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83
리슐리외는 고개를 흔든다.
“그것보다 어찌 달타냥이 여자란 사실을 아셨습니까?”
과거에 달타냥을 고용해봐서 아는 거지만, 그리 대답할 수 없으니 허세나 부려야지.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본인의 안목을 그 정도로 속이려 한 건가? 마드모아젤 달타냥.”
“으윽!”
남자로 보이는데 상당히 자신이 있었던 듯 달타냥을 자존심 상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의 연기는 완벽했다. 누가 봐도 남자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남자로 키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첩자로서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꽤 실력에 자신하는 모양인데 아직 많이 부족하군.”
내 지적에 달타냥의 얼굴은 수치로 붉게 물들었다. 허세를 부린 게 놀랄 정도로 먹히고 있었다.
“아무튼 달타냥. 내 휘하에 들어와 줘야겠어.”
“어째서 입니까? 지적하신 것처럼 제 능력은 보잘 것 없습니다만.”
그럴 리가 있나. 달타냥도 리슐리외와 마찬가지로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나, 매우 성장 가능성이 큰 영웅이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벌써 검술 대가의 경지에 올라 있을 정도다.
“혹시 제가 여자인 걸 알고 성적으로 회롱하려 하십니까?”
“걱정하는 바는 알겠네만 그건 아니야. 본인은 마음에 둔 여성이 있다네.”
아무래도 예쁘니까 그런 걱정을 하는 게 당연하겠지. 물론 그녀가 매력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뭔가 여자치고는 잘생긴 얼굴이라고 할까? 분명 미녀인데 남자보다 같은 여자에게 더 인기 많을 듯한 스타일이었다. 키도 훤칠하게 크고 말이야.
“그대를 신하로만 대할 걸세. 여자 취급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게나. 나는 마음속의 숙녀분께 최선을 다할 생각이네.”
“…음, 백작께서는 뱀과 같으신데 가슴에는 어울리지 않는 순정을 품고 있군요. 혹시 그 숙녀분께서 상속받을 재산이 많습니까?”
뜨끔.
역시 첩보원이라 그런지 날카롭구나. 하지만 내가 발푸르기스를 마음에 둔 건 재산 때문이 아니다. 언제나 함께 싸웠던 기억 때문이지.
물론 외형도 취향 직격이긴 하다. 아름다운 금발에 여신격을 닮은 미모, 그리고 언젠가 흉갑을 열었을 때 본 광경은 엄청났었지. 뭐랄까, 젖과 꿀이 흐르는 어머니 대지를 본 기분이었다. 그 향기와 따뜻함에 얼굴을 묻고 영원히 쉬고 싶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흠… 그녀가 이것저것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네. 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야. 본인 재산과 작위가 어디 가서 꿀리는 이는 아니니까.”
“그리 말하신다니 알겠습니다.”
일단 내게 불순한 의도가 없다는 걸 알고 달타냥은 안심한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한시적인 신종을 제안해 왔다.
“도시를 구해주시면 백작님께 5년간 봉사하겠습니다. 그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그 말에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렇게 하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같이 지내면서 마음을 얻는 수밖에. 나름 나는 늪 같은 군주라고 자부한다. 일단 내 품에 들어온 유능한 신하는 이후 빠져나간 사례가 없다. 온갖 수작질을 다해서 곁에 있게 할 테니 달타냥은 사실상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바로 신종을 맹세하게.”
내 말에 달타냥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정의의 신격 루우벤께 맹세코 앞으로 5년간 비텐바이어 백작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봉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좋네. 일어나게 달타냥.”
나는 만족해하며 리슐리외에게 말했다.
“그대가 증인이네. 리슐리외.”
“알겠습니다. 자, 이제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부디 성을 위난에서 구해주시죠.”
리슐리외는 아마 내가 군대라도 데려와서 상황을 해결해 줄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해결책은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마왕 쟈케르와 트리어 선제후가 같이 폭사한 뒤에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었다. 나는 그 사건을 알고 있기에 미리 이용할 작정이었다.
“일단 며칠만 기다리게. 계책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이 있네.”
