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48)
149화 구하라!
‘시발, 좆됐다.’
무림인들 성격 지랄맞은 거야 진즉 알고 있는 방성민이다. 무려 2년이나 구천 행성에서 지내다 귀환했으니까.
그가 2년이나 생존했다는 것은 그 세계에 잘 적응했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성격 나쁜 무림인들 사이에서 비위를 잘 맞췄다는 이야기다.
방성민은 저도 모르게 지려 축축해진 바지 따위는 아랑곳 않고 바닥에 넙죽 엎드려 벌벌 떨었다.
‘살려주십시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비쳐지리라.
비굴하고 가여우며, 승리감에 고취된 그들의 한 줌 아량을 기대할 수 있게 말이다.
한참 투닥거리던 그들은 의견의 합치를 봤는지 소란이 잦아들었다.
“고개를 들어라.”
“넵.”
즉각 행동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의견 합일이 이뤄진 게 아니라 아예 갈라선 모양이다.
7:3 정도로 갈렸다.
거지와 비구니들이 주축이 된 서른 명 정도의 무림인들과, 딱 봐도 건장하고 형형한 눈빛을 내는 무복의 고수들 80명 정도로.
방성민에게 다가온 것은 다름 아닌 장명. 다수파의 우두머리였다.
“밀양박씨세가가 어디지?”
“미, 밀양엔 사람이 살지 않아요.”
촤악.
장명의 손속은 사정이 없었고, 그의 검격 한 번에 방성민의 손가락 하나가 날아갔다.
“크어억!”
아픔보다 놀람이 더 컸다.
뒤이어 따르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라 숨을 꺽꺽일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 놈이군. 밀양박씨세가는 어딨지?”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면 소용없다 여긴 장명의 검에 목이 잘렸을 것이다.
‘시발놈들, 밀양에 박씨만 사냐.’
거긴 이미 버려진 필드 상태라 어떤 몬스터들이 자리잡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고, 방성민이 살 길은 그것을 충족시켜 주는 수밖에 없었다.
“저쪽입니다. 신법을 발휘하면 한 식경이면 갑니다요.”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부여잡으며 쥐어짜내 이야기했다.
“좋군.”
마교 총본산이 저쪽에 있다.
그곳만 안 가면 된다.
“이 근처에 가장 큰 마을이 어디지?”
“대구입니다.”
“그곳으로 안내해라.”
“예, 옙.”
어떤 무인의 어깨에 걸쳐진 방성민은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충실히 작동했고, 장명의 무리가 대구로 향했다.
혈마도 동족이 죽어나가는 고통을 맛볼 것이다.
“어허, 이를 어이할꼬.”
열개와 남은 인물들은 고작 서른 명.
그나마도 열개를 따르는 이들은 열댓 명뿐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그를 따르기 위해 남은 것이 아니라, 양민학살로 복수를 대신하려는 장명의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남은 것이다.
사절단 중에서 가장 고수이자 선배인 아미파 장로 태사신니도 같은 경우.
신니의 관심은 온통 어린 사질에 머물러 있었다.
“근심이 많아 보이는구나.”
“아니에요.”
7살 까까머리 여자아이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은 심히 가여워 보였다.
‘어찌 이리 운명이 가혹할꼬.’
혈마의 부하가 이 여린 아이의 아비다.
“출가한 몸으로 속세의 연에 어찌 연연하겠습니까?”
그녀가 출가한 지 고작 2년이다.
속세와 멀어졌다면 얼마나 멀어졌을 것이며, 아비를 잊고자 한다고 천륜이 그리 쉽게 잊혀지겠는가.
7살 어린 비구니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짐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일어날 일이었단다. 이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게다.”
“네에…….”
차라리 울었다면 이해하련만, 어린 승은 그저 묵묵히 속으로 삭혔다.
따지고 보면 혈겁의 시작은 천검야장의 복수에서 비롯되었다. 어린 딸과 부인을 앗아간 남궁세가에 대한 복수.
그 당사자인 이 아이가 지금 느낄 감정은 어떠할지, 태사신니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이 꼬마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강호행에 나선 사매의 손에 이끌려 온 꾀죄죄한 아이. 절맥을 앓아 곧 죽어도 이상치 않을 얼굴을 하고선, 눈빛만은 삶에 대한 갈망이 가득해 반짝이던 아이.
