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53)
254화 뿌리 (2)
“호텔은?”
“공주라는 자와 로매드라는 엘프 둘 외에는 전부 그대로 투숙 중입니다.”
이소진이 막 보고하는 그때, 다시 비서 하나가 달려와 보고했다.
“방금 로매드라는 엘프가 호텔로 돌아왔답니다.”
김미소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진철의 말대로 공주라는 엘프만 숲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공주가 야수들과의 트러블이 생겨 다치면 어떻게 될까?
‘엘프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사장님이 가만히 있지 않으실 테고 말이다.
지구의 대다수 도시들이 식량 공급을 아루카 행성에 의지하고 있기에, 아주 곤란한 상황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그녀의 군주가 뜻하는 대로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용서를 원하면 용서를, 정복을 원하면 전쟁을 했을 터.
“저…….”
비서실 직원 하나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뜸을 들이자 이소진이 물었다.
“말해. 무슨 일이야?”
“그게, 초청한 역사학자들이 지금 도착해 대기 중입니다.”
김미소가 반색하며 말했다.
“어서 모셔 오세요.”
부사장실로 들이닥친 역사학자는 네 명.
그중 하나가 낯이 익었다.
“엘프들은 어디 있소! 정녕 공주가 왔단 말이오?”
대단히 흥분한 흰머리의 중년인을 보며 김미소는 기억을 들췄다.
“고상운 박사님 맞으시죠?”
“음? 날 어찌 알고 있소.”
“한때 귀환자들을 관리했었거든요.”
김미소의 전 직책이 각성자 관리국 귀환자 관리팀장이었다.
고상운 박사를 모를 리가 없다.
아루카 행성에서 3년 지내고 돌아온 귀환자. 본래부터 역사학 교수였던 그의 각성 스킬이 탐구자의 눈이던가?
그는 귀환 후에도 모두가 차원 균열과 포탈 등에 관심을 가질 때, 아루카 행성의 종족과 문화, 역사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한 학자다.
한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아루카 행성 역사의 권위자.
“흠, 반갑소. 그런데 엘프 공주는 어디있소?”
“조금 진정하세요.”
“허허, 공주의 출현에 진정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고상운 박사는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네들도 앉게.”
같이 온 동료 박사와 제자들도 자리에 앉자 김미소가 물었다.
“도대체 공주가 엘프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느 정도죠?”
김미소가 궁금한 건 그것.
만약에 발생할 충돌 이후의 엘프들의 대처였다.
“공주는 말 그대로 공주요.”
“…….”
김미소는 설명을 바라며 기다렸다.
고상운 박사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잇기 시작했다.
“공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엘프 사회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엘프들은 세계수를 중심으로 사회를 이룬다.
“어머니의 나무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세계수를 중심으로 부족 단위를 형성한 이들을, 고상운 박사는 지구의 생물중에 하나에 빗대었다.
“개미와 비슷한 사회구조를 가집니다.”
“개미요?”
“그렇지요.”
세계수를 여왕으로 그것을 관리하는 숲지기들이 모인다.
“공주는 뭐죠?”
“예비 여왕개미지요.”
“예?”
“그렇게 태어난 운명입니다.”
김미소는 잠시 머리를 짚었다.
“공주가 세계수가 된다는 말씀인가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하하, 맞습니다.”
“네? 어떻게 엘프가 나무가 될 수 있죠?”
“동물이 어찌 식물이 되겠습니까마는, 영혼이 깃드는 것이지요. 공주는 독립해 새로운 터를 잡아 나무를 하나 기릅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영혼이 깃들지요.”
공주의 영혼이 나무에 깃들어 세계수가 되는 것이다.
“아……. 그럼 엘프 사회에서 아주 중요하겠군요.”
“그렇지요. 최초의 어머니 나무 이후로, 공주가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엘프 부족이 하나씩 늘었다 생각하면 됩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모든 세계수를 망라해 엘프의 사회를 이룬다.
세계수는 그 부족의 상징이자 존재의 이유.
“으음.”
김미소의 얼굴이 굳었다.
