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382)
383화 각자도생
부르르르.
청룡은 척추를 관통하는 느낌의 고양감에 몸을 떨었다.
[이, 이것이…….]위험한 감정이다.
이 느낌은 마치.
[이것은 마치…….] [오르가즘?] [오…… 흐음.]청룡은 끼어드는 백사를 한번 찌릿 보고는 표정을 수습했다.
해방감마저 느껴지는 들뜬 고양감과 성취감에 너무 흥분해버렸군.
[인간들은 레벨업을 두고 그리 말하더군.] […….]백사의 놀림에 청룡은 입을 다물었다.
저 짓궂은 놈의 시선을 피하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신은 언제 깨어나시지?] [열흘? 그쯤 걸렸던 것 같은데.]수호가 아루카 행성에 갔을 땐 그 정도가 걸렸다. 구천 행성에 갔을 때야 백사를 만나기 전이지만, 그때도 그 정도의 시간은 흘렀다고 들었다.
청룡은 이 생각없는 빙염룡의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단순명쾌하군.]레벨업으로 인한 자신감이 청룡을 조금 더 느긋하게 만들어줬다.
드래곤들이 많지는 않다 하였다.
와봐야 한둘이겠지.
*블랙드래곤이 머리를 치켜세웠다.
[……라그낙과 룬페페가 당했다.]모든 종족의 소집에 응하지 않은 갈색 일족 로매르의 안위를 점검하기 위해 간 그들이다.
떠나는 그들에게 드래곤 로드는 자신의 마력 일부를 딸려 보냈다. 혹시라도 변고가 생길 때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다.
일종의 알림 마법을 붙인 것.
길게 이어져 오던 마력의 신호가 끊어진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드래곤 하트가 멈췄다.’
그들의 생명 신호가 끊겼다.
드래곤 로드는 길게 목을 빼내 포효했다.
쿠오오오오오오!
뾰족뾰족 솟은 올림푸스 산 일대가 떨어 울렸다.
로드의 포효에 분노가 가득 담겨 있어, 다른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목을 움츠렸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종족, 드래곤.
오늘에만 둘이 당했다.
아니,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갈색 일족 로메르도 당했다고 봐야겠지.
지구에서 죽은 락샤샤까지 하면 일족 넷이 허망하게 당했다.
쿠오오오오!
포효하던 드래곤 로드, 블랙 드래곤이 고개를 내려 일족들을 돌아봤다.
수천을 넘던 드래곤들이 이제는 겨우 수십이 남았다.
자신의 대에 이르러 종의 멸망을 보게 되는 것인가.
후회와 두려움, 분노와 경멸이 뒤섞여 블랙 드래곤의 눈알이 번들거렸다.
[놈이다.]드래곤이 당했다.
특히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갈색 일족의 행방을 조사하러 간 라그낙과 룬페페는 각각 적색 일족과 청색 일족의 수장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그만큼 가진 힘이 강력하고, 믿을 만한 후임들이란 소리.
그들이 동시에 갔는데도 당했으니,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다.
[인간 신이 미드얼로 왔다.]신룡대전을 일으켜 미드얼 행성의 드래곤들을 싹 쓸어버리다시피 해버린 그 흉악한 신이 다시 한번 미드얼 행성으로의 침공을 단행했다.
신룡대전에 비해 미드얼 행성의 드래곤 전력은 형편없는 수준.
더군다나 신룡대전을 경험한 드래곤은 로드 하나뿐이다.
나머지 드래곤들은 모두 그 후에 태어난 아이들.
‘까짓 인간 신 하나라면 우리끼리 힘을 합치면 충분하지 않을까?’
‘로드가 계신데 문제없지 않을까?’
인간 신의 진정한 음흉함과 흉폭함을 모르기에 호전적인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드래곤들도 상당수였다.
아니, 대부분이었다.
지나치게 조심하는 로드의 반응에 불만을 품은 드래곤들도 몇.
로드라고 그들의 기색을 모르지 않았다.
[어리석구나.]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모른다.
오래토록 오크들에게 숭배받아 왔기에, 신으로서의 그 고고한 자존심이 그들을 자만하게 했다.
그들은 하늘 위의 하늘을 보지 못했다.
신계를 그토록 염원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염원하는 건 블랙 드래곤 그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드는 외로움을 느꼈다.
