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24
다섯 시간 뒤.
“이… 빌어먹을 놈이… 사람 생고생하게 하고.”
입에서 욕설이 떠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저놈의 땅 드레이크였다. 어쩌다 이 바닥의 깡패랑 만나서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구나.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놈을 쓰러뜨렸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내 옆에서 땅 드레이크의 피를 잔뜩 뒤집어 쓴 뱀파이어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음.”
나는 거만하게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150여 마리의 언데드들이 괴성을 지른다.
키에에에엑!
뱀파이어, 스펙터, 구울 도살자, 언데드 스파이더 등이다. 싸우다 보니 결국 숙련4단계까지 올라서 이제 뱀파이어, 스펙터 같은 놈들을 소환하는 게 가능했다.
숙련3단계에서 자신만만하게 끌고 왔던 언데드 병사 100여 마리는 전멸하긴 했지만 꽤나 성과를 거뒀다. 이전과 다르게 딜이 들어가서 땅 드레이크의 힘을 빼놓는데 성공했던 것.
이후 몇 번이고 그 과정을 반복한 나는, 결국 숙련4단계에 올라 뱀파이어와 스펙터를 잔뜩 불러내 땅 드레이크를 해치웠다. 다행히 이미 밤이 된 탓에 뱀파이어나 스펙터를 불러도 문제가 없었다.
“훌륭한 성과였다. 뱀파이어들이여.”
“과찬이십니다. 주군.”
확실히 뱀파이어가 강력하긴 했다. 땅 드레이크의 거대한 앞발이 뱀파이어 무리 위로 떨어질 때, 지켜보는 입장에 아찔하더라. 또 육편으로 화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 순간 뱀파이어들은 박쥐나 연기 같은 걸로 변해 귀신 같이 피하더라.
스펙터 역시 강력했다. 주변을 떠다니며 계속 땅 드레이크의 생기를 빨아먹는 탓에 놈의 체력을 떨어뜨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주군. 제가 드레이크 하트를 주군에게 바치겠나이다.”
뭣보다 뱀파이어들은 말이 통해서 좋았다. 해골, 좀비와는 다르게 생전의 능력을 다 갖고 있는데다가, 뱀파이어 특수 능력까지 더해져 죽기 전보다 더욱 강했다.
거친 용병이었던 그들은 모든 게 끝장인 줄 알았는데 언데드로 새로운 삶을 부여받자 무척 기뻐했다. 안광이 흉흉한 게 또 뭔가 싸움판을 벌이고, 누군가의 재산을 약탈할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스걱스걱. 퍽! 퍽!
아까부터 뱀파이어들이 양손검을 들고 드레이크의 뱃가죽을 가르고 있었다. 몇몇은 드레이크 하트를 가리고 있는 갈비뼈를 신 나게 내리치는 중이다.
맘 같아선 저 땅 드레이크도 언데드화 하고 싶었지만, 워낙 크고 강한 생물이라 아직 무리였다. 나중에 숙련도가 쌓이면 거대 생물의 언데드화를 해볼 작정이었다. 언데드 땅 드레이크의 등에 바퀴를 뗀 마차를 올려놓은 뒤 타고 다니면 좋을 것 같은데.
“흐음, 지루하구나….”
내 한 마디에 뱀파이어들이 화들짝 놀란다. 그 중 생전에 장교였던 뱀파이어가 얼른 날아가더니 병사 뱀파이어들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주군께서 속도를 원하신다! 돼지 새끼들아! 어서 움직여!”
그사이 옆에선 스펙터 하나가 둥둥 떠서 공손히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섬뜩한 원기를 풍기고 있긴 했지만 외형은 꽤나 미인이었다. 아마 오늘 죽은 병사의 영혼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세게 부쳐 보거라.”
“네, 나리.”
스펙터의 모습이야 일반인들이 보면 지려버릴 정도로 무섭지만, 나는 직업 탓인지 그들이 가진 공포의 기운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스펙터들이 내 기운에 쩔쩔매며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주군! 주군! 드디어 빼냈습니다!”
뱀파이어들이 손에 커다란 드레이크 하트를 들고 서둘러 뛰어온다. 한 번 뛸 때마다 10미터는 뛰어오르는 게 과연 뱀파이어답단 생각이 들었다.