신전의 수녀 정도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아주 심각하구나 싶었다.
“어쩐지 오룬 부족의 부족장도 공주를 대하는 데 예의가 있었어요.”
이소진의 말에 김미소의 표정이 더 굳었다.
“오! 오룬 부족에 가셨소? 오룬은 18번째 세계수요.”
공주와 마찰이 생기면 전 엘프들이 나설 판이다.
김미소는 보다 궁금한 것을 물었다.
“드래곤을 아주 두려워하는 것 같던데, 그건 왜죠?”
“그건 아루카 행성이 옛 드래곤들의 땅이었기 때문이오.”
“드래곤이 실제했었나요?”
“암요. 여러 기록과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따로 문명의 자산을 남기진 않았지만, 종종 무구나 화석으로 발견되지요.”
아루카 행성은 본디 드래곤의 땅이었다.
“엘프와 드워프들이 종족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행성의 지배권을 차지했다고 하지만…….”
“싸워 이겨냈는데 왜 두려워하죠?”
“엘프와 드워프들이야 인정하지 않겠지만, 싸움 와중에 드래곤들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아니, 그게 맞을 거요.”
엘프들이야 선조들의 역사이며 종족의 역사이기에 조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3자 입장인 지구인 고상운은 좀 더 역사를 객관적으로 봤다.
“드래곤이 떠났으니 엘프와 드워프들이 그 땅을 차지했겠지. 그러니 두려워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라진 드래곤이 돌아올까 노심초사하는 게지요.”
“그 드래곤들이 어디로 갔나요?”
“모릅니다.”
“…….”
고상운이 광적으로 아루카 행성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긴 했지만 고작해야 10년. 이만큼 파헤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엘프 공주는 어디 있습니까? 그녀가 108번째 세계수가 되겠군요.”
고상운 박사가 부리나케 달려온 이유이기도 하다.
살아생전에 엘프 공주를 만나게 되다니.
“오, 그녀는 어떤 이름을 부여받을지 기대되는군요. 엘프 마을의 시작점을 지켜볼 수 있다니.”
역사학자 고정운 박사의 기대어린 눈빛을 넘기며 김미소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 역사의 종말을 보시게 될지도.’
고상운은 한껏 들떠서 물었다.
그때 밖이 소란스럽더니, 비서실 직원 하나가 뛰어와 보고했다.
“사장님 도착하기 전입니다.”
비룡이 거의 다 날아왔나 보다.
김미소가 창밖을 보니, 마침 본사 건물 위를 지나치는 비룡의 꼬리가 보였다.
곧장 야수쉼터의 숲으로 향하는 모양.
“나가 보죠.”
막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녀가 모시는 군주는 유난히 영역 집착이 강하니까.
*“거기까지.”
수호는 공주를 노려봤다.
그리고 야수들을 봤다.
어째서 야수들이 막지 않았을까?
“넌 뭐지?”
“…….”
이 귀 큰 엘프의 정체가 뭐기에, 야수들이 대장나무까지의 접근을 허락했단 말인가?
공주는 공주대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은…….”
구면이다.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전에 기절한 상태에서 동수의 등에 업혀 있을 때 마주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당신께서는…….”
말이 공손해졌다.
공주가 사정없이 떨리는 음성에 질문을 채 끝맺지도 못했다.
그사이 수호가 물었다.
“누구냐고.”
“저는 공주이옵니다.”
“뭐? 어느 나라?”
“나라가 아니옵고…….”
지구인의 개념에서 엘프들을 이해하는 게 가능한가?
공주는 처음으로, 고귀한 엘프로서의 개념이 아닌 상대를 생각했다.
‘저분께 나는…….’
무엇이라 해야 하나.
“이상한 놈이네. 왜 남의 숲에 와서 얼쩡거리냐?”
“저는…….”
공주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 소란에 당진철이 깨어났다.
“아닛, 형님 언제 오셨소?”
“넌 거기서 뭐하냐?”
“뭐했겠소. 형님이 부재중이시니 대신하여 대장나무를 지키……. 어엇? 언제 왔지?”
