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26)
227화 아루카 (3)
“아루카 행성은 엘프족과 드워프들이 다스리는 행성입니다.”
“예? 아닙니다. 다 고기 먹고 그렇습니다.”
“예? 아, 못생긴 엘프들도 있지요. 미의 기준이 다 다릅지요.”
“그건 잘못된 겁니다. 이슬만 먹고 그러지 않아요. 그들도 집을 짓고 삽니다.”
“숲이요? 숲을 가꾸긴 하지요.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일이고, 그들도 마을을 이루고 삽니다.”
“암요. 그건 맞아요. 귀가 뾰족하죠. 나머지는 사람하고 다를 것도 없어요.”
“드워프요? 안타깝게도 시장에서 두어 번 마주친 게 다예요.”
“아유, 엘프도 왕이 있죠. 하이엘프라고 부르는 귀족층이 있고, 그중에 최고의 왕이 있죠.”
“예? 천 년을 산다고요? 절대 아닙니다. 그들이 수명은 200년 정도입니다. 사람보다 두 배는 살지요. 하이엘프들은 더 산다고 하던데, 저도 자세히는…….”
“아, 드워프는 보통 산을 좋아하고 엘프들은 평야와 강을 좋아하지요.”
“싸움이 왜 없겠습니까? 가끔 그들도 전쟁을 합디다. 뭐 제가 본 건 아니고 들은 게 전부라.”
“뭐든 큽니다. 산도 높고, 강도 크고, 나무도 크고. 처음엔 꼭 거인국에 간 걸리버 심정이었습니다.”
“주의할 점이요? 하이엘프들에 대한 그들의 존경은 대단합니다. 예의를 보여야 합니다.”
수호시에서 제주도까지.
짧지 않은 비행시간 동안 박용필은 본인이 경험한 아루카 행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기 제주도예요!”
바다 멀리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제주도 상공에 다다라 비룡이 점점 고도를 낮추니 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포탈은 어딨어?”
“중문 쪽이요. 아 제주도 섹터 7이요. 저기 남쪽.”
제주도는 두 개의 도시를 품고 있었다.
제법 견고한 성벽으로 보호받는 제주시와, 얕은 성벽으로 넓게 경계를 이룬 서귀포시.
“저긴 성벽이 왜 저리 낮아?”
“서귀포 유명하잖아요. 마법진으로 보호받고 있어요.”
“으음.”
수호가 자세히 바라보자 서귀포를 아우르는 성벽 주변으로 투명한 에너지막이 보였다.
비룡도 거기에 막혀 더 내려갈 수 없는지, 천천히 돌아 서귀포시 외곽에 착지했다.
“이건 누가 만든 거야?”
“나리아 부족의 고위 엘프가 만들었대요.”
아루카 행성의 엘프족 마법사들의 수준이 높다더니, 이런 큰 도시에 배리어를 쌓을 정도인가 보다.
“근데 이거 유지하는 정도면 혈석 양이 장난 아닐 텐데.”
“듣기론 도시 발전에너지 양의 두 배가 넘는답디다.”
용필과 순필이 보호막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비룡, 수고했어.”
“크아아아.”
휘리리릭.
비룡이 검은 연기로 화해 사라졌다.
수호 일행이 서귀포 외곽 게이트로 다가가자 중무장한 군인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용병이십니까?”
“네. 수호 길드에서 왔어요.”
이소진이 나서서 용병증을 제시하자 군인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세계에서 핫한 수호 길드를 모를 사람이 없다.
‘저 사람이 박수호?’
‘맞는 것 같은데. 아까 와이번 타고 오던데.’
저들끼리 속삭이는 군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정상적인 출입 절차를 마치고 도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서귀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성내에선 비행금지입니다.”
내부로 들어서자 바깥과는 사뭇 다른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다.
게이트 주변을 오가는 용병들의 차림새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여긴 던전 잘 안 생기나 봐?”
“보호막이 어지간한 건 다 막는다더라고요. 뭐, 산이야 몬스터들이 이미 자리잡았지만요.”
한라산을 비롯한 산세는 이미 몬스터들이 저들끼리 영역을 구축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외부 필드에서 던전이 터지면서 나온 몬스터들은, 이미 자리잡은 몬스터들과 전쟁을 벌인다.
