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81)
182화 흡혈귀
“으어, 형 저 입 돌아가요.”
“넌 물에 빠져도 입만 뜰 거야.”
“아. 터, 턱이 뻐근해.”
박용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싶었으나 몸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이 파티는 미쳤어.’
목적지가 대만이어서 다행이지, 남미였으면 냉동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극한의 고통에 이 와이번을 파이어볼로 구워버릴까 말까 쉴 새 없이 고민한 비행이었다.
“스트레칭도 좀 해. 어우, 뻐근하다. 용필이 너도 자, 이렇게.”
수호가 가만히 있는 박용필의 허리를 접어 주었다.
두두둑.
“으억.”
“젊은 놈이 유연성 좀 기르고 그래라.”
박용필은 27살로 그리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기선 명진과 동수 다음의 막내일 뿐이다.
“허, 허리. 아악!”
“왜 이리 약하냐. 마법사들 다 이래?”
파팟.
수호는 주변 나무들에게서 생명의 기운을 끌어모아 동수와 용필에게 나눠주었다.
“허읍!”
“우와, 이건 받을 때마다 기분 좋네요. 맨소래담으로 샤워하는 것 같아요.”
장순필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아픈 거 아닙니까?”
“하하, 소장님도 거참. 비유죠 비유.”
동수는 저 멀리 보이는 도시장벽을 보며 말했다.
“기념 촬영 하나 박고 가죠.”
비룡은 이미 야수 사육장으로 역소환되어 자취를 감췄고, 다들 수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자, 찍습니다. 역사적인 현장! 타이베이 수복을 시작하겠습니다.”
“사진 찍는다며?”
“에이, 형님. 유튜브 각 뽑는 거죠.”
영상기억 초능은 다 좋은데 자신의 모습을 담을 수 없는 게 아쉽다.
멘트를 더 치면 혼날 거란 걸 직감한 동수는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근데 누가 찍어 주죠?”
휘리릭.
“우끼기.”
소환된 후왕이 손을 내밀자 동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찍사로 원숭이 대장을 부르다니.
“우끼이.”
후왕이 히죽 웃으며 드러난 잇몸이 부담스럽다.
다들 웃으며 폐허가 된 타이베이를 배경삼아 사진을 남겼다.
“자, 가자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어떻게 해?”
동수는 박수호에게 아무런 작전이 없음을 깨달았다.
“생존자들도 있을 것 아녜요. 설마 싹 쓸어버릴 작정이었던 건 아니죠?”
“으음.”
맞네.
방금 안 말렸으면 토네이도에 도시 자체가 날아갈 뻔했네.
“민간인하고 몬스터하고 다 뒤섞여 있을 테니까…….”
대규모 범위공격은 위험하다.
“고르세요. 보스 섬멸전, 인질 구출작전.”
동수의 작전 입안에 수호가 피식 웃으며 걸었다.
“착각하는데.”
“예? 뭐가요?”
“우린 사냥을 위해 왔지.”
“그렇죠.”
“운이 좋은 놈은 살고, 계속 기다리는 놈은 죽겠지.”
살고 죽는 것은 수호가 결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지일 뿐이다.
“일단 진입한다.”
수호의 작전은 하나다.
직진.
가다가 몬스터가 보이면 죽이고, 사냥한다.
그리고 ‘군주’급 몬스터를 만나면 사냥하고 차원석을 얻는다.
그게 전부다.
“사람들 보이면 구해주고 말이야.”
“넵.”
다들 바짝 정신을 차렸다.
‘형님이 아니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괜히 정의의 사도인 척하지 말자.’
‘보다 많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악귀들을 멸하리라.’
‘내 감지능력은 이것을 위한 거다. 한 명이라도 더.’
‘주군의 뜻대로.’
각자 생각은 다르지만 모두가 수호의 뒤를 따랐다.
“너희 사냥할 줄 알지?”
“네.”
이미 2공격대에서 합을 맞췄던 그들이다.
명진과 동수가 SSS급이고, 최수영이 SS급이다. 어지간한 기습이나 물량공세가 아니면 허무하게 당할 전력은 아니다.
“너희 먼저 가. 용필이 순필이 이리 오고.”
세 명의 척후가 먼저 움직였고, 본대인 수호는 박용필과 장순필을 양쪽에 두고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너 아루카 행성 갔을 때 어땠냐?”
“예? 처음 소환됐을 때 말입니까?”
“그래.”
“으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합니까?”
“처음부터 해.”
“제가 처음 소환된 건 어느 숲속이었습니다.”
“나랑 같네.”
“예에? 사장님도 숲에 소환되셨습니까?”
“어, 그래서 그 다음은?”
“아, 예. 그 뒤에 운 좋게도 마법사 눈에 띄어…….”
