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23)
223화 팽창 (1)
양천춘은 감감무소식인 부하들 때문에 인상을 썼다.
“시벨놈들이, 나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기야!”
비쩍 곯은 놈 하나 쫓는 게 뭐 그리 힘든 일이라고.
막사를 나왔다.
부하 몇 놈이 둘러앉아 불을 쬐고 있다.
“돼지 하나 잡아와.”
“예, 대장.”
부하들이 양천춘의 눈빛을 피하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들은 공장으로 들어갔다.
돼지사육장이라 불리는 폐공장 건물엔 인간들이 줄줄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어디 보자.”
부하 한 명이 차원에너지 측정기를 꺼냈다.
기다란 막대기 형태였는데 끝에 측정장치의 핵심인 기억의 돌이 붙어있고, 반대편에 액정이 달려 있었다.
삐삐.
“간나새끼! 아직도 덜 자랐시오.”
푹, 푹.
“히익.”
부하들은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정말 가축처럼 취급했다.
삐빅.
“옳거니. 고놈 실하디.”
막 각성한 놈이다.
각성을 하면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일까?
일단 초능력을 하나 깨닫게 되고, 몸도 더 튼튼해지고 힘이 넘친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덤이다.
“이 새끼. 다지라우.”
쉬익, 퍼억. 퍽!
“으윽.”
부하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어 몽둥이를 들고 매타작을 했다.
“아주 뒈지기 직전까지 다지라우.”
괜히 어설프게 했다가 저번처럼 또 놓치면 골치 아프다.
황만수.
놈을 잡으러 갔던 조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곤욕을 치를 거다.
대장이 화가 많이 났으니까.
“이 새끼 이거, 숨이 깔딱 깔딱 하는구만기래.”
막 각성한 F등급 각성자들이 무슨 초능력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으니, 초능력 따위로도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다져놓아야 한다.
“후, 후.”
미약한 숨만 붙어있는 녀석을 끌고 갔다.
대장은 사람을 먹는다.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를 죽여, 그 심장을 먹는다.
그 괴식을 위해 이렇게 각성자를 기른다.
양천춘과 그의 부하들은 이들을 돼지라 불렀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이 사라지는 듯이.
너무 많이 맞아 저항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각성자가 끌려나갔다.
“돼지사료 풀어라.”
창고 문이 닫히기 전, 한쪽에 못질 해 놓은 나무 궤짝을 안에 들여놓고 풀었다.
“키키킥.”
“퀴엑. 퀴엑.”
거기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로잡힌 고블린 따위의 소형 몬스터들이 갇혀 있었다.
나무 궤짝이 창고 안에서 뜯어지고, 창고 문을 닫았다.
“크아!”
“퀘엑!”
우당탕.
안의 상황이 보이지 않지만, 안 봐도 뻔하다.
저들끼리 치고받고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그 와중에 돼지 몇 놈은 또 각성하겠지.
“얼른 가자. 대장님 화내실라.”
부하들이 피투성이가 된 남자를 질질 끌고 가 양천춘을 찾았다.
그런데…….
“와, 개 잡아 먹는다 소린 들어봤어도, 사람을 저렇게 잡아먹네.”
“끄으으으.”
양천춘이 누군가의 손아귀에 목줄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슬쩍 내 빼려는 부하들을 보며 수호가 한마디했다.
“도망가면 문다.”
“…….”
뭔 개소리지?
그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던 양천춘이 어린애 다루듯 다뤄지는데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고?
“시발 튀어!”
“간나새끼!”
서로 눈치 보던 부하들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것들을 난사하고 튀었다.
퍼퍼퍽!
수호는 그것들을 피해내는 대신 방패로 막았다.
“끄어!”
등짝에 화염구를 적중당한 양천춘이 비명을 질렀다.
“엄살은……. 잡아.”
수호의 곁으로 대기 중이던 늑대들이 튀어나갔다.