당진철이 공주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접근하려는데, 늑대 무리가 그 앞을 막아섰다.
“크르르.”
“아니, 이놈들아! 나는 너희 대장의 의제니라.”
의동생이든 말든 야수들은 그런 건 몰랐다. 그저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이 나무에 당진철이 접근하는 게 싫었을 뿐.
“크르르르.”
이 늑대 놈들을 치우고 한 발 다가갈까 고민하던 당진철은, 수호의 말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쯧, 내로남불. 그냥 하던 일 해.”
“흐음.”
본래 하던 일이 저 엘프를 막아서는 것인데, 이제 할 일이 없어졌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당진철이 그저 구경했다.
이대로 있다가 의형에게 사천당문 들어설 땅이나 좀 더 얻어야지.
수호는 시선을 다시 공주에게 두었다.
당진철도 야수들이 막아서는데, 이 엘프는 왜 막아서지 않는가?
왜?
“정체가 뭐냐니까?”
“공주이옵니다.”
도돌이표에 수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변 공기의 변화에 공주가 몸을 떨었다.
“당신은…… 신입니까?”
“아니.”
“그런데 어찌하여…….”
공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호가 한 걸음 내디뎌 다가왔는데, 그 압박감이 수 배는 더 심해진 느낌이다.
“너는 누군데 내 야수들이 적대하지 않지?”
“저는 어머니의 씨앗…….”
최초의 세계수.
어머니.
그 후계.
“그니까, 정체가 뭐냐고?”
한 걸음 더 다가왔고, 공주는 견디지 못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는…….”
수호가 한 걸음 더 디뎠고, 공주는 뒤로 물러나다가 등에 대장나무가 닿았다.
파앗!
공주의 몸이 밝은 빛에 휩싸였다.
파파파팟!
엄청난 빛이 터져나가며 공주의 몸이 균열했다.
“어?”
갑작스런 상황에 수호가 공주를 잡아채려 했으나.
파지직.
알 수 없는 에너지 막에 밀려났다.
“음.”
파지직.
에너지 막이야 뚫으면 된다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공주는 내부 폭발이라도 한 듯 빛에 휘감겼고,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밝은 빛은.
파파팟.
대장나무에 깃들었다.
우우우우웅.
대장나무가 진동했다.
그저 단단히 뿌리 내려, 주변 나무보다 배는 더 덩치가 큰 이 나무의 잎들이 만개했다.
솨아아아아.
대장나무에 붙어 쉬기 좋아하던 나무정령들이 소용돌이치듯 주변을 휘돌았다.
“아우우우.”
“크허어엉.”
야수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울었다.
“허, 무슨 조화인지.”
숲을 휘도는 신비로운 조화에 당진철도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수호만이 덩그러니 혼자 서서 대장나무를 보았다.
긴 시간을 지나 개화했다.
힘이 미치는 영역에서 차원 균열을 억제한다.
결계가 쳐졌다.
자세한 건 이후에 더 연구해 봐야 알겠지만, 수호성에는 이제 더 이상 차원 균열도, 그로 인해 발생되는 던전도 없으리라.
세계수로부터 완전히 보호받는 땅.
“뭐냐?”
수호가 대장나무…… 아니, 세계수로 바뀐 나무에 손을 짚었다.
엘프 공주가 새 이름을 얻었다.
*수호 호텔.
“오오, 이것 좀 보시오.”
“얼음처럼 차가운 상자라니.”
엘프들이 냉장고에서 꺼낸 캔을 두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밝은 빛이 터졌다.
“으음?”
엘프 기사 알리어드가 급히 나가 보니 로매드가 마침 오고 있었다.
“저건?”
“그렇다네.”
신전기사. 하이템플러.
알리어드와 로매드가 빛에 휘감긴 저 너머의 나무 한 그루를 향해 공손히 무릎 꿇었다.
“어머니.”
이제 하이템플러의 신분을 벗어나 세계수를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
새로운 부족. 새로운 세계수.
그들의 여왕이 지구에 뿌리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