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48
상태창을 살펴보니 레벨 업이 가능해져 있었다. 이번에 쓸어버렸던 정예 마족들의 경험치가 쏠쏠했던 모양이다.
“이제야 4레벨이군.”
최상위직은 다 좋은데 성장이 힘든 게 문제다. 그도 그럴 게, 최상위직 1레벨은 일반직 5레벨과 같게 치기 때문이었다. 경험치도 5배가 필요했다.
바로 레벨 업 버튼을 눌렀다.
[괴물사냥꾼 32레벨] [피도 눈물도 없는 자 3->4레벨]생명력:2,274->2,370 (저주받은 태생 +654, 맨드레이크 +200, 류블라냐 +310)
마력:2,250->2,550 (마물 카르카의 뼈 마법봉 +50)
어둠:572->780 (저주받은 태생 +122, 마물 카르카의 뼈 마법봉 +70)
힘:411->431 (저주받은 태생 +32, 류블라냐 +120)
지능:189->230
민첩성:264->270
건강:447->465 (맨드레이크 +40, 류블라냐 +120)
카리스마:382->420 (마물 카르카의 뼈 마법봉 +13, 류블라냐 +110)
마법 저항력 +2.2%
상당한 발전이었다. 뭣보다 반가운 건 새로운 ‘피도 눈물도 없는 자’ 전용 스킬이 생겼다는 것이다.
<SS등급 스킬, 귀신의 발걸음을 획득했습니다!>
드디어 피도 눈물도 없는 자, 첫 SS등급 스킬이 떴다!
아, 갖고 싶었던 스킬인데 이제야 획득하는구나. 이건 말 그대로 귀신 같은 움직임이 가능해지는 특수능력이다. 나중에 숙련도가 오르면 벽을 통과하거나 땅으로 꺼지는 괴상망측한 짓도 가능해진다.
과거 이 귀신의 발걸음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자와 싸우다 몇 번이나 놓쳤는지 모른다. 당하는 입장에서 피눈물 쪽 빠지는 스킬인 것이다.
한데 이제 내가 써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흥이 올랐다. 이 스킬이 대단한 게 숙련도가 오르면 비행은 물론, 순간이동까지 가능해진다. 그리고 최종 10단계에선 차원이동까지 할 수 있었다.
좋아. 혼자 상태창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홉고블린 뱀파이어 쿠르라크가 찾아왔다.
“전하. 마룡이 전하를 찾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아니 잠깐….”
나는 쿠르라크를 잠시 불러 세웠다.
“자네에게 해볼 게 있네.”
언데드 소환을 이용해 언데드를 만들 수 있지만, 기존의 언데드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 계통이 같아야 한다.
해골을 해골전사로, 좀비를 독좀비로, 같은 식이다.
나는 이번에 언데드 소환의 숙련5단계에 이르러, 낮에도 활동 가능한 뱀파이어인 데이워커를 부리는 게 가능해졌다. 일반 뱀파이어보다 상위의 뱀파이어라고 할 수 있다. 하여 평범한 뱀파이어인 쿠르라크를 데이워커로 업그레이드 할 생각이었다.
“그대 악행의 탑을 쌓은 이여. 산 자들에게 더욱 커다란 악몽으로 다시 태어나라!”
주문을 외우자 내 손에서 어둠이 일렁거리며 퍼져 나온다. 마치 100도씨로 끓어오르는 물과 같은 기운이었다. 나는 그것을 쿠르라크의 얼굴에 대었다.
“크아아아!”
새로운 힘이 쏟아져 들어가자 쿠르라크의 눈, 코, 입, 귀의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전신을 격통하며 마치 환골탈태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훨씬 덩치가 커지고 비범해진 쿠르라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뱀파이어를 데이워커로 업그레이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전, 전하! 이것은?”
쿠르라크가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엄청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렇겠지. 네 녀석의 근본이 달라졌다 할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제 태양빛조차 널 해할 수 없다.”
상위 뱀파이어인 데이워커가 된 쿠르라크는, 뱀파이어 특유의 시체 같은 느낌이 사라져 있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진짜 생명체 같은 모습이었다.
“어찌 미천한 신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쿠르라크는 감격해선 무릎을 꿇었다.
“자네가 짐을 충순히 섬긴다면 그 이상 바라는 바가 없다.”
내 말에 쿠르라크는 이마를 땅에 박았다.
“신이 소멸하는 그날까지 전하를 위해 뼈마디가 닳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마운 말이로군. 후일 이 그로스글로크너에 언데드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자네가 할 일이 많아질 거야. 기대하겠네.”
“맡겨만 주십시오!”