“와, 난 늑대들 만나 죽을 뻔했는데.”
“예?”
“그 다음에?”
“예, 제 스승님이신 아발론 화이트 마법사님은 그때 당시 4서클의 마스터로…….”
“그래, 그거.”
“예?”
“서클 말야.”
아루카 행성의 특징을 잡자면 아마도 저 서클이 될 것이다. 박용필의 프로필에 버젓이 서클이 표기되어 있다.
저것은 아마 아루카 행성에서 각성자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
“서클 자세히 이야기해 봐.”
“예, 서클은 마법사들이 자연의 힘을 빌리기 위한 제3의 눈이자 손으로…….”
“저저.”
“예?”
박용필이 수호를 보니 그의 시선은 전방으로 가 있었다.
명진과 동수, 수영이 검은 연기에 맞서 고전하고 있었다.
“둘이 이야기해. 순필이 잘 듣고 연구하고.”
“예, 주군.”
“…….”
파팟.
저 멀리 뛰어가는 수호를 보며 박용필은 생각했다.
‘애초에 들을 생각은 있으셨을까.’
“하하, 용필 씨.”
“예, 연구소장님.”
“편하게 이야기해요. 그냥 형이라 불러도 좋고.”
“어이쿠, 제가 어떻게. 그럼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좋아. 곧 우리 다 같이 아루카 행성에 가겠지만, 어쨌든 그 뒷이야기 좀 들어볼까?”
“예, 제가 스승님을 만나서 운좋게…….”
박용필과 장순필이 사이좋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이어 갔고, 수호는 뱀파이어 하나를 처치 못해 고전하는 그들을 위해 나섰다.
파팟! 슈아악!
바닥을 박차고 달려간 수호의 신형이 대기를 가로질러 날았다.
그냥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날개가 돋아나며 허공을 날았다.
숙련도 맥스 수준의 흉내내기 스킬은 이제 자유자재로 구사 가능하다.
매로 변한 수호가 검은 연기를 향해 날았다.
슈아아악. 퍼억!
검은 연기와 뒤엉키며 바닥을 구른 것은 어느새 변한 곰.
“크허어엉!”
콰직!
검은 곰이 연기에서 실체화된 뱀파이어의 어깨를 물었다.
“크아아아악!”
슈아아악, 퍼억, 퍽!
어깨를 문 그대로 목을 비틀며 바닥에 패대기치길 서너 번.
츠츠츳.
뱀파이어가 다시 검은 연기로 화해 공기중에 녹아들며 죽음을 알렸다.
“후.”
“와, 물리공격 면역이던데.”
“입구부터 뱀파이어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수호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뱀파이어만 있으면 곤란한데…….”
성속성 무기가 아니면 타격이 곤란하다.
아루카 행성엔 있는 사제란 직업도 지구에는 없다.
종교인.
그중에서도 신성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
그마저도 무기에 성 속성을 인챈트하는 계열의 성직자는 없다.
“어우, 저희도 챙겨 오긴 했는데.”
성 속성의 무기들은 모두 아루카 행성 수입산이다.
금액이 고가인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워낙에 매물이 적은 물건이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동수와 수영이 하나씩 가져왔지만 전투가 급박하게 전개되어 아공간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럼 됐네.”
무기 하나 바꿨다고 뱀파이어를 압도할 것 같진 않았지만, 그때가 되면 수호가 나서면 된다.
“근데 어째서 형님 공격은 통할까요?”
“음, 확실히 이상하오. 나 같은 불도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데 시주의 공격은 마치…….”
명진은 괜히 말을 아꼈다.
그 모습에 동수가 히죽 웃으며 딴죽을 걸었다.
“스님. 불심이 너무 얕은 거 아닙니까?”
“아니……. 나무관세음보살.”
“오, 아니시에이팅 나올 뻔했쥬?”
“나무관세음보살.”
“오, 인내심 지렸쥬.”
얍삽한 동수의 표정을 보며 명진은 이마의 힘줄이 돋아났다.
“시주의 뚝배기가 남아있음이 내 불심을 말해주고 있소.”
“와! 스님이 언어 선택 지렸쥬.”
“…….”
“인내심 한계 왔쥬? 크크.”
“…….”
가만히 놔두면 명진의 창이 동수의 머리를 후려칠 것 같아 수호가 나섰다.
퍽.
“대머리 놀리지 마.”
“시, 시주!”
대머리가 아니라 민머리라 항변하고 싶었으나, 너무 상처 받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들어가자. 일단 명진이 몹 몰아봐. 어떤 놈들이 있는지 보자.”
“알겠소이다.”
*
해가 지고 있다.
차이지엥은 자신이 아주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아 있다.’
처음엔 그것이 비극이라 생각했다.
