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89
마왕 쟈케르와 트리어 선제후는 결국 결혼 동맹을 승낙했다. 이로써 제국 서부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나는 이번 일을 멋지게 해결한 주인공으로 엄청난 명예를 얻었다.
“주군! 바스토뉴 시민위원회에서 주군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비텐바이어 의회에서는 내게 최고의 지지를 표해왔다. 세련된 말로 써진 그 편지를 요약하면 간단하다.
-우리 영주님이 최고시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 새끼들, 충성심 기특한 것 좀 보게. 흐흐흐.”
그 외에도 제국 곳곳에서 찬사를 담은 편지와 선물이 도착했다.
-검 한 번 휘드르지 않고 평화를 이룩한 당신의 업적에 감탄했습니다. (발라르 기사단)
-마법 이상의 지혜에 찬사를! (헤센의 마법길드)
-원로들은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겠소. (제국 원로회의)
유능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의 구애 편지 역시 끊이질 않았다.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다, 당신을 위해 노래하고 싶다, 함께 강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자 등등 다양했다.
이 서부의 문제는 워낙 제국 전부의 관심을 끌고 있던 일이라, 나는 그야말로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많아서 그런 성원에 응해줄 수 없었다.
일단 레온을 만나러 갔다. 그는 현재 바스토뉴에서 율리아와 함께 머물고 있었다. 신혼의 달콤한 꿈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로렌스 주교님. 아니, 비텐바이어 백작님이라고 불러야할까요?”
“편하신 대로 부르십시오. 공자.”
신분은 속인 일은 얼마 전에 사과했다. 다행히 레온은 이해해줬다.
“합방은 착실히 하고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걸요.”
“많은 이들이 사랑의 열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말에 레온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다.
“노력 중입니다.”
“아내에게 많은 사랑을 퍼부어 주십시오. 두 분의 아이는 평화의 상징이 될 겁니다. 공자께선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레온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모두 비텐바이어 백작님께서 하신 거지요. 솔직히 이번 일로 크게 감탄했습니다.”
레온은 내 손을 잡아왔다.
“평화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정적으로 충돌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기쁘군요.”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군요.”
레온은 내가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하단 표정이었다.
“제가 공자께 드리고 싶은 부탁은 한 가지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아!”
레온은 크게 기뻐했다.
“정말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공자의 우정을 기대해도 좋겠습니까?”
“기꺼이요! 안 그래도 비텐바이어 백작님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을 내밀어 주시다니요.”
당연히 내밀어야지. 그는 앞으로 선제후의 위를 계승하고 광활한 땅을 다스리게 될 테니까. 우의를 다져두면 앞으로의 행보가 유리해진다.
“앞으로 공자와 굳건한 동맹이 되었으면 합니다. 난세를 함께 헤쳐 나갑시다.”
그는 인정 많고 어질어 난세에 어울리는 군주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도와준다면 달라질 수 있겠지.
“저 역시 바라마지 않습니다! 비텐바이어 백작님의 일이라면 발 벗고 도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의 손을 굳세게 잡았다. 이렇게 점점, 제국 내에 나의 동맹 세력이 늘어가고 있었다.
***
일주일 뒤 새로운 칙서가 도착했다.
슬슬 결혼 동맹에 관한 합의가 끝나가고 있던 지라 마왕 쟈케르와 트리어 선제후의 진영은 비상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런데 칙서가 나와 트리어 선제후, 불의 마왕 쟈케르까지 이렇게 셋에게 내려왔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우리는 다시 한 번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가뜩이나 억지로 딸자식 시집 보내느라 짜증나는데 인간의 우두머리가 본왕에게 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인가! 감히!”
마왕 쟈케르는 여전했다. 당장이라도 주변을 불태울 것처럼 으르렁댔다.
“좀 조용히 하게. 시끄럽군.”
트리어 선제후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핀잔을 주자 마왕 쟈케르가 분통을 터뜨렸다.
“이 늙은이가 이제 사돈이라고 기고만장해졌구나! 본왕은 파혼을 하고 이대로 전쟁을 벌여도 상관없다!”
“저런 무식한! 끌끌.”
이제 가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하는 짓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멱살은 안 잡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한동안 티격태격하던 그들은 황제의 특사가 나타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비텐바이어 백작은 들으라!”
특사의 늠름한 목소리에 홀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최근 제국 서부에 다시 찾아온 평화는 짐에게 커다란 기쁨이다. 하여 비텐바이어 백작을 치하해 새로운 관직을 내린다. 금일부로 비텐바이어 백작을 제국의회Reichstag에 출석할 수 있는 제국의원으로 임명한다!”
