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7)
18화 거점을 정하다
“이야, 이게 용병증이야?”
용병증은 각성자 등록증과 비슷했다.
그냥 용병면허번호가 부여되고, 등급은 기존의 F급과 같다.
측정되는 차원 에너지.
경험치야말로 사냥한 몬스터와 비례하는 수치. 용병 커리어의 전부다.
측정수치가 높을수록 많은 몬스터를 사냥했다는 뜻이며, 그만큼 인류평화에 이바지했다는 증명.
용병증이 발급되었으니 이제 시작이다.
헤어지기 전 짧게 회의를 했다.
“클랜 이름은 뭐로 할까요?”
“봉림이 어떻습니까?”
“스님, 욕심 부리지 말고요.”
동수가 수호를 돌아봤다.
“아무거나 해.”
“으음, 그럼 동수 클랜 어떻습니까?”
“수호 클랜으로 하자.”
“넵, 근데 사무실 어디로 구하죠?”
규모는 작지만 클랜도 하나의 회사.
거점이 될 만한 사무실이 중요했다.
“8구역 어때요?”
“왜?”
“저희 집이 거기라서요.”
수호가 가차 없이 고개를 저었다.
“가장 유명한 먹자골목이 어디냐?”
“이 인근이죠.”
강북 일대를 아우르는 1구역이야말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된 지역이자 번화한 곳이다.
“그럼 여기로 하자.”
“아니, 무슨 클랜 사무실을 먹자골목 보고 정해요.”
“그럼?”
“저희같이 햇병아리 클랜이 어디 가겠어요. 당연히 입장료 싼 던전 찾겠죠? 그럼 필드로 나가야 하는데, 서울 외곽으로 나가야 오가는 시간이 짧죠.”
“그것도 그러네.”
“지도 보고 정합시다.”
12구역으로 나뉜 서울의 전도가 벽에 걸려있었다.
수호는 그중 성남시 일대의 4구역을 짚었다.
“여기로 하자.”
“4구역이면 괜찮죠.”
남쪽으로 가기도 좋고, 동쪽으로 가기도 좋다.
“이사할 집도 알아봐. 동생 가족과 함께 갈 거야. 너희도 같이 살고.”
“어……. 음, 기숙사 같은 개념이에요?”
“뭐, 좋을 대로. 일단 알아봐.”
“좋아요. 어차피 컨텐츠 제작도 해야 하니까. 제가 몇 군데 추려볼게요. 그때부터 같이 보고 정해요.”
수호가 동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주 믿음직 해.”
던전에선 쓸모없는데 밖에선 유능하다.
“헤, 뭐. 이중엔 제가 제일 낫죠.”
하산한 지 얼마 안 되는 스님이나, 세상 물정 몰라 보이는 수호보다는 낫다.
“자, 그럼 정해지면 연락해. 넌 갈 데 있어?”
“소승의 사형이 서울에 계시니 잠깐 만나보려 합니다.”
“좋아. 연락해라.”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관리국 밖으로 나왔는데 상당히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이야, 사람 많다.”
“음? 형님 취재하러 온 거 아녜요?”
“모르지.”
그때 김상식이 수호에게 다가왔다.
“어이쿠, 잠깐 화장실 갔다온다는 게 그만. 이쪽으로 가시죠. 댁까지 모셔드리겠습니다.”
“응? 원래 태워주고 그래요?”
“특별 서비습니다.”
“좋죠.”
택시비 굳었군.
일행은 김상식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했다.
수호 일행이 빠져나가고, 기자들은 기다림이 지루한지 저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손진우 기록 깬 루키 이름이 뭐라고?”
“박수호랍니다. 소문엔 B급 각성자랑 결투에서 이겼다는 소리도 있는데…….”
“뭐? 상대가 누구래? 거기부터 인터뷰 잡아보지.”
“그냥 소문입니다.”
“목격자는?”
“목격자는 아직…….”
아직은 찌라시 수준.
하지만 기자는 소문을 캐고 보도하는 게 사명.
“쯧, 더 파봐.”
“넵.”
떠드는 와중에 관리국 정문으로 버스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어어? 버스 들어온다.”
최종시험을 치르러 갔던 버스가 차례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가 박수호야?”
우르르 내리는 응시생 중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박수호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
관리국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던 김영수 감독관은 고개를 저었다.
“어휴, 어디서 정보가 샌 거야?”
“안 새기가 어렵죠.”
“아니, 그래도 무슨 F급 용병 하나에 저렇게 몰려와?”
“손진우 기록이 깨졌잖습니까.”
대한민국 랭킹 1위 용병.
이슈로 먹고사는 기자들에게 랭커의 기록 경신은 큰 의미가 있었다.
“어휴,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기자들 어떻게 할까요?”
“박수호 귀가시켰지?”
“네, 방금 운전병 시켜 보냈습니다.”
김영수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씹을 거리 줘.”
