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좋은 사람
도씨는 눈앞에 있는 임근용을 의미심장한 말투로 훈계하고 있었다.
“너는 열셋이고 그 아이는 열여섯이라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야.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 예의를 지키고 괜히 시끄러워 질 일은 피해야지…….”
“제가 뭘요? 어머니가 오라버니를 보러 가라고 하셔서 가기 싫은데도 가서 얼굴을 비췄잖아요.”
임근용은 내심 화가 났다. 그녀가 언제 육함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어제 육함을 보러 가라고 한 건 분명 도씨였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또 말을 이렇게 하다니, 대체 누가 말을 함부로 하고 있단 말인가?
도씨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고 딸을 바라보았다.
“말대꾸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어? 계원이한테 왜 그 아이 책을 더럽히라고 시켰어? 그 책은 왜 또 긁어서 망가트렸어? 그 아이가 도량이 커서 너한테 화를 내기는커녕 너를 감싸더구나. 넌 그냥 장난이고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 귀에 들어가기도 쉬워. 그럼 어쩌려고 그래? 그렇게 되면 너만 괴로워져.”
육함이 도량이 넓어서 그녀에게 화내지 않고 감쌌다고? 위선자 같으니라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그 연지 하나로 계원을 한 방에 해치우고 말 한 마디로 임세전이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또 어망 하나와 사탕 한 상자로 묘아가 그를 동정하게 만들었다. 지금 그가 그녀에게 누명을 씌워 모함하고 있는데도 도씨는 그가 그녀를 보호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성공했다. 영원히 이렇게 성공할 것이다. 육함에게 상대도 안 되는데 그를 어찌 피한단 말인가? 임근용은 화가 났지만 웃는 얼굴로 도씨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앞으로는 괜히 시끄러운 일 만들지 않도록 저는 제 방에서 밥을 먹을게요. 그리고 오라버니가 나가면 밖으로 나올게요.”
“그렇게까지 할 정도는 아니야. 네가 장난만 안 치면 돼. 숙녀는 숙녀답게 굴어야지. 이 어미가 집으로 돌아가면 역지의 혼담을 진행해야 하고 그다음은 바로 너야.”
도씨는 한참을 훈계하느라 지쳤는지 손을 흔들며 임근용에게 이만 가보라고 했다.
“이제 그만 가 보거라. 계원이 너는 남고.”
계원은 두려워하는 눈길로 임근용을 바라보았지만, 임근용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마침 임세전이 육함과 그 시동을 데리고 서쪽 정원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옆에는 철이우가 서 있었는데 그는 허리에 그물과 어롱을 매달고 이빨이 다 보일 정도로 크게 웃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싱글벙글 웃으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아가씨, 안녕하세요.”
내가 지금 이 모든 걸 얻기 위해 들인 노력이 얼만데 육함 저 자식은 오자마자 태반을 빼앗아 가는 거야? 임근용은 머리로는 임세전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육함이 자신보다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심 몹시 언짢아 뚱한 표정으로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몸을 돌려 동쪽 정원으로 들어갔다.
육함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임세전에게 말했다.
“셋째 형님, 우리 오늘은 일단 청량사에 가서 비석을 보고 그다음에 강으로 가서 도화어를 잡아요. 저도 직접 한 번 잡아봐야겠어요.”
그의 목소리가 평상시보다 많이 높아져 있었다.
* * *
계원은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도씨의 정원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곧바로 고열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부인, 제가 감히 어찌 그러겠어요. 아가씨, 살려주세요. 그리고 또 울면서 자기 어머니를 불러댔다.
여지는 나이도 어린 계원이 경박스럽게 법도를 지키지 않아 임근용의 얼굴에 먹칠을 한 건 미웠지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정이 있어 그녀가 이대로 죽을까 두려운 마음에 정성껏 돌봤다.