주변에서 박수와 축하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큰 영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폐하께서 백작님의 공을 알아주셨군요.”
하지만 아직 특사의 말이 끝나지 않았기에 나는 가볍게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또한 짐은! 제국의회의 의원이 된 비텐바이어 백작에게 특별하고 명예로운 존칭인 각하Erlaucht의 사용을 허한다!”
다시 축하가 쏟아졌다.
“이제부터 각하라고 불러야겠군요!”
“감축드립니다!”
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축하에 감사를 표했다. 그때 마왕 쟈케르가 귀를 후미며 심드렁하게 말한다.
“흥! 그깟 의원이며 각하가 뭐가 중요한가! 차라리 본왕에게 오라. 이 세상 최고의 쾌락과 부를 베풀어주지. 아리따운 마족 처녀를 수도 없이 주마. 네놈은 제법 쓸모가 있어 보이니 본왕이 특별히 권하는 것이다.”
맙소사. 설마 불의 마왕 쟈케르에게 영입 제의를 받을 줄이야. 과거 여러 차례 그와 만났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인간을 쓰레기 취급하는 그의 성격을 미뤄볼 때, 저 제안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그의 가신들은 놀라서 술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에겐 이번 사건의 일처리가 꽤나 인상 깊었나 보다.
“흥! 어림없는 소리!”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트리어 선제후가 거대한 덩치를 일으키며 끼어든다. 저 노인네의 떡대를 사람인지 오거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비텐바이어 백작은 귀한 신분을 가진 제국의 귀족이네. 한데 어디 근본도 알 수 없는 마족 여자를 붙여주려 하나? 적어도 율리아 공주랑 비슷한 처자는 데려와야지!”
마왕은 혈통을 잇는 게 매우 어려워 후계자가 귀하다. 마왕 쟈케르는 하렘에 많은 여자를 뒀지만, 율리아 공주처럼 정치적 패로 써먹을 딸이 더는 없었다.
“뭐, 뭐라! 이놈이!”
그래서 발끈하는 그를 보며 트리어 선제후는 씩 웃었다.
“사돈과 다르게 이쪽은 파릇파릇한 딸아이가 하나 있지. 어떤가? 비텐바이어 백작. 올해 12살이니 바로 데려가면 될 걸세. 벌써부터 그 미모가 범상치 않아 다들 트리어 최고의 미녀가 될 거라고 얘기하고 있지.”
이런, 트리어 선제후까지 내게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
“어찌 저 같이 별 볼일 없는 자가 전하의 따님과 혼인하겠습니까?”
“겸양할 것 없네. 비텐바이어 백작. 그대야말로 떠오르는 신성과 같으니 과년한 딸이 있는 자라면 누구든 사위로 얻고 싶어할 걸세. 또한 황제 폐하의 총애가 가득하니 이 얼마나 전도유망한가.”
트리어 선제후는 나를 칭찬하면서도 매섭게 쏘아본다.
“솔직히 이번 일은 그대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비텐바이어 백작, 그러니 이 무례는 내 딸을 데려간다면 용서해주지. 어떤가? 과인의 사위가 될 텐가? 아니면 과인과 척을 질 것인가?”
이쪽은 압박이 엄청난데. 난처해하자 마왕 쟈케르가 끼어들었다.
“이 늙은이! 본왕이 눈독들이고 있으니 얌전히 물러나라!”
“흥! 그저 딸을 내주겠다는 것뿐이다. 물량으로 떼우려는 누구와 다르게!”
그들은 서로 이마를 들이밀며 으르렁댔다. 흡사 성난 황소 두 마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두 분 전하. 칙서의 내용이 우선입니다.”
나는 일단 말리며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늙은 괴물 둘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좋다. 하지만 조만간 트리어에서 딸아이를 데려올 테니 만나 봐야할 걸세!”
“이렇게 된 거, 본왕의 아내들 중 원하는 여자를 골라도 좋다!”
…누구의 제안이든 버거운 것이었다. 당분간은 받아들일 듯 간만 보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내가 조만간 다시 얘기하자고 한 후에야 특사가 입을 열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 상황이 지긋지긋한 듯 얼른 떠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인지 칙서를 빠르게 읽어갔다.
“트리어 선제후는 들으라. 현재 라인강 상류의 서쪽 도시들이 물의 마왕에 의해 도탄에 빠졌다. 하여 짐은 그대에게 군을 이끌고 출병하여 제국의 신민들을 구할 것을 부탁하노라. 또한 그렇게 수복한 도시들은 과인이 그대에게 할양할 것을 약속하겠다.”
