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친영(親迎)
이쪽에서는 육함이 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인사를 올린 후 뒤돌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도씨가 손수건을 들고 얼른 앞으로 가더니 그를 바라보며 간청하는 듯한 표정으로 작게 말했다.
“둘째야, 이제 우리 딸을 너한테 맡길 테니 꼭 잘 해줘야 한다. 아이가 말이 적고 고집스러우니 네가 근용이를 많이 이해해 주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와서 말해. 내가 엄하게 다스리마.”
도씨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벌써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육함은 잠시 멍해졌다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잘하겠습니다.”
도씨는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를 본 주씨가 웃으며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타일렀다.
“멀리 시집가는 것도 아니고 친척집으로 가는 거잖아. 설마 아직도 사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거야? 동서, 그만 울어. 좋은 날이잖아. 저기 봐, 사람들이 벌써 술값을 달라고 왔어.”
정말로 저쪽에 가마꾼들이 와서 웃고 떠들며 걸음을 떼려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술값을 요구했다. 혼삿날에는 원래 이런 풍속이 있어서 도씨도 미리 후하게 술값을 준비해 두었다. 임 삼노야는 사람들 앞에서 부잣집 어르신처럼 뽐내며 시원하게 상을 내렸고 아직 모자란다고 하자 다시 한 번 상을 내렸다. 이렇게 두 번을 반복한 후에야 모두들 웃으며 천천히 꽃가마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 * *
꽃가마 안에 단정히 앉아있던 임근용은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와 음악 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어렴풋해졌다가 또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것처럼 귓가에 윙윙 울려 마음이 어지럽고 정신이 산란했다. 어떻게 도착했는지 모르게 육씨 가문 저택에 도착한 임근용은 정말 잠깐이었던 것도 같기도 하고 또 한참이 지난 것 같기도 했다.
악사, 예인, 연회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육씨 가문 저택 앞에서 대문을 막고 축하 인사를 하며 사례금을 요구했다. 육씨 가문에서 친영을 하러 온 사람들이 이에 말대꾸를 하며 서로 농담하고 웃고 떠들었다. 사례금을 주지 않으면 못 들어가게 하겠다는 둥 적으면 안 된다는 둥 많이는 못 준다는 둥 해가며 한참을 시끄럽게 굴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하늘을 울릴 정도였다. 그중 오상과 육륜의 목소리가 가장 컸고 말도 제일 많았다.
오상을 필두로 문을 막아섰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겨우 그들을 놓아 주자 역술가가 손에 꽃을 들고 축사를 하며 곡두전과(*谷豆钱果: 혼인 풍습으로 신부가 마차에서 내릴 때 축사를 하며 곡식, 돈, 과일 등을 대문을 바라보며 뿌리는 것)를 대문을 바라보며 뿌렸다. 한참 전부터 한쪽에 와 있던 어린아이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우르르 몰려와 앞다투어 물건을 주워 갔다.
곡두전과가 끝나자 푸른색 꽃무늬 돗자리를 깔고 신부를 마차에서 내리게 했다. 춘아와 앵두가 앞으로 나가 마차에서 내리는 임근용을 부축하며 작은 소리로 당부했다.
“아가씨, 바로 가시면 안 돼요. 잠깐 기다리세요.”
“응.”
이미 절차를 알고 있던 임근용은 가볍게 대답했다. 악사 한 명이 거울을 들고 앞으로 나와 뒷걸음질 치며 가마로 들어갔고 몇 명의 여자들이 앞으로 나와 연꽃 모양의 화촉을 들고 앞에서 안내했다. 춘아가 그제야 임근용에게 말했다.
“아가씨, 이제 가셔도 돼요.”
임근용은 푸른색 꽃무늬 돗자리를 밟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고 가는 내내 모래바닥은 전혀 밟지 않았다. 그녀는 중문에 이르러 말안장, 돗자리, 저울 등을 뛰어 넘어가며 평안을 기원했다. 중문을 지나 신방에 도착해 침상에 앉으니 희낭이 웃으며 말했다.