임근용은 이것이 연지 사건 때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도씨는 공 마마를 시켜 계원의 뺨을 몇 대 세게 때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계원에게 앞으로 아가씨가 다시 횡포를 부리면 아가씨를 도와 나쁜 짓을 할 건지 아니면 말릴 건지 물었다. 계원은 그 자리에서 맹세를 하고 돌아왔다. 그녀의 증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안 좋아 보였지만 그저 마음속에 켕기는 것이 있어 제풀에 깜짝 놀란 것뿐이었다. 잘 쉬기만 하면 금세 회복될 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리석고 겁이 많은 계원이 전생에서는 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서 육함의 침상에 기어 올라갈 생각을 했던 걸까? 누군가 자신을 보호해 줄 거리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자기를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임근용이 담담하게 말했다.
“수 의원이 있는 한 계원이가 죽을 일은 없어. 그냥 마음이 너무 나약한 탓이지.”
여지는 임근용을 흘끗 보고 눈을 내리깔았다.
임근용은 여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여태 계원을 방임하던 자신이 이제 와서 너무 매정하게 군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임근용은 아무런 설명도 하고 싶지 않아 계원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네가 계속 이렇게 안 좋아지면 어머니가 널 외원으로 쫓아낼 거야. 그럼 다시 내 옆에서 한가하게 지내긴 어려워질걸.”
아니나 다를까 계원의 눈동자가 눈꺼풀 밑에서 빠르게 몇 바퀴 돌더니 더 이상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기다리니 가빴던 호흡도 많이 완화되었다. 임근용이 몸을 일으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지야, 네가 날 진심으로 모시면 나도 너한테 진심을 다할 거야. 하지만 네 마음속에 내가 없다면 나도 너한테 진심을 줄 수 없어.”
여지는 즉시 그녀를 용서하고 그녀를 부축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착한 아가씨, 노비도 다 알아요. 계원이가 아가씨 얼굴에 먹칠을 했어요. 그 아이를 여기 남겨 두는 것만 해도 아가씨한테는 충분히 어려운 일이라는 거 알아요. 걱정 마세요. 앞으로는 노비가 이 아이를 잘 지켜볼게요.”
임근용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지켜볼 필요 없어. 길은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거야. 죽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어.”
* * *
그날 밤, 임근용은 자기가 말했던 대로 저녁을 먹으러 도씨의 방으로 가지 않았다. 도씨는 그녀가 삐졌다는 걸 눈치채고, 별말없이 그저 사람을 시켜 음식을 보냈다. 임근용은 노릇노릇하게 튀겨져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도화어 튀김이 올려진 접시를 보며 아마 어느 누가 잡은 거겠거니 하고 고양이에게 줘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어제 자신의 물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고도 파렴치하게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모함했는데 자기 혼자 이걸 먹지 않으면 자신은 손해만 보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근용은 분개하며 그 물고기를 깨끗이 먹어 치웠다.
* * *
이틀이 지나자 육함의 병은 다 나았다. 하지만 그는 제 선생 댁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도씨에게 말을 한 마리 빌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제 선생 댁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수업이 끝나면 돌아와 임세전이나 철이우를 데리고 사방으로 놀러 다녔다. 육함은 웃음이 많아지고 식사량도 늘어났다. 그는 철 마마의 음식 솜씨가 좋다고 칭찬하며 그녀에게 자주 상금을 주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철 마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매일 매일 새로운 산나물이나 채소를 그에게 선보였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도씨와 임근용도 허리둘레가 달라질 정도로 살이 쪘다. 원래는 판판했던 임근용의 가슴이 빵떡처럼 부풀어 오르며 속옷이 점점 끼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기분도 달라졌다.
그녀는 우선 육함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만나도 공기처럼 여기며 아예 아는 척을 안 했다. 그녀는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묘아의 말이 맞았다.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건 자기 자신만 괴로울 뿐인데 굳이 그럴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도씨가 볼썽사납게 군다며 그녀를 질책하자 임근용이 아주 엄숙하게 말했다.
“어머니, 딸은 이제 다 커서 정숙하고 단정한 모습을 보여야 해요.”
