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52)
253화 뿌리 (1)
전화를 끊은 김미소가 서둘러 말했다.
“사장님 오고 계세요!”
“음? 형님이?”
당진철이 오랜만에 보는 의형의 귀환에 반색했다.
수호 길드 총관이 약조했다지만, 어쨌든 이 땅의 지배자는 그가 아닌가?
그의 입에서 확답이 떨어지면 사천당문이 구천 행성을 떠나 이곳 지구에서 새롭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김미소는 다급히 말했다.
“빨리 엘프를 찾으세요.”
“음? 어차피 형님이 오실 터인데.”
수호가 오면 알아서 정리가 된다.
“그러니까요.”
김미소는 그 정리에 엘프들의 살인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숲은 사장님 외에 누구도 쉽게 갈 곳이 아니에요.”
숲은 수호의 스킬, 야수 쉼터로 지정되어 야수들이 진정으로 쉬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하는 곳이다.
숲에 발길을 들이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대장나무에 접근할라치면 평소 온순하던 야수들의 경계와 마주해야 한다.
수호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들도 대장나무엔 접근을 불허한다.
그런 곳에 외지인인 엘프가 용감하게 발길을 들였다.
수호가 직접 보면 무슨 사달이 나도 날 터.
이제 막 엘프들과 교역 관계를 트고, 좋은 사이를 유지하려는데…….
지금도 트러블이 있긴 하지만 이건 외교적 문제로, 혹은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이다.
말보다 손이 빠른 사장님이 오시면 큰일이다.
“좋소. 내 잡아오리다.”
당진철이 서둘러 움직였다.
파파팟.
본사 건물이 바로 숲과 내성 사이에 있다 보니, 당진철은 부사장실 창문을 통해 뛰어내렸다.
“하, 일 커지면 안 되는데…….”
김미소는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세계를 상대로 협상하는 건 쉬운 일이나, 그의 군주를 상대로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번 일만은 진심으로 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구천 행성과 같은 인명피해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고, 아루카 행성과 지구의 관계는 꽤 밀접하기에 그들의 행성이 안전하기를 바랐다.
아루카 행성이 무너지면 지구도 무너진다.
대부분의 식량자원을 그곳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니까.
필드의 몬스터에게 죽는 것보다 아사자가 더 많이 나올 터였다.
뚜루루루.
김미소는 비서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부사장님.]“어떻게 됐어?”
[일단 길드 쪽으로 가셨습니다.]“확실하지?”
[네.]김미소는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서귀포의 아루카 행성 게이트에 나가 있는 직원에게 연락해 신신당부했다.
“절대 사장님이 게이트 넘어가지 못하게 해. 알았지?”
전화를 끊은 김미소에게 이소진이 다가와 머그컵을 내밀었다.
“괜찮을 거예요.”
“후.”
김미소도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불안한 심정이었다.
*파팟.
방공 포대가 위치했던 얕은 야산이 수호가 자리잡으며 숲이 되었다.
애초에 그리 크지 않은 숲이기에, 얕은 야산의 정상에 자리한 대장나무까지는 금방이었다.
파파팟.
숲길을 달리던 당진철의 발이 멈춘 건 은색의 늑대들이 나타나서다.
“크르르.”
“워어, 물러서라.”
“컹, 커엉!”
어느새 늑대 서넛이 더 나타나 당진철의 접근을 막아섰다.
더 이상 접근하면 마치 물기라도 할 기세다.
“한낱 짐승들이…….”
“크르르.”
마냥 짐승 취급할 수도 없다.
의형이 길들인 친구이자 동료들.
“음, 별수 없군.”
야수들이 기를 쓰고 지키는 지역은 대장나무에서 반경 50미터쯤.
당진철의 시야에 큰 덩치의 나무가 보였다. 주변에 엘프의 기척은 아직 없다.
“언젠가 오겠지.”
목적지가 이 대장나무라면 언젠가 여기 올 것이다. 당진철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솨아아아.
바람결에 나뭇잎들이 부대끼며 기분좋은 숲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엘프의 기척이 없자, 당진철은 충만한 숲의 에너지에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화경에 닿았다고 하여 수련이 끝난 것이 아니다.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가 있고, 애초에 무공의 성취를 떠나 공부에 끝은 없다.