쿠르라크는 똑똑하고 수완이 좋은 홉고블린이다. 나는 그를 중간관리자로 써먹을 작정이었다. 데이워커까지 만들어 놨으니 잘 키우면 준영웅까지는 성장이 가능할 거다.
“잠깐 검술을 봐주도록 하지.”
나는 즉석해서 쿠르라크에게 산호공주의 검술을 일부 알려주었다. 산호공주가 남긴 그 기예는 팔츠 선제후 가의 대표적인 검술 가운데 하나였다.
쿠르라크는 다시없을 기회라고 여겼는지 집중해서 열심히 배웠다. 홉고블린의 조잡한 무술만 익힌 그는 이런 상승기예에 눈이 돌아갈 듯 놀라워했다.
“이 기술에 참으로 큰 지혜가 담겨져 있다고 여겨지옵니다.”
“차후에 또 가르쳐 주겠다. 스스로도 정진하라!”
“네! 전하!”
씩씩하게 외치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내 검술도 이제 제법이라 이렇게 수하에게 한 수 베풀 정도는 되었다.
나는 쿠르라크와 헤어진 뒤 슈바르체토이펠에게 향했다. 인간형의 모습인 그는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고개를 든다.
“왔는가.”
그는 돋보기 안경을 치우고 뻐근한지 어깨를 혼자 두들긴다.
“자네 용인술이 괜찮더군.”
“음?”
“그 홉고블린에게 검술을 가르쳐준 것 말일세. 아랫사람 관리를 잘한다고. 아무리 마법으로 묶인 관계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 관리하면 훨씬 단단해지기 마련이지.”
“아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걸 어찌 아시오?”
“이 몸은 둥지 안의 모든 소리가 들리거든.”
그 말에 나는 살짝 중얼거렸다.
“음… 늙은이 욕도 못하겠군.”
“뭬야!”
발끈하던 그는 내게 다가오다가 놀라서 제자리에 멈춘다.
“어어?”
“왜 그러시오?”
의아해져서 묻자 슈바르체토이펠은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아니! 잠깐 사이에 어찌 이렇게 달라진 거야? 갑자기 실력이 한참 늘어났군.”
뭐야, 드래곤에겐 그런 게 보이는 건가. 하긴 드래곤이니 뭔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레벨 업 한 걸 바로 알아볼 줄은 몰랐다.
“소소한 발전이 있었소이다.”
“그게 소소한 거라고? 하! 어이가 없군. 자네 같은 자가 이 몸의 적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슈바르체토이펠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물론 아직 나는 그보다 훨씬 약하긴 하지만, 레벨이 오를 때마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아마 언젠가는 따라잡힐 걸 예감한 탓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의 잠재력은 저 전설적인 마룡조차 뛰어넘는 수준이니까. 저 오래 묵은 드래곤이 그걸 몰라볼 리가 없다. 그는 곧 알기 쉬울 정도로 변화를 보였다.
“크흠! 자네, 차나 한 잔 하겠는가?”
원래 이놈 새끼! 저놈 새끼! 천한 사령술사 해골쟁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양반의 태세전환이 놀라울 정도였다.
뭐랄까, 저건… 로또 당첨이 예정되어 있는 친구를 대하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목이 마르긴 하군.”
“아, 잘됐구먼. 얼른 타오지!”
살다보니 저 천재지변급 마룡이 손수 타주는 차를 다 마시게 되는구나. 참 별 일이 다 있었다.
“자, 뜨거우니 조심히 들게.”
“감사하오. 그나저나 왜 찾은 거요?”
“아니, 저 뚝딱뚝딱 거리는 소리가 언제 끝나나 궁금해서 말일세.”
“좀 참으라지 않았소. 행사 때까지만이라고.”
슈바르체토이펠이 말하는 건 지금 산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사 때문이다. 앞으로 사흘 뒤, 귀빈들을 초대해서 우호협정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
하여 마왕 오드가쉬는 연회장으로 쓸 가건물을 만들고 있었다. 산지는 나흘 전부터 인부들의 망치와 톱 소리로 요란했다. 그게 꽤나 이 드래곤의 신경을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에잉! 남의 산에서 뭐하는 짓거리들인지.”
“그러지 말고, 거의 다 지어진 것 같은데 같이 밖에 나가보시겠소?”
“시끄럽다. 네놈이… 아니, 자네가 벌인 일이니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좀 서두르라고 해주게!”
실무적인 부분을 이 마룡이 할 리가 없으니 내가 대신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녀는 어찌 하고 있소?”
마왕 오드가쉬에게 진실을 들은 이후 칼리오네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자네가 한 제안을 생각하고 있을 걸세. 마족은 강해. 걱정할 것 없네.”
그래야 한다.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여배우가 파업을 하면 곤란하니까. 나는 알았다고 하고는 둥지 밖으로 나왔다.
