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육적(陆绩)
육경이 육적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둘째 형님이 널 기억 못 한다고 서운해 하지 마. 형님이 일년 내내 먼 곳에서 공부에만 열중하시느라 머릿속에 공부 생각밖에 없어서 그래.”
육적이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둘째 형님이 앞으로 절 기억해 주시기만 하면 되는 거죠. 안 그러면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형님이 절 못 알아보셔서 서로 민망하지 않겠어요?”
그의 말은 거침없을 뿐만 아니라 약간 웃기기도 해서 사람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이와 동시에 그에 대한 호감도도 살짝 올라갔다. 육적은 또 임근용과 육운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하며 잊지 않고 친절한 관심을 보였다.
“두 분은 누님일까요, 아니면 동생일까요?”
육륜이 이 말을 듣고 거리낌 없이 그의 등을 한대 툭 치며 말했다.
“무슨 누님이에요? 우리 집에는 여동생 하나밖에 없다는 거 다 알면서 그래요. 자, 이쪽은 둘째 형수님이에요. 이쪽은 육운이고요.”
임근용과 육운이 얼른 앞으로 나가 인사하자, 육적의 시선이 임근용의 얼굴을 빠르게 훑었다. 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째 형수께서 재능과 용모가 모두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뵈니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육륜이 당돌하게 말했다.
“당연하죠.”
육함은 약간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임근용에게 말했다.
“당신은 아운이랑 먼저 어머니 있는 곳으로 가 있으시오.”
임근용은 십여 걸음을 걷다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육적을 바라보았다. 육적은 이미 육륜 등의 사람들과 한데 뭉쳐 느긋하고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가볍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임근용이 육운에게 물었다.
“육경 공자랑 다른 사람들은 저 친척 오라버니를 잘 아는데, 왜 아가씨 오라버니만 저 분을 못 알아보는 거예요?”
육운이 그녀를 따라 그쪽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저 오라버니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적수(赤水)가 아니라 평주성에 살면서 우리 할아버지 후원을 받아 겨우 학당을 다녔어요. 눈치가 빠르고 말주변이 좋아서 큰 오라버니가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둘째 오라버니는 공부하느라 다른 형제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죠. 아까도 봐요, 저 오라버니는 분명히 날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시치미 떼고 사람들한테 농담한 거예요.”
그녀의 말에는 육적에 대한 경멸이 가득했다.
* * *
사람들은 이날 저녁까지 계속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다 먹고 난 후 송씨가 육 노부인에게 물었다.
“오늘 손님이 많이 와서 준비한 식재료를 거의 다 썼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여기 얼마나 더 머무실 생각이실까요? 사람을 보내 식재료를 더 사와야 하나 해서요.”
육 노부인이 말했다.
“여긴 내가 머물기에 별로 좋은 곳이 아니야, 춥고 습해서 고질병이 또 도졌어. 내가 노태야께 내일 하루만 더 있다가 모레 점심을 먹고 돌아가자고 말씀드려놨다. 너희들도 돌아가서 슬슬 짐을 싸도록 해라.”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들 기뻐했다. 뜻밖에도 여기 오래 머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육 노부인이 임근용을 슥 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
“아용아, 너희 짐은 챙길 필요 없어. 이제 막 둘째랑 혼인을 했으니 너도 당연히 가문의 친척들을 아직 잘 모르겠지.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께서 너희는 10일까지 여기 있다가 돌아오라고 하시더구나. 앞으로 친척들을 만났을 때 누가 누군지도 모르면 얼마나 망신스럽겠니. 아용, 네가 둘째를 잘 보살펴 주렴.”
이 한 마디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송씨와 려씨는 재빨리 눈을 마주치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임옥진은 처음에는 약간 기뻐하는 가 싶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순식간에 표정이 나빠져 굳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씨는 처음에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다가 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육운은 노부인과 임근용을 번갈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할머님 걱정 마세요.”
육 노부인이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말했다.
“이제 그만들 가 보거라.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작별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고 송씨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용,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호수가 있어. 지금이 구경하기 가장 좋을 때야. 모처럼 기회가 생겼으니 둘째랑 가서 배 타고 놀아. 아주 재미있을 거야.”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둘째 숙모님,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그녀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임옥진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용, 따라오너라.”
송씨가 더욱 밝게 웃으며 말했다.
“큰형님께서 이리 자애로우시다니까요. 그냥 며칠 떨어져 있는 것뿐인데 또 이렇게 세심하게 둘째 조카며느리한테 당부하려 하시네요.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용이는 현명하고 유능한 아이라 알아서 둘째를 잘 보살필 거예요.”
“동서 말이 맞아. 아이들 둘이서 여기서 제대로 먹고 잘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그래.”
임옥진은 이렇게 말하고 뒤돌아 가 버렸다. 그녀는 대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방 마마, 문 닫아!”
방 마마가 전전긍긍하며 육운을 슬쩍 보았지만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마마는 하는 수 없이 직접 가서 대문을 잠갔다. 그리고 감히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방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임옥진은 침상에 앉아 방령이 건네주는 차도 받지 않고 임근용을 차가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용, 너 나한테 할 말 없니?”
