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거울
연회가 끝나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육함은 육 노태야에게 작별 인사를 올릴 때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육 노태야가 무거운 눈빛으로 그와 임근용을 계속 훑어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육함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눈을 들어 화장대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임근용을 살폈다. 그는 임근용이 오늘따라 유난이 더 조용할 뿐만 아니라 첫 성공을 맞이한 사람에게서 마땅히 느껴져야 할 흥분 같은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이 그녀의 검고 윤기 나는 긴 머리카락과 정숙한 눈매, 하얀 피부에 어른거리며 빛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는 눈앞이 흐릿해져 그녀를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당신 생각에는 할아버지께서 눈치를 채신 것 같소?”
육함은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임근용을 뒤에서 가볍게 껴안고 눈을 내리깔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응시했다. 그는 때때로 자기와 임근용이 아주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의 피부가 밀착해 서로를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 때, 특히 임근용이 쉰 목소리로 그의 귀에 “민행”을 외칠 때, 그는 그녀와 아주 가까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때때로 육함은 자신과 그녀가 정말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가 선천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포착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지금도 임근용은 그의 눈앞에 있고 손을 뻗으면 만질 수도 있었지만 마음만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할아버님께서 눈치를 채셨더라도 당신을 탓하지는 못하실 거예요. 둘째 숙부와 큰 아주버님께 욕심이 없고, 또 당신을 해치려는 나쁜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스스로 그런 덫에 걸려들었겠어요?”
임근용도 눈을 들어 거울에 비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두 사람은 머리카락이 뒤엉키고, 함께 호흡하며 마치 한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같은 화면 속에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은 판이하게 달랐다. 임근용은 전생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해하게 된 이후로, 한가할 때면 점점 더 자주 전생의 일이 떠올랐는데 그건 별로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그건 그저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면 할수록 그 기억들은 더욱더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어떤 때는 당시의 표정과 말 한 마디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육함은 그녀의 귓가에 뜨겁게 입 맞추며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바로 잡았다.
“이제는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라오.”
임근용이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우리.”
육함은 그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거의 1년 가까이 부부로 지낸 두 사람은 이제 서로의 몸과 반응에 대해서도 점점 익숙해졌다. 그는 순간 입이 마르고 임근용의 어깨에 놓인 손에도 힘이 들어갔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용, 당신은 앞으로 람호를 할 생각이오, 아니면 직접 모직 공방을 차릴 생각이오?”
임근용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일은 아직 결정하기에는 이르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지금은 임근용 외에 이 일의 최종 결말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 또한 환생의 이점이었고 그녀는 또 한 번 환생의 덕을 본 셈이었다.
육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몸을 숙여 임근용을 들어 안은 뒤 침상을 향해 걸어갔다. 임근용은 그의 품에 안겨 미소 지으며 온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육함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눈빛이 더욱 깊어졌고, 숨결도 흐트러졌다. 임근용은 웃음을 머금고 그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육함이 흥분하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막 달려들려고 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아주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해요, 민행, 수 의원이 약을 먹는 두 달 동안은 절대 동침하지 말라고 했던 걸 깜빡했어요. 어쩜 이리 까맣게 잊었을까요?”
육함은 잠시 동안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손을 계속 움직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이리 못 됐소, 그런 말로 날 속이려 하다니.”
임근용이 발로 그의 몸을 밀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다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이 몸은 내 것이지 당신 것이 아니니까 아파도 내가 아프지 당신이 아픈 건 아닐 테니까요.”
육함은 잠시 그녀를 유심히 살피더니 그녀의 말이 진짜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뒤돌아 앉으며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 의원이 당신한테 대체 무슨 약을 줬길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포악해진 거요?”
임근용은 이불로 몸을 단단히 감싼 뒤 여유롭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병을 치료하는 약이죠. 제대로 못 고치면 평생 자식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육함은 그녀의 눈빛에 기분 나쁜 기색이 섞여 있는 걸 보고 더 이상 묻지 않고 잠시 침상 머리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다시 눕더니 잠시 그녀 옆에 가만히 누워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난 옆방에 가서 자겠소.”
임근용은 미소 지으며 시녀들을 불러 옆방에 숯화로를 가져다 놓고 요를 깔아주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육함이 방문을 나서자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고 천정의 꽃무늬를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는 계원이 아닌 걸까? 이번에 육씨 가문에서는 그녀에게 이 일에 대해 정확하게 알리고 그녀에게 결정권을 주며 정당하게 일을 처리하려 할까, 아니면 전생에서처럼 몰래 먼저 손을 쓰려 할까?
