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0
10화. 원수 (2)
오상이 눈을 깜빡이며 계속 말했다.
“인정 안 해도 돼. 그때 내가 널 대신해서 벌레를 잡았었지. 네 얼굴에 금콩벌레가 두 마리 더 붙어 있었는데 날 보고 죽이지 말라고 했어. 넌 기어코 그 벌레를 나뭇잎에 놓아주게 하고는 그게 멀리까지 기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괜찮아졌지. 난 너처럼 마음이 착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오라버니는 기억력도 참 좋네요. 오라버니 돈은 떼어먹고 싶어도 못 그러겠어요.”
임근용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마음속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래, 내가 원래 이렇게 연약하고 착한 성격이었지. 벌레 한 마리도 차마 죽이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인간은, 나조차도 지난날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니까……. 남들이 나를 그렇게 업신여겼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도씨가 자랑스러워하며 웃었다.
“우리 애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순하고 선량했단다.”
도씨는 비록 자기 자신은 불같은 성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심 여자는 부드럽고 선량해야만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딸이 이런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다.
임근용은 또 조금 움츠러들었다. 도씨는 늘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아명을 불렀다. 그녀가 이렇게 컸는데도 늘 우리아기나 귀염둥이라 불렀다.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슬쩍 쳐다보자 오상이 그녀를 향해 눈짓을 하며 놀리듯이 웃었다.
그녀는 눈을 돌리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잠깐 부주의한 사이에 육함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육함 역시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한때 그녀가 가장 보기 좋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지금은 가장 역겹고 가볍고 천박하게 느껴지는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임근용은 그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애써 시선을 거둬들였다. 계원 쪽을 쳐다보니 계원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처럼 육함을 똑바로 바라보며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듣자니 두 오라버니가 우리 평주의 쌍벽이라던데, 그럼 분명 둘 다 바둑 솜씨도 뛰어나겠네요. 승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겠어요?”
임근용은 마치 육함처럼 가볍게 웃었다. 이 말을 마친 그녀는 잽싸게 고개를 돌리고 임신지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돌아서서 도씨 뒤를 따라 앞으로 걸어갔다.
‘평주 쌍벽? 무슨 개 같은 소리야! 분명 육함이 질걸. 이제 돌아와서 이름도 없는 사람이 바로 오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주 신동 오상은 미소를 지으며 육함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육 세형, 좀 전에 승부를 제대로 가리지 못했으니 계속하는 게 어때?”
육함은 담담한 눈빛으로 임근용의 뒷모습을 힐끗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세형,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단풍나무를 지나 정자로 달려갔다. 그들은 다시 바둑을 두며 정신없이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한참 걷다가 오씨가 도씨에게 물었다.
“저 아이가 육 대부인이 고르고 골라 입양한 그 공자인가요?”
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씨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인물이 출중하고 듬직한 데다 점잖아 보이네요. 내 눈에도 인물이 훤한 것이 육 대부인이 왜 그 아이를 골랐는지 알 것 같아요.”
그녀는 그런 말을 하며 눈을 내리깔고 걷고 있는 임근용을 힐끗 쳐다보았다.
임근용의 그 이상한 표정은 설사 여지가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오상이 옆에서 분위기를 풀었어도 이미 가정을 꾸린 성숙한 부인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씨는 그리 세심하지 않았다. 아까의 일은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작은 소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나도 임, 육 두 집안의 아이들 중에서 그 아이의 용모가 가장 출중하다고 생각해요.”
도씨는 어려서부터 명성을 날렸고 비슷한 연배이기도 한 사촌 오상보다도 그가 한 수 위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상은 오씨의 친조카였다. 그녀는 오씨가 기분 나빠할까 봐 일부러 오씨 가문은 빼고 말했다.
‘그렇게 비열한 인품을 가진 사람도 드물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임근용이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만약 임근용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육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임근용의 생각은 통제를 벗어나 그날로 되돌아갔다. 소위 비적이라는 사람들은 사실 처음에는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정변을 일으켜 상관을 죽인 몇 십 명의 사병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곧바로 도망쳐 산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이 반역병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평주로 잠입해 들어가 거기서 많은 유민들과 산적들을 흡수했다. 그리고 마치 굶주린 늑대가 양을 만난 것처럼 자신들과 같은 부잣집 귀족들을 약탈했다.