지아꼬모 알비노가 이번 일을 매끄럽게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시간상 슬슬 돌아올 때가 됐다.
“달타냥. 그대 역시 나를 도와야 하네.”
“알겠습니다. 주군.”
그녀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어차피 정의의 신격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후다. 무리한 부탁이 아니면 따라줄 거다.
“하지만 이미 양측의 대군이 도시 근처에 접근했습니다. 며칠을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백작님.”
“걱정은 이해하네, 리슐리외. 아마 내일쯤은 최후통첩이 오겠지.”
“알면서 그러십니까?”
“시간을 벌 방법이 있네. 본인이 시키는 대로 하게.”
“허어!”
리슐리외는 이제는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양 진영에서 정말로 최후통첩이 도착했다.
-본왕은 관대한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대들은 신속히 답변하지 않았으니 본왕의 심기를 거스른 그 죄가 크다고 하겠다. 이에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확답을 주지 않으면 본왕이 저 거만한 선제후를 무찌른 후에 결코 도시에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마왕 쟈케르의 협박은 아주 노골적으로 변해있었다.
-과인은 그대가 갖고 있다는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이 의심스럽다. 인류 대적인 마왕이 저 앞에 왔는데 어찌 과인의 손길을 거절하는가? 속히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후일 선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리어 선제후의 협박도 점입가경이었다. 역시 바스토뉴의 시민들이 학을 떼며 싫어할 법하다. 물론 그런 감정적인 이유만으로 두 거물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안토니 백작 사후에 이곳은 자유도시와 비슷한 입장을 얻게 됐다. 현재 리슐리외는 성백이긴 하나 시장과 비슷한 포지션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다시 군주권 밑에 무릎 꿇기란 싫을 터. 특히 두 거물 다 영지민을 강력한 권위로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었으니까.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백작님.”
리슐리외의 재촉에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게.”
“네? 그게 무슨?”
“양 진영 모두와 협정을 맺으라는 말이야.”
나는 마왕 쟈케르에게 가서 기꺼이 도시를 바치며, 트리어 선제후를 토벌하는 일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라 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마왕군에 부족한 군량을 지원하겠다고 하라.”
“백작님!”
“일단 계속 듣게. 그 뒤에는 트리어 선제후에게 같은 약속을 하도록.”
트리어 선제후에게도 기꺼이 도시를 바치며, 마왕 쟈케르를 토벌하는 일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트리어 선제후는 군량보다는 전비가 부족하다고 하니, 금화를 지원하겠다고 하라.”
“어찌 이 일을 감당하려고 그러십니까? 양쪽 모두와 협정을 맺은 게 들통나면 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뭐가 걱정인가? 당분간 안 들키면 그만인 것을.”
“백작님!”
“대신 조건이 있다. 그들과 협정을 맺는 건 본인이 아니라 현재 도시의 지배자인 리슐리외 그대다.”
리슐리외는 곧 내 의도를 파악했다.
“설마, 후일 협정의 무효를 주장하시려는 겁니까?”
“그렇다. 수도에 연락해 보니 황제의 특사가 출발했다고 한다. 황제 폐하의 의지에 의해 이미 이 도시는 나의 것이 됐다.”
즉, 리슐리외와 맺은 협정은 모두 무효가 되는 거다. 애초에 그는 협정을 맺을 주체로서 자격이 없으니까.
“미안하지만 리슐리외, 그대가 모든 책임을 져줘야겠다.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해줄 테지?”
“흐… 물론 그럴 수는 있습니다만.”
“앞길을 너무 걱정할 거 없어. 비텐바이어에서 새출발하게 해줄 테니까. 내 휘하에 있으면 작위가 오를 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걸세.”
“그건 두고 볼 일입니다. 한데 결국 백작님께서 이 도시를 접수하겠다면, 지금 진군해 온 저 거물들에게 넘기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트리어 선제후에게 먹히나, 비텐바이어 백작인 내게 먹히나 군주권에 굴복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시민들은 백작님을 해방자로 생각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도적에 지나지 않다면 누가 진심으로 따르겠습니까?”