전생의 그 때 임근용은 사실상 육함을 모르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고, 유일한 아들도 이미 죽은 상태였다. 육씨 가문 사람들이 대를 이을 걸 걱정해 육함에게 통방을 붙여 주거나 첩을 들이게 하는 건 보통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한 이후에 하는 일반적인 행동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이에 대해 반박할 수 없었고 항의할 수도 없었다. 임씨 가문에서도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됐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를 위해 나서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게 미리 언질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일을 저지른 후에 그녀에게 통지하는 방식으로 그녀의 체면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당시의 임근용은 그 일이 달갑든 달갑지 않든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계원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을 붙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를 모시는 계원을 통방으로 들인 것만으로도 임근용을 충분히 배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살았을까? 분명히 분노하며 치욕스럽다고 느꼈지만, 그녀는 너무 나약해서 심지어 큰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전부 속으로 삼켰다. 당시의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체면을 지켰다고 착각했지만 억지로 꾸며낸 그런 체면이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지금 육운의 억지웃음과 마찬가지로 아주 우스워 보이지 않았을까?
임근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베갯잇에서 열쇠 꾸러미를 더듬어 찾았다. 그녀가 열쇠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바라보자 매끄러운 황동 열쇠가 마치 작은 거울처럼 머리를 풀어헤친 흐릿한 여인의 얼굴을 비췄다. 임근용은 그 여인을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이튿날은 날씨가 흐렸다. 임옥진은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아침밥을 먹자마자 육함에게 말했다.
“네가 가서 수 의원을 좀 모셔오너라.”
육함이 얼른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걸 본 임옥진이 고개를 돌려 임근용을 바라보며 말했다.
“며칠 쉬고 와서 몸이 좋아진 것 같아 보이긴 한다만, 아직도 좀 마른 것 같으니 좀 더 많이 먹거라. 듣자 하니 두 달 동안 약을 먹어야 한다면서? 몸이 대체 어떻다는 게냐, 수 의원이 자세하게 설명 안 해 주든?”
임옥진은 굳은 얼굴로 냉담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입꼬리는 살짝 내려가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이런 까탈스러운 표정에 임근용은 얼버무리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임근용은 말을 조심스럽게 고른 다음 입을 열었다.
“두 달 동안 계속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 수 의원이 그때 이소야한테 말하기로는 마음에 맺힌 것이 있고 몸도 피로해서 그런 것이니 제대로 잘 보양하면 좋아질 거라 했어요.”
“네가 시집온 이후로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끊이지를 않아 네가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
임옥진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잠시 그녀를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친 조카딸인 널 괴롭힐 이유는 전혀 없어. 하지만 너도 좀 더 분발을 해야 해.”
임근용이 눈을 내리깔았다.
“예.”
방 마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인, 이소부인, 각 부문을 관리하는 시녀들이 목패를 들고 보고를 하러 왔어요.”
“들라 해라.”
임옥진은 큰소리로 대답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임근용을 바라보았다.
“넌 몸조리를 좀 더 해야 하니 내가 아버님 어머님께 한동안 집안일은 네가 집에 없었던 때 했던 대로 처리하겠다고 말씀을 드리마. 내 옆에서 조금 돕는 정도만 하면 그렇게까지 피곤하지는 않을 게다.”
임옥진은 사실상 여씨는 이미 완전히 배제한 상태였다. 임근용을 좀 더 편하게 해 주고픈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보다도 한 번 장악한 권력을 다시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임근용은 이런 일로 임옥진과 다툴 마음까지는 없어서 그저 웃으며 말했다.
“고모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임근용이 벌써 이 집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아무나 마음대로 그녀를 짓밟지 못할 정도는 됐다. 그녀는 다른 누가 집안일을 맡아도 상관없지만 송씨와 려씨에게만은 넘겨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임옥진이 집안일을 잘 운영하고 못 하고는 그녀 같은 어린 며느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건 육 노태야와 육 노부인이 걱정해야 할 일이었다.
임옥진은 다툴 마음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보고 태도가 다소 누그러들었다.
“나도 예전에는 집안일을 돌봤었는데 둘째를 데리고 강남을 가게 되면서 손을 떼게 됐지.”
임근용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떨 때 보면 고모께서도 정말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옥진은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꾹 눌러 참으며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담담하게 말했다.
“난 괜찮아.”
임근용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한쪽에 앉아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집안일을 도왔다. 임옥진이 임근용을 대하는 태도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의 그녀는 임근용이 무슨 말을 해도 귀에 거슬려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임근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약자의 호의는 쉽게 무시되지만 강자의 호의는 남의 눈에 띄기 쉽다는 말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연말이 가까워 오면서 집안일도 훨씬 많이 늘어나 두 고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거의 쉴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이에 방 마마가 들어와 말했다.
“수 의원께서 오셨어요.”
임옥진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임근용에게 당부했다.
“넌 여기서 하던 일 계속 하고 있어. 금방 다녀오마.”
임근용이 재빨리 말했다.
“며느리가 옆에서 모셔야 하는데…….”
임옥진이 손사래를 쳤다.
“둘째도 있지 않느냐, 넌 여기 남아서 할 일하는 게 내 걱정을 덜어 주는 거야.”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임근용이 따라올까 봐 두려운 듯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