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64)
365화 신의 강림 (4)
슈우우우우.
청룡인이 신계에 내려앉았다.
착지와 동시에 푸른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증발했다.
그렇게 뭉게뭉게 뭉쳐진 연기는 청룡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슈슈슈슈.
수호가 다시 소환하거나 변신하기 전까진, 신계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있겠지.
휘리릭.
청룡이 떠나가버린 곳엔 인간만이 남았다.
수호는 익숙한 숲길을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아오, 무덤을 얼마나 뒤졌는지.”
흡수한 수호의 과거만 해도 수십이고,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둔 쿠로의 마석 또한 비슷하니 참 많이도 없앴다.
타탁, 탓.
천천히 걷던 발이 빨라지며 숲길을 달렸다.
어느 순간 도약해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삐죽이 튀어나온 넝쿨을 잡고 줄을 탔다.
달리던 속도에 더해 넝쿨이 휘어지며 수호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다.
예전엔 참 신났던 것 같은데.
타탁.
숲의 커다란 가지를 밟으며 나무 위를 달렸다.
이 나무에서 저 나무, 저 나무에서 다시 더 앞에 나무로.
지구보다 월등히 큰 신계의 나무라 빌딩 숲 옥상을 건너는 정도의 높이였으나 수호는 디딤돌 건너듯 익숙하게 다녔다.
‘오랜만이야.’
이 길을 참 많이도 왔다 갔다 했다.
수호가 자리잡은 숲에서 쿠로의 영역인 바위산으로 가는 길목이다.
쿠로를 만날 때마다 이 길을 달렸다.
저 바위산 꼭대기에 호수가 있다.
쿠로가 맨날 바위산 정상에서 늘어지게 앉아 호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신비경.’
호수는 지구의 하늘과 땅을 비춘다.
신비경을 통해 천지를 내다보는 것이다.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혼자만 봤단 말이지.’
어떻게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그 호수를 통해 지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숨겼는지 괘씸하기도 하지만 납득이 가기도 했다.
물론 이해한다고 하여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쿠로오오오.”
산을 울리는 고함에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호수 앞까지 올라 있었다.
“쿠로, 이리 내려와 봐.”
“쿠루루.”
“그만 나불대고 내려와.”
파삭.
쿠로가 바위를 박차고 훌쩍 뛰어 수호의 앞에 내려섰다.
“화가 났군.”
“화 안 나게 생겼냐?”
“전생의 기억을 얻었군.”
죽어서 무덤에 묻혀버린 수십 가지 기억을 얻었다.
“네놈에겐 과거지.”
“…….”
지금의 수호는 고작 천 년을 조금 더 살았지만, 쿠로는 그보다 족히 서너 배는 더 살았을 터.
얼마나 많은 수호의 죽음을 보았을까?
현생 동안 말이다.
“너, 나 많이도 죽였더라?”
“…….”
“그리고 호수 존나 싸고 돌더라.”
수호가 호수를 언급하자 쿠로의 눈썹이 휘었다.
수호의 속내가 훤히 내다보였다.
“저것은 아니 된다.”
“뭐가 안돼? 변태처럼 혼자만 보고 있자니 좋냐?”
“……보기만 할 게 아니지 않더냐?”
“당연하지. 저게 통로가 되어 줄 텐데.”
지구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신비경의 존재를 알고 난 뒤로 수호가 그에 집착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자신을 죽여서까지 저 호수를 사수하고자 했던 쿠로의 의지다.
“난 지구에 볼일이 있고, 가야겠어.”
“아니될 소리.”
“이번에도 막을 테냐?”
수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쿠로도 덩달아 기세를 피워올렸다.
“못 간다.”
“왜?”
“저것은 오로지 신계의 입구로서의 역할.”
수호가 이무기 백사의 모습을 흉내내고 천계에 발을 디딘 것도 저곳을 향해서다.
“입구가 출구 되고 그러는 거지.”
“아니될 소리.”
“…….”
수호는 쿠로를 노려봤다.
저렇게 기를 쓰고 막는 걸 보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날 죽여서라도 막겠다고?”
“그렇다.”
“와, 너 존나 나쁜 새끼네.”
“…….”
