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75)
376화 드래곤 락샤샤
락샤샤는 인간을 노려보았다.
아니, 이 느낌은 인간이 아니다.
“뭘 꼬나보냐?”
수호의 말에 드래곤이 눈을 내리 깔았다.
그러곤 곧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가, 감히!]드래곤인 자신이 눈을 피해?
왜?
의문보다 앞서는 건 분노였다.
상대의 위세에 겁먹었다는 자각.
현실부정.
스스로에 대한 경멸.
“뭘 부들부들대고 있냐?”
[…….]드래곤이 다시 눈을 들었을 땐 인간이 바로 코앞까지 와 있었다.
아니, 인간이 아닌가?
[넌 무슨 신이지?]“뭔 병신같은 소리야?”
수호는 슬쩍 팔을 뻗어 드래곤의 발톱 하나를 쥐었다.
꾸드득.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 행동에 멍하니 있던 드래곤이 뒤늦게 힘을 주었으나, 발가락은 너무 쉬이 펴지고 말았다.
꾸둑.
기이한 방향으로.
[크오오오!]아프다.
손가락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
언제 이토록 무시당해 봤던가?
숭상만 받아왔던 드래곤이기에 더 모멸찼다.
높이 날다 떨어질수록 충격이 큰 법.
“미소, 괜찮냐?”
수호가 드래곤의 발가락 하나를 뒤로 꺾어 버리자, 그틈에 김미소가 재빨리 빠져나와 수호의 뒤에 섰다.
“네, 사장님.”
사장님 소리에 수호가 피식 웃었다.
처음 보는 저 드래곤도 자신을 신 취급하는데, 아직은 자신을 그저 사람으로 봐주니까.
“고생했다.”
수호의 한마디에 김미소가 울컥했다.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다.
드래곤의 기습에 본진을 내어줄 뻔했다.
지금도 성의 이곳저곳이 불에 타고 있다.
“……죄송합니다.”
“됐어.”
중과부적이다.
신수 정도까지야 어떻게 합공으로 잡는다지만, 미드얼 행성의 드래곤은 다르다.
신으로 추앙받는 놈들이니까.
“그나저나 넌 나 모르냐?”
후우우웅!
드래곤이 급히 몸을 퍼덕이며 뒤로 물러나 잔뜩 경계의 자세를 취했다.
[…….]저 여유로움이 싫다.
너 같은 건 단번에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가 아닌가?
‘이 감정은 무엇인가?’
너무 낯설다.
드래곤이 자각하기엔 너무 어려운 감정이다.
생에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이란 감정이니까.
“신삥이냐?”
수호의 말에 드래곤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잔뜩 웅크린 고양이 같은 모습에 수호가 픽 웃었다.
“너, 신룡대전 안 겪었구나.”
신룡대전.
신계와 미드얼 행성 간에 게이트가 발생해 드래곤과 오크들이 신계를 침입한 사건이다.
[신룡대전을 겪은 건 로드뿐이시다.]“로드?”
수호가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니네 대장?”
수호의 웃음이 짙어졌다.
이놈 이거, 새끼구나.
수호는 신룡대전을 겪어봤다.
물론 지금의 수호 말고.
신룡대전이 발발하도록 해버린 과거의 수호의 기억과 힘이 흡수되어 그대로 경험이 되어 남았다.
‘으음, 그게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이지?’
수호는 가만히 계산을 해보려다 말았다.
워낙에 흡수한 기억들이 여럿이고, 시대가 다르다 보니 선후를 측정하기도 어려웠다.
대략 수천 년 전이겠지 뭐.
몇만 년 전일 수도 있고.
“너네 로드 몇 살이냐?”
락샤샤는 흥분한듯 소리치며 그대로 돌격해왔다.
여태 기세에 밀려 있었지만, 그렇다고 맹수 앞의 강아지처럼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용맹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났기에, 더욱 날카롭게 발톱을 세웠다.
쐐애애액!
드래곤의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돌격. 날카롭게 세운 앞발톱이 수호를 찢어발길 듯 다가왔다.
콰직!
수호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뻗어 잡았다.
거대한 드래곤의 발톱이 수호의 손에 가로막혔다.
