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 목표를 이루는 방법(2)
“안녕하십니까. 안 타십니까?”
그에 반해 유빈은 침착했다. 호심법이 그의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 주고 있었다.
“······늦게 퇴근하는군.”
엘리베이터에 탄 최상렬이 6층을 눌렀다.
7층에서 6층으로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6층에 도착하자 문이 열렸다.
최상렬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유빈이 가볍게 목례하고 문이 완전히 닫히려는 찰나 다시 문이 열렸다.
최상렬이 아래 화살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 주겠나?”
유빈이 최상렬을 빤히 쳐다봤다.
며칠 사이에 주름과 흰 머리카락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말씀하십시오.”
“전광용 상무와 김세윤 원장 건. 자네 작품인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유빈이 조사해 첼시 사장에게 전달한 건 맞았다.
“그렇습니다.”
유빈의 당당한 대답에 최상렬 부사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 대 치고 싶은 욕망이 가슴속에서 들끓었다.
“왜 작년에 밝히지 않은 거지?”
“결정적일 때가 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작년에는 부사장님의 권력이 하늘을 찌를 때였지만, 이번에는 아니었죠. 그 차이일 뿐입니다.”
유빈은 솔직히 이야기했다. 이제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다.
“으으음······.”
무거운 신음이 앙다물고 있는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전생을 꿰뚫고 있는 유빈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최상렬로서는 젊은 사람답지 않은 그의 인내심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선덕여대 축제 때도 부사장님의 입김이 들어갔겠지만, 증거가 없어서 제출하지 못했군요.”
감정이 실리지 않은 유빈의 말투에 최상렬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다.
‘무서운 놈······.’
완벽한 패배였다.
유빈은 자신이 짜 놓은 판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무거운 패배감이 최상렬의 양 어깨를 짓눌렀다.
예상은 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그랬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버튼을 누르고 있는 최상렬의 팔이 어색해지려 할 때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힘이 많이 빠진 목소리였다.
“자네의 목표가 제네스 글로벌 CEO라던데 맞나?”
최석원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하, 진심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알 수 없는 반발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동안 공들였어도 한국 지사 사장조차 되지 못한 최상렬이었다.
유빈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이번에 본사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헛꿈을 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지. 한국인 출신 사장? 하하. 그건 그저 꿈일 뿐이야. 유리 천장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허망한 웃음이 엘리베이터 안을 울렸다.
“그 꿈을 위해서 10년 동안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실패하고 나니 그 꿈이 헛꿈으로 보이는 거겠죠. 전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자네도 내가 욕심이 많아서 이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요. 위를 바라보는 게 왜 욕심입니까. 다만,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죠.”
“방법이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꿈을 짓밟으면서 당신의 꿈을 이루려 했기 때문입니다.”
“······자네는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했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나?”
“제 혼자의 힘만으로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부사장님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
최상렬은 아직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사람들을 아우르고 동시에 그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힘. 저는 이 힘이 CEO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제가 높이 올라가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부사장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나요?”
아니다. 쓰레기들만 있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분리수거할 생각으로 그 쓰레기들을 모은 사람은 바로 최상렬이었다.
“그래서 전 반드시 CEO가 될 겁니다. 라이벌을 끌어내리지 않아도 그들이 저를 원하게 할 겁니다. 저와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힘을 합쳐 정정당당히 글로벌 CEO의 자리로 올라갈 겁니다.”
최상렬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혼자서도 충분히 사장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10년간 그렇게 해 왔고 동료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빈의 말이 맞았다.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의 도움을 끌어내는 힘이 유빈에게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는 최상렬의 손가락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여기서 유빈의 이야기에 태클을 걸어 봤자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는 승자였고 자신은 패자였다.
그리고 유빈의 말이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두 사람의 갈린 운명처럼 서로의 가는 방향이 멀어졌다.
* * *
태풍이 지나갔다.
상처 아니, 흔적은 남았지만, 새 살이 돋는 것처럼 빈자리는 금방 채워졌다.