“행복한 앞날을 기원합니다!”
육 이부인 송씨가 은 술잔에 동양주를 가득 따라 임씨 가문 사람들에게 주며 사람들에게 이제 가도 된다며 배웅했고 주씨와 사람들은 각각 세 잔씩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을 고하며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주씨가 가다 말고 고개를 돌려보니 임근용이 홀로 침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어 임근용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용, 우리는 이만 가 볼게.”
주씨가 이렇게 말하자 임근용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손을 들어 얼른 그녀의 소매를 잡았다.
주씨는 시집간 자신의 큰딸과 곧 시집갈 임근지가 떠올라 절로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눈가가 뜨거워지고 콧속이 찡해졌다. 그녀는 임근용의 손을 가볍게 잡고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무서워할 것 없어, 아가. 이건 여자라면 다 경험하는 일이야. 앞으로 더 행복해질 거야.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응.”
그때서야 임근용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눈물을 꾹 참았다.
방 안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새신랑이 왔어요! 신랑은 이쪽으로 오세요!”
모두들 벌떼처럼 문 앞으로 몰려와 문미(門楣)에 달린 비단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이런 대길한 날에는 인심을 후하게 쓰셔야지요!”
주씨가 임근용의 손을 놓으며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로 말했다.
“착하지, 우리는 먼저 갈게.”
그러더니 미소를 지으며 육함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임씨 가문 사람들을 불러 데리고 나갔다.
“신랑은 어서 신부와 함께 비단을 잡고 맞절을 하십시오!”
희낭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육함에게 침상으로 가 임근용을 데려오라고 눈짓했다. 육함이 침상 앞에 서서 눈을 내리깔자 임근용의 붉은 비단 치마 위가 눈물로 젖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가 허리를 숙이고 길게 절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갑시다.”
갑작스럽게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이 터지자 송씨가 웃으며 말했다.
“둘째는 정말 변함없이 예의가 바르네요.”
희낭이 웃으며 말했다.
“손님을 대하듯 서로 깍듯이 존경하시는군요.”
임근용이 일어나 답례하자 희낭은 동심결(*同心结: 풀리지 않도록 묶은 매듭으로 남녀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로 매듭 지은 채색 비단을 두 사람의 손에 각각 건네주었다. 희낭이 육함이 뒷걸음질 치는 것을 도왔고 임근용도 바짝 그를 따라가며 두 사람은 마주 보는 채로 중당으로 향했다. 희낭은 붉은 꽃을 매단 저울대를 육함의 손에 건네주고 웃으며 말했다.
“신랑은 면사를 걷으십시오.”
육함은 손에 들고 있는 저울대를 꽉 쥐었다. 그는 살짝 흔들리고 있는 임근용의 면사를 보자 절로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는 면사를 젖혔을 때 눈물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될까 두려웠다.
“빨리 걷어요! 둘째 형님!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육륜은 마치 세상이 너무 조용할까 봐 걱정이라도 되는 사람처럼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은 이에 또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웃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었다. 육 노태야는 흐뭇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며 그들이 마음껏 웃고 떠들게 내버려두었다.
육함이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고 웃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면사를 걷겠습니다.”
그는 말을 끝내고 저울대를 꽉 잡고 가볍게 면사를 걷어 올렸다.
금박이 새겨진 새빨간 면사 아래 두 뺨에 복숭아빛 분을 바른 임근용의 얼굴이 있었다. 그녀는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눈을 살짝 내리깔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긴 했지만 눈물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육함의 시선이 그녀의 입으로 향했고 그녀의 입꼬리가 거의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살짝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그의 눈은 갑자기 밝아졌고 입꼬리는 걷잡을 수 없이 치켜 올라갔다. 그는 웃는 얼굴로 뒤돌아보며 가장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는 육륜을 나무랐다.
“조용히 좀 해!”
육륜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누구 얼굴이 새빨개졌대요!”
