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74)
375화 수호신 강림 (4)
드래곤의 황당한 음성에 이무기 백사가 반응했다.
[뭐긴 뭐야. 네놈을 잡고 용이 될 몸이시지.]꾸드드드득.
거대해진 이무기의 몸통 조이기에 드래곤이 기함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오직 신의 힘을 가진 이들만이 신의 방패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격이 같은 힘이니까.
여기가 무슨 신수 밭도 아니고, 왜 죄다 신력을 가진 놈들이 활개치지?
누가 보면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 신계라고 착각할 정도다.
신수들이 넘쳐나는 곳이라니.
마법을 쓰려 해봤으나 여의치 않다.
이미 모든 마력은 그의 뱃속에 모여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화했으니까.
나무넝쿨로 입마개한 개 꼴이 되어 불도 못 뿜고 있다.
후우우우웅!
화난 콧김에 불길이 치솟아 나왔다.
치지지직.
김미소가 옭아맨 나무넝쿨 중에 콧구멍 앞의 넝쿨이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저들이 신의 방패를 무시하듯, 드래곤의 마력 또한 저들의 신격을 무시한다.
김미소가 부리는 조화마법은 드래곤 앞에서는 신의 가호를 받는 나무가 아닌 그냥 질긴 나무일 뿐이다.
후우우웅!
재미가 들렸는지 드래곤이 콧바람 라이터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불길을 뿜었다.
꾸드드드득.
온몸을 조여오는 이무기의 육탄공격은 무시했다.
마법이 편해 즐겨 사용하는 거지, 육체능력이 비루해 마법에 기대는 것이 아니다.
드래곤의 튼튼한 육신은 실드 없이 이무기의 공격을 견딜 만큼 튼튼했다.
‘신수 정도야.’
몸을 칭칭 감은 이 커다란 뱀 녀석은 좋게 봐야 신수 정도의 수준이다.
멸망의 시기 때 신계에서 내려오는 신수들 정도 말이다.
‘저놈부터.’
드래곤 락샤샤는 나무넝쿨로 만든 입마개를 손에 쥔 김미소를 노렸다.
후우우우웅!
콧구멍에서 나오는 불길이 산소 절단기의 불꽃만큼이나 강하고 곧다.
“앗!”
직접 몸에 닿지는 않았지만 콧김이 향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열기가 휘몰아쳤다.
맨몸으로 용광로 앞에 선 기분.
쿠르르르.
백사가 에워싸며 버둥거리는 통에 한데 엮인 드래곤이 바닥에 추락해 사방을 굴렀다. 구르는 와중에도 대가리는 김미소를 향하며 콧김을 뿜으니, 열기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촤르르륵!
더는 버틸 수 없다 싶을 때 물의 장벽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괜찮아요?”
박준호의 등장에 김미소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박 부사장님.”
물의 힘을 쓰는 그이기에, 어쩌면 불을 내뿜는 드래곤과의 상성에서 우위를 점하리라.
“일단 저놈부터 좀 식히죠. 꽉 잡아 채세요.”
“네!”
꽈드드득.
김미소가 조화력을 끌어올려 주변에 힘을 퍼트렸다.
하늘을 버린 드래곤이 바닥을 구르고 있다.
콰드드드.
바닥에서 자란 넝쿨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드래곤의 다리와 꼬리를 휘감았다.
촤아아아악.
박준호가 거의 한 몸이 되어버린 그리핀을 타고 자유자재로 날며 발버둥치는 락샤샤에게 물덩이를 쏘아보냈다.
창이나 칼날로 다듬을 필요도 없다.
그저 물을 날렸다.
공기 중의 수분을 모을 필요도 없다.
락샤샤가 김미소의 넝쿨에 묶여 추락한 곳은 성벽 근처.
성벽엔 아주 깊고 넓은 해자가 있으니까.
촤아아아아.
박수호의 의지에 따라 해자에서 솟아오른 물기둥이 샤워기처럼 락샤샤의 몸에 뿌려졌다.
푸시시시시시.
물론 근방에 가는 순간 기화해 수증기로 변했으나 상관없다.
주변에 뜬 수증기도 박준호가 제어할 수 있으니까.
공기중의 습도가 아무리 높아져 봐야.
‘불도마뱀이 얼마나 버티나 보자.’
박준호는 자신만만하게 물을 퍼부었다.
점점 늘어난 수증기에 안개가 짙어졌으나, 그것들이 다시 물이 되어 드래곤에게 쏟아졌다.
박준호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락샤샤의 한계.
푸시시시시시.
벌써 수백 톤의 물을 쏟아붓고도 락샤샤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외려 물이 뜨거워졌다.
수증기의 온도가 올라, 주변 안개는 그야말로 불안개가 되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듯 따끔한 느낌.
숨쉬기마저 벅찬 습한 공기.