고양이가 개미에게 들린 것처럼 괴이한 광경.
수호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해냈다.
“로드, 살아 있지?”
[……네놈이 감히 입에 담을 분이…….]“뭐 돈 빌렸냐? 애가 경기를 하네.”
로드만 튀어나오면 과민반응하는 락샤샤의 발톱을 잡아 당겼다. 커다란 덩치의 드래곤이 딸려오는 모습이 비현실적이었다.
슈아아악.
수호의 모습이 희끗하게 사라진다 싶더니 드래곤의 목 부근에 나타나 난데없이 발차기를 후렸다.
콰직!
“살아있나 보네.”
수호는 웃었다.
우드드득.
드래곤의 날갯죽지 하나가 기이하게 꺾였다.
“크어어어어!”
드래곤이 육성으로 괴성을 질렀다.
“이야, 말도 하네.”
의지를 전하는 고차원적인 대화수단을 사용하는 놈이었지만, 이번에 성대에서 터뜨린 소리는 괴수의 괴성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뚜드드득.
수호는 반대쪽 날개는 아예 뜯어 버렸다.
“쿠오오오!”
날개 잃은 드래곤이 분노를 담아 저항했으나, 수호는 단 한 번의 위기 없이 수십 배나 더 큰 드래곤을 농락했다.
팔이 꺾이고, 다리가 접혔다.
드래곤은 저항 불능의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알면 뭐?”
수호가 웃으며 축 처진 드래곤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구르르.
사지가 뒤틀리고 꺾였어도 고개를 치켜들고 수호를 기습하려는 드래곤을 보고 수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깡은 있네.”
촤아아아악!
수호의 손짓에 바닥에서부터 넝쿨들이 자라나 드래곤 락샤샤의 몸을 옴짝달싹못하게 묶었다.
치켜 들었던 대가리는 바닥에 처박혀 눈높이를 맞췄다.
촘촘하게 엮어진 나무넝쿨은 겨우 녀석의 눈알만 보이도록 남겨두었다.
멀리서 본다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는 과정처럼 보일 것이다.
락샤샤는 온몸이 속박당하자 비로소 깨달았다.
이 넘치는 생명의 힘.
[크크, 그렇구나. 네놈이구나.]“뭐가?”
[네놈이 창조신의 파편이로구나.]“그건 또 뭔 소리야?”
[형제들이여,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그대들 또한 보고 들으리라.]파파파팟.
락샤샤의 그 말이 끝나자 묘한 파동이 쳤다.
마력이 억눌려 있다 하나 드래곤의 종족 고유 언령까지 막아낼 수는 없다.
이제 오늘의 일은 다른 드래곤들이 모두 알게 되리라.
“뭐 한 거야?”
[나의 복수는 내 형제들이 해줄 것이다.]“이거 골 때리는 놈이네.”
수호는 드래곤의 콧잔등을 괜히 한 대 때렸다.
쿠웅!
“죽일지 살릴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내가 너 죽일 마음이 없으면?”
[…….]락샤샤는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았다.
[날 살려주겠다는 것이냐?]“아니.”
[…….]농락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 무슨 말장난인가.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보면 답해줄 거냐?”
[그럴 리가 있겠느냐?]“그렇지?”
수호는 드래곤을 심문하길 포기했다.
아니, 애초에 마음먹지도 않았다.
다른 드래곤들이 많다는데 굳이 이놈 하나만 붙잡고 드잡이질할 필요가 없다.
일단 지구로 넘어온 드래곤은 이놈이 전부니, 얼른 해치우고 지구를 떠나야 한다.
지구가 다시 검게 변하는 침식이 일어나기 전에 말이다.
스슷.
수호는 인벤토리에서 제왕검을 꺼내 쥐었다.
그대로 찌르려다 이제야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렸다.
“백사.”
[쳇. 더럽게 일찍 찾는군.]백사는 툴툴 대면서도 수호에게 다가왔다.
볼썽사납게 사로잡힌 드래곤이지만 여전히 등천의 재료로는 안성맞춤인 녀석이다.
신급 군주보다 몇 배는 더 높은 신격을 가진 녀석이니까.
[이놈 먹고 등천한다.]수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회귀를 부탁하며 약속한 일이니까.