“좋다. 수고가 많았구나. 이쪽으로 내밀거라.”
나는 뱀파이어가 들어 올린 드레이크 하트를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그리고 그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드레이크 하트가 마력으로 진동하면서 새하얀 빛을 뿜어낸다. 나는 남김없이 그것을 흡수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력이 550->2,100으로 오릅니다!>
드레이크 하트로 인해 마력이 2천을 넘었다. 마력 2천은 대마법사의 경지를 의미했다. 비록 아직 마법은 못 쓰지만 마력만큼은 대마법사급이 된 것이다.
잠시 집중해서 마력을 운용해 보자 나를 중심으로 심후한 기파가 요동쳤다. 망토가 펄럭일 정도였다.
구우우웅.
뱀파이어들은 모두 황급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큰 성취를 감축드립니다! 주군!”
“감축드립니다! 주군!”
다른 언데드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만족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땅 드레이크를 죽인 탓에 레벨도 하나 올라 있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자 1->2레벨생명력:1,532->1,564 (저주받은 태생 +654)
마력:2,100->2,150 (마물 카르카의 뼈 마법봉 +50)
어둠:512->542 (저주받은 태생 +122, 마물 카르카의 뼈 마법봉 +70)
힘264->286 (저주받은 태생 +32)
지능139->159
민첩성250->259
건강240->245
카리스마192->232 (마물 카르카의 뼈 마법봉 +13)
능력치가 많이 올라가는구나. 과연 수호자 클래스와 맞먹는 최상위직의 위엄이었다. 그뿐 아니라 신 스킬도 생겼다.
바로 S등급 스킬인 [피눈물 흡수]였다. 스킬명은 거창한데 에너지 드레인 계열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다른 게 있다면 에너지 드레인을 하고 희생자를 언데드 종복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아주 좋군.”
뜻하지 않게 땅 드레이크를 만나 횡재했다. 고생했지만 성과가 훌륭했으니 흡족하다. 다만 시간이 많이 흘러 일정이 빠듯해졌다. 나는 서둘러 마왕 페자무트의 주둔지로 가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내가 굳이 마왕군을 끌어들이려는 건 필립을 나 혼자서 사로잡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원래라면 내 주변에는 해골이나 좀비 정도만 있어야 할 텐데, 땅 드레이크 때문에 뱀파이어와 스펙터를 소환할 수 있게 됐다.
이 정도 전력인데 굳이 번거롭게 위험을 감수해가며 마왕군의 힘을 빌려야 할까?
“아니지, 아니야….”
나 혼자 들이쳐서 필립과 부하들을 쓸어버리는 게 낫다. 그렇게만 한다면 경험치와 아이템은 모두 내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생각났다.
현재 나는 시체를 일으키는 직업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수호자 클래스인 필립의 시체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만약 그를 뱀파이어나 혹은 그 이상의 존재로 만든다면 생전의 강력함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거 잘하면…….”
강철 선제후란 수호자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 수하로 들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었다.
당장 뱀파이어로 만들 긴 아까우니, 나중에 고위 언데드 소환이 가능해졌을 때 써먹으면 된다.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인데.
강철 선제후 필립은 인간성이 쓰레기라 그렇지 그 능력은 탁월하다. 말 잘 듣는 부하가 된다면 더없이 환영할 일이다. 인류의 수호자 중 하나를 언데드 부하로 만든다니,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군.
“그래….”
결심이 섰다.
마왕군은 제치고 나 혼자 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먹고 체해도 혼자 먹으리라. 맛있는 건 역시 나눠먹는 게 아니었다.
“들으라!”
“네! 주군!”
“오늘 밤 우리는 고귀한 혈통의 인간을 사냥한다.”
“받들겠습니다!”
망자의 군대가 행진한다.
언데드들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흥분해 있었다. 마치 축제와도 같은 분위기였다. 산 자를 사냥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올바른 일은 한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달빛이 망자를 축복하는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모젤 강의 지류는 원래 인간들의 도시로 번성한 곳이었지만 마왕과의 오랜 싸움으로 초토화된 상태다. 툴, 낭시, 티옹빌, 룩셈부르크 등 모젤 강을 따라 있던 도시들은 모두 을씨년스러운 폐허가 됐다.