뚝딱! 뚝딱!
목공들이 망치를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근처의 돌에 앉아 그 광경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생각에 잠겼다. 저쪽에 한 발, 또 저 쪽에 한 발. 머리속에 온갖 구상이 떠올랐다.
이번 일만 끝나면 발푸르기스의 일을 해결하러 가야겠구나. 영약을 얻으러 와서 어쩌다 보니 시간을 꽤 끌었다. 하지만 일정상 별 문제는 없었다. 세작왕에게 반지를 통해 소식을 물으니 그쪽은 지루한 소송 공방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라 했다.
“음, 화려한데.”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 가건물치고는 굉장히 사치스러웠다. 정말이지 멋진 행사가 될 것 같았다.
그나저나 기름이 좀 남았을까? 마지막엔 저걸 다 태워버리고 싶단 말이지.
***
사흘 뒤. 드디어 행사가 열리는 날이 됐다. 밤이 된 산에는 호화찬란한 등불이 수도 없이 가득 찼다. 마치 축제라도 열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손님들은 미리 설치된 거대한 마법진을 통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육로로 말을 타고 오는 이도 많았다.
“어서 오십시오. 마왕 전하.”
“반갑습니다. 변경백님.”
“어이쿠! 이거 궁중백님 아니십니까? 황제 폐하께선 무탈하시지요?
몰려든 귀빈들은 저마다 모여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자원해서 접객을 맡았다. 오늘 오는 거물들의 면면을 미리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분을 숨기고 일개 사용인으로 가장했다.
“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품위있는 귀빈들을 안내하며 나는 각 인물에 대한 평점을 매기고 있었다.
-서열 14위 마왕 폭식과 탐욕의 헤르자모크는 무척 천박했다. 심지어 이런 자리에서도 소세지를 처먹고 다녔다.
-서열 25위 마왕 카다미르는 음울하고 우유부단해 보였다. 다만 애첩이 화사하게 떠들며 사람을 끌어 자기 정인의 흠을 메워주고 있었다.
-바덴 변경백은 야심만만하나 무능력자였다. 큰 사고를 칠 자니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고 봐서 이용해 먹는 게 좋을 듯했다.
-헤센카젠의 방백 모리츠는 대단한 사내 같았다. 한동안은 마주치지 않는 게 낫겠다. 나 같은 사기꾼에겐 형사처럼 무서운 자였다.
그렇게 혼자 마음속으로 제국의 유력자들에 대한 체크를 갱신하고 있을 무렵,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인물이 도착했다.
“어머, 멋진 신사와 숙녀분들이 가득하시군요. 호호!”
예상치도 못한 장미의 마왕 로엘린이 도착했던 것이다.
이건 정말 의외인데?
나는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그녀가 초대받았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일단 그녀에게 가 예를 갖췄다.
“고귀하신 장미의 마왕께 인사드립니다. 전하, 소인이 안내하겠습니다.”
로엘린은 나를 보며 만개한 꽃처럼 아름답게 웃어보였다.
“멋진 밤이네요! 잘 부탁드릴게요.”
일개 고용인의 모습을 한 내게도 친절하고 상냥하다. 과연 로엘린다운 태도였다. 음… 그나저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긴 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좋은 기회가 아닌가?
페자무트를 처리하기 위해 안 그래도 그녀와 접촉하고 싶었다. 한데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안내하는 동안 최대한 대화를 나눠보면 좋을 듯했다.
“…….”
음.
그런데 이게 영 말을 걸 건수가 마땅치 않았다. 지금 내가 일개 사용인이란 게 문제였다. 게다가 로엘린의 곁에는 지체 높은 마족들이 줄줄이 따르고 있었다.
하니 사용인 주제에 어찌 사적으로 먼저 말을 걸겠나. 아, 난처하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있긴 기회가 아깝고. 혼자 끙끙대고 있는데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로엘린의 성격상 내게 먼저 말을 걸어줬던 것이다. 혼자 고민하는 걸, 자기 때문에 긴장했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멋진 신사분.”
“신사라니 당치 않습니다. 전하. 소인은 발러슈테드 발러라고 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난히 대답했다 싶었는데 갑자기 로엘린이 우뚝 멈춰선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신하들도 당황해서 자기 군주의 눈치를 살폈다.
“전하?”
노신 하나가 나서 묻는데도 그녀는 가만히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큼 내게 다가온다. 그러자 풍만한 그녀의 가슴이 닿을 것 같이 가까이 붙는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발러슈테드 발러?”
그녀의 청녹색 눈동자가 유심히 날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로엘린이 날 알고 있는 눈치였다.
뭔가 분위기가 싸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