현실에 안주해서는 종말뿐이거늘, 다른 드래곤들은 이대로의 삶도 괜찮은 듯했다.
보지 못해서 그렇다.
경험하지 못해서 그렇다.
찬란했던 과거를 잊고, 역사를 잊어 그렀다.
기록되지 못하는 행성.
미드얼의 미래는 암울함뿐이건만.
이 황무지 행성에 길들여져 적응해버린 자칭 신이라 불리는 드래곤들이 가엾었다.
[겪어보라.]보면 알겠지.
인간신을 마주하고 보면 저들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리라.
그렇다고 고작 그 감상을 위해 드래곤들을 사지로 욱여넣을 수는 없었다.
[쿠차차!]후우우우웅!
드래곤 하나가 날개를 활짝 펴고 펄럭였다.
[예, 로드.] [아이들을 이끌고 잠든 거인들을 깨우라.] [명대로 합지요.]미드얼의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야 한다.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한다.
[모두 가라. 가서 미드얼의 모든 힘을 모으라.] [예, 로드.]후우우우웅.
올림푸스의 뾰족 솟은 봉우리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드래곤들이 날아올랐다.
잠든 거인을 깨우기 위해서.
[…….]블랙 드래곤은 미드얼의 모든 전력이 뭉쳐도 인간 신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룡대전에서도 이기지 못한 싸움을, 그때의 전력의 백분지 일도 되지 않는 지금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겠는가.
지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목을 빼놓고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허무하게 지지 않기 위한 발악이다.
‘역사만 있었어도…….’
미드얼의 하늘을 비추는 두 개의 작은 달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구천이 있어 기록만 되어 왔어도, 이토록 허망하지 않겠건만.
미드얼에서 죽음 이후 기다리는 건 기록이 아닌, 썩어 없어질 시체뿐이다.
*새롭게 오크 대주술사가 된 파둔은 망가진 주술진을 재건하려 애썼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아, 이 무슨 꼴인지.”
대주술사의 힘은 대물림된다.
대주술사의 상징이자 전부인 대주술사의 증명은 그저 단순한 주술 지팡이가 아니다.
선대의 주술력이 모인 해골을 주렁주렁 달고, 비전 주술의 힘을 보탠다.
적게는 수 개, 많게는 수십 개의 해골이 달린다. 그 해골의 숫자만큼 비전주술의 가짓수와 위력이 늘어난다.
파둔이 짚고 선 지팡이에 달린 해골은 하나.
친우이자 전대 대주술사였던 은낙의 해골뿐이다.
“후우.”
그토록 염원하던 대주술사가 되었음에도 파둔은 속이 답답하기만 했다.
고작 이 힘으로 무슨 비전 주술을 펼치겠는가.
‘시공의 역전도 불가능하다.’
당장 시급한 것이 지구의 화력무기를 막을 방도가 아니던가?
아직 지구의 인간들이 다시금 화력무기들을 쏘아보내지는 않고 있지만, 그것들이 다시 재개되면 오밀조밀 모여든 여러 오크 부족들이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누술.”
“예, 대주술사.”
태어나기를 전사로 태어났고, 대주술사의 호위전사로 키워진 누술이 은낙에 이어 파둔을 모시게 된 것은 당연했다.
“각 부족에 전해라. 게이트를 넘어온 즉시 길을 나서 전사의 증명을 이루라.”
지구인들의 화력무기로 인한 집중포화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는 마당에, 지금처럼 게이트를 넘어온 오크들을 한곳에 잡아두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한 번에 몰살당하기 싫으면 밀집도라도 떨어트려야 한다.
“서둘러 전하거라.”
“예, 대주술사.”
“쯧.”
멀어지는 누술을 보며 파둔이 혀를 찼다.
은낙과 하도 오래 붙어있다 보니, 아직도 그의 죽음을 떨쳐내지 못한 유약한 모습이다.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오크라니.
호전성이 아닌 감수성을 타고난 오크만큼 괴상한 게 어딨겠나.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것이 아니라 분노해야 했다. 복수심에 불타야 했다.
그것이 오크다.
듣기로 녀석은 전의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고 했다. 상대가 그정도로 대단했기에.
‘인간들의 신이라…….’
