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01)
102화 웰컴, 구천 월드
“도련님은 천재입니다.”
장순필이 입에 침을 튀겨가며 떠들다가 흥분을 가라앉히곤 사죄했다. 이번 차원이동행이 단순한 관광이나 유학, 무공서적 구입이 아님을 상기한 까닭이다.
“소인이 흥분했습니다.”
“건우야, 네가 어떻게…….”
준호는 아들을 붙잡고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천재를 낳았어?’
자신은 무술은커녕 싸움에도 젬병인 것을 생각하면 미스터리한 일이다.
‘내가 아니면…….’
괜히 생각이 떠난 그녀로 이어져 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아빠. 걱정되시면 전 안 가도 돼요.”
“…….”
준호는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그러고 보면 이 착한 아들이 언제 한번 자신의 의견을 이리 정확히 전한 적이 있었나?
“갔다 와라.”
아들이 무공에 재능이 있다는데, 부모 걱정으로 자식 앞길을 망칠 수야 없지.
준호는 이를 악물고 허락했다.
“큰아버지 말씀 잘 듣고, 위험한 데 가지 말고.”
수호는 신파극을 찍고 있는 둘을 보며 혀를 찼다.
“지금 바로 가는 거 아니야.”
“…….”
수호는 둘을 두고 김미소와 장순필을 불렀다.
“던전에서 되는 정도면 게이트도 되지 않겠어?”
“야수 소환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어디서든 가능할 겁니다.”
상기된 장순필의 말에 이어, 김미소가 그래도 걱정을 내비쳤다.
“사장님 부재중에 별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 실험은 해봤으면 해요.”
“그냥 위급할 때 도움 신호만 줘도 되잖아?”
“언제 또 자리를 비울 상황이 생길지 모르는데, 미리 대비해 놓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음, 그건 그렇지.”
야수들 몇을 야수 사육장으로 불러들이고, 수호는 가장 가까운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약속된 순서로 야수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백구야, 나와라.”
파팟!
흰 연기와 함께 나타난 백구의 입엔 아무것도 없었다.
“물고 있는건 실패. 일냥아.”
파팟!
소환된 고양이의 앞발에 묶어놓은 천 조각도 없다.
“몸에 묶는 것도 실패네. 이냥아.”
파팟!
두번째 고양이가 쓴 모자엔 분명 글자가 쓰여 있었다.
“쓰고 있는 건 되네?”
들고 있거나 붙어 있는 건 안 되지만 모자나 안장은 된다면, 착용 장비는 된다는 의미.
수호는 김미소가 강구한 마지막 방법의 야수를 소환했다. 사실 이게 되면 가장 좋았다.
“일늑아.”
파팟.
소환된 회색 늑대의 목에 둘러진 가죽 띠.
가슴 앞부분까지 와 있어 넓은 가죽목걸이 같기도 했고, 마갑 중에 흉갑만 따로 떼어놓은 것 같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그 앞에 기다란 죽통이 하나 달려 있다는 것이다.
“으음, 성공하면 걱정 끝인데.”
이건 단순한 구조신호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든 야수 사육장이 있는 이곳 수호시티와 연락을 취할 수단이 생긴다.
딸깍.
죽통이 뚜껑을 열었다.
돌돌 말린 종이가 보인다.
“한 장이네.”
두 장의 종이를 넣었었다.
지구의 종이와 업적상점에서 산 종이.
지구의 종이는 사라진 것을 보니 아쉽다.
그게 가능했다면 총도 드디어 던전에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데 말이다.
“그래도 성공이네.”
애초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셈.
“보스 잡아.”
“아우우우!”
소환된 야수들이 뛰쳐나갔다.
1성 던전이다. 이미 A급에 이른 야수 두엇이면 순식간에 클리어가 가능하다.
수호가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종이를 펼쳐 보았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누런 종이인데, 지구의 것보다 훨씬 두껍다.
“이게 2포인트나 하는데.”
빵 하나와 같은 가격. 종이 한 장이면 무려 물이 두 병이다.
“종이 값은 벌어 가야지.”
야수들은 보스가 있는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달렸다.
수호는 그 방향으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뭉개버렸다.
꾸구구궁!
뒤집어지는 땅에 깔리고 빠진 녀석들이 무더기로 죽음을 알렸다.
“아, 1성이지.”
1성 던전에서 사냥하는 멍청한 A급 용병이 여기 있었군.
수호는 괜히 자책하곤, 야수들이 이미 처치했는지 어느새 붉은빛을 뿌리는 출구포탈을 향해 그대로 들어갔다.
*“정말 데려가실 건가요?”
“대장은 말을 했으면 지켜야지.”
핑계와는 다르게 수호의 얼굴엔 어떠한 걱정도 불안도 없어 보였다.
무려 구천 행성 최강의 남자 중 하나를 처치하러 가는 암살행에 7살 꼬마를 데려가면서 말이다.
“내가 언제 조카랑 여행해 보겠어?”
조금 들떠 보이는 수호의 모습에 준호가 신신당부했다.