본디 대자연의 순수한 기운만큼 무인의 마음을 훔치는 유혹도 없다.
솨아아아아.
당진철은 호법 없이 운기조식하면서도 위기 상황에 즉시 멈추고 대응할 정도의 고수다.
거기에 더해, 근처에 누군가 접근하면 사전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고수.
그럼에도 그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공주가 단순한 인간이나 무인이 아니라 엘프라는 사실이다.
숲지기 종족.
그녀는 숲에 녹아들어 움직였다.
아니, 그냥 걸었으나 숲이 알아서 길을 내어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걸음이다.
숲이 춤추고, 바람이 웃는다.
사락.
공주가 당진철의 반대편에 나타났다.
그녀는 거대한 나무를 보고 몸을 잘게 떨었다.
“어머니…….”
신 야누르를 외쳤으나 답은 없다.
이 나무는 무엇입니까?
이 세계수는 대체 무엇입니까?
혼란이 그녀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어머니,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저벅, 저벅.
홀린 듯 걸었다.
“어째서.”
어머니의 나무가 여기에 있는 걸까?
세계수가 여럿이지만 그것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것.
최초의 세계수 어머니의 나무는 하나가 전부다.
그녀의 접근에 야수들이 몰려들었다.
“끄응, 끙.”
야수들이 숨죽여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접근을 야수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는 위험이 아니라는 듯.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느껴진다.
이것은 신앙.
그 이전에 존재했던 뿌리.
그녀의…….
손만 뻗으면 닿을 위치까지 왔다.
야수들이 모두 그녀만을 보고 있다.
마치 어서 만지라는 듯.
그녀의 손이 천천히 들려지는 그때.
후우우우우.
하늘 위로 거대한 동체의 날갯짓이 들려오더니 사람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거기까지.”
수호가 공주를 노려봤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스컥.
오크 목이 잘리며 축 늘어진 시체를 놓고, 다음 녀석을 죽였다.
전장에 선 팀원들의 모두가 일사불란한게 움직였다.
굳이 말로 보고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뜻이 통할 지경에 이르렀다.
“좋아. 이동.”
홍세희의 명령에 몬스터 시체뿐인 전장을 떠나 임시 베이스캠프로 신속히 이동했다.
“부상자?”
샤샤샥.
앞서 달려간 두 명이 임시로 쳐 놓은 위장막을 들추자, 나머지 인원이 재빨리 달려들어갔다.
스스슥.
최초의 두 명이 위장막을 점검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경계병력은 굳이 필요없다.
“흐읍.”
최수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몬스터가 접근하면 그녀가 가장 먼저 눈치챌 것이다.
그녀의 레이더망에 무언가 걸리기 전까지 이 은신처는 안전하다.
“부상자?”
“저 조금 다쳤습니다.”
“저도.”
홍세희의 물음에 여기저기 조금이라도 다친 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부상을 숨기고 참아 봐야 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션이라는 한정된 치료법만 존재했다면 물론 자잘한 부상은 숨겼겠지만.
“흐읍.”
진세연의 손에 하얀 빛이 어려 부상자들의 상처를 감싸쥐었다.
팀원들 중에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이가 드물 정도로 모두가 부상을 입어 봤다.
치명적인 중상자가 아직 없음엔 진세연의 공이 크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작은 부상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고, 모두 최상의 상태로 사냥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홍세희는 결사대를 조직해 던전 보스를 노리는 대신, 천천히 던전 내 몬스터 구성을 알아보기 위해 게릴라 전략을 취했다.
취득할 정보는 진즉에 모두 알아냈으나 여전히 사냥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은 의외의 소득 때문이다.
‘성장하고 있어.’
8성 던전이 주는 어마어마한 경험치는 차지하고서라도, 용병들의 실력이 늘고 있다.
최후의 보루인 귀환석을 믿고 있긴 하지만, 박수호 없는 던전이다.
까딱 잘못하다간 죽을지도 모를 이 전장에서 30명의 용병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본인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옆의 동료를 믿기 시작했다.