놈들이 그냥 튀었다면 운 좋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감히 주인님을 공격해 놓고 도망치다니.
분노한 늑대들이 뒤쫓았고, 수호는 양천춘을 패대기쳤다.
“으으,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요?”
양천춘은 수호를 알고 있었다.
인터넷도 안 들어오는 오지마을이 아니고서는 박수호를 모를 리 없다.
북한도 정보 통제 면에서는 낙오지라 할 만하지만, 방금 도망친 부하들은 몰라도 군 고위간부였던 양천춘은 정확히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쟤가 너 싫대.”
“으으.”
양천춘의 시선이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황만수에게 닿았다.
어제 먹혔어야 할 녀석인데, 쥐새끼처럼 빠져나가 박수호라는 재앙을 불러 들이다니.
“죽을 이유는 들었고, 죽기 전에 하나만 묻자.”
“…….”
곧 죽일 거면서 태평하게 뭘 묻는단 말인가.
“심장 맛있냐?”
“……?”
이 새끼, 남조선 최고 각성자 박수호 맞나?
세계 챔피언인 그 사람이 맞나?
“아, 맛있어서 먹는 거냐고 묻잖아?”
“간놔새뀌! 맛있기는.”
“그럼?”
“내 기술이 식인이야. 사람 잡아먹고 큰다 이기야.”
그렇게 커서 지금 놈의 등급이 SS급이다.
“희한한 놈이네.”
돌연변이라도 되는 걸까?
동족을 죽이는 동물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이 영역 싸움이나 짝짓기 경쟁에서 이뤄지는 싸움이지, 먹기 위해 사냥하는 경우는 아주 소수다.
“내가 인간 중에서는 처음 봐서 그래.”
“위정자 새끼. 날래 죽이라우.”
양천춘 씹어뱉듯 말했다.
“그래. 잘 가라.”
뚜둑.
수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목을 꺽었다.
“헉.”
놀라는 황만수를 향해 시체를 던졌다.
“선물이야.”
부하된 기념이다.
“가, 감사합니다.”
운이 나빴다면 어젯밤 이놈에게 먹히는 건 자신이 되었을 테지.
“간나새끼! 사람을 돼지 취급하고!”
퍽, 퍽!
발길질로 흥분과 공포를 떨쳐낸 황만수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쯤 되어 도망쳤던 놈들도 죄다 늑대에게 물려왔다.
“사람들 어디 갇혀있어?”
“여자들과 아이들은 저 건물에 있고, 나머지는 저기 갇혀있습니다.”
“가서 풀어줘.”
“…….”
수호의 허락에도 황만수는 쉬이 움직이질 못했다.
‘풀어주면?’
그 뒤는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눈앞의 남자가 신령이 아님을 알고있다.
하늘에서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보내준 사자도 아니다.
양천춘을 단번에 죽일 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섬뜩했다.
이 사람에게 자신들의 존재는 어떠할까?
스륵.
“…….”
무릎 꿇는 황만수를 물끄러미 보았다.
“왜?”
“견마지로하겠습니다.”
개도 있고 말도 있다.
야수처럼 친구로 지내겠다는 말인가?
“사람들 어데 갈 데도 없습네다. 거둬 주시라요.”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직 본 적 없는 사람들을 부하로 얻어도 되는 걸까?
그들이 황만수처럼 쓸모있을까?
“정이 많군.”
쓸데없는 정이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오롯이 책임질 수 있다면.
“황만수를 부하로 얻었지. 복수를 대신해 줬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 목숨을 다 바칠 겁니다.”
“좋아. 네가 밑에 얼마나 부하를 받든 상관없어.”
수호는 황만수에서 황만수 패거리를 받기로 했다.
황만수 무리의 리더는 그다.
그 구성원의 안전과 미래는 온전히 그가 짊어져야 할 것이다.
