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76)
377화 미드얼 행성(1)
“뭐, 뭐야 시발.”
장재식의 입술은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욕을 막지 못했다.
기괴하다.
그저 검다고 표현하기에는 기이한 것들이 많았다.
색이 있어 검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검은 것 같은 기분.
‘블랙홀도 아니고.’
딛고 선 땅이며 건물이며 나무가 온통 검다.
그리고 저기 웅크리고 있는 사람 같은 것도 검은색 일색.
스스스.
놈이 몸을 일으켜 세웠고, 장재식은 그립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저것은.
무엇이냐.
정체가 무엇이냐?
놈이 몸을 일으켜 세웠고, 굽었던 등을 폈다.
뒷모습은 검은색…… 아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흑색이다.
장재식은 그렇게 느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검은색.
마치 우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등을 돌렸다.
천천히 돌아가는 앞도 뒷모습과 별다를 바 없었다.
검은색 인영은 장재식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기괴한 검은 덩어리인데, 형체는 영락없는 사람이다.
사람이었으면 입이 있었을 그 위치가 묘하게 비틀리며 열렸다.
‘말을 해?’
뭐라 하는 것 같은데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날 찾아왔지?]“…….”
장재식은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쉬이 대꾸하지 못했다.
[크큭. 익숙한 냄새가 나는데.]녀석은 사람처럼 입방아를 찧었다.
츠츳.
눈이 있었을 그것이 떠지자 붉은 안광이 흘러나왔다. 이를 마주보는 장재식은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철컥.
저도 모르게 검을 뽑아버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압박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검을 겨누고 나서야 장재식은 조금의 여유를 찾았다.
“몬스터냐?”
[크큭.]장재식은 물어놓고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질문을 했는지 깨닫고 자책했다.
‘저게 몬스터지 뭐겠어?’
그리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익숙한 기분.
아주 많이 익숙한 기분.
[크큭, 재밌네, 재밌어.]“혼자 재밌냐?”
[하하하.]놈의 음성은 마치 그분을 닮아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장재식이 다시 한번 기함했다.
“너…….”
그래, 그런 몬스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신화 속에 흔히 나오는 몬스터가 아닌가.
“도플갱어구나.”
도플갱어는 대상과 똑같이 변한다고 하던데, 놈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검은색 일색에 오직 안광만이 붉은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생김새는 영락없이 몬스터인데 하는 품새나 말투, 음성까지 그분을 닮아 있었다.
‘시발, 사장님 전투력까지 스캔한 거 아냐?’
블랙맨에게서 묘하게 박수호의 향기가 느껴졌다.
“너, 우리 사장님 본 적 있냐?”
[사장?]블랙맨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렇군. 그래서 날 찾아왔군.]블랙맨은 장재식을 보며 웃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가 난다 싶었더니, 놈의 기사다.
살아있는 자신을 따르는 사제.
죽지 않은 신의 힘이 느껴진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장재식은 분명 이끌림을 받았다.
지금이 아니면 처치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나쁜 감각.
마치 요정이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서 가서 재앙의 싹을 자르라고.
지금이 기회라고.
자신의 감을 믿었고, 그렇기에 컨트롤 타워의 말을 따르지 않고 독단으로 여기까지 왔다.
마주하고 보니 과연 오크들보다도 더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과 조우하고 말았다.
자신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상대해볼 만하다.
척!
검을 세우고 정신을 집중했다.
할 수 있다.
저놈이 도플갱어라도 사장님을 완벽히 복제한 것은 아니리라.
그저 풍기는 분위기, 말투뿐이다.
“하압!”
장재식이 검을 휘둘렀다.
미래 검객이라 불릴 사나이.
그는 수호로부터 사제로 임명받았다.
깨우친 능력은 바람.
검보다 빠르게 내달리고 싶었다.
바람보다 빠르게 검을 휘두르고 싶었다.
촤아악!
스스슥.
블랙맨이 슬쩍 피해냈으나 어깨를 잘리고 말았다.
떨어져 나간 팔 하나를 보며 블랙맨이 어이없어 했다.