“예? 위에서 내려온 지침은…….”
“쟤들도 취재만 하고 보도는 안 할 거야.”
대한민국에서 관리국의 힘은 크다.
관리국에서 각 언론사에 엠바고를 요청했다. 기사거리를 한아름 들고 있더라도 엠바고가 풀리기 전까진 박수호란 이름이 기사화되지 않을 것이다.
“일단 해산부터 시키자고.”
잔뜩 몰려든 기자들에게 적당히 씹을 거리라도 줘야 했다.
“알겠습니다. 어디까지 알릴까요.”
“개인 신상 말고. 훈련소 기록, 던전 공략 기록 같은 거.”
루키가 달리기를 몇 초에 했고, 던전 공략을 몇 분에 했고 따위는 개인신상 축에 들지도 못한다. 뭐라도 건져가야 하는 저들에게 적당한 먹잇감이다.
“귀환자라는 건 빼고.”
엠바고가 내려올 정도면 귀환자 중에서도 대형이라는 걸 알 테지만, 그걸 이쪽에서 먼저 떠들 수는 없다.
“네, 알겠습니다.”
부관이 보도자료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수호는 이틀 동안 푹 쉬었다.
곧 떠날 동네기에 인근 식당을 투어하며 보냈다.
동수에게서 이틀 만에 적당한 집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고, 직접 계약도 했다.
돈이 충분치 않기에 죄다 월세였지만, 일만 잘 풀리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준호도 형을 따라가기로 했기에 주인 할머니 이숙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곤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됐어 이눔아.”
봉투를 내미는 준호의 손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살 만해졌다고 흥청망청 거리지 말고 건우 잘 챙겨.”
이숙자가 건우의 손을 잡고는 품에 있던 꼬깃꼬깃한 오만 원짜리 하나를 건넸다.
“괜찮아요. 할머니.”
“할미가 주는 건 받아도 되는겨. 얼른 받어.”
이숙자가 억지로 건우에게 돈을 쥐여줬다.
“트럭도 끌고 가버려. 세워둬 봐야 쓸모도 없어.”
“…….”
준호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참 많은 은혜를 입었다. 이숙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아직도 빚쟁이들에게 쫓겨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유일한 세입자인 그들이 떠나면 이숙자는 이제 수입도 없는데…….
걱정도 되고, 자신도 형에게 얹혀가는 처지라 제 코가 석 자고.
그때 백구를 데리러 갔던 수호가 계단을 내려오며 눈가가 촉촉한 세 사람을 봤다.
“뭐해?”
“어 형. 인사는 드려야지.”
“뭔 인사? 얼른 이삿짐이나 싸.”
“그려, 얼른들 일 봐.”
수호가 이상하다는 듯 이숙자를 봤다.
“할머니도 짐 싸야지.”
“으응?”
이숙자는 물론 준호도 깜짝 놀랐다.
“안 가?”
“내가 왜 가, 이눔아.”
“다 한가족인데 같이 가야지.”
“…….”
조금은 의미가 넓은 수호의 가족개념에 이숙자가 울컥해 말을 잊지 못했다.
“하여튼 다들 짐 챙겨서 와. 나 먼저 간다.”
백구를 안아 든 수호가 먼저 나가자 마당에 정적이 감돌았다.
“썩을 놈, 언제 봤다고 가족이여.”
욕해 봐야 이미 나간 수호는 기척도 없었다.
“여기가 내 집인데. 가긴 어딜 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이숙자였다.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마는 세입자도 없고, 외로운 늙은이 할 일도 없는 게 쓸쓸할 뿐이다.
“할머니.”
“으응?”
건우가 이숙자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요.”
이숙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려. 가자. 가!”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게 염치가 없다지만,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는가.
노후 자금이야 집 내놓으면 되고, 영 눈치가 보이면 세라도 주면 되지.
“우리 건우 눈에 밟혀서 내가 어찌 여 있겄어. 그려, 가자.”
“우와!”
건우가 폴짝 뛰었고, 이사가 결정되었다.
*
서울 4구역. 옛 지명 성남시.
그곳의 남동쪽 게이트 86 부근.
“여기지?”
“예.”
길드 사무실이 대부분 4구역 중심지에 있지만, 클랜 사무실은 죄다 외곽에 몰려 있었다.
임대한 건물은 클랜들이 몰려 있는 특화거리였다.
게이트 86까지는 차로 5분.
중심가처럼 번화가는 없지만, 게이트 주변엔 혈석 거래소부터 주요 건물들은 죄다 갖추고 있어 제법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클랜의 첫 시작으로 나쁘지 않은 곳이다.
“들어가자.”
“워어, 형님 잠깐 여기 봐주세요.”
동수는 셀카봉에 카메라를 거치해 들고 있었다.
“뭐하냐?”
“기념비적인 날인데 사진 한 방 찍어야죠.”
“아미타불.”
수호와 명진 스님, 동수가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영상 찍는다더니 그건 왜 안 해?”