타이베이 인근에 생겨난 7성 던전이 생겼을 때도 대수롭지 않았다.
던전이 터지고 몬스터들이 튀어나오며 일단 미사일 세례가 퍼부어졌다.
매설된 지뢰들이 몬스터들의 돌진을 막았다.
기관총에 모두 쓸려 나가는 듯했다.
슈아아악.
검은 그것은 재앙이었다.
[첫 재물이구나.]차이지엥의 운은 그것에게 처음 먹혔다는 사실.
그가 아주 기뻐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는 것.
“크흐으으.”
그는 죽었으나, 살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 되어.
“크흐으으.”
괴물이 되어 살았고, 항거할 수 없는 피의 명령이 내려졌다.
“죽여라. 마셔라.”
“크아!”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둘 중 하나다.
같은 뱀파이어가 되어 혈족이 되든가, 그저 이지를 상실한 몬스터와 같은 하수인이 되든가.
차이지엥은 자신의 자아가 온전함에 감사하며 명령에 수긍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차이지엥은 돌진했고, 곧 수많은 몬스터들과 함께 핵을 맞고 기억을 잃었다.
기억이 이어진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츠츠츠.
검은 연기가 뭉쳐 실체를 이뤘고, 차이지엥의 생전 모습을 완벽히 갖추었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이 뱉어졌다.
핵에 수많은 몬스터 무리가 죽어버렸지만 자신은 살았다.
츠츠츳.
몸 여기저기가 검은 연기로 변했다가 실체화했다가를 반복했다.
완벽한 종의 진화를 이루었다.
이제 빈말로라도 인간이라 부르긴 어려워 보였다.
“하악. 피가, 피…….”
에너지가 필요하다.
피. 신선한 피가…….
차이지엥이 날아올랐다.
검은 연기로 화한 그의 모습은 박쥐 그 자체.
파닥파닥.
의식이 없는 동안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위를 날았으나 생물을 찾기 어려웠다.
보이는 건 길거리를 배회하는 좀비뿐.
마하반야.
그때 바람결에 실려온 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였다.
“크윽! 크아아!”
두통이 엄습한다.
알 수 없는 분노가 들끓는다.
이놈들을 죽여야겠다.
죽여서 먹자.
휘리릭.
*
퍼억, 퍽!
“죄다 좀비네?”
“그러게요.”
수호는 좀비 무리를 상대하는 일행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군주급이면 몬스터를 부하로 부린다며?”
“아마 핵공격에 물리면역의 뱀파이어들만 살아남고 죄다 죽은 모양입니다.”
“얘들은 경험치도 별로 안 주는데…….”
아예 안주는 것은 아니다.
하위 던전에서 얻을수 있는 포인트는 0이니 그것보다는 낫지만 썩 만족스럽지도 않다.
그나마 일반 공격에도 먹혀 수호가 나서지 않고 최수영이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처치하고 있는 정도.
“명진아. 더 크게 불러봐.”
“험험, 마하반야!”
“스님, 들숨 날숨.”
“바라밀다!”
“더 크게!”
“시주, 가만 좀 있으시오.”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며 수호가 장순필을 보았다.
“소리 키워 주는 뭐 그런 거 없어?”
“아공간에 지구 물건은 들어가지 않는지라…….”
확성기나 마이크 같은 음향기기를 가져올 수 없으니, 여기 타이베이서 현지 조달해야한다.
“제가 마법 하나 알고 있긴 한데…….”
“오, 용필이. 어떤 거야?”
“증폭이라고 소리를 크게 해주는 겁니다.”
“화염마법사가 별걸 다하네.”
“확산계열 익힌 마법사들은 기본으로 배우는 겁니다.”
“좋아. 증폭해.”
“넵.”
파파파팟!
박용필이 구사한 마법이 증폭기가 되어 소리를 널리 퍼트렸다.
“크아아.”
“키에에!”
아까보다 수배는 많고, 배는 더 흥분한 좀비들이 떼거리로 몰려들었다. 수호는 야수 몇을 소환해 포위되지 않게 했다.
“크아! 크아!”
그때 검은 박쥐 하나가 명진을 향해 달려왔다.
불경을 외던 명진이 본능적으로 창을 휘둘러 박쥐 머리를 후려쳤다.
파팟!
하지만 박쥐는 머리가 깨지긴커녕 검은 연기로 변해 창을 그대로 통과하더니, 명진에게 달라붙어 날카로운 이빨을 매끈한 머리에 박아 넣었다.
‘피! 피!’
막 피를 빨아먹기 전, 누군가 자신의 목줄기를 콱 낚아챘다. 손가락 힘이 엄청나 턱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 또 뭐야?”
수호는 명진의 머리에 붙은 박쥐를 떼어내 요리조리 보았다.
“가만, 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