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34)
235화 세계수
파티가 파했다.
수호가 굳이 이 연회를 즐긴 것은 음식이 맛있어서도 있지만, 얻게 되는 정보가 많아서기도 했다.
엘프들의 문화도 체험하고, 아루카 행성의 기원에 대해서도 들었다.
‘요정들의 행성.’
언제부터 엘프와 드워프들이 이곳에 살았는지는 모른다.
구천 행성이 투쟁의 역사를 이뤄왔다면, 아루카 행성은 생명과 번영, 평화로 역사를 채웠다.
활동영역이 다른 엘프와 드워프는 반목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이 행성엔 맹수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외려 이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건, 엄청난 개체수의 초식동물들로 인한 산림의 파괴.
숲을 가꾸는 엘프들은 요정의 힘을 빌려 노련한 사냥꾼이 되어 갔다.
“어째서 동족끼리 싸우지 않지?”
“어떻게 동족끼리 싸울 수 있습니까?”
인간과 엘프는 다르다.
지극히 당연한 물음에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분쟁이 없어?”
“분쟁이야 있지요.”
수호가 지극히 당연한 물음을 내놓았다. 익숙한 인간의 시점에서.
“어떻게 해결하지?”
“세계수가 판가름하지요.”
“으음.”
“모든 건 신의 뜻입니다.”
인간의 사고구조로 엘프들을 단번에 이해하는 건 어렵다.
수호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지구야 인간이 인간의 죄를 판가름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리는 세계니까.
엘프들과 같은 확고한 믿음, 신앙 같은 게 없다.
“세계수는 우리의 존재의 이유이자 사명입니다.”
하이엘프들은 세계수를 섬긴다.
그리고 가꾸고 보존한다.
신과 엘프들을 이어주는 매개체.
“세계수의 수만큼 부족이 있지요.”
아루카 행성의 엘프들에겐 나라 개념이 없다.
그저 세계수를 중심으로 그것을 가꾸는 하이엘프들이 있고, 그 축복을 받아 영위하는 수많은 엘프들이 있다.
‘여왕개미, 병정개미, 일개미 같은 건가?’
수호는 생각만 하고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 정도 눈치는 이제 탑재했으니까.
“부족의 이름이 세계수의 이름이야?”
“그 반대지요.”
세계수가 먼저고, 부족이 그 다음이다.
‘개미 맞네.’
엘프를 비하하는 것도, 개미를 얕잡아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들의 사회구조가 그것을 닮았을 뿐이다.
“싸울 것도 아닌데 왜 힘을 기르지?”
동족끼리 싸우지도 않는다.
허면 엘프 기사들은 왜 필요하고, 성문마다 문지기를 배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소한 분쟁이야 다 있습죠. 신의 뜻을 따르려면 큰 힘이 필요한 법이지요.”
“인간하고 비슷한 말을 하네.”
“하하하,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치안을 위해 존재한다기엔 너무 과잉전력이다.
구천 행성에서야 마몬족과 무림인들이 스스로를 갈고닦아 무력의 증진을 하는 것이 이해되지만, 아루카는 다르다.
대마법사와 정령사, 기사들은 무엇을 위해 단련하고 있단 말인가?
“그야 다 신의 뜻이지요.”
“…….”
이 새끼들, 치트키 쓰네.
불만족스러운 대답에 수호가 볼을 부풀렸다.
“하하하, 지구의 친구께선 드래곤의 전설에 대해 아십니까?”
“드래곤?”
“예, 수만 년 전엔 전설이 아니라 실체였지요. 이 땅을 지배하던 건 드래곤이었습죠.”
“오.”
“대비하는 겁니다.”
“뭘?”
“멸종한 드래곤이 되돌아오는 그날을 위해 말입니다.”
“음.”
“성을 높이 쌓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대비하라.”
“…….”
“드래곤의 복수를 막지 못하면, 악이 도래하리라.”
그리 말하는 오장로의 표정은 어린이가 동요를 부르듯 쾌활했다.
“내용에 비해 너무 긴장감 없는데?”
“하하하, 그야 전설이니까요.”
수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한참 이어진 대화도 잦아들고, 구름처럼 모였던 하이엘프들도 하나둘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주무시면 됩니다.”
수호와 장순필은 오장로의 집에 초대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그들이 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편히 쉬십시오.”
