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78)
179화 변혁 (2)
해상 괴수 출현 이후 해변에서 해수욕 따위를 즐기는 현대인은 없다.
하지만 지금, 한산한 캘리포니아 해변에는 비치체어를 놓고 동양인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슈아아악, 철썩.
이성우는 부딪히는 파도 너머로 지기 시작하는 석양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세상의 구원이니 뭐니 하는 짐은 내려 두고 말이다.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생들에 대한 보상을 받은 느낌.
띠리리리.
발신으로 뜬 번호를 본 이성우는 픽 웃었다.
LA시장.
머지않아 서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인물.
“네.”
리처드가 완성하고 연락한 모양이다.
이성우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개발은 박사가 했지요. 저야 재료를 공수해 줬을 뿐입니다.”
위험해? 귀환석이?
“위험하다뇨?”
“…….”
이성우의 머리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만 간 보고 이야기하시죠. 귀환석이 왜 위험합니까?”
하워드 시장의 반문에 이성우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 돌아간다고 여겼다.
“리처드 박사, 함께 있습니까?”
잠시 후 상기된 음색의 리처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 뭘 만드신 겁니까?”
“이동포탈?”
이성우는 머리를 짚었다.
‘그걸 왜 만들어?’
하마터면 육성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집어넣어 놓고 물었다.
“포탈에서 귀환하는 장치를 만들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아직은 못 구합니다.”
차원석은 쉽게 얻을 물건이 아니었다.
이성우도 여유분이 아직 하나뿐이다.
“시장의 도움으로 몇 구할 수는 있을겁니다.”
“군주급 몬스터를 사냥하면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죠.”
뚜루.
전화를 끊은 이성우는 어이없는지 실실 웃었다.
“참내. 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지난 과거의 생에서 리처드 박사는 항상 귀환석을 발명해 낸 과확자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걸 만들어 낼 줄 알았다.
“어이가 없네.”
뜬금없이 ‘차원이동’ 장치라니.
이건 본래 롤랑사에서 만들어 낼 물건이다.
그것도 3년 뒤에나 겨우 시제품이 나올 물건.
“별게 다 비틀리네.”
이것도 나비효과의 영향일까?
변수라면 박수호라는 존재뿐이지만, 그것이 리처드에게 준 영향은 작을 것이다.
이성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의자에 몸을 푹 기대었다.
“알게 뭐야.”
뒤죽박죽이 되든 말든.
어차피 이번 생은 포기했다.
회귀하면 다 사라져 버릴 세상.
솨아아아, 퍼억!
저 부서지는 파도처럼 사라질 세상이다.
붉게 물든 석양을 보며 눈을 감았다.
‘어차피 못 막아.’
놈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7성 던전까지다.
8성 던전은…….
‘가능할 리가 없지.’
애써 생기는 불안감을 지우며 석양을 구경했다.
나쁘지 않다.
이런 느긋함도.
“진짜 구해버리는 건 아니지?”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삶의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설마.”
애써 불안감을 털어내려 생각을 쫓았다.
*
파팟!
“후우우.”
마지막에 포탈을 나온 서민수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팀원으로서 참가하는 것과 팀의 리더가 되어 공격대를 이끄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과장님.”
“어유, 왜 이러십니까. 팀장이라 불러 주십시오.”
최병철의 말에 서민수가 피식 웃었다.
한껏 조였던 긴장감이 풀리는 느낌이다.
“좀 정리하고 소주나 한잔하죠.”
“준비하겠습니다.”
포탈관리과 시절 최병철은 서민수보다 선임이었다. 수호 길드로 오면서 직급도 팀도 바뀌어 버렸지만.
“서 이사님. 얼른 오시죠.”
“그래.”
지원부서의 팀장 직함은 완전히 내려놓고 용병이 된 서민수다.
2공격대 홍세희에 이은 3공격대의 대장.
서민수는 불끈하는 심장을 한번 툭 치고는 현황판을 보았다.