“좋아. 이유가 뭐야? 저길 통해서 지구로 내려가면 뭐가 달라져?”
“…….”
“대답 안 해 주냐?”
“…….”
“뭐, 좋아.”
이유야 알 바 아니다.
“난 내려가야겠고, 넌 막겠다는 거지.”
수호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언제나 의견 충돌의 효과적인 해법은 폭력이라는 결과물을 이끌어낸다.
강한 자가 결정한다.
자연이 도래한 이래 절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법칙이자 진리.
“쓰러트리고 간다.”
지금의 수호가 과거의 수호인가?
이미 수습한 죽음의 기억만 수천 년이다.
기억만 그러할까?
그들의 힘을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특히 5천 년이나 살아왔으며, 신룡대전을 막기 위해 몸부림쳤던 수호의 힘은 본신을 능가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의 수호는 전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족히 강해졌다.
“막을 테면 막아 봐.”
“모른다.”
“뭘?”
“이유 따윈 모른다. 아니, 잊었다.”
“…….”
이 새끼, 지금 이유도 모르면서 막겠다는 건가?
“기가 차네.”
“나 또한 그렇군.”
쿠로의 말에 수호는 분위기에 맞지 않게 웃어 버렸다.
“미친 호랑이. 그냥 비켜.”
“하지만 이유 따윈 상관없다.”
“뭔 개소리야.”
“나 또한 그대와 같이 무수히 많은 전생을 지내왔겠지. 잊었다 하여도 사명이 변하진 않는다.”
“…….”
“널 막아 천지를 지키겠다.”
“미친놈이네.”
수호는 쿠로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놈이네.”
수호의 느릿한 걸음에 쿠로는 잔뜩 인상을 굳혔다.
‘다르다.’
허술해 보이는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빈틈이 없다.
전에 비해 더 껄렁해 보이는데도 도무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진다.
‘피할 수 없어?’
쿠로는 자신의 생각에 흠칫 놀랐다.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피할 생각뿐이다.
거기에 더해 반격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오싹한 느낌에 등허리에 땀이 축축하게 젖었다.
“뭐하냐?”
“…….”
한 뼘.
애송이였던 인간은 없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녀석이 쿠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피하지 못했다.
잡지도 못했다.
턱.
“나 지나간다.”
“…….”
탁.
수호가 쿠로를 지나쳐 걸었다.
호랑이 인간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뒤를 돌았으나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멀어져 가는 인간의 등을 보며 그제야 자신이 긴장했음을, 잔뜩 얼어붙었음을 인정했다.
또르르.
등줄기를 타고 흐른 땀방울이 호랑이 부랄을 타고 흘렀다.
“후우…….”
무방비한 등을 보고도 도무지 공격할 수 없다.
해봤자 무의미한 일.
막을 수 없다.
이미 격이 달라져 버린 존재의 걸음을 막을 길이 없다.
수호는 쿠로를 뒤로한 채 천지 앞에 섰다.
쏴아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물길이 일렁여 제대로 내려다보이지 않았다.
“신경질 부리기는.”
이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안다.
정령의 왕.
야누스가 심술부리는 것이겠지.
“쿠로.”
수호는 아직도 얼어있는 쿠로를 불렀다.
확실히 녀석이 주먹을 뻗지 않은 건 훌륭한 선택이다.
지금의 수호는 쿠로를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을 정도니까.
“왜 사냐?”
“이익.”
명백한 도발에 쿠로가 발끈하려 했으나, 수호의 다음 행동에 굳었다.
촤르륵.
수호는 인벤토리에서 검은 마석을 꺼내 쿠로의 앞에 던졌다.
수십 개의 마석을 보는 쿠로의 눈엔 깊은 유혹이 자리했다.
이것은 본능이다.
수호가 자신의 마석을 보고 참지 못했듯, 쿠로도 자신의 마석을 보곤 유혹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전생의 나는 어땠을까?’
근원적인 궁금증.
‘저 힘이면.’
과거의 힘을 수습할 수 있다는 욕심.
‘과거. 전생…….’
어떤 이유도 필요없는 본능적인 끌림.
본디 자신의 것이었기에, 되찾아 완전해지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몸을 덜덜 떨던 쿠로는 결국 마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휘리리릭.
