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02)
103화 창술의 달인
“사천당가 37대 제자 당진철이오.”
“처음 듣는데.”
지구에도 구천 행성의 유력 가문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다. 그중 특히 유명하다는 세 가문에 대해서는 수호도 미리 알고 있다.
“남궁세가보다 세?”
“……당문의 암기술은 천하제일이오.”
옅은 살심이 담긴 음성엔 경쟁심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 음색에 수호가 씩 미소 지었다.
암기 좋지. 직접 손에 피 묻히지도 않고 말이야.
실수한 삼촌의 사과 선물로 이 정도 무공 비급이면 괜찮겠지. 그것도 과외선생님까지 붙여서 말이야.
“좋아, 나가 보자고.”
“좋소. 여기는 지하 2층이오. 저 옆방은 간수 방이고, 두 놈 외에 하나가 더 있는데 분명 위에 보고하러 갔을 거요. 위층은 창고이고, 1층엔 무사들이 기거하고 있소. 우린 이 간수 방에서 비밀통로로 갑시다.”
“비밀통로? 이야, 그런 것도 알아?”
탈옥을 꽤 오랫동안 준비한 듯싶었다.
당진철이 씩 웃었다.
“내가 그리로 들어왔소.”
“……?”
탈옥 준비가 아니라, 감옥에 침입했다고?
얘를 조카 무공 선생으로 붙여도 되는 걸까?
“일단 갑시다.”
당진철의 외형은 며칠 굶은 좀비가 따로 없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한 게 기운이 넘쳤다. 그의 말대로 간수 방으로 들어가니 마몬족의 민속놀이 투화판이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고, 위로 가는 계단이 하나 있었다.
저쪽이 위층 창고로 가는 통로.
당진철은 계단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 소리 내지 않게 조심히 이쪽으로 따라오시오.
“응? 네가 말한 거야?”
당진철이 황급히 검지를 세워 입에 가져다댔다.
– 소리 내지 말라니까. 외공 고수가 전음도 모르시오?
“모르지. 무공 모른다니까.”
“허.”
당진철이 포기한 듯 전음을 관뒀다.
“아직 기척이 없는 걸 보니 창고엔 녀석들이 없는 모양이오. 일단 이리 오시오.”
그의 말대로 위층은 비었다.
아무런 생명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지상인 1층에서 많은 에너지들이 느껴진다.
덜크덕.
당진철은 한쪽 구석의 상자 더미를 뒤적거렸다.
“뭐하냐?”
“내 독문병기가 여기 있을 거요. 잠시……. 여기 있군.”
가죽으로 만들어진 아대를 양손에 차고 각대도 찾아 꼈다.
겨우 하반신만 가린 속옷을 입은 상태로 아대와 각대만 찬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러웠으나, 수호도 당진철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진철의 무구 장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쓰레기 상자 몇 개를 한참 뒤적거린 끝에, 어깨끈이 사선으로 교차하는 혁대를 찾아 걸쳤다.
어깨부터 사선으로 내려오는 가죽 끈엔 비도 주머니가 있었는데 한쪽에 6개씩, 양쪽에 12개의 비도를 숨길 수 있었다.
당진철은 손바닥보다 작은 비도를 찾기 위해 여태 쓴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쓰레기 분리수거에 나섰다.
“야, 언제까지 찾냐?”
“자, 잠깐만 기다려보시오.”
“무공 선생이고 뭐고, 더 늦어지면 그냥 두고 갈 거야. 5초 준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선물도 조카가 살아 있어야 전해주고 말고 할 것이 아닌가. 날개 달린 마몬족이 하늘을 자유로이 다닌다면, 비룡과 함께 있다고 해도 조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쳇, 그만 가시지요.”
비도 주머니는 7개만 주인을 찾았다.
“빌어먹을! 5개면 돈이 얼만데.”
돈만 있다고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름 있는 장인이 만들어 부르는 게 값인 물건이다.
“후, 개새끼. 시발새끼.”
그것도 12개를 모두 크기와 무게 배분이 같은 한 벌로 만들어야 하기에, 실력 좋은 장인을 만나더라도 12개 값을 다시 치러야 한다.
또 그 새로운 무기에 맞춘 정교한 투척술도 수련해야 할 테고 말이다.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소.”
“이거 짐덩이 느낌인데.”
“이래 봬도 일류고수요.”
구천행성에 오기 전 장순필에게 미리 설명을 들었다.
F, E급이 입문자, D급이 하수, C급이 중수다.