던전 규모 – 레벨 7 (7980)
남은 횟수 – 6 (47880)
브레이크 – 2 . 02 : 23 : 21
2공격대는 이미 공략을 마쳤고, 3공격대도 지금 막 마쳤다. 이번 던전에서 더 이상의 도전은 없을 것이다.
남은 6회차는 모두 1공격대인 박수호의 몫.
“과장님.”
“에이, 팀장이라니까요.”
“하하, 입에 붙어가지고. 암튼 다른 팀 들어간 거 없죠?”
“SSS급 우리 서 이사님도 겨우 공략하는데 어떤 팀이 들어가나요.”
서울 12개 길드가 힘을 합쳐 공격대를 편성했으나 정작 공격대를 구성하는 용병들이 입장을 거부, 7성 던전 공략에 한 번도 도전하지 못했다.
“하하, 대형 길드도 이제 옛말입니다. 거기 랭커들, 우리 길드 와 봐야 예비멤버 아닙니까?”
“하하.”
서민수가 그저 머쓱하게 웃고는 말았다.
수호 길드 2, 3공격대 전원이 SSS급 공대장을 중심으로 SS급과 S급으로 이뤄져 있었다.
대길드 스쿼드를 다 모아도 불가능한 라인업.
그동안 주저하던 최병철이 단숨에 퇴직하고 수호 길드로 자리를 옮긴 이유가 바로 이번 강만수 기자의 폭로였다.
“후, 그럼 전 잠깐 쉬고 다시 나올게요.”
“예, 서 이사님.”
반쯤 놀림 섞인 존대에 서민수가 더 실랑이하지 않고 휴게실로 향했다.
“서 대장님. 201호 예약해 뒀습니다.”
“어, 고마워.”
던전과 그리 멀지 않은 빌라.
전체가 임시 호텔로 꾸며져 있었다.
낡은 외관은 그대로지만 내부는 깔끔하게 잘 꾸려져 있었다.
서민수는 샤워를 하며 피를 씻어냈다.
마지막 카우 킹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잡아냈다.
홍세희는 쉽게 하던데…….
튼튼한 방어력을 기반으로 급소 공격을 하는 그녀와 자신은 스타일이 다르다.
자신은 쌍검으로 무차별적인 연속공격으로 과다출혈을 유도하는 쪽이니까.
‘좀 더 정교함을 늘려야 해.’
괜히 칼질 한 번 더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의 칼질도 치명적으로 해야 한다. 힘을 덜 낭비해야 체력을 보존하고 한 번이라도 더 많은 적을 벨 테니까.
거의 한 달 가량의 전투로 긴장과 피로가 누적된 몸은, 따듯한 물로 샤워하자 곧 졸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침대에 몸을 던져 잠깐 잠들었다.
SSS급으로 오른 뒤 신체능력은 전에 비할 바 없이 높아져, 아주 짧은 시간의 수면으로도 꽤 많은 체력을 회복했다.
“벌써 이 시간이네.”
네 시간이나 내리 잤다.
한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괜히 밍기적거리며 억지로 더 잔 건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 탓이리라.
서민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와 현장을 찾았다.
던전 옆 현황판에는 그새 남은 회차가 3개나 줄어 있었다.
“어? 서 팀장님.”
“한 이사.”
던전 옆에 꾀죄죄한 몰골의 한동수가 희게 웃었다.
“사장님은요?”
“방금 또 들어가셨어요.”
박수호가 다시 던전에 들어갔는데 한동수가 남았음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졸업하셨군요.”
“네, 하하. 제가 SSS급이 될 줄이야.”
대한민국 국적으로 3번째다.
그리고 그 3명이 모두 수호 길드 소속이다.
“쉬고 오시지 그러세요?”
“아녜요. 형님 금방 나오실 거예요.”
“오, 명진 스님도 졸업입니까?”