그때 회오리바람이 불며 마석이 한데 모였다.
바람은 곧 야누스의 모습으로 실체화하며, 그의 손에 쿠로의 마석이 모조리 쥐어져 버렸다.
[돌이킬 수 없다.]“…….”
쿠로는 겨우 진정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유혹에 넘어갈 뻔하였군.”
어디에 두든 쿠로는 다시 유혹에 빠질 것이고, 마석에 손을 댈지도 모른다.
‘죽음에 묻히게 둘 순 없지.’
과거를 탐한 신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과거에 묻혀 자아까지 잊고 망가져버릴 것이 뻔하기에…….
야누스는 오랜 친구인 쿠로를 잃을 수 없었다.
“뭐, 알아서들 하시고.”
수호는 야누스가 한눈 파는 사이 잔잔해진 호수를 보았다.
일렁이는 물살을 따라 내려다보이는 모습.
‘한국은 이상 없고.’
수호시티는 멀쩡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일본을 보았다. 더 크게 보고자 마음먹자 섬나라가 커졌다.
‘이 좋은 걸 쿠로 혼자 구경하고 있었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르고부터는 쿠로와 한 번씩 싸우는 것 외에는 무료한 신계 생활이었다.
여기서 지구 구경이나 하면서 내려다보고 있었으면 덜 적적했을 것을…….
물론 정말 그랬다면 당장 뛰어 내려갔겠지만.
파파팟.
시야가 위성이 된 듯 공중에서 내려다보다가 확대되어 이제는 드론 카메라로 촬영한 듯 여기저기 수호의 의지대로 비추었다.
‘저게 드래곤이야?’
후지산에 구멍을 파고 숨어든 모습이 꼭 탈피하기 전의 매미를 보는것 같았다.
‘굼벵이 같은 놈이네.’
아주 커다란 사이즈의 굼벵이.
그 굼벵이가 눈을 떴다.
‘날 봐?’
자신의 시선을 느끼는것인가?
수호는 픽 웃으며 시야를 멀리 떨어트렸다.
시야가 넓어지며 불타는 도시, 사냥하는 오크들, 그리고 그걸 역으로 사냥하는 인간들이 보였다.
‘동수네.’
익숙한 얼굴에 수호의 표정이 반가움으로 번졌다.
오크들 틈에서 거인 하나가 나와 꽤 고전하는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인간들이 이길 것 같았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잘하네. 다들.’
여기 저기 둘러봐도 아까 그 드래곤만 아니라면 오크 사냥은 순조로워 보였다.
‘잠깐 다녀올까?’
잠깐 다녀오는 정도로 지구에 막 침식이 일어나진 않겠지?
검은 포탈이 여기저기 열리면 잽싸게 구천으로 돌아가 처리하면 될 일이다.
수호가 훌쩍 뛰어 천지에 몸을 담갔다.
풍덩.
‘으음?’
처음 느낀 감정은 시원한 청량감이었다.
깊은 수면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시원하고 속도감마저 느껴졌으니까.
물이 주는 압력 따위야.
슈슈슈.
점점 따끔한데?
속이 부대끼고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고통이다.
아니, 고통이 아니다.
마치 몸의 질서가 바뀌는 느낌.
몸이 쭉 늘어지는 치즈가 된 기분이다.
점점 버티기 어려워진다.
등천할 때는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이거 조금 위험한가?
[???와 ???를 동기화합니다.]“……?”
수호는 시스템 메시지에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기절해버렸다.
*풍덩.
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수호를 보며 야누스의 눈빛이 일렁였다.
‘그 많은 죽음을 이고도 제정신을 유지하다니…….’
태초부터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신들이 존재했다 사라져 갔는가?
‘다르구나.’
확실히 다르다.
수호가 수습한 죽음이 얼마고, 중첩된 전생의 기억들이 얼마나 될까?
저 인간은 어쩌면…….
한층 격이 올라가버린 듯 커져버린 그 존재감에 야누스의 몸이 흔들렸다.
태초의 바람처럼.
‘어쩌면 그분을 맞이해야 할지도…….’
태초시대의 탄생 이후 긴 생 동안 재회하지 못한 그분을 뵙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