강한 바람이 제네스 코리아를 정화해 준 것처럼 그전보다 회사는 더욱 활기차게 돌아갔다.
여성건강사업부 마케팅팀도 그중 하나였다.
홍경은 차장 체제로 새롭게 출범한 팀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업무에 매진하고 있었다.
“앗, 회장님!”
뜻밖의 인물이었지만 유빈은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셀아키텍트의 서우석 회장의 전화였다.
“가끔이라도 연락 좀 하게나. 듀레인 회장님과 만난 이후로 어떻게 한 번 연락이 없는가. 이제 조금 서운해지려 하네.”
저번 만남에서 말을 놓은 서 회장이 진짜로 서운한 투로 이야기했다.
유빈은 속으로 웃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음, 그래야지.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인가.”
“코스닥 상장 건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아니, 이 친구. 주주라는 사람이 회사 돌아가는 일에 그렇게 관심이 없으면 어떡하나.”
유빈은 듀레인 회장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서우석 회장의 강권으로 셀아키텍트에 천만 원을 투자했다.
주주가 맞기는 맞았다.
“요즘 회사 일이 많다 보니 신경을 못 썼습니다. 회장님이 계시는데 제가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허허, 이 친구. 이번에 성공적으로 코스닥에 상장시켰네.”
“아, 그런가요?”
“좋은 소식도 있지. 싱가폴의 테마섹과 JP 모건 사모펀드에서 투자를 받았네.”
구체적인 금액은 말하지 않았지만 서 회장의 밝은 목소리에서 투자 금액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역시 유빈의 예상대로였다.
듀레인 회장이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전 세계에서 셀아키텍트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건 자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셀아키텍트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빨리 발견한 사람은 유빈이었다.
“그 덕분에 현재 주가가 상장가와 비교해 다섯 배가 올랐네.”
“네? 정말인가요?”
“자네의 투자 금액도 다섯 배가 오른 거지. 허허.”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서 회장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계속 오를 거니까 행여나 팔 생각은 말게나.”
“하하. 알겠습니다.”
서 회장과의 전화를 끊은 유빈이 기분 좋게 웃었다.
셀아키텍트는 차근차근 성공을 위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나도 질 수 없지.”
유빈이 발표할 자료를 꼼꼼히 챙겼다.
* * *
“한국과 일본을 마지막으로 아시아 지사 감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아시아 지사의 이익률이 개선될 거로 예상됩니다. 자세한 수치는 드린 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음, 한국에서만 감원이 없군.”
자료를 꼼꼼히 살피던 금발의 남자가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보고하던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를 보니 임직원 몇 명만 문제로 삼았습니다. 마지막 감사라고 감상에 빠진 건 아니겠죠?”
“어지 데일은 나만큼이나 숫자를 신봉하는 사람이야. 그럴 리가 없지. 하지만 이상하기는 하군. 그 작은 나라 정부의 거지같은 정책 때문에 약가는 계속 떨어지는데 비용 절감할 부분이 없다니.”
“어지 데일이 들어오면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건 알아봤나?”
제네스 본사 27층 CEO 업무실에서 보고를 받던 마크 램버트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감사 보고보다 조금 전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 작은 회사인데도 현재 전 세계에서 항체 바이오시밀러 그러니까 TNF-알파(tumor necrosis factor, 종양괴사인자) 억제제 개발은 가장 앞서 있습니다.”
“셀아키텍트라, 셀아키텍트······ 노인네가 개인 돈을 투자할 정도라면 뭔가 있다는 뜻인데.”
마크 램버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니엘 듀레인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가 뛰어넘어야 할 상대였다.
다니엘 듀레인이 쌓은 과거의 전설은 마크 램버트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가 결정되지 않은 현재의 일이라면 그를 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진정한 제네스의 CEO가 될 수 있었다.
마크 램버트는 그래서 듀레인 회장의 움직임을 반겼다. 그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로 나왔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음, 앤 해밀턴에서부터 시작해 봐. 그녀가 왜 갑자기 바이오시밀러에 관심이 생겼는지.”