책임감을 맡겨놓고 찾아달란 게 아니라면, 온당 그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 연민도, 오지랖도 전부 그의 것이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만수는 엎드려 절했고, 수호는 조화력을 일으켜 숨만 붙어있는 피투성이 남자에게 생명력을 나눠 주었다.
“크헉! 컬럭!”
피를 게워낸 사내가 불쑥 일어나더니 수호를 향해 와서 큰절했다.
“목숨을 빚졌시오.”
“괜찮아.”
그를 살리려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그냥 운이 좋아 살았을 뿐이다.
“내 홍석개요. 하시는 말씀은 다 들었시오.”
“그래서?”
“나도 받아주시오.”
“그냥 어쩌다 구해준 거야. 은혜 갚지 않아도 돼.”
“아니오. 당신을 따르고 싶소.”
“왜?”
“강해지고 싶소.”
“…….”
막 각성한 F등급 각성자.
별 볼 일 없는 스킬이지만 눈빛이 살아있다.
“좋아.”
“목숨값은 하겠시오.”
석개는 비장하게 말했다.
그의 스킬은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독기 하나만은 마음에 들었다.
‘다시는 당하고 살지 않는다.’
석개는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짐승 취급을 당하며 살아보니 확실히 알겠다.
힘이 있어야 당하지 않는다.
수호가 보여준 강렬함이 화인처럼 찍혀 마음에 담겼다.
이 사람을 따라가 닮겠다.
“만수.”
“네.”
“사람들 구해서 와. 남쪽으로 오면 나무로 된 성이 나온다.”
“알겠습니다.”
그가 자처한 일이다.
수습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넌 어떻게 할래?”
“명령해 주시지요.”
수호는 픽 웃었다.
당장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기세다.
“만수랑 같이 와.”
수호는 만일을 대비해 길잡이를 남겼다.
“백구. 같이 있다가 와.”
“왈, 와알.”
“그럼 나중에 보자고.”
“예!”
수호는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그 둘을 보았다.
레벨 1 – F
술사
스킬 – 순간이동
레벨 1 – F
광전사
스킬 – 분노
제법 괜찮은 부하 둘을 얻었다.
*
던전에너지를 측정하는 차량이 분주히 바퀴를 굴렸다.
부우우웅.
측정 장비가 실린 두 대의 트럭이 멈춰선 것은 수호성 외성공간의 공사장.
지이이이잉.
이미 생겨난 던전을 지원부 직원들이 나서서 통제하고 있었다.
“측정 시작하겠습니다.”
트럭 두 대가 던전을 향해 측정기를 들이밀었다.
하나는 던전 규모를, 하나는 던전 회차를 측정한다.
두 가지 측정값으로 정보를 도출한다.
파팟.
액정에 표시된 정보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4성이야.”
“다행이네.”
수호 길드는 다른 여타의 서울 대기업을 등에 업은 길드들과는 다르다.
그들의 영역은 옛 지명 의정부를 아우르는 수호시티.
시티 밖의 필드 던전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어떤 몬스터가 되었건 수호성을 넘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시티 내에 생성되는 던전은 하위, 상위 관계없이 모조리 클리어해내야 한다.
브레이크시 파괴될 도시기반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수호시티 외부의 공격은 야수 전력으로 얼마든지 막을수 있지만, 수호시티 내부에서 발생하는 던전은 항상 문젯거리다.
다른 대기업 길드들이 수십 개의 하청 길드나 클랜을 두고 있는 것과 다르게 수호시티는 오직 수호 길드 하나뿐이니까.
수호시티 내의 구획을 나눠 그 아래 하청 길드들을 둬도 되겠지만, 수호 길드는 그것보다 길드내 용병을 대거 모집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들이 성장하기까지의 공백은 던전의 외부 대여로 맡기고 말이다.
“이거 또 입장료 공짜겠지?”
“그렇겠지. 아니면 이 먼 데를 왜 오겠어.”