단촐한 방엔 침대가 둘이었다.
수호와 장순필이 각자의 침대에 앉아 서로를 봤다.
밤이 깊었거만 두 사람 모두 잠이 오는 얼굴이 아니었다. 초롱초롱 눈빛의 장순필의 얼굴은 흥분으로 잔뜩 상기되어있었다.
“세계수입니다. 모든 엘프 부족들이 세계수를 지키고 있어요.”
부족 자체가 세계수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다.
“전설이라 말했지만, 분명 머지않아 일어날 사건일 겁니다.”
“머지않아?”
“예.”
“왜 그렇게 생각해?”
“10년 전 대격변으로 아루카 행성의 평화도 깨졌으니까요.”
엘프와 드워프 두 종족이 지배하던 아루카 행성에 게이트가 여럿 열렸다.
지구로 통하는 그 게이트의 등장으로, 아루카 행성에서는 미미하게나마 인간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꼭 인간이 바이러스 같잖아.”
평화의 땅에 인간이 들어서면서 트러블이 생긴다는 것인가?
“뭐, 씁쓸하지만 다르게 표현할 수가 없네요.”
“난 잘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다니 그렇겠지.”
수호가 문명과 접촉한 것은 고작 한 해도 되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에 가장 유명한 인류가 되어버린 그였지만, 아직도 인간을 다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는 문명의 인간으로서의 삶보다, 자연인으로 산 세월이 더 많은…….
“어쨌든 난 보고 오지.”
“세계수를 말입니까?”
“아니.”
“…….”
세계수가 아니면 뭘 보러 가신다는 거지?
“오룬.”
“아!”
수호가 차이를 즉시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어, 별일 없지?”
“큰일은 아니나, 몇 가지 보고할 사안은 있습니다.”
“급한 거 아니면 다음에 듣자. 여기 누워.”
“…….”
차이가 침대를 물끄러미 봤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일어섰다.
“주인님의 뜻대로.”
다소곳이 침대에 누운 차이의 위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줬다.
“그대로 있어.”
“……뜻대로.”
위장까지 마친 수호가 슬쩍 창밖을 보았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한 숲에도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모두가 다람쥐같이 작은 녀석들이다.
흉내내기 스킬은 수호가 길들인 야수들의 외형만 흉내낼 수 있다.
다람쥐를 길들이자니 녀석들이 야수 판정을 받는지 알 수 없기에 조금 위험을 감수했다.
‘들키면 별수 없고.’
지구의 동물과 아루카 행성의 동물은 그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다.
눈썰미 좋은 엘프라도 만나면 별수 없이 들키겠지만, 그땐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휘리릭.
“냐아. 부탁한다. 순필이.”
“걱정 말고 다녀오십시오.”
고양이 하나가 창밖으로 훌쩍 뛰어내렸고, 장순필은 곧 불을 껐다.
파팟.
“오, 이것도 마법 아티팩트군.”
마나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등불이다.
치익, 화르륵.
다시 불을 켜봤다가 장순필이 후 하고 불었다.
마나석을 에너지원으로 작은 파이어 마법을 일으키는 원리다.
“이래서 개념이 중허지.”
불빛이 필요해 불을 일으키는 장치가 보급되어 있는 세계다.
지구였다면 마나석으로 발전기를 돌려, 전등을 활성화했을 것이다.
전기가 익숙한 지구문명이니까.
장순필은 수호가 돌아올 때까지 소일거리 삼아 방안의 마법 아이템들을 관찰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란 때때로 완전히 다른 개념의 세상에서 발견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각성자 관리국.
“골치아프군.”
국장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터가 안 좋나?”
대한민국이 자리한 한반도는 예로부터 외부세력의 침략을 많이 겪은 땅이다.
그것이 현대에 이르러 대격변 이후 차원산업 시대를 맞이해 다시 재현되었다.
“좁은 땅에 뭔 던전이 이리도 많이 생기는지…….”
지금도 던전 밀도가 다른 대륙, 국가 보다 월등한 한반도다.
거기에 더해 이번엔 8성 던전의 예고까지 터졌다.
한국에서 여론이 좋지 않은 전 챔피언 이성우의 말이지만, 이미 언급한 이상 조사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 챔피언의 옛 조국을 향한 저주라도 일단 위험신호를 감지한 이상 조사해 봐야 한다.
“강원도 간 애들은?”