도씨도 그녀를 어쩔 방법이 없어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다시는 담을 넘어 산에 있는 강으로 놀러 갈 수 없다는 것만 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청량사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경전을 외우는 척하며 수영을 배우는 등 전과 다름없이 지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가 청량산에 피어 있던 복숭아꽃과 배꽃이 다 지고 기온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온천에서 한 바퀴 헤엄을 친 임근용은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기슭으로 기어 올라와 의자에 누워 숨을 헐떡였다.
묘아는 그녀보다 체력이 좋아서 온천에서 두 바퀴를 헤엄치고 나서야 멈추고 그녀의 발치에 엎드려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말했다.
“아가씨, 그거 아세요? 사촌 공자께서 우리 오라버니한테 수영을 배우고 있어요.”
임근용은 깜짝 놀라 바로 일어나 앉았다.
“정말?”
묘아가 아주 불만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럼요. 설마 제가 아가씨한테 거짓말 하겠어요? 매일 지난번 물에 빠졌던 거기서 수영 연습을 한대요. 아마 우리보다 훨씬 재미있을 거예요.”
“얘가 만족할 줄을 모르네. 우리가 여기서 놀 수 있는 것만 해도 이미 부처님한테 복 받은 거야.”
임근용은 묘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흥흥, 육함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뭐든지 다 배우려고 하는구만?
묘아는 그녀가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기왓장을 쳐다보며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가볍게 밀치며 말했다.
“아가씨, 무슨 생각 하세요?”
임근용은 고개를 돌리고 묘아를 보며 친절하게 웃었다.
“묘아야, 내가 너한테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 사촌 공자가 왜 가지도 않고 여기에 억지로 눌러앉아 있는 줄 알아?”
묘아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알죠. 공자께서 제 선생님 문하에서 공부하고 계시잖아요. 과거 시험이 있을 때마다 제 선생님이 계시는 여기는 늘 공부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걸요.”
“틀렸어! 그건 그저 여러 이유 중에 하나일 뿐이야.”
임근용이 그녀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된 이유는 우리 고모가 아주 무서우시기 때문이지. 언젠가 그 집 하인들이 오라버니의 애원에 못 이겨 그를 데리고 거리로 나가 놀았는데 돌아오고 나서 그 하인들은 고모께 거의 반죽음이 될 때까지 맞았어. 내가 왜 여기로 오게 됐는지 알아? 또 내가 왜 오라버니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알아? 그것 역시 우리 고모 때문이야. 만약에 철이우가 사촌 오라버니한테 수영을 가르쳐 준 걸 우리 고모께서 아시면 아무리 우리 어머니가 감싸 준대도 한바탕 두드려 맞는 건 피할 수 없을 거야…….”
“예?!”
묘아가 깜짝 놀라며 소스라쳤다.
“육 대부인께서 그렇게 무서운 분이에요?”
“못 믿겠으면 가서 물어봐. 너 지난번에 사촌 오라버니가 본가에 다녀오고 나서 며칠 동안 안색이 안 좋았던 거 못 봤어?”
임근용은 반대하는 여지의 눈빛을 무시하고 아주 긍정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둘째 오라버니한테 조심하라고 해. 매를 맞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무서운 건 뒤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거지.”
묘아는 앉아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오라버니한테 사촌 공자께서 주신 물건들을 다 돌려주라고 해야겠어요. 사촌 공자께는 미안하지만 육 대부인은 너무 무서운 분이라 우리 같은 것들이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아요…….”
임근용이 말했다.
“사촌 오라버니가 너희 오라버니한테 뭘 선물했든 내가 나중에 사람을 시켜서 똑같은 걸 사다 주겠다고 해.”
“사실 선물 받은 것도 그리 비싼 것들은 아니에요. 그냥 우리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것들일 뿐이지 별로 쓸모 있는 물건은 아니거든요. 우리 부모님은 그런 걸 안 사 주셔서요.”
묘아가 임근용을 껴안으며 감동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가씨는 정말 좋은 분이세요.”
“하하…….”
임근용은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더우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