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육함은 집에 없었고,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육씨 일가는 전부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노비들도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신만 돌보았으며 그녀의 시부모는 인사도 없이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녀와 여지, 연약한 두 여자는 서로 도우며 황급히 도망을 쳤다. 정말 비참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육함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녀는 그가 분명 자신을 걱정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찾으러 돌아왔겠는가?
그녀는 그를 따라 안전하다고 알려진 강신묘(江神庙)로 갔다. 육함은 그녀와 여지에게 거기서 그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아온 뒤 다시 함께 떠나자고 약속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꼬박 이틀 동안 그를 기다리며 줄곧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임근용은 죽는 날이 되어서야 그가 일찌감치 친부모를 데리고 다른 길로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그러니까 그는 그때 자신을 찾으러 돌아왔던 것이 아니라 그의 친부모를 찾으러 돌아왔던 것이고, 때마침 우연히 그녀를 만난 것뿐이었다.
우습게도 그녀는 그런 그를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환상을 품고 그가 한 약속을 진짜라고 믿었다. 그녀보다 더 우습고 어리석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그들은 곧이어 비적들에게 발각되었다. 여지는 죽었고 그녀는 강에 뛰어들었다.
차가운 강물이 코로 들어갈 때의 시린 절망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그녀의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어리석음 때문에 자신도 죽고, 여지도 죽었다.
두 사람이 여러 해 동안 같이 살긴 했지만, 그녀는 그가 양어머니가 강제로 맺어준 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설령 그가 그녀에게 한동안 잘해 주었다 하더라도 아마 그건 강요에 못 이겨 겉으로만 그랬던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 잘못도 없이 그에게 진심을 다한 그녀를 두고 어찌 그렇게 떠날 수 있었을까! 아이가 일찍 요절한 뒤, 그는 그녀를 버리고 집을 떠나 혼자 멀리 가 버렸다. 집에 같이 있을 때도 부부는 방을 따로 쓰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낯선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지냈다.
그녀는 이런 삶이 고통스러웠다. 그는 아마도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젊은 남자였고 또 진사(进士) 출신이었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기회가 많이 있었고 그녀처럼 그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사람과 평생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던 그에게 이제 순리대로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단번에 뜻을 이뤄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어찌 활용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육씨 가문에서 버림받은 원한이 사무쳤지만 결코 복수할 마음 같은 건 품지 않았다. 그녀는 그보다 자신이 쓸모없었던 것을 더 후회했다. 큰 재난이 닥치면 당연히 누구나 자기 자신부터 돌보지 않겠는가?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그녀를 버린 것도 모자라 손수 사지로 떠밀기까지 한 것을 생각하면 그녀는 원망을 하지 않으려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그는 그녀를 우연히 만났던 그때 일부러 그녀를 내버려둔 것이었을까?
그녀는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아무리 뻔뻔해도 유분수지, 그녀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희망을 준 후, 다시 이렇게 그녀를 절망하게 만들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분명 마음속으로 줄곧 그녀가 어리석다고 비웃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돼지를 보고도 잡아먹지 않으면 바보라더니, 그녀가 바로 그 돼지 신세였다.
반쯤 늘어뜨린 속눈썹에 가려진 임근용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담아 비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깨끗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과 괴로움을 모두 삼켜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이 세상에 잘못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다지만 그녀는 반드시 되돌릴 것이다.
이제부터 그녀는 절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황 이낭은 옆에서 임근용의 표정을 훔쳐보다 어리둥절해졌다. 이 넷째 아가씨는 도대체 누굴 맘에 들어하는 거지?
그녀가 넋을 놓고 육함을 쳐다본 것을 보면 육함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다음에 오상에게 귀엽게 애교를 부리고 육함은 무덤덤하게 대하며 오상과 육함의 대립을 부추긴 것을 보면 육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은 또 근심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기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넷째 아가씨의 이 비정상적인 행동은 육함을 본 후에 시작된 것이다. 설마 아까 넷째 아가씨의 행동은 육함의 주의를 끌려는 수작이었나?
만약 임근용이 황 이낭의 이런 생각을 알았다면 화가 나서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큰일들을 알고 있는 그녀가 도리어 다른 사람의 생각만은 읽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임근용의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가장 큰 이익을 도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능하다면 육함을 호되게 몇 번 짓밟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