‘어쩌면 떠나보낼지도 모르겠구나.’
처음이 생각나는 것을 보아하니, 끝이 다가온 모양이다.
아미파에서 온 사람들은 고작 다섯이지만, 태사신니의 존재로 인해 결코 갸벼이 여길 수 없는 집단.
이미 흐지부지 되어버린 사절단의 대표 열개가 다가와 정중히 청했다.
“신니께서는 어찌하실 요량인지요?”
“무엇을 말입니까?”
“장명과 함께한 이들을 막을 수는 없으니…… 이미 일은 그르쳤습니다.”
장명의 말대로 혈마로 하여금 마몬족을 타격하겠다는 계책 자체가 허술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하의 원한을 갚기 위해 무림을 뒤집은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생존한 수하의 딸을 바치는 것으로 충분히 관계를 개선할 여지도 있다고 보았다.
“빈승은 오로지 사질의 안전이 염려되어 따라왔을 뿐. 뜻대로 하시면 됩니다.”
태사신니의 말에 열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저희는 맹으로 복귀하려 합니다. 시급히 이 소식을 알리고 혈겁에 대비해야지요.”
필요하다면 맹을 해체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한이 있어도, 우선은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동귀어진을 각오한 장명의 분탕질에 대노한 혈마의 복수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태사신니는 물끄러미 어린 사질을 보았다.
복잡한 그녀의 얼굴엔 갈등의 빛이 가득했다.
무릎을 굽힌 늙은 비구니가 그의 어린 사질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돌아가겠다면 가겠다.”
“…….”
“아비를 찾겠다면 그 또한 내 도와주마.”
“…….”
겨우 7살 난 아이.
서른이 넘는 어른이 보고 있다.
더욱이 혈마를 찾아가는 일이다.
구천 행성, 무림인들의 안위가 걸린 미래의 일이기도 하다.
어린 비구니에게 이 모든 짐을 맡기고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꽤 잔인한 짓이리라.
“내 생각에,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아비는 만나 보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
“네, 그러겠어요.”
내심 그녀도 그리 마음먹고 있었는지 냉큼 대답해 왔다.
태사신니가 아미파의 고수들을 보았다.
“너희들은 돌아가 아미파의 안위를 돌보아라.”
2차 혈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누군가는 돌아가 이 소식을 전해야 한다.
“뜻에 따르겠습니다.”
아미파의 여승들이 한참 어린 막내 사매를 한 번씩 안아주고는, 열개 일행과 함께 게이트를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현장에 남은 것은 오직 태사신니와 그의 어린 사질.
그리고 죽어버린 군인들의 시체뿐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밀양이란 곳부터 찾아보자꾸나.”
“네, 사숙.”
진법이야 그녀도 제법 일가견이 있다.
고위 술사가 펼친 진이야 파훼할 방법이 없다지만, 인위적인 진으로 은폐한 것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알 수준은 되었다.
“자, 가자꾸나.”
슈우우욱.
SSS급 비구니와 그녀의 어린 사질은 손을 잡고 날듯이 지면을 박차고 밀양 방향으로 향했다.
*대구시가 부산 독립에 함께 참여한 것은 남부사령부의 존재가 컸다.
각성자들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도 필드의 그 수많은 몬스터를 감당할 수 없고, 모든 던전을 파훼할 수도 없다.
결국 도시의 안전을 위해 국방력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영남지방의 핵심인 남부사령부가 부산 독립과 함께하니 대구시로서는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쏴!”
“놈들이 진군해 옵니다!”
투두두두두두.
진군이라 부를 정도가 될까?
겨우 80여 명.
투두두두두.
불을 뿜는 기관총 포대가 서른이 넘는데 단 하나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맞아 봐야 호신강기도 뚫지 못하는 총알 따위로는 애초에 타격을 줄 수가 없었다.
슥!
“끄아!”
사지 한둘 날아가는 것 따위 구천 행성에서는 예삿일이다. 공적만 쌓으면 그 정도야 역사의 축복으로 다 나으니까.
지구인을 죽여 본들 투쟁으로 여겨질까?
