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악몽을 꾸다
육건신은 육건립에게 같이 노부인에게 가서 상의하자고 말한 뒤 육함도 놓아주었다.
“너도 어젯밤에 밤을 새웠으니 우선 가서 쉬어라. 이따 친척 어르신들께서 오시면 너도 와서 모셔야 한다.”
육함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장 왼쪽 곁방으로 들어갔다. 임근용은 의랑을 재운 뒤 육륜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가 그가 들어오는 걸 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쉬지 않고 왜 여기로 왔어요? 어젯밤에 밤을 새웠잖아요. 몸이 무슨 쇠붙이도 아니고 이러면 어떻게 버티겠어요?”
육함이 그녀의 옆에 다가가 앉아 고개를 숙이며 의랑을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이 걱정되어서 보러 왔소.”
임근용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창백한 얼굴과 파래진 눈 밑을 보고 마음이 아파 그에게 권유했다.
“침상에 가서 좀 누워요. 의랑이는 내가 잘 보고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깨울게요.”
육함은 그녀의 말에 따라 세수를 하고 침상에 누웠다. 그는 온몸이 바스러질 것처럼 피곤했지만 왠지 잠은 오지 않아 온화한 눈빛으로 임근용 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라 임근용에게 사소한 질문을 했다.
“아버지께서 친척 어르신들을 왜 찾으시는지 알고 있소?”
임근용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재산을 분할한 일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육건신이 이 일을 맡는다면 어쨌든 두 사람은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육함이 임근용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아용, 이리 와서 좀 앉아 보시오.”
임근용이 웃으며 다가가 침상 옆에 앉자 육함이 그녀의 다리를 베고 누우며 눈을 감았다.
“당신하고 다섯째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숨길 생각은 마시오. 난 진실을 들어야겠소.”
임근용이 그의 머리카락에 손을 넣고 머리를 빗어 내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공자가 다시 돌아가서 당신과 함께 있었나요?”
“아니.”
육함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번쩍 뜨더니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오?”
임근용이 조용히 말했다.
“공자가 어젯밤 빈소에서 나간 후에 종적을 감췄다가 거의 날이 밝을 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어요. 그런데 하인들한테는 계속 당신과 함께 빈소를 지켰다고 말했대요.”
육함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원래 천지분간 못 하고 날뛰는 녀석이니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았겠지.”
임근용이 몹시 초조해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민행, 만약에 오공자가 무슨 대역무도한 짓을 저질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관아에 넘길 거예요, 아니면 당신이 따로 처리할 거예요?”
그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육함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근용의 눈을 응시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임근용은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일을 계속 숨기고 있다가 중요한 대목에 이르러 육륜을 구출해내는 것에 희망을 거는 건 너무 위험했다. 그녀는 차라리 육함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적절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육륜이 했던 일들에 대해 육함에게 말했다.
“의랑이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비싼 대면 선물을 주더라고요. 셋째 동서한테 물어봤더니 역랑이한테도 꽤 비싼 선물을 줬다고 해요. 그래서 공자를 좀 떠봤더니 극주의 웅 장군 휘하에서 일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더라고요.”
육함은 졸음이 싹 달아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가서 이야기 해 보겠소.”
그가 임근용을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아마 당신이 넘겨짚은 걸 거요. 다섯째가 천방지축이긴 해도 극악무도한 짓 같은 걸 할 아이는 아니오.”
임근용이 쓰게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 * *
육륜의 집 정원에는 살구나무가 심겨 있었다. 봄에는 정말로 아름다웠지만 겨울에는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 다행히 하늘이 맑고 햇빛이 찬란해 벌거벗은 나뭇가지도 그렇게까지 단조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어 육함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육륜은 긴 의자에 누워 햇볕을 쬐며 자고 있었고, 옆 탁자에는 다람쥐가 들어 있는 우리가 놓여 있었다. 통통한 다람쥐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 우리 안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한쪽에서 지키고 있던 어린 시동이 육함을 발견하고 얼른 다가와 인사했다.
“이소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소인이 가서 오공자님을 깨울게요.”
육함이 손을 내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넌 가서 네 일 보거라. 난 신경 쓸 필요 없어.”
어린 시종은 명령을 받들고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육함은 육륜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바닥에 늘어져 있는 얇은 이불을 끌어 올렸다. 그의 손이 이불에 닿자 육륜이 “헉” 하고 몸을 뒤집으며 벌떡 일어나더니 사나운 눈으로 자기 허리춤을 더듬었다.
육함은 그의 사나운 눈빛과 기세에 순간 깜짝 놀라 화를 내며 그의 머리를 때렸다.
“왜 이래!”
육륜은 멋쩍어하며 눈을 내리깔고 손을 거두며 가짜 웃음을 지었다.
“악몽을 꿨어요.”
육함은 말없이 그를 응시하며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육륜은 그의 눈빛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얇은 이불 속으로 몸을 움츠리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여봐라, 다들 어디 간 게냐? 이소야께 긴 의자를 가져다드리고 얇은 이불도 하나 가져오너라!”
그러더니 비위를 맞추려는 듯 육함을 바라보며 웃었다.
“둘째 형님, 오늘 바람이 안 불고 햇빛도 딱 좋아서 이렇게 누워서 햇볕을 쬐면 정말 포근하고 좋아요.”
육함이 계속 그를 노려보자 그가 절로 괴로워하며 말했다.