요즘 생성되는 던전이 하도 많다 보니 입장료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공짜는 필드가 아니면 잘 없는데, 수호 길드는 워낙 용병뎁스가 얕다 보니 그렇게 해서라도 던전을 외부에 제공하고 있었다.
삐비
던전 레벨에 이어 회차 측정까지 완료되었다.
던전 규모 – 레벨 4 (4100)
남은 횟수 – 78 (319800)
브레이크 – 114. 23 : 54 : 21
무려 115일의 여유시간을 두고 78회의 던전만 공략하면 된다.
“후우.”
측정을 지켜보던 박준호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회차나 시간이 그나마 여유있게 나와줬다.
이 던전이 전부면 문제될 것도 없겠지만, 지금 수호시티 내부에 있는 던전만 11개다.
7성 던전의 등장 이후 1~6성 던전의 발생 회차가 빈번해졌다.
수호시티 내부뿐만 아니라 서울도 마찬가지 상황이니, 굳이 가까운 던전을 두고 멀리 수호시티까지 원정 오는 클랜이나 자유용병은 적다.
‘인원 충원 서둘러야겠는데.’
기존에 뽑아놓은 용병들이 대거 S등급 이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을 경험치도 얻지 못하는 4성 던전에 투입하는 건 낭비다.
새롭게 충원한 인턴들은 현재 1~2성 던전에서 한창 손발을 맞추고 서로의 스킬이나 특성을 파악하는 단계다.
그들의 인사평가가 끝나면 인턴 딱지를 떼고 정식 특성에 따라 정식 공격대로 인사이동할 것이다.
그렇게 훈련 중인 인턴만 600명.
15인 공격대 40개를 조직할 인원이다.
공대장은 기존의 S등급 이상의 용병들이 맡으면 된다.
하위 던전 40개를 동시 진행할 정도의 공격대 구성이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미래의 청사진이 그렇단 거고, 아직은 준비단계일 뿐이다.
‘……힘들다.’
인사 배치의 총 책임자는 박준호.
이 일을 완수해야 진정한 부사장으로서 대우 받으리라.
머리가 깨질 것 같지만 묵묵히 견디는 그의 머리 위로 매 한 마리가 접근했다.
224 팽창 (2)
휘리리릭.
하강하던 매가 연기로 변해 안정적이게 착지했다.
“브로!”
“어? 형!”
준호는 오랜만에 보는 형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뭐해, 여기서?”
“아, 그냥 현장 와봤어.”
던전 주변은 통제가 한창이고, 벌써 컨테이너 몇 대가 실려 오고 있었다.
용병들과 다르게, 빠르게 구성한 지원부 직원들은 벌써 1000명이 넘는다.
거기에 복지부, 연구소, 경비인력, 건설 등의 기타 인력을 다 합치면 1500명에 육박한다.
이주해 온 그들의 가족까지 거의 5천 명.
3군단 주둔지였던 이 주변 필드는 어느새 5천 명이나 수용하는 소규모 도시가 되어 있었다.
이미 시스템이 정착된 도시와 길드는 사장이나 부사장의 명령 없이도 알아서 잘 돌아간다.
“아이쿠, 사장님 부사장님 계셨네요.”
지원부장 김성철이 둘을 보고 알은체를 했다.
김미소가 외부일이 많기에 실질적으로 지원부장인 그가 길드 내외부의 던전 관리를 다 맡고 있다.
용달 사장이던 그가 준호 인맥으로 길드에 들어와 참 많이도 성장했다.
“어, 오랜만.”
“아유, 항상 수고 많으십니다.”
“하하, 저야 수고랄 게 있나요. 어떻게, 이 던전은 외부에 돌립니까?”
“한 20회차 정도만 남겨두고 그리하지요.”
“아, 네. 그리 알고, 적당히 던전 입장료 책정해서 클랜 모집하겠습니다.”
