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8
그때 갑자기 시스템 메세지가 떠올랐다.
<팔츠 선제후의 군대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명성이 +80이 오릅니다! 병사들이 당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업적이 오릅니다! +2,000>
뭐야? 명성이 80에 업적치가 2,000이나!
“이건, 과분한 영광이군요.”
“그렇지 않다. 그대가 누리기 충분한 것이지. 그것보다 얼른 상처를 치료해야겠군.”
“아닌 게 아니라 앞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몸 이곳저곳이 엉망이었다.
“그럴 테지.”
발푸르기스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한 기병이 빠르게 말을 달려 다가왔다.
“발푸르기스 경!”
“무슨 일인가?”
“선제후 전하께서 무훈을 세운 용병을 보고자 하십니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그의 부상이 심하다. 몸을 추스른 후에 본진으로 찾아가겠다고 전하라.”
“알겠습니다!”
큰 도박이었지만 결국 내 생각대로 됐다. 드디어 강철 선제후, 그 위대하신 수호자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건가. 아퀼라는 분명히 수호자와의 관계가 일반인 플레이의 중요한 요소라고 했지.
“참, 강철 선제후께서 무훈을 세운 이들에게 치료소의 이용을 윤허하셨습니다.”
“그것 잘 됐군.”
이후 우리는 임시로 마련된 치료소에서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목숨을 구할 정도로만 신성력을 발휘해줬다. 이 세계에서 치유력이란 귀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군공을 세우지 못했으면 일반 병사로 이렇게 성직자의 치료를 받지도 못했을 거다. 앞으로 완치까지 몇 달은 정양해야 할 테지만 이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목숨을 구한 샬츠 상사는 감격해서 내 손을 꽉 잡아왔다.
“고맙네. 발러. 자네가 아니었으면 나도 여기 없었을 걸세.”
그는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이 거한은 생각보다 눈물이 많았다. 적은 눈 깜짝하지 않고 때려죽이면서도, 자기 부하들과의 정에는 약한 샬츠 상사였다.
얼마 전에 린츠란 놈이 죽었을 때 샬츠 상사가 자신의 반 년 치 급료를 린츠의 고향 마을에 보내준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이 양반은 나보다 더 전장에서 굴렀으면서 몸에 걸친 장비를 제외하면 아직도 빈털터리였다.
“다 큰 어른이 울고 그러십니까?”
“에끼! 울긴 누가 울어! 하품을 좀 했을 뿐이야!”
생긴 건 삼국지의 장비가 따로 없는데, 부끄러운 지 허둥대는 꼴이 참 재밌다.
“상사님께선 언제나 제게 잘해주셨죠. 보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다 자네가 잘했던 거지.”
나는 그에게 쉬고 있으라고 했다.
“선제후 전하를 만나 뵙고 오겠습니다. 그분께 청하여 마을로 돌아가도록 할 테니 기다리십시오.”
“고맙네. 정말 고마우이.”
막스와 텔만 등, 살아남은 다른 병사들이 내 곁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발러 조장님. 조장님 아니었으면 거기서 오크 놈에게 뒤졌겠지요. 이제 여벌의 목숨이니 앞으로 조장님을 위해 쓰겠습니다.”
“조장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주 없는 놈입니다만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르십시오.”
그들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이들은 나를 진정한 동료로 여기고 있었다. 나는 병사들 하나하나와 손을 마주 잡았다. 서로 굳게 마주잡은 손에서 온기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앞으로 이 인연, 소중히 하고 싶었다.
과거 나는 이들과 비교도 안 되는 영웅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거기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사람들이지만 어째서인지 더욱 정이 갔다. 그리고 일반인이라도 일반인이기에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런데 강철 선제후의 존함이 어떻게 되지? 막스.”
간이침대에 누워있던 막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조장님. 자기 전쟁군주의 이름도 모른단 말씀이십니까? 와, 이 양반. 칼이랑 돈 말고 나머지는 빵에 다 싸먹어 버렸나 보네.”
전쟁군주(Kriegsherren)란 전쟁을 벌이기 위해 용병을 고용한 군주를 칭하는 말이다. 용병 입장에선 물주라고 할 수 있으니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서둘러 둘러댔다.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그래.”
막스는 그런 날 짠하다는 듯 보며 혀를 찬다.
“쯧쯧. 역시 칼 쓰는 것만 연습하면 대가리가 사람 자르는 거 말고는 텅텅 빈다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그려. 역시 저는 조장님처럼 나이도 어린데 그렇게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자기 부모 이름도 까먹을 양반이네.”
“이 새끼가!”
“악!”
손가락으로 상처 부위를 살짝 찔러주자 놈이 자지러진다.
“으아악!”
“어서 토설하지 못할까.”
“으앗! 필립입니다! 필립! 어찌 그 쉬운 것도 모르십니까.”
“너 잘났다. 개새끼야.”
필립이구나. 원래라면 플레이어가 정한 이름이 되는데 이번에는 인공지능이 담당하게 되면서 필립이란 이름이 부여된 것 같다. 일단 의복을 정돈한 뒤 막사를 나왔다. 밖에선 발푸르기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와 같이 가지.”
“배려 감사드립니다.”