[냄새만이 아니군.]저놈이 신을 따르는 것을 넘어, 그 힘을 나눠 받았구나.
만만히 볼 놈이 아니다.
블랙맨의 입가에 맺혔던 조롱 섞인 미소가 사라졌다.
지구상의 물리력은 블랙맨을 해할 수 없다.
어떤 각성자가 와도 블랙맨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죽은 신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는 없으니까.
그것이 블랙맨이 부리는 여유의 근간이자 전부다.
촤아아악!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장재식의 검은 바람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성가시군.]블랙맨은 긴장했다.
여기 자신을 상처 입힐 수 있는 그 예외가 나타났다.
신의 사자.
신의 힘을 하사 받은 기사나 사제들은 블랙맨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게 가능했다.
인간이되 신격을 가진 존재들.
반신이라 불러야 하나?
“죽어라!”
슈슈슉!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블랙맨이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맞으면 위험하다.
이래서야 신과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죽음을 선사해야 하건만.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침식시켜 종래에는 신을 내쫓아야 한다.
신계로.
그것이 영면에 들었던 그가 깨어나 움직이는 이유이자 사명.
아직 죽지 않은 신은 자신의 의지를 담아 지구 곳곳에 남긴 모양이다.
이놈이 자신을 찾아서 온 것도 우연은 아닐 터.
본능적인 이끌림이 있었을 것이다.
신과 죽은 신은 남이 아니니까.
파파파팟!
문제는 이놈의 무력이 생각 이상이라는 것.
마구잡이로 휘두른 검에 실린 기파에 바람의 힘이 더해져 쇄도했다.
파팟!
몸 여기저기를 칼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고통은 없지만 위기감은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저 칼잡이에게 명을 다할지도 모른다.
‘다른 놈을 찾아야 한다.’
죽은 신의 기억과 힘이 담긴 마석을 취하든가, 다른 블랙맨을 찾아 흡수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팟!
블랙맨이 등을 보이며 냅다 달려가자 장재식은 서둘러 쫓았다.
촤아악!
검을 휘둘러 바람의 검날을 쉴 새 없이 날렸다. 이리저리 피하느라 걸음이 느려졌고, 바람의 힘을 받아 달리는 장재식의 달리기는 빨랐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장재식은 고양감에 세차게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는 강하다.’
수호신의 각성 이후 처음 있는 제대로 된 실전이다.
기본적으로 크게 향상된 신체 스탯도 그렇지만, 바람의 힘은 검객 장재식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같은 힘을 다루는 최수영과는 다른 자신만의 활용법에 서서히 눈을 뜨는 장재식이었다.
일방적인 공세.
도망치는 적.
장재식은 전투 중에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해버렸다.
‘이겼다.’
바람을 타고 달리는 장재식의 속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한 블랙맨이 방향을 바꿨다.
[쳇.]뒷일을 노리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다면 지금도 괜찮다.
영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작은 지역이지만 침식을 일으켰고, 곧 신의 사자 하나도 죽여줄 수 있을 테니까.
“음?”
도망만 치던 블랙맨이 급반전해 마주 달려오자, 장재식이 잠깐 고민했다.
‘멈춰?’
달리는 와중이라 검이 정교하지 못하다.
멈춰서 놈을 맞이해 베어야 하나.
‘이대로 달려?’
정교하진 못해도 지금의 속도를 이점으로 삼아 그대로 놈을 베어야 하나.
‘달린다.’
승리의 고양감을 한시라도 더 빨리 맛보고 싶다.
장재식이 더욱 속도를 높여 달렸고,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
장재식의 일검에 블랙맨의 허리가 양단되었다.
전방 베기 이후의 여러 수를 생각해뒀지만 쓸모없어졌다.
찰나의 순간에 마주친 블랙맨의 얼굴이 기괴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피할 생각이 없었어?’
오싹한 기분.
반사적으로 호신강기를 둘렀다.
기파에 바람이 섞여 들어와 더욱 두꺼워졌다.
콰아아아앙!
장재식을 끌어안은 블랙맨의 상하체가 동시에 터져나갔다.
꾸우우우우웅!
공간이 일그러지며 폭발하더니 주변에 그 여파가 미쳤다.