“음!”
생각지도 못한 내용인 듯 트리어 선제후의 눈이 커졌다. 특히 마왕을 친다는 명분 하에 라인강변의 도시를 차지할 기회가 역시 혹하겠지.
마왕 쟈케르에게 내려온 황제의 칙서도 같은 내용이었다. 다만 마왕인 그의 신분을 고려해 정중히 요청하고 있었다. 또한 그에게도 동일하게 점령한 도시의 통치권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호오….”
마왕 쟈케르도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인간의 땅을 이렇게 정당한 명분을 갖고 점령할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까.
뭣보다, 물의 마왕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인 것 같았다. 그에게 물의 마왕은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좋다! 인간 우두머리의 뜻을 받아들이지! 마침 할 일을 잃고 밥만 축내는 군대가 본왕에게 있지 않는가! 하하하핫! 가서 그 고약한 메두사의 군대를 격파해 주겠다!”
한 번 결정하자 마왕 쟈케르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
“군대를 움직일 준비를 하라!”
“네! 전하!”
그와 그의 가신들은 새로운 공격 목표로 향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갔다. 마왕 쟈케르의 군대는 강한 데다가 숫자도 충분하다. 오래된 숙적을 두들기기에 자신감이 충만하겠지.
마침 껄끄러운 트리어 선제후와의 관계도 정리했으니 마음껏 날뛸 작정인 것 같았다. 나는 아직까지 생각 중이던 트리어 선제후에게 말했다.
“전하. 전하의 군대가 저들에게 뒤질 게 무엇이겠습니까? 게다가 이번 일은 대의명분뿐 아니라 이득이 확실합니다.”
“크흠….”
고민하던 그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좋다! 우리도 참전한다! 저 마왕 놈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 최대한 많은 도시와 마을을 물의 마왕의 압제에서 해방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전하!”
트리어 선제후 역시 가신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나는 애써 미소를 억누르며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마왕 쟈케르와 트리어 선제후의 군세는 막강하다. 하지만 마왕 아뮨데 역시 라인펠덴에서 막대한 수의 수서 마족을 부화시켰다. 또한 오크장군이 이끌던 페자무트의 군대도 흡수했고.
엄청난 난타전이 될 것 같았다. 그야말로 라인 강에는 핏물만이 흐르겠지.
“모든 게 내 계획대로군.”
하지만 승리를 자신하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파펜하임이 갑자기 연락해 왔던 것이다. 그는 제국 서남부 여기저기에 뿌린 데이워커들을 총괄하고 있다. 필시 뭔가 중요한 정보를 얻은 듯했다.
-주군! 큰일이 났습니다.
-왜 그러느냐?
-물의 마왕 아뮨데와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전격적으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뭐라!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나는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왜 아뮨데랑 프리드리히가 동맹을 맺어!
이해가 안 되는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게,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마왕 페자무트와 동맹이기 때문이다. 지난 하르프하임 전투에서 프리드리히는 조카인 필립을 배신하고 새로운 팔츠 선제후가 됐다.
당시 모든 계획은 마왕 페자무트와 함께 이뤄낸 것으로, 이후에도 둘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갑자기 마왕 페자무트와 적대관계인 마왕 아뮨데와 동맹을 맺은 것이다.
당연히 이상했다.
-아뮨데가 라인강 상류 서쪽을 홀랑 먹어치웠다. 페자무트의 뒤통수를 거하게 친 행동이지. 이제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인데 어찌 프리드리히는 동맹인 페자무트를 버리고, 그의 원수인 아뮨데와 손을 잡은 거란 말이냐?
정말 궁금했다.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동맹을 갈아치운 이유가.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금전 문제라고 합니다.
-금전?
-맞습니다. 지난 하르프하임 전투 때 페자무트는 프리드리히에게 막대한 전비를 빌렸다고 합니다.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엄청난 부자다. 마왕도 손을 벌린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전비를 페자무트가 갚지 않고 떼어먹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갚을 여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 페자무트는 인스부르크에서 오도 가도 못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 중이다. 빚을 갚기에 여력이 없을 터.
-그래서 프리드리히가 격분한 건가?
-맞습니다.
-돈 문제로 둘의 감정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상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생각지도 못한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페자무트, 이 멍청한 놈!”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바보 같은 놈이 돈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팔츠 선제후라는 강력한 동맹을 적으로 돌아서게 하다니! 밀려드는 황당함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뭐랄까, 상대가 너무 병신이라 내 예측을 뛰어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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