닫고 소리쳤다. 그러자 발푸르기스는 검 하나를 헤작스의 얼굴에 집어던지더니 물러났다. 놀란 헤작스가 건틀렛으로 얼굴을 가린 순간, 나는 대포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치지직!
쿠아아앙!
사방에 어둠이 깔려서 그런가, 유난히 대포에서 치솟는 불길이 컸다. 그리고 직사로 쏜 포탄은 헤작스의 흉부를 단번에 관통해 버렸다.
카앙!
흉갑이 깨져나가며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피와 살덩이들이 두두둑 떨어진다.
“이… 이 무슨….”
헤작스는 충격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주먹이 들어가고도 남을 바람구멍이 났다. 설마 갑자기 포탄을 맞을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나는 그를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더는 공포는 없었다. 지금 내가 용사는 아니지만 그 시절 하찮은 중간보스를 보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총알이 남았으면 쏴보라며? 아, 이거 좀 미안한데. 내 총알은 좀 크고 무거워서 말이지.”
내 말은 아주 궤변은 아니다. 이 시대의 포탄은 폭발하는 작렬탄이 아니라, 무식하게 큰 철구일 뿐이었으니까.
“갑옷이 단단하면 더 많은 화약, 더 큰 탄을 쓰면 될 문제지.”
“…빌어먹을.”
쿠웅!
묵직한 소리를 내며 헤작스가 큰 대 자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일대에 흥건하게 퍼져간다.
“놀랍군…. 발러. 그대의 기지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설마… 저 자를 대포로 쏴 죽이다니.”
발푸르기스는 검에 기대어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쉬던 발푸르기스는 더 견디질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내 품에 받아냈다. 당당한 기사가 지금은 제 나이 대에 맞는 소녀로 보였다. 그녀는 이제 겨우 16세였다.
“흐으읏….”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참으며 내게 의연함을 보이려 한다.
“본녀는 여기까지인 것 같구나. 발러, 그대의 조력은… 평생 잊지 못할… 으윽… 부디, 그대라도 떠나도록….”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기절했다. 숨결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가늘었다.
“발푸르기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안 변했을까? 나는 이 소녀에게 마음의 부채가 많다. 과거 회차에서 발푸르기스가 날 위해 죽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늘 미안하고 감사했다. 이제야 내가 널 구해주는구나.”
품에서 힐링 포션을 꺼냈다. 이건 발푸르기스가 내게 준 것이었다. 나는 포션병을 옆에 놓고 조심스레 발푸르기스의 흉갑을 벗기기 시작했다.
기절한 상태라 입에 흘려 넣는 건 무리다. 게다가 면갑을 들췄다가는 나중에 무슨 경을 칠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차라리 죽겠다는 정도라, 과거의 나조차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니 출혈점에 직접 포션을 들이 붓는 게 최선이었다. 치료 효과도 그쪽이 더 뛰어나고.
철걱. 철그럭.
흉갑의 전면부와 등판을 가리는 후면부의 고정을 풀고, 목가리개Gorget과 흉갑의 연결부도 풀러냈다. 그러자 흉갑은 반탄력이 느껴질 정도로 밀려 올라왔다.
“뭐, 뭐야? 안에 뭐가 들었나?”
작은 에어팩이라도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어리둥절해 하며 흉갑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출렁. 출렁.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가슴이 그 굴곡이 드러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갑옷 벗은 모습도 한 번 본 적이 없었구나. 갑옷 안에 받쳐 입은 누빈솜옷으로 눌려있는데도 이렇게나 솟아올라 있다니. 게다가 갑옷을 튕겨낼 정도의 탄력이라니? 세상에 이런 가슴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황망함도 잠시, 피로 흥건한 누빈솜옷을 보자 그런 감상은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누빈솜옷을 벗겨냈다. 그러자 새하얀 피부가 드러났는데 피 얼룩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비릿한 혈향이 한가득 올라온다.
퐁!
서둘러 포션의 마개를 열고 환부에 쑤셔 넣고 들이 붓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엉망이 될 때까지 싸운 건가….
“흐응….”
발푸르기스가 다시 신음을 흘렸는데 뭔가 한결 나아진 듯한 음색이었다. 고통이 경감된 듯했다. 그러다 속옷으로 간신히 가려져 있는 하얀 가슴 위쪽으로 시선이 갔다. 살짝 들린 목가리개 아래로 쇄골 부분이 보였는데, 무언가 불에 대인 것 같은 화상자국이 위로 이어져 있었다.
“흠….”
저게 발푸르기스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거 같았다. 저 화상 자국으로 고려해 보건데, 그녀에겐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겠지. 갑자기 호기심이 치솟았다. 발푸르기스는 지금 힐링 포션의 영향으로 가사 상태나 다름없었다. 투구까지 벗겨볼 수 있을 터.
힐링포션은 마시면 즉각 전신이 회복되는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그렇게 편하면야 좋겠지만 실제로는 어림도 없다. 마시고 움직이면 제대로 치료가 안 된다. 근육이 가만히 있어야 제 위치에 이어 붙는다. 근육 뿐 아니다, 뼈마디도 힐링 포션을 복용하기 전에 반드시 바르게 맞춰줘야 했다.
그래서 힐링포션마다 다르지만 마시면 수면에 빠지게 하는 종류가 많았다. 그게 아니라면 몇 십분 동안은 바른 자세로 가만히 있어야 치료가 제대로 된다. 근육이 무슨 인공지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지 맘대로 움직여 제 위치를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음…….”
나는 발푸르기스를 내려다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누빈솜옷을 다시 입혀주기 시작했다.
“아니지, 아니야.”
그녀를 존중하는 만큼 그녀의 비밀도 존중해야 한다.
철걱. 철그덕.
갑옷까지 제대로 입혀놓고 그녀를 반듯하게 눕혔다. 상처가 심하니 최소 30분은 깨어나지 않겠지. 나는 일단 그 사이에 주변을 수습하기로 했다.
“마침 군침이 도는 전리품이 있기도 하고 말이지.”
손을 슥슥 비비면서 죽은 헤작스에게 다가갔다. 이 자식, 비싼 아이템으로 처바르고 다니는 게 걸어 다니는 은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늘 대박이 터졌다.
“과연 뭐가 나오려나.”
‘헤작스의 갑옷’과 ‘헤작스의 철퇴’는 고정 아이템이지만, 나머지는 등급에 맞게 랜덤으로 지급된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헤작스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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