역사가 이를 공적으로 인정할까?
양민 천만 학살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도부가 어디지?”
“저, 저쪽입니다.”
손가락 하나를 시작으로 이미 귀까지 잘린 방성민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대답했다.
1초만 대답이 늦어도 손가락이 날아가고, 그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또 손가락이 날아간다.
왼손은 이미 엄지만 남아있다.
‘잔인한 새끼들.’
무림인들 잔혹하고 인정사정 없는 거야 진즉 알고 있던 그지만, 대관절 무슨 영문으로 지구에 이 많은 고수들이 몰려와 난장을 부리는지 알 영문이 없다.
‘혈마가 지구인이라고?’
쥐 죽은 듯 그들에게 끌려가며 들은 정보의 취합일 뿐이다.
‘누군지 몰라도, 개새끼 콱 뒈져버려라.’
그놈 때문에 구천 행성에 혈겁이 일어났고, 자신의 사업이 망해갈 위기이고, 또 이놈들이 복수를 위해 애먼 놈들을 잡고 있다.
‘가만, 구천 행성에 간 지구인이라면…….’
방성민은 속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혈마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시발, 박수호잖아!’
난데없이 나타나 이성우를 제치고 세계챔피언이 되어버린 한국인.
얼마 전 그가 일본 게이트를 통해 구천 행성을 다녀오고는 일본과 한국의 마찰로 여론이 뜨거웠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저긴가?”
“네, 맞습니다.”
신법을 극한으로 펼친 무인들의 속도는 자동차보다 빠르다. 순식간에 대구 중심의 시청에 다다르자 잔인한 살육이 벌어졌다.
시청을 보호하던 각성자들도 무인들 앞에서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S급 각성자가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말석에 낄까 말까 한 수준.
거기에 대인전만 하고 살아온 무인들의 전투력은, 몬스터를 잡아 강해진 지구의 각성자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시청을 정리한 장명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태진인! 모조리 태우시오.”
“맡겨주시오. 진즉 이리 했어야 했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혈마만 막을 생각을 한 게 애초에 잘못이다.
너 죽고 나 살자 식으로 서로 상처 주는 것도 한 가지 대응법이 될 수도 있었던 일.
시청 건물이 누군가의 검강에 베어지고 대구시를 아우르는 장벽 여기저기가 무너졌다.
그 뒤로도 무인들은 발전소를 폭파시키고, 군수창을 불태워버렸다.
콰콰쾅!
화기가 터져 나오며 지진이 날 정도의 폭발이 일어나자, 무인들은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꼈다.
혈마에 대한 두려움이 가시는 기분이다.
“다음으로 가까운 도시가 어디지?”
도시 전체가 매캐한 연기로 진동했다.
겨우 80명의 인원이 낸 참사라곤 믿기지 않는 일.
겨우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도시 주요 시설들이 파괴되었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그 기반 시설들을 지목해 준 방성민은, 이제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곤 하나, 자신의 지목에 수십 수백이 죽어 나가고 도시 시설이 파괴되고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가까운 마을이 어디지?”
올 것이 왔다.
가장 가까운 건 포항과 안동이다.
겨우 레벨 6 길드 하나 뿐인 그 도시가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자비를 베풀었나 보군. 말을 전하는데 혀만 붙어 있으면 되지.”
촤악!
“끄아아아!”
팔이 떨어져 나갔다.
방성민은 보았다.
여기저기 숨은 시민들.
밖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자들.
웃긴다.
저들은 자신들이 왜 살아 있는지 알까?
무림인은 양민들을 그저 길가에 난 잡초로 여긴다. 잡초를 뽑는 수고를 더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다.
“부산입니다!”
그는 한국말로 고함을 질렀다.
[이제 와 개기는군.]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며 장명이 그의 한쪽 귀 하나를 더 잘랐다.
투욱.
바닥에 떨어진 귀가 현실감 없다.
[부산입니다.] [어디지?] [저쪽입니다.]장명이 강호인들을 불러모았다.
2교대로 나누어 내력을 회복하느라 꽤 시간을 보냈다.
방성민은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부산시가 이들을 대비해도 좋고, 박수호에게 연락이 닿아도 좋다.
이 악마 같은 놈들을 제발 멈춰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