중수까진 사실상 무사로 치지도 않는다.
구천 행성에서 발에 차이고 차이는 수준이다.
걸음마부터 무공을 익히는 세상이다 보니, 성장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재능 있는 가문의 자제들은 전부 고수 이상이다.
그래서 진정한 무사 계급은 삼류부터 시작한다.
고수를 3류라 부르는 게 우습긴 하지만 어쨌든 B, A, S 단계를 삼류, 이류, 일류라 부른다.
당진철은 지구에 가면 S급의 각성자가 되는 셈.
레벨 66 일류(S)
암살자
괜한 시간을 허비한 게 아니길 빌었다.
만약 조카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당진철에게 아주 조금의 책임을 물을 생각이다.
“낭비한 시간만큼 선생으로서의 재주가 좋아야 할 거야, 암살자.”
“…….”
흠칫 놀란 당진철이 애써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당문의 제자라 하여 모두가 암살자는 아니오.”
“넌 암살자야.”
수호가 볼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전부다.
좀 더 서로간에 신뢰가 쌓이거나, 그의 경지가 낮아 수호의 눈에 더 많은 게 관찰, 간파된다면 스킬 따위의 정보도 보이겠지만, 지금 알 수 있는건 암살자란 사실 하나뿐.
“…….”
“7살이 배우기에 암살자의 기술만큼 적당한 것도 없지.”
조카는 아직 여물지 못한 나이다.
무엇을 배우든 같은 경지의 어른을 이기기 힘들다.
숨고, 도망가고, 기습하고, 적에게 예상치 못하는 불의의 일격을 날릴 수만 있다면 족했다. 조카의 생존율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암기술이라니, 얼마나 멋진가?
고작 7살짜리 아이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암, 멀리서 죽일 수 있다는데.’
동생도 마음에 들어 하리라.
생각할수록 7살 아이의 수련법으로 암기술만큼 적당한 게 없다 싶었다.
“비밀 통로는 어디지?”
“여깁니다.”
드드드.
앙상한 팔로 무거운 상자를 낑낑거리며 옮기더니, 곧 작게 난 구멍을 가리켰다.
“이곳을 통하면 안전하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소.”
“네가 판 거야?”
“그렇소. 무려 3개월을 준비했소. 조금만 기어가면 하수관과 연결되오.”
여기 뭔 대단한 보물이라도 있었나?
왜 일부러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지?
“내가 굳이 감옥까지 찾아온 연유가 궁금한 모양인데, 묻지 마시오. 각자 사정이 있지 않겠소?”
관상도 보나.
눈치 하나는 귀신같은 놈이다.
그 녀석이 뭔가를 툭 던졌다.
잡고 보니 꼬질꼬질한 솜뭉치다.
“그걸로 코를 막으시오.”
당진철은 벌써 코를 막고 있었다.
“왜?”
“마몬족 놈들은 똥냄새가 아주 지독하다오.”
“…….”
그러니까 이놈은 마몬족 똥통을 통해 기어와서 여기까지 땅굴을 팠구나.
“미친놈이네.”
이런 걸 조카 무공선생으로 붙여도 되는 걸까?
수호가 망설임 없이 계단으로 향했다.
“무, 무슨 짓이오!”
당진철이 화들짝 놀라 그 앞을 막아섰다.
“1층은 마몬족 무사들이 기거하는 곳이오.”
1층에 무사들이 있고 지하가 창고다. 그리고 지하 2층의 이 좁은 공간은, 감옥으로 쓰이고 있지만 사실 수감자는 별로 없다.
대부분 그냥 죽이기에 굳이 잡아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네 계획은 너무 냄새가 나. 그리고 내겐 시간이 별로 없지.”
“그럼 어쩌자는 거요? 은공이 아무리 외공의 고수라고는 하나, 1층엔 못해도 서른이 넘는 일류고수들이 있소.”
그리고 소란이 일어나면 다른 건물들에 있던 무사들도 몰려들 것이니, 일당백의 무력을 지녔더라도 조심히 움직이는 게 상식이다.
“무림인이 잠깐의 더러움과 고통도 감내하지 못해서야 되겠소? 일단 살아 나갑시다.”
“난 무림인 아니야.”
“……?”
의문을 가득 담은 당진철의 시선에 수호가 씩 웃으며 계단을 밟았다.
“지구인이야.”
“……!”
젠장, 어쩐지 전음도 못하더라.
창고로 올라간 수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쪽 선반에 올려져있는 책자를 집어들었다.