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육함에게 집중됐는데 그의 얼굴은 정말로 귀밑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임근용은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는 데다 분을 아주 두껍게 발라 얼굴이 빨개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녀가 약간 수줍고 평온하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송이 꽃처럼 하늘하늘한 모습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것만 보였다. 임근용이 육함의 곁에 서 있으니 정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았다.
‘실로 아름다운 신랑, 신부로구나!’
육 노태야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침을 하며 주의를 돌렸다.
“가묘(家庙)에 참배하러 가자꾸나.”
가묘에 절을 올리고 나서 임근용은 뒤로 걸어 신방으로 돌아갔다. 육함이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부부가 맞절했다. 맞절이 끝나자 신랑 신부가 침상에 올라가 마주 앉았고 여러 부인들이 금전이나 열매 등을 꺼내 침상으로 던졌다. 돈과 열매들이 쏟아져 내리자 금전이 서로 부딪쳐 짤랑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돈과 열매는 마치 빗방울처럼 임근용의 품과 주변에 떨어졌고 그녀는 눈을 반쯤 내리깐 채 꼼짝도 하지 않고 그것들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육함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머리에 맞지 않게 조심하시오.”
그와 동시에 여지가 뒤에서 임근용의 등을 살짝 찔렀다. 임근용은 얼른 눈을 들어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몸을 살짝 움직이고 눈을 내리깐 채 계속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육함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그녀의 뺨을 스치며 무언가를 재빨리 낚아챘다.
순간 방 안의 웃음소리가 잠시 멈추고 희낭이 불안한 듯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계속하십시오.”
육함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온화했지만, 그의 손에는 금전이 들려 있었다.
“허허…….”
희낭은 억지로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합계(*合髻: 당, 송 시대 결혼 풍습으로 남녀의 머리를 하나로 묶는 것)합시다.”
이에 사람들이 댕기, 비녀, 나무빗을 가져와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조금 골라내 묶었다. 그런 다음 색띠로 이어 묶은 은잔 한 쌍에 술을 가득 채워 두 사람이 함께 마시게 했다. 술을 다 마시고 나자 희낭이 임근용의 머리에서 화관을 벗겨 술잔과 함께 침상 아래로 던지고 웃으며 말했다.
“하늘 아래 하나가 되었으니 대길입니다!”
방 안에 있던 젊은 부인들은 모두 살짝 얼굴을 붉히며 한쪽으로 피했고 나머지는 잇따라 축하 인사를 건네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바깥에서는 연회가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신랑에게 얼른 나와 손님들에게 인사하고 술을 대접하라고 재촉하자 육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가 봐야겠소. 장수가 문밖에서 지키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시오.”
“응.”
임근용이 가볍게 대답했다.
육함은 또 잠시 서 있었지만 그녀가 다른 말을 하지 않자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
임근용은 이미 마비된 듯 뻣뻣하게 굳은 두 다리를 움직여 가볍게 허리를 폈다. 그녀는 침상에 쌓여 있는 금전과 열매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모로 누웠다.
계 마마는 그녀가 이렇게 침상에 눕는 것을 보고 절로 당황하며 말했다.
“아가씨, 이러시면 안 돼요.”
비록 지금 방 안에 임근용의 시녀 몇 명만 남아있긴 했지만 누군가가 갑자기 쳐들어와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만약 소문이 나면 크게 비웃음을 살 것이다.
임근용이 눈을 감고 조용히 말했다.
“피곤해.”
날이 밝기 전부터 지금까지 잠시도 한가할 틈이 없었던 탓에 그녀는 아주 피곤했다. 계 마마가 말했다.
“아가씨 배는 안 고프세요? 떡 같은 거라도 조금 드시고 요기를 하시는 게 어때요?”
“아니. 배는 안 고파.”
임근용이 살짝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계 마마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여지가 달래듯 계 마마의 어깨를 쓰다듬고 앵두에게 문 앞을 지키라고 눈짓하며 말했다.
“누가 오면 소리를 내서 알려 줘. 아가씨는 잠시 쉬실 거야.”
임근용은 눈을 뜨고 백자천손(*百子千孙: 자손을 많이 두길 기원함)이 수놓아져 있는 붉은 비단 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