“네, 몹 몰이 때문에 같이 들어가셨어요.”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최병철이 재빠르게 주변을 정리했다. 수호 길드에 우호적인 기자들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49일간 말 많고 탈 많았던 서울시 4구역의 7성 던전이 소멸되기 직전이다.
벌써 일주일 전부터 좋은 자리 맡아 놓고 중계 중이던 카메라는 곧 생방송으로 전환했고, 리포터가 나와서 뭐라고 떠들고 있었다.
투두두두두.
하늘에 뜬 방송용 드론만 17대.
“이야, 요란하다 요란해.”
한동수의 평에 최병철이 웃으며 답했다.
“요란할 만하지요. 앞마당에 핵이 떨어질 뻔한 걸 구제한 건데요.”
핵에 비할까 싶었지만, 던전이 터지면 4구역이 폐쇄되는 건 기정사실이다. 그리고 이후 또 다른 구역이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덤으로 얻었을 것이다.
파팟!
“음? 민수 나왔네.”
“네, 사장님.”
“할 만하지?”
“하하, 해볼 만했습니다.”
“다행이네.”
박수호는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다.
“이따 쫑파티나 하자. 명진 가자.”
“나으 과 아……. 아.”
명진이 말을 했으나 나오는 건 쉰 소리뿐이었다.
“어우, 스님. 마음 다 아니까. 얼른 다녀오세요.”
“…….”
명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픈 얼굴로 수호가 입장한 포탈에 몸을 던졌다.
서민수는 보았다.
마지막 순간 명진의 눈에 비친 것은 이슬이었을까.
“어우, 명진 스님 3박 4일 동안 불경만 왼 것 같은 비주얼인데요.”
“3박 4일이면 다행이죠. 서 이사는 먼저 졸업해서 몰라요.”
“예? 서 이사 졸업하고 저희 둘이 아주 그냥…….”
그나마 동수는 칼질과 혈석 채집만 했지.
명진은 미친 듯이 불경을 외우며 창술을 펼쳤다.
그들이 사라진 지 불과 30분.
파팟.
“이제 두 번 남았네.”
“아으, 아으.”
“가자 명진.”
“…….”
파팟!
서민수와 한동수는 말없이 명진을 응원했다.
*
공중파 케이블 할 것 없이 모든 방송채널에서 7성 던전 현장 생중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던전 클리어 속도가 30분 내외인지라 방송은 계속해서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짬짬이 자료화면으로 다른 국가에서 생성된 7성 던전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결과는 죄다 좋지 못했다.
어지간한 소도시는 인근에 7성 던전이 생성되는 것도 부담스러워 피난민들이 증가했고, 서울과 비슷한 상황의 다른 두 대도시는 어떻게 공략은 해내고 있지만 브레이크를 막기엔 어려워 보였다.
한창 자료화면이 나가는 그때 다시 화면이 전환되며 포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파팟.
포탈에서 명진과 수호가 튀어나오자 던전은 그 생명을 다해 차츰 사그라들다가 공기 중에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방송 어느 채널을 틀어도 흥분한 방송 앵커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인터뷰?”
수호의 반문에 최병철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저 소감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뭐 립서비스 같은 것 있잖습니까?”
“아, 립서비스.”
수호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병철이 재빨리 방송팀 하나를 불러왔다.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단독 인터뷰를 따게 된 방송국 사람들은 흥분된 얼굴로 수호를 맞이했다.
“아, 너무 떨리는데요. 먼저 서울 시민을 대…….”
“마이크 줘 봐요.”
“앗, 넵.”
리포터가 건넨 마이크를 쥔 수호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이야기했다.
“뭐, 이웃끼리 돕고 삽시다. 처치 곤란한 7성 던전 있으면 언제든 연락 줘요. 보고 적당하면 갈 테니까.”
아직 레벨업을 마치지 못한 야수들이 있어, 사냥터가 부족해 한 말이지만 도시 존망이 걸린 몇몇 나라에서는 크게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