김성철과 박준호가 대화하는 양을 보고 있던 수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폐인이나 다름없던 동생이 이제 제 밥값은 하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일을 돕겠다더니, 진짜 돕고 있다.
“자, 이야기 끝났으면 우린 밥이나 먹으러 가자.”
수호는 준호만 데리고 식당가를 찾았다.
외부 사람들도 드나드는 곳이라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많았지만, 적어도 수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갈비 10인분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치지지지직.
수호는 집게를 쥐고 물었다.
“건우는?”
수호의 물음에 준호가 피식 웃었다.
“요즘 아미파에서 살아. 아빠인 나도 잘 못 봐.”
“그래?”
치지지지직.
수호는 불판에 고기를 뒤적였다.
“익었어. 먹어.”
“어.”
“…….”
취지지지직.
새 고기가 올라가며 양념이 타올랐다.
형제는 말 없이 고기를 먹었고, 쌈을 싸 먹던 준호가 말했다.
“고마워, 형.”
“뭐가?”
“그냥.”
“새끼.”
형제는 말없이 고기를 먹었다.
“근데 건우 엄마는?”
“응?”
“뭐 죽은 건 아닐 거 아냐?”
죽은 건 아니다.
새 출발을 해서 그렇지.
“없는 사람이야.”
준호에겐 존재가 사라진 사람이다.
“그래?”
수호는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니,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을까? 준호가 옅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거 안 익었어.”
“어쩐지.”
“진짜 잊었어.”
“누가 뭐래?”
“…….”
치지지직.
준호가 집게를 뺏어 애꿎은 고기만 뒤집었다.
“후, 맞아. 아직도 가끔 생각나. 찾아 갈까도 생각해 봤어.”
그녀가 떠났던 그때와 지금은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주변 상황도, 준호 본인도.
“근데 가서 뭐해. 이미 다른 남자 만나서 살림 다 차린 사람인데.”
미래가 없다 하여 떠나갔다.
수호가 씩 웃었다.
“뺏어오면 되잖아.”
“뭐?”
번식 전쟁은 언제나 가장 치열한 결투 끝에 맺는 것 아니던가?
“뭐가 문제야? 약할 때 뺏겼으니 강해져서 뺏어오면 되는 거지.”
“아니 그런 간단한 문제가…….”
자신의 친형이지만 정말 이럴 땐 머리가 아프다. 남녀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갖춰야 할 것 아닌가?
되찾아온다 하여 예전의 그 관계로 회귀할 수 있는가?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신뢰가 깨어진 사랑은 어떻게 포장해도 파국이다.
“후, 형이나 얼른 찾아. 나도 형수님 얼굴은 한번 봐야지.”
“나?”
수호는 피식 웃었다.
“번식 좋지.”
주변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이 더 신경 쓰인다. 준호가 괜히 애꿋은 화를 냈다.
“아닛, 말을 해도 꼭……. 좀 좋은 말 써.”
“알어 알어 임마. 섹스! 섹스 좋지.”
“아니, 시발 형. 좀!”
“새끼도 깐 놈이 별걸 다 부끄러워하네.”
“아후, 말을 말자.”
형이지만 정말 부끄럽다.
수호 길드 수장이라는 사람이…….
수호는 동생을 보며 픽 웃었다.
수줍어하긴, 늙어도 귀엽군.
“이리 와 봐.”
수호는 큰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박준호를 끌어당겼다.
“원래 바로 번식하려고 했는데, 비밀을 풀기 전까진 안 하기로 했어.”
“무슨 비밀?”
“훗.”
수호는 그저 웃고 말았다.
자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데, 자식들이 먼저 죽는 걸 보는 건 참 슬픈 일이 아닌가?
어쩌면 이대로 동생이 죽고, 건우가 늙어 죽고……. 또 그 후손들이 죽는 걸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 가는 죽음 속에 외로움이 더해질 것이다.
“공격대는 어때?”
“머리 아파.”
“뭐가 머리 아파?”