“형, 무공비급 보이면 비싸도 무조건 사줘야 해.”
“아이고, 알았다니까.”
“무조건 사. 막, 1급 비급 이런 거 막 사. 우리 아들 배우고 싶은 거 다 배우게 해줘야 해.”
“1절만 해라.”
준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우의 어깨를 부여잡고 슬픈 얼굴을 했다.
눈은 우는데 광대는 대견하고 입은 웃는다.
“우리 아들, 벌써 이렇게 컸구나.”
쓸쓸히 혼자 커버렸는데, 아빠가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이만큼 철이 들어 버렸구나.
“큰아빠 말 잘 듣고, 위험한 데 가지 말고, 막 길에 파는 거 아무거나 사먹으면 안 돼. 알았지?”
“네, 아빠.”
벌써 50번도 넘게 들은 말인데 착한 조카는 순순히 대답만 한다. 아비의 걱정이 진심임을 알아서다.
“적당히 하고 놔줘라. 좀.”
“아들,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알았어요.”
아빠의 신파가 조금 부끄러운지 건우가 얼굴을 붉혔다.
김미소는 그녀의 이름처럼 웃으며 배웅했다.
“일일 보고서 작성해 놓을게요. 지시사항 있으면 회신해 주세요.”
“뭐, 알아서 잘하겠지.”
수호는 업적상점에서 종이를 300장 사서 김미소에게 건네 놓았다. 무려 차원을 넘어 글자를 전할 메신저다.
“그럼, 백구야 잘 부탁한다.”
“컹, 컹.”
메신저는 백구가 맡기로 했다.
다른 야수들은 저마다 싸돌아다니지만, 백구는 거의 대부분을 길드 본사 근처를 왔다갔다할 뿐이니까.
“그럼 우린 진짜 가자.”
수호가 와이번 비룡과 같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타.”
비룡과 합체 변신은 못하지만, 그냥 외형만 흉내 내는 정도는 얼마든 가능하다. 그렇다고 등에 안장까지 매단 것은 아니다.
마치 새장 같은 마차에 장순필과 건우가 앉았고, 위의 손잡이를 와이번으로 변한 수호가 잡고 날아올랐다.
“아빠 다녀올게요.”
“편지할게! 아들 답장 꼭 써!”
어휴, 저게 내 동생이라니.
와이번으로 변한 수호가 힘찬 날갯짓으로 빠르게 고도를 높이자, 더 이상 팔불출 동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도련님. 제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저씨.”
“장노라 부르십시오.”
“어떻게 그래요.”
구천 행성에 너무 오래 살아 노예 근성이 박혀버린 발명가와, 혼자 커서 철이 들어버린 조용한 꼬맹이와 함께 수호는 구천 행성으로 가는 게이트로 향했다.
한반도에도 구천 행성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하나 있는데, 다름 아닌 장순필이 귀환하며 생긴 것.
전주 인근의 익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궁세가의 영역으로 가야 하기에, 일단 다른 게이트를 통해 잠입하기로 결정.
수호는 그중 가장 가까운 게이트를 골랐다.
게이트 사용에 대한 허가는 이미 김미소 부사장이 전부 처리해 놓았다.
슈아아아악.
도쿄 상공에 나타난 와이번이 천천히 활강해 도쿄 중심에 뻥 뚫린 구천 행성 게이트로 접근했다. 게이트 주변을 빙 둘러친 장벽과 그 위에 포진한 기관총들이 총구를 들이밀었으나 발사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위협일 뿐.
“조센징! 구천 행성에서 콱 뒈져버려라.”
“돌아오지 마!”
일본 자위대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착지한 수호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준비됐어?”
“네, 삼촌.”
“그럼 가자.”
반쯤 머리가 벗겨진 장순필은 언뜻 수호의 아버지 세대로 보였고, 건우는 수호가 이르게 낳은 아들뻘로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3대가 사이좋게 던전 관광이라도 가는 모양새.
그 행성지가 구천 행성 마몬족 진영만 아니었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파팟!
게이트를 통과한 수호는 격렬한 통증과 아득해지는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컥!”
이건 분명 느껴본 적 있는 고통이다.
아니다. 이건 고통이라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이 견딜 만한 수준의 압박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지구로 처음 돌아올 때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었다는 것.
핏발선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도쿄 게이트 주변을 필사적으로 방어해내는 일본 자위대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이곳 게이트 주변도 마몬족이 우글거렸다.
파파파팟!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낸 수호가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겨우 야수 소환을 시전했다.
“비, 비룡. 일곰 건우를 지ㅋ…….”
휘릭. 휘류류.
자신의 야수 중 가장 강한 두 종.
서로 앙숙 사이였지만 지금은 나란히 수호의 부하가 된 녀석들이 소환되는 것을 보면서 수호가 정신을 잃었다.
*뚜욱, 뚝.
규칙적이고 맑은 소리가 수호의 의식을 일깨웠다.
‘빌어먹을.’