강력한 누군가의 전력에 얹혀 버스 타는 것이 아닌, 자력으로 던전 공략을 진행하고 있음에 모두가 자부심을 느꼈다.
그 희열이, 성취감이 그들을 등급만 높은 신출내기 용병에서 베테랑으로 거듭나게 하고 있었다.
하위 던전부터 천천히 경험을 쌓은 것은 아니지만, 단번에 8성 던전에서 사냥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공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던전은 넓다.
그만큼 몬스터도 많지만, 군주의 명령 전달에 한계도 분명 존재했다.
지금까지 사냥한 그리핀이 일곱.
공중을 장악한 그리핀이 정찰과 중간 명령 전달을 담당하기에, 놈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며 사냥이 수월해지고 있다.
몬스터 대군에 포위되지만 않으면 근근히 사냥을 이어갈 만했고, 운이 좋았는지 실력이 늘었는지 지금 팀원들은 여태 사냥을 이어가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은 지난 것 같은데, 시차가 얼마나 될까요?”
“나가 보면 알겠지.”
시차가 문제다.
보통 던전 내의 시간이 더 넉넉하기에 지구는 아직 며칠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희 이번 던전 나가면 기회 없겠죠?”
“아마도.”
이번 던전의 유지시간은 유독 짧다.
10번의 던전 공략 기회가 있지만 그 시간이 짧기에,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리라.
“최대한 힘내자.”
홍세희는 팀원들을 다독이곤 조를 나눠 쪽잠을 잤다.
그간 전투로 등급이 오른 이들도 있었고, 홍세희 본인도 80에 정체되어 있던 레벨이 한둘 오른 느낌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8성 던전을 몇 번 더 공략하면 좋으련만.
귀환석을 쓰든, 던전 보스를 잡든 지금의 공략이 마지막 기회가 될 듯싶었다.
시간이 촉박해도 너무 촉박했다.
‘이왕이면 끝을 봐야지.’
팀의 잠재력이 그들 스스로 생각하는것보다 더 높고, 진세연의 치료 덕에 전력 이탈도 없다.
이왕이면 귀환석보다 보스를 잡고 출구 포탈을 통해 나가고 싶다.
홍세희의 그런 바람이었을까?
“쿠오오오오!”
거대한 포효에 잠깐 수면에 들었던 팀원들이 깜짝 놀라 깨어났다.
“다들 이동한다.”
홍세희는 상황이 심상찮음을 느끼고 즉시 은신처를 정리했다.
“맙소사.”
“저건…….”
지구에 나타난 해상군주들이 하나같이 거대한 덩치를 자랑했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그런데 저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놈의 발걸음이 이동할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렸다.
“쿠어어어어어!”
긴 모가지를 들고 포효하는 녀석의 음성에 공력이라도 실렸는지, 귀가 찢어질 듯 아팠다.
“으으. 저게 뭐죠?”
“보스겠지.”
저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지구에 현존하는 동물 어디와도 닮지 않았다.
튼튼한 네 발 다리, 그리고 거대하고 둥근 몸. 기다란 모가지.
뿔이 달린 머리와 촘촘히 박힌 이빨.
“공룡?”
8성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출현했다.
“시발, 두꺼비라며?”
이성우.
그가 또 한번 세계를 기만했다.
*“으으으으, 좋다아.”
이성우는 따뜻한 욕탕에서 기지개를 켰다.
“그냥 이렇게 살까?”
망할 세상 망하든 말든 내버려두고 이대로 사는 것도 괜찮으리라.
인류 수호를 위해 몸바쳐 온 지난 삶이 얼마나 고되었나?
“진짜 박수호가 두꺼비 군주를 막아내면…….”
그럼 인류 생존의 희망이 커진다.
최악의 군주.
두꺼비 군주는 강릉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놈의 출현을 미리 알고 막을 수도 없다.
놈은 해상군주와 같이 바닷속에서 나와, 육지로 올라오니까.
“으으, 좋다아.”
욕탕에 누워 손만 낸 채 티비 채널을 마구 돌렸다.
어딜 틀어도 강릉 8성 던전의 공략에 대한 뉴스로 떠들썩하다.
현존하는 인류 최대의 문젯거리니까.
“불철주야 좆뱅이 치소.”
다음 생에선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