이대로 숨 쉬다간 폐가 익을 것 같다.
[모조리 녹여 주마.]물이 끓으면 수증기로 기화한다.
열을 품어 기화된 수중기의 극을 인간들에게 체험시켜 주마.
100도 그 이상의 물을.
푸시시시.
단시간에 어마어마한 물줄기를 쏟아 부었으나, 락샤샤는 그 짧은 시간에 모조리 기화시켜버렸다.
도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던 화염 브레스다. 이 정도 물로 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으윽, 더는 못 버티겠어요.”
김미소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후, 후퇴합시다.”
박준호도 더 이상 물을 쏟아붓다간 주변에 죽음의 안개만 퍼붓는 꼴이란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다닥 물러서며 안개를 컨트롤했다.
휘이이이익.
고온의 물안개가 토네이도처럼 휘돌며 위로 솟구쳤다.
잠깐 사이에 이미 주변 성벽의 이파리들은 누렇게 죽었고, 드래곤과 뒤엉킨 백사의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췩. 네놈, 뱀 찜이라도 먹고팠더냐?]“아니, 그게…….”
당황한 박준호가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김미소의 피부도 벌겋게 익어 있었다.
불덩이를 품은 드래곤을 식히려 했다가 팀킬을 할 뻔했다.
놈이 품은 불은 꺼지지 않는 용광로와 같아, 물을 얼마나 더 퍼붓더라도 쉬이 꺼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김미소가 물러나는 바람에 속박력을 잃은 나무넝쿨을 헤치며 아가리를 벌린 드래곤이 포효했다.
“크오오오오오오!”
근거리에서 터진 드래곤 피어에 박준호와 김미소가 움찔했다.
귀도 얼얼하지만 속이 울렁거릴 정도의 공격.
꾸드득.
드래곤이 기지개를 켜듯 고개를 치켜들고 날개를 활짝 폈다. 몸을 옥죄고 있던 이무기가 살 비틀리는 소리와 함께 느슨해졌다.
잘 쳐봐야 신수다.
신에 비빌 정도는 아니지만…….
콰아앙, 쿠드드득!
드래곤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힌 이무기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딸려와 패대기쳐졌다.
이무기가 처박힌 성벽의 나무들의 껍질이 까지며 휘청휘청거렸다.
[감히 이것들이!]신수. 혹은, 잘 쳐봐야 반신 정도 되는 녀석들이다.
이제 겨우 신격에 발을 들인 놈들에게 이토록 낭패를 당할 줄이야.
너무 안일했기에 크게 분노했다.
[네놈.]드래곤의 서슬 퍼런 안광이 김미소를 비췄다.
저년이 문제다.
[어떻게 창조주의 힘을 쓸 수 있는 거지?]신중의 신.
태초의 시작을 알린 그만이 가진 생명의 힘을 어째서 인간 따위가, 반신 따위가 사용하는 것일까.
신격에도 급이란 것이 있다.
그 정점에 있으며, 모든 만물을 창조한 그의 힘이다 보니 순간 포박 당하고 옴짝달싹 못한 것이다.
김미소만 조심하면 주변에 그 누구도 드래곤을 위협할 적 따위는 없다.
[빼애애앰!]백사가 다시 달려들었으나, 몸을 휘감기 이전에 날렵히 몸을 휘돌린 드래곤의 꼬리가 백사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흐물거리는 그 몸뚱이를 갈고리로 끌듯이 발톱에 걸어와 바닥에 패대기친 후에,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로 꽉 밟았다.
꾸드드득.
갈고리 같은 발톱이 백사의 몸뚱이를 파고들며 꽉 움켜쥐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태초신의 힘을 휘두르는 인간의 정체 따위야 상관없다. 그 힘이야 엘프들도 어느 정도 나눠받고 있으니까.
물론 여럿의 엘프가 모여 마력을 바치고 간절한 기도 끝에 조금 얻는 생명력의 힘이다.
저 인간은 매개가 되는 세계수도 없이 홀로 무작정 휘두르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
딱 거기까지다.
궁금하다 하여 살려둘 이유는 없다.
외려 위험하니 제거해야 될 녀석.
오래 전 자취를 감춘 태초 신 따위는, 더 이상 나타나서는 안 되는 과거의 망령일 뿐이다.
신격을 가진 드래곤이지만 어디까지나 미드얼 행성에서의 이야기다.
신계는 그의 적이 아닌가?
“하압!”
백사가 위험해지자 김미소는 다시금 넝쿨을 휘날려 드래곤을 잡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후우우웅!
드래곤이 급히 몸을 띄우며 모조리 피해냈다. 발톱에 차인 백사가 참새에 잡힌 지렁이로 보일 정도로 높이 날아올랐다.
[치욕이다.]백사가 버둥거리다가 아가리를 크게 벌려 드래곤의 다리를 물었다.