던전 발생 이전에 차원 균열을 탐지하는 탐지팀 7팀이 파견중이다.
탐지팀.
던전 발생 전에 차원 균열을 사전 조사해 예상 던전 발생지점을 파악하던 팀이다.
본래 한반도 전역을 활보하며 예상 던전발생지를 특정했으나, 7성 던전 등장 이후 더 이상 필드에서는 활동하지 않는다.
던전이 생기든 말든 클리어할 여력이 없으니까.
도시에 생성된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만으로도 용병 전력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는 상황이라, 필드의 던전은 이제 브레이크가 당연시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탐지팀의 활동영역은 도시로 축소되었고, 인원들이 대거 감축되었다.
그중 가장 뛰어난 7개 팀을 파견했으나 아직 아무런 균열 정보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국장님. 언제 일어날지도 모를 던전입니다. 아직 차원 충돌 이전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차원이 충돌하고, 균열이 생기고, 던전화된다.
어디서부터 인간이 측정할 수 있을까?
“알지, 아는데…….”
관리국장은 아까부터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 하나가 있었다.
‘인재는 죄다 빼갔구만.’
탐지팀 에이스.
관리국에서 차원 균열의 탐지와 기감 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각성자.
“수호 길드에 연락해봐.”
“요즘 정부 일에 조금 소극적인데요.”
“그래도 해봐.”
“예, 뭐라고 합니까?”
“최수영. 최수영 파견 요청해 봐.”
그녀라면 어디 균열 냄새라도 맡아 올지 모른다.
*위이이잉.
전투 드론 한 대가 강원도를 향해 나아갔다.
관리국장의 염려가 무색하게, 수호 길드에서는 냉큼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수영과 함께 수호 길드에 입사한 그녀의 팀원들이 오랜만에 뭉쳤다.
“헤헤, 이렇게 오랜만에 필드 나서니까 옛날 생각 나고 좋지 말입니다.”
“캬, 필드 전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가 S급 용병이라니.”
“시끄럽고 집중해.”
“넵, 헤헤.”
말은 험하게 해도, 최수영도 옛 추억에 잠겨 있었다.
수호가 없더라도 수호 길드의 공격대는 꾸준히 던전 사냥과 필드 사냥을 병행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한 최수영은 U등급이 되어 있었다.
U등급.
세계를 모두 뒤져봐도 U등급을 보유한 국가나 길드는 대한민국 수호 길드가 유일하다.
이미 각국에서 귀환석 확보에 성공한 공격대는 위험부담을 덜고 사냥에 매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U급 용병들이 나타날 테지만, 그때가 되면 수호 길드는…….
‘L등급 사냥터다.’
7성 던전에서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건 SS등급까지.
U등급, 80레벨이 되면 더 이상 몬스터 사냥으로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필드의 군주급 몬스터를 잡는 것.
수도 적고, 심해로 숨기 일쑤인 녀석들을 쫓는 건 효율이 나쁘다.
그런 와중에 8성 던전의 등장 소식을 터트렸다.
전 챔피언은 이것을 재앙의 시작으로 묘사했지만, 최수영에게 있어 사냥터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물론 그녀가 이 던전을 감당할 자신은 없다.
첫 던전 공략은 귀환석보다 더 든든한 보험인 박수호와 함께할 것이다.
‘언제 돌아오시지?’
던전이 열리기 전엔 돌아오실 거다.
그때가 되면 당당히 공격대의 한 자리를 차지해야지.
위이잉.
수송 드론이 강릉 임시 정부기지에 내려섰고, 대기중이던 탐지팀들이 그녀의 팀을 반겼다.
“이야! 팀장님, 오랜만입니다.”
“길드로 옮기고 너무 잘나가시는 거 아닙니까?”
“빈자리 없습니까? 저도 좀 데려가 주세용.”
탐지팀 각성자들.
아니, 공무원들이 퇴직한 최수영을 열렬히 반겼다.
*파파팟.
고양이 하나가 어슬렁 숲길을 걸었다.
예민한 감각에 엘프들이 보이면 수풀에 숨기도 하고, 기척을 죽이고 나무를 오르기도 했다.
천천히 나아간 고양이가 숲의 중앙에 접근했다.
샤아아아아.
바람소리에 기분 좋은 나뭇잎 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새벽녘.
고양이가 세계수 앞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