굳이 토벌하지 않아도 저들끼리 개체수를 줄이는 것이다.
군주 몬스터만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의 생태계를 놓아두는 것이 이득이다.
“7성 하나 생기면 볼 만하겠네.”
“그래서 해군기지에서 언제든 폭격 준비해 놓잖아요.”
해상군주의 출현으로 바다가 위험해 해군 소속의 군함들이 죄다 기항해 있었다.
나가 봐야 아주 근해의 해안가를 순찰하는 정도.
그들의 미사일과 기관총들은 죄다 육지로 향해 있었다.
“택시 타죠.”
예전보다 인구가 줄고 도시반경이 줄었다지만, 걸어다닐 거리는 아니었다.
수호 일행은 택시를 나눠 타고 아루카 행성 포탈이 있는 섹터 7으로 향했다.
점점 섹터 7이 가까워질수록 주변 분위기가 달라졌다.
드문드문 귀가 뾰족하게 큰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와, 방금 엘프 아녔어요?”
“맞을걸.”
“실제로 처음 봐요! 막 예쁜 건 아니네요.”
동수의 실망에 택시기사가 껄껄 웃었다.
“육지에서 오셨나 봅니다.”
“아, 예.”
“하하, 아루카 행성 관광 가십니까?”
“음, 비슷해요.”
“어딜 가든 절경일 겁니다. 허허허.”
동수는 기사를 보며 물었다.
“제주 사람들은 음, 뭔가 다들 여유있는 것 같네요.”
“암요. 여기야 교류도시 아닙니까?”
옛 관광지였던 지역은 아루카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뚫리며 교류도시가 되었다.
“살기 좋아 보이네요.”
“암요!”
“근데 여기도 7레벨 길드는 없지 않아요?”
“없지요. 안 그래도 다들 7성 던전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택시기사의 얼굴이 어두워진 건 잠깐이었다.
“뭐 던전이 하루 새 갑자기 터지는 것도 아니고, 정 위급하면 아루카 행성으로 피난 가면 되지 않습니까?”
“어? 그것도 그렇네요.”
교류도시의 이점이 많구나.
동수와 택시기사의 대화가 깊어질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야, 이거 영광입니다. 제가 챔피언을 태울 줄이야!”
뒤늦게 정체를 안 택시기사에게 셀카까지 찍어주고 떠나보낸 뒤, 수호는 곧장 게이트를 통과하려 했다.
그런 그를 이소진이 만류했다.
“잠시만요.”
“왜?”
“통행권 끊어올게요.”
“이걸 돈을 받아?”
“돈 안 받는 관광지가 어딨겠어요.”
“허, 참. 얼른 끊어와.”
가끔씩 문명의 룰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단순한가?’
복잡해 보이면서도 결국 모든 해결법은 돈으로 통일되니 말이다.
“끊어왔어요.”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온 이소진이 그걸 게이트 관리자에게 주었다.
“후우우우.”
막상 입장하려고 보니 수호는 조금 표정이 굳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수가 놀리듯 물었다.
“와, 형님 긴장하시는 모습 처음 봐요.”
“너는 이 기분 몰라.”
곧 고통과 무력감이 전신을 강타할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 않은 게 이상한 거다.
알면서도 들어가는 건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고통은 잠깐이다.
“소승부터 가겠소이다.”
명진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먼저 게이트를 통과했다.
슈슝
그 뒤를 이어 수호가 게이트를 넘었고, 뒤이어 사람들이 죄다 넘었다.
게이트를 넘은 수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붉은 포탈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
“컥!”
수호는 곧 온몸을 휘감는 격렬한 통증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썼다.
“망할.”
아무렇지 않기는 개뿔.
곧 수호의 의식이 흐려지고, 그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헉, 형님!”
동수가 화들짝 놀라 수호를 뒤흔들었다.
짝, 짝, 짝!
“형니임!”
쫘악, 쫘악, 쫙!
“형니이이임.”
쉴 새 없이 따귀를 때리는 그를 명진이 말렸다.
“동수 시주, 그만하시오.”
“아니, 하는 데까진 해봐야죠.”
쫘악, 쫙!
명진은 보았다.