버려진 고성이나 장원도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강철 선제후가 숨어든 장소다. 모젤 강 일대에는 마왕 페자무트의 눈과 귀가 도처에서 필립을 찾고 있었다.
아마 필립은 사흘간 부하들을 모은 뒤, 단번에 포위망을 돌파해 팔츠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겠지. 과거에 강철 선제후를 플레이 했던 경험 때문에, 나는 그의 계획은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었다.
“여기로군.”
우리는 아무도 찾지 않을 거 같은 낡은 고성에 도착했다. 모젤 강 일대는 이런 폐허가 천지였다. 마왕의 군대가 여태 필립을 찾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필립의 도주 예상 반경은 좌로는 낭시에서, 우로는 뇌르틀링겐까지 200킬로미터가 넘는다. 페자무트에게 아무리 부하들이 많아도 추적은 쉽지 않은 일이겠지. 특히나 그의 군대에는 승전 후의 느슨한 분위기가 만연할 테니까.
반면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모두 진입한다.”
150여 마리의 언데드를 이끌고 고성의 무너진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망을 보던 인원이 있었는데 우리를 보고는 놀라서 비명을 터뜨렸다. 달빛을 받으며 죽은 자들이 몰려오니 아마 까무러치고 싶은 기분이리라.
성의 건물 안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황폐화된 성의 중정을 지나 느긋하게 나아갔다. 무너진 망대에서 횃불이 오르고 있었지만 본관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열어라.”
내 말이 구울 도살자들이 가더니 본관의 문을 박살냈다.
콰앙!
낡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쓰러졌다. 언데드들이 우르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느긋하게 그 꼴을 지켜봤다. 부하들이 어느 정도 정리한 뒤에 들어가려는 심산이었다.
안쪽에선 고함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나는 거기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스펙터들에게 명을 내렸다.
“오늘 성을 빠져나가는 이가 없게 하라.”
스펙터들은 홀연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오늘 밤 운 좋게 도망치는 이는 없으리라. 저 냉기를 뿌리는 귀신들이 따라붙을 테니까.
“정리가 됐습니다. 주군.”
안으로 들어갔던 뱀파이어 하나가 나와 공손히 알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필리를 몰아 안으로 들어갔다. 내 주위에는 할버드와 양손검을 든 뱀파이어 열이 따라붙어 호위했다.
다그닥. 다그닥.
주변은 조용했다. 석재 바닥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만 날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많은 사내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있었다. 살아있는 자는 겨우 십여 명 정도로, 그 가운데 강철 선제후 필립이 보였다.
“웬 놈이냐!”
그는 궁지에 몰려서도 기세가 죽지 않고 있었다. 마왕을 상대로는 꼴사납게 도주하더니, 숨어 있던 사이 기개가 좀 되살아난 걸까. 아니면, 허세를 부리는 걸까?
나는 말 위에 올라 흥미롭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재밌군. 불과 며칠 전에는 네놈이 날 말 위에서 내려다 봤었지.”
“뭐? 아니, 잠깐! 네, 네놈은! 그때 그 용병!”
필립은 이제야 날 알아보고 경악에 찬 얼굴이 됐다. 날 가리키는 손가락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의 그런 태도가 내 허영심을 채워줬기에 입가에 절로 호선이 그려졌다.
“사는 건 참 재밌지 않나, 필립? 사람 처지란 게 금방 이렇게 뒤바뀌고 말이야.”
그때 필립 옆에 있던 가신 하나가 분기탱천해서 외친다.
“이놈! 예를 갖추지 못할까! 선제후 전하의 이름을 막 부르다니.”
나는 대답대신 뱀파이어 하나에게 엄지를 살짝 내려보였다. 그러자 뱀파이어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 가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단 칼에 그의 목을 날려버렸다.
서걱!
곧 뱀파이어는 잘라온 머리를 두 손을 받쳤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는 아직도 부릅뜬 눈을 손수 감겨주며 그들에게 말했다.
“예를 갖춰라? 좋은 말이지. 그렇다면 네놈들부터 갖추라. 짐은 망자의 왕이니.”
내 손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죽은 자의 머리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안 그런가? 자네.”
그러자 죽은 머리가 눈을 번쩍 뜨며 말해왔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존귀하신 전하(Seine Durchlaucht)!”
아, 멋짐 울림이구나.
권력의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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