“구성하는 게 쉽지 않아. 형도 알다시피, 내가 뭘 알겠어?”
세계에서 몇 없다는 U등급 용병이 되었지만, 박준호를 베테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나하나 보고 최적의 팀을 짜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
“어휴, 일 어렵게 하네.”
수호는 준호의 계획을 들었다.
“공격대 40개라고?”
“어, 그 정도는 되어야 길드 내에서 자체적으로 던전 소멸까지 책임지지.”
“으음.”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자신이 안심하고 떠날 수 있을까?
“50개 만들자.”
“어?”
“대장 50명을 뽑아.”
“공대장들이야 거의 정해졌어.”
2, 3공격대에 속해 지금도 대구의 7성 던전을 공략중인 정예용병들이 공대장을 맡을 거다.
“그럼 됐네. 걔들 보고 알아서 뽑으라 해.”
“어?”
“같이 싸울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뤄야지, 네가 억지로 정해 주면 어떻게 해?”
“…….”
준호는 자신이 완전히 잘못 생각했음을 깨닳았다.
각성 스킬이나 전투 스타일 등으로 분류하고 최적의 파티를 짜는 건 이론일 뿐이다.
게임 카드 짜듯이 팀을 구성한다고 최적의 전력을 내는 게 아니다.
‘신뢰.’
목숨 걸고 나가는 전장이다.
팀원들끼리 궁합도 좋지만, 일단 서로 전장을 나서는 신뢰 관계 정도는 있어야 한다.
최고의 전력을 발휘하는 건 그 뒤다.
“맞아. 팀부터 만들고…… 그 뒤에.”
“경쟁시켜야지.”
전력 증강은 팀을 구성한 이후에 해도 된다.
어느 정도 기틀이 마련되면 잘 맞지 않는 팀원들 간에 트레이드를 해도 된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후, 고마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형의 말이 맞다.
너무 완벽하게 최고의 결과를 위해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의 함정에 빠졌다.
처음부터 완벽한 궁합의 팀이란 있을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홀로 조합하는 것도 이상일 뿐이다.
“네 팀이나 꾸려.”
“그래야겠네. 인턴들 훈련이나 신경 써야겠다.”
인턴으로 뽑았다지만 말이 신입이지, 이미 던전 공략에 이골이 난 용병들도 다수다.
수호시티의 거주 요건이 워낙 좋고, 길드내 용병들에 대한 대우, 미래 발전성이 좋다 보니 공개 모집만 하면 초짜 베테랑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경우가 많아서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현재 다른 길드와 계약이 걸려 있는 용병들 중에도 이직하고 싶은 자들이 다수 있을 것이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서라도, 박수호 눈에 제대로 띄기만 하면 순식간에 S등급 SS등급 찍어버리니 어느 정도 매너리즘에 빠진 고수들도 눈이 홱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잘 모르면 잘 아는 부하를 시켜. 그러려고 애들 많이 둔 거잖아.”
“형 말이 맞아.”
준호는 순순히 인정했다.
이래서 형은 타고난다 하는가 보다.
아니, 형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동생뿐만 아니라 수천 명 길드 식구들까지 포용할 정도로 타고난 리더다.
“그럼 일해라. 난 조만간 아루카 행성이나 가야겠다.”
길드 내에 사람이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다 보니 알아서 잘 굴러가고 있다.
점점 수호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된다.
본격적으로 불노불사의 비밀에 대해 연구해 봐도 될 것 같았다.
‘누굴 데려갈까?’
일단 아루카 행성 출신 귀환자인 박용필은 데려가야겠지.
거기에 연구소장 장순필도 필수고, 구천 행성인이 아루카 행성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보고 싶으니 당진철도 데려가야겠다.
“언제 갈 거야?”
“조만간.”
수호는 이제 생각났다는 듯, 흘려가듯 말했다.
“아, 개성에 피난민들 몇 있던데 곧 여기로 올 거야. 애들 잘 받아줘.”