동수가 손가락 두 개를 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에이, 그건 여기에 담죠. 나중에 편집해서 올리기만 하면 돼요.”
2층 건물이었는데 전체를 모두 임대했다.
1층은 넓은 사무실 모습 그대로였고, 2층엔 원룸 같은 방들이 6개 있었다.
클랜 사무실이라고 해 봐야 거창할 것 없이, 용병들이 던전 공략에 대해 회의하고, 훈련하며 대기하는 공간일 뿐이다.
“여긴 내 방.”
“소승은 이곳으로 하겠습니다.”
방 셋이 주인을 찾았고, 1층으로 내려온 동수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클랜 등록증이에요.”
“금방 나왔네.”
“뭐, 클랜 등록, 해체는 쉬운 편이죠.”
레벨 0
클랜장 – 박수호 F
클랜원 – 한동수 F 명진 F 스텝 – 박준호, 이숙자
“저, 어제부터 궁금했던 건데 이분은 누구예요?”
“이숙자?”
“네.”
“할머니다.”
“……?”
의아해하는 동수의 서신이 따갑다.
“왜?”
“친할머니세요?”
“아니.”
그럼 도대체 할머니를 왜 클랜원으로 받지?
혹시 각성 스킬이 희귀한 케이스인가.
“저, 이 할머니 잘하는 게 뭐에요?”
“욕은 좀 하더군.”
“……?”
욕쟁이 할머니를 클랜에 왜 받아?
“뭐? 왜?”
“아닙니다. 그럼 이것저것 필요한 거 사러 가죠?”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불부터 세면용품까지 숙소에서 사용할 생활 물품들을 죄다 사곤, 사무실에서 사용할 물건들을 사기 시작했다.
보통 1층 대기실은 클랜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꾸며지는데, 단련을 위한 운동기구는 거의 모든 클랜이 갖추고 있었다.
나머지야 술집으로 만들든, 카지노로 꾸미든 상관이 없다.
그냥 대기하는 공간이니까.
컴퓨터부터 소파, 냉장고, 책상 따위가 쉴 새 없이 배송됐고, 정리하고 보니 꽤 괴랄한 모습의 1층 대기실이 만들어졌다.
“저건 뭐라고 부르냐?”
수호가 한쪽에 마련된 제단을 가리키자 명진이 자랑스럽게 답했다.
“불상이라고 부릅니다.”
“흐음.”
컴퓨터 세팅을 마친 동수를 마지막으로 클랜원 셋이 소파에 앉았다.
“재밌네요. 어찌저찌 클랜 흉내는 낸 것 같고, 앞으로가 중요한데.”
동수가 클랜 증서의 ‘레벨 0’ 부분을 가리켰다.
“이걸 올려야 해요.”
레벨 0은 아무것도 증명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레벨 1은 ‘이 클랜 자체의 여력으로 레벨 1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의 자격 표시다.
“레벨 1부터 자격이 있긴 한데, 보통 3은 되어야 길드를 노려볼 수 있어요.”
영역을 가져야 클랜이 길드로 불리기 시작한다.
각 구역을 대표하는 길드들의 레벨은 6.
맡은 구역의 모든 던전을 안전하게 처리할 책임이 있지만, 그 넓은 구역의 하위 던전까지 모조리 처치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또 영역을 나눠 방위를 담당할 길드를 뽑는다.
마치, 대영주 산하에 소영주 여럿을 두듯이.
그런 소규모 구역이 4구역에만 100여 곳이 넘는다.
“빈자리 생기면 공개 입찰받는데, 최소 자격이 레벨 1이에요.”
자격이 그렇지만 경쟁이 심해 레벨 3 정도는 되어야 입찰에 성공한다.
일단은 먼 일이니 지금은 부지런히 던전을 공략하며 커리어를 쌓고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좋네.”
수호의 목적은 공동체 무리로서의 울타리를 가지는 거다.
늑대 녀석들이 부러워 꼭 해보고 싶었다.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동족끼리 무리를 이루고 영역을 구축하는 거다.
길드의 역할과 꼭 같았다.
“최고로 강한 길드를 만들어주지.”
수호의 말이 헛소리로 들리진 않았다.
고작 이틀 봤지만, 그 전투력 확실히 특출나 보였으니까.
“전 어차피 유튜브 활동 때문에 하는 거니까 뭐.”
동수야 거창한 목적은 없다.
그냥 클랜 설립부터 길드까지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영상콘텐츠일 뿐이다.
“소승은 불타버린 봉림사를 재건하는 게 꿈입니다.”
명진은 나고 자란 절과 스승을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잃었다.
마귀들을 향한 복수의 마음은 최대한 다스리고 있긴 하지만, 사라져버린 사찰의 재건은 꼭 이루고 싶었다.
스승님의 유지였으니까.
“좋아.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던전에 간다.”
자격은 갖춰졌다.
사냥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