“알겠습니다.”
마크 램버트는 듀레인 회장의 손녀이자 미래 전략 연구소 팀장인 앤 해밀턴의 보고서를 곱씹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바이오시밀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던 그녀였다. 뭔가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그의 판단은 부정적이었다. 오리지널 제약사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특허를 연장만 할 수 있다면 판매가 늦어지는 바이오시밀러 개발 회사에는 치명적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 오리지널 사의 수장이라면 당연한 조치였다.
‘혹시 모르지, 그때가 되면 셀아키텍트를 헐값으로 인수할 수 있을지도. 후후.’
“에이티제이 인수 건은?”
“그쪽에서 여전히 우리 측 제안보다 높은 가격을 고수하고 있어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완전 고용 승계가 제1원칙이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욕심 많은 녀석. 그 정도 돈이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텐데. 애브비 매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다음 협상에는 셀아키텍트를 이용해 보지.”
마크 램버트는 에이티제이의 창업자이자 현 CEO인 제리 클레멘트의 반응이 궁금했다. 과연 그는 바이오시밀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네? 셀아키텍트를요?”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TNF-알파 억제 치료제의 선두주자라고. 에이티제이의 매출 중 85%를 차지하고 있는 약품 역시 TNF-A 억제제인 애브비고. 뭔가 그림이 나오지 않나?”
“셀아키텍트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이 성공하면 매출이 확연히 감소하겠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협상단에 내용 전달하겠습니다.”
“셀아키텍트에 관해 제대로 조사하고 동시에 노인네의 한국에서의 동선을 파악하고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와 함께 셀아키텍트로 이동했는지 알아봐. 분명히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사람이 있을 거야.”
“한국 지사 사장일까요?”
“······로렌스. 알아나 봐. 예측은 내가 할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부하 직원의 추측에 마크 램버트의 표정이 삭막해졌다.
‘한국이라. 우연치곤 너무 공교롭군. 분명히 키 역할을 한 사람이 있을 거야······.’
* * *
유빈은 싱가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발표 자료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옆 좌석에 앉은 주서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오빠, PPT를 도대체 몇 번째 보는 거예요.”
“10번째?”
“오빠, 워커홀릭 아니에요?”
“중요한 컴피티션이라 완벽하게 준비해야 해.”
“맞네요. 워커홀릭. 에휴, 그런데 PM님들한테 들으니까 한국에서 1등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데요?”
주서윤이 유빈을 살짝 흘겨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일하는 남자를 어쩌겠는가. 도와주는 일 말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
“아무래도 발표다 보니 내용이 좋은 건 둘째치고 전달이 잘되어야 하잖아요. 영어권인 호주와 홍콩 마케팅팀이 번갈아 가며 1등을 차지했대요. 하긴 오빠는 영어 잘하니까 그건 걱정이 없네요.”
“다른 건 뭐 없어?”
“음, 과장님, 아, 이제 차장님이지. 차장님한테 다시 물어볼게요.”
“고마워, 서윤아. 네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
“정말요? 헤헤.”
“그런데 서윤아, 뭐가 그렇게 좋아? 아까부터 싱글벙글하네.”
“네? 아, 그게 사무실로만 출근하지 않아도 행복해서요. 매일같이 사무실, 집, 사무실, 집의 반복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둘러댔지만 마치 신혼여행이라도 가는 듯한 기분이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유빈의 옆자리에 앉은 것만 해도 들떠 있는 그녀였다.
마침 입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전해 주는 싱가포르 국적기의 스튜어디스가 지나갔다.
“부부신가요?”
세관신고서는 가족이면 한 명만 작성해도 되기 때문에 물은 것 같았다. 살갑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 스튜어디스 눈에는 부부로 보인 모양이었다.
“네?”
자신의 상상을 들킨 것 같은 기분 때문인지 그냥 아니라고 간단히 대답해도 되는 질문에 주서윤의 얼굴이 빨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