뭐, 그거야 자신들의 신인 드래곤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신들은 그들만의 싸움이 있고, 자신들은 또 그 나름의 치열한 싸움이 있으니까.
우오오오오!
누술의 말이 각 부족에게 전해졌는지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지며 사기를 북돋아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루타, 록가!”
전사의 목을 쳐라.
강해질 것이다.
오랜 주문 같은 그 소리가 무너진 오사카 성 곳곳으로 퍼져나가며, 부족 단위의 오크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반도 연방, 컨트롤 타워.
위성 감시망을 모니터링 중이던 직원이 너무 놀라 소리 질렀다.
“오크들이 움직입니다!”
“어디로?”
“어디 할 것 없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망할 놈들. 가만히 기다릴 것이지.”
보고받은 팀장이 서둘러 김미소를 찾아 보고 올렸다.
“부사장님. 오크들이…….”
“저도 보고 있어요.”
일본 전체가 띄워진 대형 스크린을 보며 김미소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요.”
“예?”
김미소의 얼굴엔 걱정도 그늘도 없었다.
박수호가 다녀간 이후로 그녀에게는 아무런 근심걱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크만 잡으면 돼.’
다른 건 신이 처리해 주실 거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를 오크로 한정하자, 김미소는 스트레스의 9할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잘됐네요.”
오크 수만 마리가 한곳에 밀집해 있는 것보다는 넓게 퍼져 있는 게 사냥하기 훨씬 수월하다.
‘용병들 훈련도 되겠어.’
소규모 교전이라야 G급 이하 용병들이 활약할 기회가 생긴다.
대규모 전투라면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G급 용병들이 나서야 한다. 그리되면 경험치를 독식하게 될 테고 말이다.
“용병들 활동 간격 좁히세요. 언제든 근처 팀에게 지원 갈 수 있도록 하세요.”
“그럼 전역을 커버하기 힘듭니다.”
“그건 애초에 힘들죠.”
김미소는 용병들의 활동 범위를 오사카 북부로 한정해 설정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오크들을 모조리 막아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목적을 정확히 합시다. 목표는 사냥입니다.”
“아.”
전장을 오사카에 한정해두고 오크들을 궤멸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일본 구원이 아닌, 사냥.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사귀환이다.
“네, 알겠습니다.”
오사카 북쪽에서부터 시작해 덤벼드는 오크들을 각개격파한다.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오크 무리는 그들의 소관이 아니다.
*시티 나고야.
도쿄 인근 대도시 중 가장 규모 있는 도시의 지도부들이 모여 연일 비상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칙쇼! 오크 무리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소. 사령관은 대책이 있으시오?”
“도시 방어에 사력을 다할 뿐이지요.”
나고야 방위사령관 타케시의 말에 나고야 시장 고로가 역정을 냈다.
“그런 교과서적인 답밖에 할 수 없소?”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선제타격이라도 하리오?”
“그나마 성의 있는 대답이구려.”
타케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군력이 증발한 것이 무엇 때문인지 잊으셨소이까?”
오사카의 오크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해군 함대마다 일제사격에 나섰다가, 그 미사일들이 되돌아와 궤멸해버렸다.
“제놈들이 그런 대규모 마법을 연달아 펼칠 재주가 있는 건 아니지 않소?”
“시장이 보증하시는 겁니까?”
괜히 미사일을 쐈다가 그것이 적의 주술에 의해 유턴해 오면 막을 방도가 없다.
“끄응, 저 대군이 몰려오는데 이대로 가만히 손 놓고 있자는 소립니까?”
“애당초 우리 방위사령부의 미사일 전력은 형편없소.”
오사카 일제 포화 때 나고야의 군부대가 빠진 것도 그 때문이다.
전화위복으로 그때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기에 피해를 입지 않아서 그대로 전력을 보존하고 있었다.
“시장이 다른 도시들의 지원을 요청해 보시는 게 어떻겠소?”
타케시의 말에 고로의 얼굴이 뻘게졌다.
안 해 본 게 아니다.
오사카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나고야가 나온다.
오크들이 턱밑까지 쳐들어온 시기인지라 여기저기 지원 요청을 했으나, 동북부의 도시들은 죄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다.
“다른 도시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시오!”
“으음.”
“지금 일본은 전국시대나 다름없소이다!”