“어머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임근용은 임옥진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임옥진은 그녀와 육함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고 싶어 했다. 무슨 일이든 그녀에게 사전에 말하지 않거나, 허락을 받지 않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사건이 생기기라도 하면 임옥진은 제일 먼저 임근용과 육함이 그녀를 속이기 위해 사전에 계획하고 꾸민 것이라 여겼다. 전생에도 그랬고 현생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방금 이 일은 사실 육씨 가문의 두 어르신이 육함이 두 어머니 사이에 끼어 골치 아플 일 없이 제 선생 문하에서 가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그에게 잠시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려 한 것뿐이었다. 이를 위해 육 노부인이 갖다 붙인 핑계도 아주 그럴듯했다. 확실히 육함은 친척들을 잘 몰랐다. 가업을 계승할 남자가 이러는 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임옥진은 여기서 있지도 않은 계략과 음모를 찾아냈다. 그녀는 임근용과 육함이 단 둘이서 여기서 놀고 싶은 마음에 이런 계략을 꾸몄다고 의심했다. 임옥진의 심각한 의심병과 지배욕에 임근용은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임옥진의 가르침을 귀담아 듣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일은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냐?”
임옥진이 임근용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하지만 임근용이 차분하게 서서 전혀 동요하거나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절로 화가 치밀었다.
임근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모께서는 누구 생각이라고 생각하세요? 저와 이소야 중에 누가 조부모님께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희는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경중도 모르고 설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육운이 한쪽에서 한참 동안 임근용을 관찰하다가 이때 끼어들었다.
“새언니, 어머니 말을 오해했나 봐요. 어머니는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오라버니랑 언니만 여기 남는 게 섭섭하셔서 그러시는 거예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데 오라버니랑 언니가 여기 며칠 더 머무르고 싶었으면 어머니한테 말씀을 드리지 그랬어요. 그럼 어머니가 분명 허락해 주셨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셨잖아요. 새언니도 봤다시피 둘째 숙모가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데 화가 안 나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요.”
임옥진은 육운이 자신을 대신해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는 걸 눈치채고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근용이 육운을 바라보았다.
“아가씨, 둘째 오라버니가 오늘 친척 형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 아가씨도 봤잖아요. 우리가 제일 가까운 사이라면 서로 더 많이 믿어 줘야죠. 아가씨는 내가 일부러 고모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고모한테 맞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나한테 좋을 게 뭐가 있는데요?”
육운이 얼른 말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좀 더 상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에요. 세 사람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혼자 생각하는 것 보다 낫잖아요.”
임근용은 이 말을 듣고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육운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가씨 말이 맞긴 하지만 이 일은 나나 아가씨 오라버니가 어떻게 주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저 어르신들께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뿐이죠.”
‘능력이 있으면 노태야와 맞서보든지!’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다가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육운이 입술을 오므리고 아예 직설적으로 말했다.
“새언니, 오늘 들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둘째 숙모와 함께 집안일을 관리할 거라면서요?”
이거야 말로 네가 하고 싶었던 말이겠지. 임근용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말했다.
“지난번에 할아버님께 매화를 드리러 갔을 때, 할아버님께서 둘째 숙모가 혼자 너무 힘드시니 나한테 게으름을 피울 생각하지 말라고만 말씀하셨어요. 정말로 그 외에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래서 나도 경솔하게 함부로 말하고 다닐 수 없던 것뿐이에요.”
육운이 미소 지었다.
“우리한테 말하는 게 왜 경솔한 거예요? 어떤 말을 사람들한테 말을 해도 될지 안 될지 정도는 우리도 다 알아요. 할아버지께서 한 입으로 두말 하시는 성격이 아니니 정말로 그럴 뜻이 있으신 거죠. 새언니는 어쩔 생각인데요?”
임근용이 말했다.
“난 집안 일을 관리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많은 부분에서 둘째 숙모님의 뜻을 따라야겠지요. 공을 세우지는 못할망정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니까요.”
임옥진이 말했다.
“둘째 동서가 네가 공을 세우게 가만둘 것 같니? 분명 무슨 짓을 해서든 네가 실수하게 만들겠지!”
임옥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육운이 바로 걱정과 선의를 담은 말투로 말했다.
“넷째 언니, 난 누가 잘못했다고 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언니도 요 며칠 동안 누군가가 우리가 잘못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걸 봤잖아요. 할아버지께서 언니를 아끼고 계시니 이건 아주 좋은 기회예요. 언니는 막 시집왔고 집안일을 해 본 적도 없잖아요.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언니를 잘 몰라요. 만약 누군가가 언니한테 나쁜 마음을 품는다면 나중에는 빠져 나오기 힘들 거예요.”
육운은 새언니라고 부르는 대신 넷째 언니라고 부르며 더욱 친근함을 드러냈다.
임근용이 걱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그럼 어떡해야 해요?”
전생에도 임근용은 송씨를 도와 집안일을 도왔던 적이 있었는데 확실히 잘하지는 못했다. 당시 임옥진과 육운은 줄곧 뒤에서 그녀를 조종했는데 두 사람이 시키는 일은 전부 두 사람의 이익이 최우선이었고 임근용의 이익은 뒷전이었다.
그녀는 당시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의심스럽고 화도 났지만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는 데다 자신감도 부족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몸에 배어 습관이 된 나약함을 버리지 못하고 늘 비겁하게 참으며 물러서기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자기 주관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육운의 이런 제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임근용은 지금 맹우(*盟友: 맹약 혹은 동맹을 맺은 벗)가 필요했다. 설령 이 맹우가 자신이 부주의한 틈을 타 갑자기 자신을 물어뜯는다 할지라도, 이 맹우가 진심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할지라도, 또 이 맹우가 자신을 동맹자가 아닌 도구로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녀는 이 맹우가 필요했다. 사실상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취하며 서로 이용하는 관계면 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