시야는 여전히 가물가물하다.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 빛 하나 없는 어둠이 시야를 제한했다.
또옥, 똑.
어딘가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수호는 열두 방울의 물이 더 떨어지고 나서야 온전히 정신을 차렸다.
철렁!
만세하듯 위로 들린 양손에 묶인 쇠사슬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거렸다.
“어이가 없네.”
분명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는 분명 각성전 신체가 포탈을 통과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라고 여겼다.
방심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포탈의 차이가 있다면 던전으로 통하는 도어 포탈이냐, 행성간 상시 연결되는 브릿지 포탈이냐 그 차이뿐이다.
“아니면 웰컴 서비스거나.”
수호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상태창을 열었다.
또 모든 수련의 결과가 초기화되는 여파로 온 충격이라면, 분명 다시 레벨이 1로 변했을 것이다.
레벨 : 58
이름 : 박수호
클래스 : 드루이드
업적 : 247,029
공적 : 0
근력 1509 민첩 1320 체력 1650
지능 790 회복 865 치유 740
조화 1428 야성 2107
“뭔가 이상하군.”
스탯은 전혀 이상한 게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공적’ 항목이 추가되어 있었다.
수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저절로 욕이 나왔다.
“아오, 씨.”
달랑 하나 추가되는 반동이 이 정도라니, 앞으로 다른 행성을 가기 망설여졌다. 아루카 행성은 또 이곳과 얼마나 다른 거지?
수호는 지구로 돌아가면 아루카 행성 출신의 귀환자를 미리 만나길 다짐하며, 일단 지금 이 상황을 탈출하기로 했다.
비룡과 일곰이 소환되는 걸 봤으니 건우와 장순필은 아직 무사할 것이다. 아무리 괴물 같은 무인이 많은 세상이라지만, 하늘 위를 날고 있는 적을 어찌할 것인가?
마몬족이 날개라도 있지 않은 이상 말이다.
“……있었던가?”
마몬족의 외형으로 변신한 이성우를 생각하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수호는 괜한 불안감에 손목을 휘감은 쇠사슬부터 끊어낼 작정이었다.
“@#$@#$”
어둠 속에서 힘 빠진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 말이다.
“뭐야? 깨 있었어?”
진즉 기척은 느끼고 있었지만, 시체나 다름없는 반죽음 상태의 옅은 생명 에너지를 품고 있는 녀석이라 기절해 있는 줄 알았다.
“@#$@#$”
“뭐?”
수호는 업적상점에서 피투성이 산발괴인의 말이라 추정되는 언어를 구입했다.
“…소용없소.”
“아, 이제 들리네.”
수호는 귀가 열리자 하던 일을 속행했다.
뿌드득.
힘을 주자 쇠사슬이 뜯어지고 수호가 바닥에 내려섰다.
“후, 더럽게 어둡네. 근데 뭐가 소용없다고?”
“…….”
어둠 속에서도 괴인의 안광이 번뜩이는 기분이 들었다.
“간수들이 몰려올 거요.”
“아, 간수. 마몬인이겠지.”
수호는 업적상점을 다시 열어 뒤적거렸다.
“있네.”
마몬족의 언어까지 구입해 먹었을 때, 어둠뿐인 공간에 빛이 스며든다 싶더니 횃불 든 마몬인 둘이 모습을 보였다.
“인간, 탈출 금지다.”
곡도를 들고 사납게 돌진해오는 그들을 보며 수호가 인상을 팍 썼다.
“아, 젠장. 날개 있었네.”
여유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군.
퍼퍽!
달려들던 마몬족 둘의 고개가 홱홱 돌아가더니 그대로 목이 꺾여 풀썩 쓰러졌다.
확실히 안일했다.
조카의 안전보호의 변수에 수호 자신의 무력화는 들어가지 않았다. 빨리 찾아야 한다.
“나, 나도 구해 주시오.”
“굳이?”
“보은하겠소.”
“뭘로?”
“무엇이든.”
“무림인이야?”
“그렇소.”
“좋아. 내 조카에게 네가 아는 가장 강한 무공을 가르쳐.”
“…….”
괴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진산절기를 저리 쉽게 내놓으라 하다니. 문제는 지금의 처지가 저놈의 도둑놈 심보를 거절할 수가 없다는 거다.
“좋소.”
어차피 죽으면 사라질 절기, 후인을 두는 것도 괜찮겠지.
캉.
그가 뺏어든 곡도로 내려치자 너무 쉽게 쇠사슬이 끊어졌다. 베어냈다기보다는 뜯어졌다가 맞았다.
“외공의 고수였군.”
“무공 안 배웠어.”
정체를 숨기고 싶은 사연 있는 은거고수였군.
“사문은 묻지 않겠소.”
나의 배려에 상대가 히죽 웃었다.
“나 밀양 박씨야.”
“…….”
생각보다 술수에 능한 녀석이군. 언변이 대단한 놈이다.
사문까지 밝히며 먼저 통성명을 하는데 받아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포권하며 은인에게 정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