일부러 기다리고 있어 준 거다. 내 신분에 쟁쟁한 귀족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야 하니 부담스러울까 싶어서 마음 써주는 게 보였다.
“배려는 무슨. 그냥 가는 길이 같았을 뿐이다. 크흠!”
티를 안 내려는 게, 정말 내가 알던 발푸르기스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훗. 아, 으윽!”
웃다가 관통상을 당한 배가 아파서 몸을 구부정하게 숙였다. 치료하긴 했지만 무리하면 안 된다.
“괜찮은가? 하여간 못 말리겠군. 그런 몸으로 웃어대니. 아니… 그대는 참 특이하군. 내 신분이 높은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실실 웃으며 격의 없이 대하지 않는가.”
눈앞의 발푸르기스는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하지만 내게 그녀는 언제나 함께했던 소중한 동료다. 그러다 보니 좀 허물없었던 모양이다.
“기분이 나쁘십니까?”
“아니, 좀 신선한 기분이구나. 싫지는 않다. 격의 없다고 해서 그대가 무례한 느낌은 아니고.”
나는 발푸르기스의 성격을 잘 안다. 자신이 인정하는 인물이 편하게 대하는 걸 고깝게 여길 리가 없었다. 잠시 발푸르기사와 눈을 마주쳤다. 투구를 쓰고 면갑을 내린 상태라 그녀의 깨끗하고 맑은 눈만 보인다.
누구보다도 고결하고 용기 있는 기사지만, 그녀에겐 경멸의 칭호도 함께하고 있었다. 직접 그녀의 면전에서 그 멸칭을 부르는 이는 결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이렇게 소곤거린다.
추녀기사(醜女騎士) 발푸르기스.
탁월한 실력의 기사지만, 얼굴은 제국에서 제일 못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가 어떤 자리에서나 투구를 벗지 않는 게 못생겼기 때문이란 건 거의 정설이었다. 그래서 발푸르기스의 실력을 질투하는 속 좁은 사내들은 언제나 추녀기사라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그녀 역시 이런 경멸을 모르지 않았다. 그녀의 지고한 신분 덕에 함부로 무례를 범하는 이는 없었지만, 은연중에 배어 나오는 멸시를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아직 16살에 불과한 그녀에겐 꽤 상처가 될 일이었겠지.
그런데 내가 그녀의 멸칭은 전혀 모른다는 듯, 그리고 신분도 신경 쓰지 않고 대하자 신기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노골적으로 계속 쳐다본 탓에 기분이 좀 상한 듯 입을 연다.
“그대도 내 추한 얼굴이 궁금한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 그리 숙녀의 얼굴을 무례하게 쳐다보는가? 본인은 숙녀 취급도 받기 어려운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경의 눈이 참 아름다워서 보았을 뿐입니다. 무례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뭐? 뭐라?”
발푸르기스는 깜짝 놀란 듯 허둥거렸다. 살면서 눈이 예쁘다는 소리를 처음 들어본 듯했다.
“빈말이 아닙니다.”
그녀의 연두색 눈동자는 빛을 잔뜩 머금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사람 눈이 저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다.
“살면서 운이 좋아, 예쁘다는 엘프도 많이 보아왔습니다만, 경과 같은 눈을 가진 이는 없더군요.”
그 말에 발푸르기스는 펄쩍 뛰었다.
“그! 그 무슨 말이더냐! 그대는 정말 이상한 자로군. 본녀를 희롱하겠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저는 경께서 거짓이나 진심을 구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 선제후 전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어서 가시죠.”
“말을 돌리기는…. 흥! 진짜 모를 자로다.”
나는 그녀가 마련해준 말을 타고 지휘부로 향했다.
콰아아앙! 쾅! 쾅!
그 사이에도 중포가 사정없이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구릉지에서는 온갖 함성과 비명으로 시끌벅적했다. 전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 6시간 이상은 지속될 테지.
“저기에 있으시군.”
발푸르기스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탄 채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퍼레이드에라도 나가는 것 같은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 저 가운데 있는, 진청색 판갑에 금을 장식한 갑옷을 입은 자가 강철 선제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자들은 가신단을 이루는 귀족들이고.
나는 그들을 보면서 묘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원래 저 자리는 내 자리다. 이 하르프하임 전투는 강철 선제후란 수호자의 초반 스토리기도 하다. 오늘의 결과에 따라 그의 스토리가 갈라지는데, 패한다면 그는 앞으로 5년간 낭인으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대전쟁이 일어나는 1618년에 화려하게 복귀한다.
이미 몇 번이나 플레이해봤다. 내가 저 자리에는 항상 가신단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오늘은 일개 병사의 신분으로 그를 만나게 되다니.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다 나는 옆에 있는 발푸르기스를 살짝 쳐다보았다.
“아….”
무언가 떠올라 탄식이 터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르프하임 전투는 발푸르기스에게도 매우 중대한 날이었다. 스토리의 진행 여부에 따라 그녀가 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 모르지만, 만약 발푸르기스에게 위기가 온다면 나는 그녀를 구하고 싶었다.
“존귀하신 전하Seine Durchlaucht!”
일단 말에서 내려 필립에게 예를 갖추면서도 머릿속이 부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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