츠츠츳.
독은 없지만 한은 있다.
설산에서 수련한 천 년 묵은 이무기는 빙의 정수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빙의 힘과 더 없이 어울리는 것이 물의 힘이니 그토록 청룡을 잡고자 했음인데…….
회귀 후 무엇이 달라져서 그런지 청룡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을 만한 것은 둘뿐이다.
회귀 전에 신계로 등천해버린 주인 녀석과, 회귀를 실행한 백사 자신밖에 없다.
‘빌어먹을. 뱀생 여기서 마감하나.’
주인 녀석은 어디서 뭘 하길래.
이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의 입에서 다시 불이 뿜어졌다.
화르르르르륵.
전처럼 방심하지 않고 높은 상공에서 화염을 퍼부었다.
불기둥이 들어선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길은 옆으로 새지 않고 아래로 토해졌다.
치이이이이익!
박준호가 물의 방패를 형성해 막아내 봤으나 역부족이었다. 물은 금방 증발해버리고, 옆으로 튄 불똥은 나무를 태웠다.
“……성벽이 타고 있어.”
불에 안 타는 나무다.
영문은 모르지만 박수호가 만들어낸 나무들은 신의 힘이 깃들어있어 화염에 강한 것들인데, 드래곤이 내뿜는 브레스는 견디기 어려운 모양이다.
“쳇, 일단 나라도 주의를 끌어 볼게요.”
박준호가 그리핀을 타고 위로 솟구쳤다.
김미소가 서둘러 그리핀을 찾았으나 그보다 먼저 서민수가 도착했다.
“서 대장!”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대한 들키지 않고 미행하느라 늦어버렸다.
“날 위로 보내줘요.”
김미소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식물들을 자라게 하는 이 힘이 드래곤에게 먹히고 있다.
“타세요.”
대머리 독수리가 서민수가 등을 내어주었다.
김미소가 서둘러 주변 풀뿌리를 몇 개 캐내고는 등에 올라탔다.
후우우웅!
속도에 올인한 서민수답게 급격히 치솟으며 드래곤과 가까워졌으나, 락샤샤가 노리는 것은 바로 지금이었다.
[태초신이 멍청한 후인을 낳았군.]뿌리 내리지 않고 자라는 나무는 없다.
하늘에서 뭘 할 것인가?
제 스스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버려두고 온 셈.
드래곤에게 있어 아주 성가신 무기를 말이다.
휘이이이익.
모든 마력이 아직도 뱃속에 이글거리는 화염으로 남아있지만, 상관없다.
마력이 없어도 드래곤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다.
육탄전이야말로 드래곤의 가장 오래된 힘.
화르르르륵.
여기저기 흩뿌린 브레스에 서민수가 급히 기동하며 간격을 좁혀 왔다.
‘좀 더.’
김미소도 나름의 노림수가 있었다.
모든 식물이 흙에 뿌리 내리고 사는 건 아니다.
동물의 몸에 뿌리내려 식물이 되는 것도 있지 않나.
화르르륵.
마력이 깃들어 잘 꺼지지도 않는 불길이기에 신중히 피해내며 접근했다.
일부러 접근을 유도하는지도 모르고.
“지금!”
쐐애애액.
김미소의 신호에 서민수가 급히 속도를 올렸고, 드래곤은 회피하기는커녕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마주쳐 왔다.
후우우웅.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둘은 참새와 파리만큼의 크기 차이가 있었다.
후우웅!
드래곤의 우악스런 앞발이 김미소를 쥐려 했으나, 대머리 독수리가 날쌔게 빠져나왔다.
하지만…….
쿠웅.
독수리가 허공과 충돌했다.
[어리석구나.]브레스를 여기저기 토해낸 건 뱃속에 깃든 화염을 비워내기 위해서다.
마력을 일으켜 둘을 속박한 드래곤의 앞발이 천천히 움직여 김미소를 거머쥐었다.
꾸드드득.
“으으윽.”
엄청난 압박에 몸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신은 아주 좋은 재물.
[태초의 힘이라…….]이 녀석을 먹으면 그것을 얻게 될까?
드래곤이 김미소를 씹으려 입가에 가져다 댈 때였다.
콰아아아앙!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에 몸이 접혔다.
쐐애애애액.
고통을 수습할 시간도 없이 날개가 꺾여 바닥에 처박혔다.
쿠드드드드득.
땅을 움푹 밀어내며 처박힌 드래곤 락샤샤가 서둘러 고개를 돌려봤으나 자신을 공격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으으.”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여전히 잡혀있는 김미소부터 먹어치우려 입으로 가져다댔다.
“그거 씹으면 이빨 다 날아간다.”
[…….]드래곤 락샤샤가 깜짝 놀랐다.
바닥에 처박힌 자신의 머리 앞에 인간이 하나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