화염폭발이 아니다.
폭발의 잔재로 남은 것은 군데군데 검게 변해버린 공간들.
블랙맨의 파편이었을 그것들이 주변에 튀어 검게 물들였다.
마치 죽음이 들러붙듯.
풀썩.
검게 변해버린 바닥에 장재식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철컹.
끝내 손에서 놓치지 않고 있던 검이 바닥을 굴렀다.
다다닷.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던 팀원들이 서둘러 달려와 그를 불렀다.
“대장!”
“이사님!”
“빨리 구난팀 불러!”
장재식의 몸 곳곳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입가엔 피마저 흘러나와, 내상도 심상찮아 보였다.
그 사이 수송기가 도착했고, 팀원들은 부랴부랴 수송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
용병들은 스마트 워치에서 울리는 새로운 긴급 메시지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드래곤이 쳐들어왔다더니.”
“잡은겨?”
“허, 미소 부사장이랑 준호 부사장뿐이었잖아?”
“이야, 우리 부사장님들 잘 나가네.”
그사이 어느 용병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고, 추가적인 공지 메시지가 하달되었다.
“와아, 사장님 오셨어!”
“아니, 진짜야?”
“와, 사장님이 미드얼 행성 가셨으면 거기도 끝이네.”
“괜히 지구 쳐들어오려고 간봤다가 본진 다 털리게 생겼네, 오크 새끼들.”
“그럼 이제 오크들 증원 안 되는 거 아녜요?”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사냥감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네.”
“으음? 야, 빨리 수송기 돌려.”
부산으로 속속 소집되던 용병들이 다시 길을 돌려 일본 본토로 향했다.
*“쿨럭!”
격한 기침과 함께 은낙이 침대에서 눈을 떴다.
‘으음.’
잠깐의 멍한 시간과 함께 의식이 돌아왔다. 그리고 기억도.
‘고위 주술을 연달아 펼쳤구나.’
침대에 걸터앉은 은낙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히 몸을 관조해보니 아직도 기운이 들끓고 있다.
본디 모두 회복해야지 깨어날 터인데…….
은낙의 기척에 호위전사 누술이 막사로 들어섰다.
“깨셨습니까?”
“밖에 무슨 변고가 있더냐?”
“큰일은 아닙니다.”
누술의 얼굴이 어두워짐을 보고서야 은낙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음에도 깨어난 것은, 그에게 걸린 주술이 위기상황임을 경고해서다.
누술이 감당치 못할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네놈이 나를 기만하려 들더냐? 자세히 고하라.”
“인간들 무리가 산발적으로 등장해 게이트를 향해오고 있습니다.”
“헌데?”
인간들 무리와의 교전이 무슨 위기가 된다는 말인가?
“그들 무리 중 하나가 거인을 쓰러트렸습니다.”
제법 놀라운 소식이다.
거인족을 쓰러트릴 정도로 인간들의 전력이 탄탄하다니 말이다.
“그것이 진정 위협이 되더냐?”
놀라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고위 주술사 몇과 오크 전사들 몇이면 거인족과 상대해봄직한 전력이니까.
“인간들의 정예가 모인 모양이구나.”
은낙은 추론하면서도 영 찜찜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깼다?’
예지의 힘을 가진 은낙이다.
신변에 아주 큰 위협이 있어야만 주술이 발동할 터인데…….
아직 제대로 회복도 못한 몸이 스스로 깨어날 정도면 아주 큰 위협이란 소리인데, 인간들 몇이 온다고 무에 큰 위협이 될까?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폭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은낙이 방어주술을 펼쳤다. 후폭풍이 막사에 당도하기 전에 적시에 펼친 방어막 덕분에, 천막은 하나도 찢어지지 않고 온전했다.
“무엇이냐!”
인간들이 핵이라도 날린 것일까?
마법진이 건재할 터인데?
열두 제자들이 허술하게 마법진을 관리할 리도 없는데.
펄럭!
천막을 거칠게 열고 막사를 나오니, 붉은 마법진 가운데 인간 하나가 오연히 서 있었다.
“안녕? 늙은 오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