그의 부탁에 의해, 백사는 청룡을 잡고도 등천하지 않고 회귀를 택했다.
스슥.
백사는 드래곤의 코로 쏙 들어가버렸다.
[이 무슨!]드래곤이 대경실색했으나, 몸을 옴짝달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미소가 펼친 것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진 나무들. 하나하나가 신목이라 해도 될 정도의 힘을 내고 있었다.
드득, 드드드득.
드래곤을 구속하고 있는 넝쿨들이 들썩이는 걸 보니, 알아서 잘 해치우고 있는 모양.
수호는 뒤돌아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불길이 치솟고 있었지만 성벽으로 삼은 나무들은 의외로 건재했다.
물위에 뜬 기름이 불타듯 외부만 불길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중이지, 나무 자체가 확 타오르진 않았다.
‘마력이 타는 건가?’
매개 없이도 스스로 불 피우는 지옥불이 있다더니, 드래곤이 내뿜은 브레스가 딱 그 꼴이었다.
딱.
수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수호가 내린 비가 지옥불을 차츰 사그라들게 하더니 꺼트렸다.
“미소.”
“네, 사장님.”
“잘 버텼어.”
“아…….”
그녀의 뒤에 있는 서민수와 박준호도 보았다.
“늬들도.”
“형.”
박준호는 왠지 형이 남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전의 형은 10년 만에 해후했어도 이 정도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둘 사이에 훅 지나버린 세월이 끼어버린 기분이다.
“사장님. 저 변신 모델 한 번만 바꿀 수 없습니까?”
서민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왜?”
“머리털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 이유면 납득이지.
“처음 해보는데 되려나.”
수호는 서민수의 어깨를 짚고 그를 새로 기사로 서임해보려 했다.
파파파팟!
“아아!”
서민수는 온몸에 활력이 돋는 느낌에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오! 힘이 넘칩니다.”
“그러게, 안 되네.”
“예?”
“회복은 되는데 새로 임명은 안 되네.”
“아…….”
“대머리가 어때서 그래. 어깨 펴.”
“…….”
시무룩한 서민수를 제쳐두고 김미소에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거인 잡고 있나?”
“아! 거인은 사냥 완료했습니다. 지금 원조 요청으로 복귀중입니다.”
“오크들도 쓸어주고 가?”
“괜찮습니다.”
김미소는 수호의 등장만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여겼다.
미드얼 행성의 침공이 스팟 사냥터가 된 느낌.
“용병들 경험으로 삼겠습니다.”
“음, 좋아.”
수호는 슬쩍 하늘을 보았다.
이대로 돌아갈까?
아니면 드래곤이 있을 미드얼 행성으로 갈까.
‘잠깐만 갔다 갈까?’
어쩌면 침식이 오기 전에 지구를 구할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드래곤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계와 분리해서라도…….
알아야 할 건 하나.
드래곤들이 부득불 신계로 다시 기어들어오려는 이유다.
행성 분리 방법.
또 그에 대한 리스크.
“나 잠깐 미드얼 갔다가 다시 올라간다. 애들 데리고 오크 잘 치워.”
“네!”
수호가 미드얼 행성으로 간다.
*무너져버린 도시.
여기저기 불탄 재만 남은 작은 도시에 발을 디딘 장재식은 천천히 걸었다.
‘느껴진다.’
적의 존재감이 너무 뚜렷하다.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는 느낌.
아니, 확실하다.
자신을 부르고 있다.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부름.
떨리고 긴장된다.
자신을 부르는 저것이 무엇이기에?
지금이 아니면 재앙이 되어 되돌아온다.
분명 본능이 그리 경고하고 있다.
자박.
알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다가갈수록 주변이 시커멓다.
‘불에 탔나?’
그을림과 조금 다른 느낌.
걸어 갈수록 온통 시커멓다.
부서진 도로도, 무너진 건물도.
‘…….’
점점 커지는 위화감.
스릉.
장재식은 검을 잡고 언제든 발도할 준비를 했다.
걸음은 더 느려졌고, 그만큼 신중해졌다.
척.
장재식이 발걸음을 멈췄을 때, 새카만 덩어리가 기지개를 켜듯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