“아이고, 둘째 형님, 그렇게 보지 말아요,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고 그래요.”
육함은 시선을 거두고 어린 시종이 가져온 의자에 편안하게 누우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어젯밤에 어디 갔었어?”
육륜의 몸이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처럼 경직됐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미소 지었다. 그는 탁자 위의 찻주전자를 아무렇게나 집어 어린 시동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런 썩을 놈, 이소야께서 오신 걸 보고도 차도 내올 줄 모르느냐! 하여튼 저 닭대가리.”
어린 시동이 허겁지겁 찻주전자를 받았지만, 주전자에 남아있던 찻물이 쏟아지며 그의 옷자락을 적셨다. 시동이 절로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오공자…….”
육륜이 허허 웃었다.
“이것 좀 보게, 다 큰 놈이 이게 무슨 꼴이냐, 남들이 보면 오줌이라도 싼 줄 알겠구나! 썩 가서 갈아입지 못할까?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다시 가져오너라.”
육함은 그의 거칠고 저속한 농담에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침착하게 어린 시동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내 말 끊지 마, 내가 너한테 묻고 있잖아.”
“둘째 형님, 둘째 형수한테 들은 거죠? 형수가 뭐라고 했는데요? 여자들은 원래 늘 호들갑을 떨고 엉뚱한 상상을 하잖아요.”
육륜이 웃음을 거두고 우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다람쥐가 경계하듯 한껏 털을 세우고 육륜을 노려보았다.
“나한테는 뭐든 말해도 돼.”
육함이 육륜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말했다.
“나랑 네 둘째 형수가 널 진심으로 걱정해서 이러는 거야.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나 내가 도와줄 일 없어?”
육륜은 살짝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우리 위에다 검은 천을 덮더니 고개를 돌리고 육함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날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건 잘 알지만, 정말 특별히 할 말은 없어요. 어젯밤에 그냥 나가서 친구랑 놀았다고 하면 믿어 줄 거예요?”
어떤 일들은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모두에게 더 좋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육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좀 전까지는 네가 천방지축이라 정말로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논 줄 알았어.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네 친구들도 다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그렇게 분별없이 굴 리는 없을 것 같더라고. 어느 집안 자제가 너처럼 정신 줄을 놓고 한밤중에 뛰쳐나와 너랑 놀겠어. 네가 누구 이름을 대며 둘러대든 마음만 먹으면 그게 진짜인지 거짓말인지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으니까 그건 생각도 하지 마.”
육륜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말투로 말했다.
“난 뭐 다른 친구도 없는 줄 알아요? 둘째 형님, 형님이 날 걱정해서 이러는 건 알지만, 나도 어린 애 아니고 이제 어른이에요!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그냥 좀 내버려두면 안 돼요?”
육함이 담담하게 말했다.
“난 남이 아니고 네 둘째 형이야. 그래서 진실이 뭔지 알아야겠어. 웅 장군이니 뭐니 하는 말로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겠지만 나까지 속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나나 대노야가 편지 한 통만 보내 봐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어. 지금이라도 나한테 솔직하게 말할래, 아니면 내가 편지를 써서 직접 확인해 볼까?”
육륜은 의자 위에서 거대한 몸을 한껏 웅크리더니,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을 숨기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함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피를 나눈 형제는 육선이이지만, 나랑 제일 가까운 건 너야. 나도 솔직히 여섯째랑 더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 아이가 날 멀리하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어. 어릴 때부터 나랑 제일 친한 형제는 너였잖아. 넌 내가 답답하게 굴고 말수가 적어도 괴팍하다며 싫어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도 널 제일 친한 형제로 생각하는 거고. 아마 네 둘째 형수도 나랑 마찬가지로 널 진짜 친오라버니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난 앞으로 우리 의랑이를 삼촌인 너희들이 더 많이 아끼고 돌봐주길 바라.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야?”
“그 물건은 내가 내 손으로 벌어서 산 거예요. 정말 깨끗한 물건이라고요! 두 사람이 돈을 많이 번다고 내가 번 돈도 내 마음대로 못 쓰게 하는 거예요?”
육륜이 갑자기 몸을 뒤집더니 화를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웅 장군 밑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고 그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하는 것뿐이에요. 남들 앞에서 면목이 없어서 거짓말을 한 것뿐이라고요.”
“그럼 말해 봐, 무슨 장사를 하는데? 이번에도 제대로 대답 못 하면 정말 용서 안 할 거야!”
육함은 갑자기 달려들어 육륜의 소매를 잡아당긴 뒤 손목에 있는 긴 흉터를 드러냈다. 그런 다음 그의 허리춤을 더듬어 한 척 길이에 두 손가락 너비쯤 되는 물건을 잡아 꺼냈다. 꺼내 보니 그건 비수였다. 순식간에 육함의 안색이 변했다. 육륜이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기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아까처럼 격렬한 반응을 보인 걸까?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로 갑자기 급습을 당한 육륜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왜 이래요? 원체 멀리 다니는 데다 내가 원래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 비수 하나쯤 들고 다니는 게 뭐 이상한 일인가요? 우리는 북막 쪽으로 장사를 하러 다녀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마적(马贼)들을 만나기도 해요. 그때 습관이 돼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뿐이에요.”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육륜은 여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어찌나 고집이 쇠심줄인지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육륜이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계속 물어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육함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