수호의 따귀를 때리는 동수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을.
이소진도 보았다.
“사장님께 모두 보고…….”
“어허! 안 일어나시네. 스님 좀 도와주세요.”
동수는 수호의 몸을 뒤집더니 업으려 했다.
명진이 올려주자 그가 수호를 업고 끈으로 묶어 단단히 고정했다.
“자, 형님은 제가 책임지겠으니 갑시다.”
“시주, 묘하게 개운해 보이시오.”
“그럴 리가요. 아주 걱정이 돼 죽겠습니다.”
“시주, 그러다 지옥 가십니다.”
“에이, 스님. 저 교회 다닐 겁니다.”
“어허허.”
“다 회개하면 됩니다. 하하.”
“나무관세음보살.”
명진이 고개를 흔들며 어리둥절해하는 태사신니에게로 향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장순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변화 정상.’
아마 수호가 행성을 처음으로 오갈 때마다 쓰러지는 건 그 혼자만의 문제인 것 같았다.
구천 행성에서 온 태사신니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혹, 출수해 보실 수 있는지요?”
“어려울 게 무에 있겠습니까?”
태사신니가 손을 휘 휘두르니 권풍이 불며 주변 공기를 밀어냈다.
‘무공도 사용 가능.’
스킬뿐만 아니라 무공도 사용이 가능했다.
“일단 이동하겠습니다.”
서귀포가 그러하듯 이곳도 교류도시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드넓은 벌판에 겨우 세 집 정도가 지어져 최소한의 구실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루카 행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리아성 게이트 사무소라고 적힌 팻말이 걸린 집에서 중년인이 걸어나왔다.
엘프가 아닌 사람.
유창한 한국말을 보면 파견 나와 있는 한국인이다.
“이리로 오시지요.”
절차에 따라 방명록을 적고 방문 목적을 적었다.
“가이드 필요하십니까?”
“아뇨.”
박용필이 있는데 굳이 가이드가 필요치는 않다.
“여기 주의사항 꼭 읽어보시고, 조심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괜히 사소한 시비가 인간과 엘프의 마찰로까지 확산될 우려가 있다.
“걱정마세요.”
“그럼 편안한 여행되십시오.”
“네.”
게이트를 나온 그들은 가장 가까운 마을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와, 여기 논 농사 스케일 장난 아니네요.”
길 양쪽으로 누런 들판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와중에 농사일에 열중인 엘프들이 곳곳에 보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유독 예쁜 엘프들이 많아 동수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엘프들이 밭 갈고 논 메고 한다더니…….”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장모님의 나라에 온듯하다.
“괜히 추파 던지시다가 결투 신청 당하시면 곤란합니다.”
“아유, 암요. 그냥 농담이죠.”
이소진의 주의 당부를 동수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의 눈은 연신 신기한 외모의 엘프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근데 형님은 언제쯤 깨어나시나요?”
“구천 행성의 예로 보면, 열흘은 있어야 할 듯합니다.”
“그때까지 마을에서 묵도록 하죠.”
이곳은 나리아 부족 영토.
이소진으로서는 주변 부족들의 현재 정보 수집이 필요했다.
어차피 수호도 의식불명이니 그때까지 쉬는 것도 괜찮으리라.
“그럼 열흘간 길드랑은 연락이 끊기는 거네요.”
“으음, 아무래도 그렇지요.”
“열흘 사이에 두고 별일 있겠어요?”
수호시티에 고수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진철만 해도 화경에 이르러 L등급의 고수가 되어 있지 않은가.
위기가 생겨도 현재 성에 남은 각성자 전력과 야수 전력으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리라.
일행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부지런히 걸어 아루카 마을로 향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마차 한 대가 느긋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귀족 마차네요. 잠깐 물러나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괜히 분쟁을 야기할 게 아니라면 그들의 룰을 어길 필요가 없다.
일행이 길 옆으로 비켜서고 마차가 그들을 지나쳐 갔다.
문제가 있었다면, 열린 마차 창문으로 보인 엘프의 미모가 굉장했다는 거다.
“헉, 존나 이쁘다.”
동수의 입은 뇌의 통제를 벗어나 나불거렸고, 지나치던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를 호위하던 엘프 기사 둘이 대번에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