“피난민? 몇명인데?”
“모르지. 많진 않을걸.”
“알겠어.”
“나 먼저 간다.”
“어…….”
자리를 털고 나가는 수호를 보며 준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내성의 식당들이야 직원 복지용이라 공짜지만, 외성의 식당은 돈을 내야 한다.
준호가 계산서를 챙겨 카운터로 향했다.
“45인분 드셨네요.”
“…….”
*
밤 늦은 시간.
계류장에 수송 드론 한 대가 착륙하고 미소가 복귀했다.
“우왕, 집이다.”
“후후, 그렇게 좋으세요?”
“에이, 좋죠. 여기만큼 더 좋은 데가 어딨어요?”
한동수는 진심이었다.
평양이 신기하긴 하지만 그뿐이다.
서울보다 수호시티가 더 좋다.
여긴 말 그대로 모든 게 다 가능한 곳이다.
그것도 가장 안전하게 말이다.
“한 이사, 고생했어요.”
“에이, 고생이야 부사장님이 하셨죠. 저야 그냥 옆에 있었던 게 다인데요. 뭐.”
그게 일이었지만 본인은 그저 관광 정도로 느낀 모양이다.
김미소가 부사장실로 올라오니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 이소진이 즉시 찾았다.
“오셨어요?”
“별일 없지?”
“주거지역에 4성 던전 하나 생겼어요.”
“얼마짜리?”
“120일에 48회차요. 지금 박준호 부사장님이 팀 꾸려서 선발 공략중이세요.”
“팀?”
“네, 인턴 중에서 지원자 뽑아서 가셨어요.”
“명단 줘봐.”
김미소가 명단을 넘겨받아 훑어보니, 팀 구성이 B등급부터 E등급까지 다양했다. 부사장 본인이 U등급이니 문제야 없겠지만…….
“사장님은? 숲?”
“아뇨. 아미파에 계세요.”
“보고 가야겠네.”
북한에서 얻어온 전리품을 그녀의 군주께 자랑하러 갈 시간이다.
“아, 사장님이 공격대를 50개 조로 구성하라고 지시하셨어요.”
“50개나?”
“네, 그리고 개성에서 피난민이 올 테니 알아서 봐주라 하셨어요.”
“허.”
서울 시민들의 이주 요청도 막고 있는데 북한의 피난민을 받아?
무리 구성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수호의 성격상, 거저 받았을 리가 없다.
“자세히 이야기해 봐.”
“홍석개란 사람과 황만수란 사람 둘을 부하로 받으셨대요. 피난민들은 그들에 딸린 식구들이고요.”
“음? 누구?”
“홍석개, 황만수요.”
비서실장 이소진도 알고 있는 건 이름뿐이다.
피난민 수도 모르고, 길잡이로 백구를 붙여 뒀다는 것밖에 모른다.
“허, 잠깐만.”
김미소는 벽장으로 가 금고를 열었다.
그 속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 뒤적였다.
이성우의 구술을 바탕으로 아키코가 쓴 미래일기다.
절대적 예언서는 아니지만 예지 참고서 정도는 되어 준다.
그중에서도 변동성이 작은, 가장 귀한 정보서는…….
“여기 어디에…….”
왠지 익숙한 이름이기에 찾아보니 딱 들어맞는 정보가 있었다.
최악의 테러리스트. 그의 인류 혐오는 인종, 국가를 가리지 않는다. 치고빠지는 게릴라에 더없이 최적화된 스킬로 도무지 종잡을 수…….
최후 인류 결사대 7대장으로 누구보다 선봉에 서는 타입의 장수. 일기당천으로 오크 부대를 가르고 인질을 구출한 사건으로 척준경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김미소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장님도 회귀자 아냐?’
어떻게 알고 이런 인재들을 주워 오는지.
김미소는 파일들을 고이 금고에 넣어두고 서둘러 아미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