“그건 걱정할 것 없네. 현재 도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끝나지 않고. 황제 폐하께 주청하여 제국 자유시로 만들어주지.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정말이십니까!”
지금 바스토뉴가 얻고 있는 자유는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그 권리를 황제의 이름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허언이 아니네.”
“하면 시민들은 절대적으로 백작님을 지지할 것입니다.”
“도시는 자유를 누릴 걸세. 그저 형식적이나마 본인을 군주로 인정하고 약간의 세금을 내면 돼. 하면 일절 바스토뉴에 간섭하지 않겠네.”
나는 그런 도시의 앞날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후 일단 명대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시간을 끌고자 하는 의도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정말 양 진영을 물리치실 수 있으신 겁니까? 제가 실각한 후 협정이 무효임이 밝혀져도, 저들의 분노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법적으로 따질 수 없지만, 폭력적으로는 따질 수 있단 소리였다.
“걱정 말게. 양 진영은 화해할 수밖에 없을 테니.”
내 확답에 리슐리외는 길게 한숨을 내쉰 뒤 허리를 숙여 보인다.
“알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신다니 따르겠습니다. 부디 백작님의 계책이 하늘에 닿기를 기대합니다.”
“납득해줘서 고맙군.”
“그래도 어떤 방법을 쓰실지 귀띔이라도 해주실 수 없는지요?”
“간단하네. 이번 사태는 사랑이 해결해 줄 걸세.”
내 대답에 리슐리외는 실로 기괴한 걸 들었다는 표정이 됐다.
“사랑이요?”
***
리슐리외는 내가 명령한 대로 양 진영 모두와 비밀스럽게 협상을 맺었다. 바스토뉴에선 양측으로 막대한 뇌물이 전달됐다. 물론 그쪽에서도 이중협정을 맺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크게 상관없는 문제라 여긴 듯했다. 어차피 도시를 바치겠다고 약속이 있었다. 이제 눈앞의 대적만 무찌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판단했겠지.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미 도시의 지배자가 바뀐 걸 모르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차분하게 지아꼬모 알비노가 도착하길 기다렸다.
성 밖의 넓은 평지에선 마왕 쟈케르와 트리어 선제후의 군대가 대치를 시작했다. 양 진영 사이는 최후통첩과 막판 협상을 위해 사절이 부지런히 오갔다.
“저래봐야 부질없지. 한 판 붙는 수밖에. 안 그런가? 달타냥.”
내 물음에 달타냥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거, 어지간히 안 좋게 보이고 있구먼. 그녀는 명령대로 날 따라다니고는 있지만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다.
하긴 뭐 지금 내 인상이 좋을 리가 없지. 이해할 수밖에. 후일 그녀의 충심을 천천히 얻어가면 된다. 그럴 자신도 있고.
“달타냥, 우리 목표는 요인 납치다.”
“납치요?”
오늘 처음으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설마 불의 마왕이나 트리어 선제후를 납치하실 생각이십니까?”
“하하, 농담이 지나치군. 그 두 양반은 암살할 수도 없는데 납치라니.”
“그렇죠. 말씀을 듣고 보니 그들의 휘하의 요인을 납치하려는 것 같은데, 그 정도로 그 둘이 흔들릴 리가 없습니다.”
그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인질이 잡혔다고 성격 불같은 그들이 멈출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세기의 커플이라면 어떨까?”
“세기의 커플이요?”
달타냥은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기다리면 알아. 아마 세뇨르 까삐딴이 오늘이나 내일 밤이면 돌아올 거야.”
과연 내 계산대로 지아꼬모 알비노는 다음날 밤에 도착했다.
“주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는 힘든 여정의 흔적 탓인지 옷이 온통 지저분해져 있었다. 핏자국 역시 잔뜩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밝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세뇨르 까삐딴.”
“네, 주군.”
“임무를 끝내자마자 이런 부탁해서 미안합니다만, 저랑 같이 할 일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뭡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를 납치하는 일입니다.”
호기심을 보이던 그는 내 대답에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네? ”
“아, 그것만이라면 재미없겠지요. 기왕 하는 거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청년도 같이 납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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