“이야, 스킬북이네.”
수호의 순수한 감탄에 뒤따라 올라온 당진철이 경악했다.
“그건 전대 권왕 양대산 대협의 진산절기가 아니오!”
“내가 어떻게 아냐?”
“허어, 이 무식한 마몬놈들. 이런 귀물을 이런 창고에…….”
거기까지 말하던 당진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10년 전 권왕이 사라지며 그의 무맥이 끊겼는데, 여기서 그의 비급이 별견되었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무인들은 자신의 진산절기가 담긴 비급을 가장 소중히 하기에, 항상 품에 넣고 다니며 지키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혹시 여기가?’
저런 귀물을 모실 정도로 이곳이 귀중품을 모아두는 중요 창고가 아닐까? 이런 보물을 천장 위에 두고도 자신은 똥통을 지나 겨우…….
“횡재했네.”
수호가 이것저것 물건들을 챙기자 당진철이 만류했다.
“욕심내지 마시오. 운신에 지장가지 않을 정도의 보물만 챙기시오.”
“아공간에 넣으면 되잖아.”
당진철이 고개를 저었다.
“대협은 구천 행성이 처음이시오?”
“응.”
“여기에서는 지구의 물건이 통하지 않소. 아루카 행성에서 넘어온 아티팩트라는 귀물들도 마찬가지지.”
구천 행성에서는 지구의 총도, 아루카 행성의 마법아이템도 쓸 수 없다. 아니, 들고 오는 것 자체가 안 된다.
“뭐야, 지구는 다 되는데.”
지구에서는 무공비급도, 마법아이템도 모두 사용이 가능하다.
“그야 지구가 더 하위세계니 그런 것이오. 물은 아래로 흐르지, 절대 거꾸로 흐르지 않소.”
“뭔 개소리야.”
수호는 고르고 할 것도 없이 큰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는 비급과 무구, 기타 누군가의 유품이었을 물건들을 쓸어 담았다.
수호의 손이 닿기만 하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그 물건들을 보며, 당진철의 턱이 빠질 듯 떨어졌다.
“어, 어째서. 아공간을!”
“난 돼.”
이건 아공간이 아니라 인벤토리니까.
“그럼 가 보자고. 무공 선생.”
진짜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수호가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한 발짝 디뎠다.
잠긴 문 위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고요가, 전장을 앞둔 전사들의 두려움과 투쟁심이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수호가 씩 웃었다.
자신이 낙오한 세상이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가진 문명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사냥, 생존, 외로움만을 영위한 세월이다.
배고픔, 번식, 경외의 감정만을 교류한 세월이다.
그에 반해 이 세상은 어떠한가?
저 지독한 살심도 반갑다면, 내가 미친 걸까?
쾅!
수호의 주먹에 문이 치솟듯이 떨어져나가버리고 열댓 개의 창이 빗살처럼 찔러왔다.
콰콰콰!
그 창을 일일이 쳐내며, 솟구쳐 달려드는 마몬족들을 한 대씩 때렸다.
퍼퍼퍽!
손에 실리는 힘이 약하다.
간수들은 하수 중의 하수였다.
“…….”
눈앞의 무사들 중에는 한 놈도 죽은 놈이 없다.
부러 몸을 날리며 충격을 흡수하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싸움에 도가 튼 녀석들. 빙 둘러 포위한 마몬족 무사들이 서른 명.
마치 이성우 서른과 마주하는 기분이다.
“재밌네.”
수호가 바닥에 떨어진 창을 집어 들었다.
창술이라면 그도 자신 있는 분야다.
초식도 무공도 없지만 스스로 연구하며 수련한 세월이 가장 긴 무기가 창이니까.
한 천 년쯤 찌르고 휘두르다 보면 자신이 없을 수가 없다.
부부부붕.
멋들어지게 창을 돌린 수호가 착 옆구리에 꼈다. 그 동작만으로 창의 무게, 날붙이 무게, 창의 모든 특징이 손에 익었다.
“배때지에 구멍 나고도 멀쩡하나 보자.”
맷집 좋은 놈들이라고 별수 있나.
나의 창 앞에 모두가 평등하리라.
슈슈슉!
카카캉!
“크어억!”
채 몇 초식도 나누지 못하고 단순하고 과격한 창로에 마몬족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지극히 단순하고, 또 그렇기에 치명적인 창술.
지하바닥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민 당진철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지독한 실전 창술.’
지구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만 들어봤다. 그곳이 대체 어떤 곳이기에 저런 괴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